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1 장 요한 바오로 2세와 안식일 제 2 부 일요일 준수에 대한 “성서적” 지원
 “디에스 크리스티”(Dies Christi--그리스도의 날)로 명명된 사목교서의 두 번째 장은 일요일 준수를 정당화하는 다음의 세 주요 성서적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 안식 후 첫날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부활과 출현(막 16:2, 9; 눅 24:1; 요 10:1);26)

 (2) 주일 중 첫째 날에 있었던 종교적인 모임들(고전 16:2; 행 20:7-12 참조);27)

 (3) 일요일에 있었던 부활 사건이 있은 지 50일 후에 성령의 부어주심(행 2:2-3).28) 우리는 그들이 좋아하는 순서에 따른 논증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13.1)
 (1) 그리스도의 부활/출현
 교황은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날이 주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안식일의 축제일로 삼았다”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29) 그는 비록 일요일이 안식일의 창조와 구속의 의미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날의 완전한 표현을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찾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주님의 날이 창조 사역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성서적인 쉼[안식일]의 오묘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의 날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보아야만 하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부활이다”30) (13.2)
 부활의 중요성
 교황에 따르면 주일 중 첫째 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출현하신 것은 일요일 예배의 기원을 위한 근본적이고도 성서적인 타당성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의 글에서 강력한 성서적인 입증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복음서의 공통적인 증거들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은 안식 후 ‘첫째 날’에 있었다(막 16:2, 9; 눅 24:1; 요 20:1). 그 같은 날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엠마오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며(눅 24:13-35 참조), 그리고 열 한 사도들과 함께 하셨다(눅 24:36; 요 20:19 참조). 일 주일 후에 요한 복음서가 자세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요 20:26 참조),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난의 흔적을 도마에게 보이시므로 자신을 알리시기 위해서 제자들을 모으셨다. 또한 오순절 날, 곧 유대인의 고난 주일 후 여덟 번째 주일 첫째 날( 행 2:1 참조), 곧 일요일에 예수께서 하신 약속이 부활 후에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 제자들에게 성취되었다(눅 24:49; 행 1:4-5 참조). 베드로가 청중을 모아 놓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고 외친 첫 선포가 일요일에 있었으며, ‘그 말씀을 받고 침례를 받은 날이’ 곧 일요일이었다(행 2:41). 이것으로 교회가 출현하게 되었으며 모든 의견의 차이를 넘어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연합하므로 한 백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31) (13.3)
 허다한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은 주일 중 첫째 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출현하신 것이 사도교회에 의해서 일요일을 택하게 되었던 기본적인 이유라는데 있어서 요한 바오로와 의견을 같이한다. 교황청 그레고리 대학에서 본인의 논문을 지도했던 빈센조 모나키노(Vincenzo Monachino, S. J.) 수하에서 공부한 예수회 소속 학생인 콜라드 모스나(Corrado Mosna)는 일요일의 기원에 대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우리는 부활의 사건이 첫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일로서 일요일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 확실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32) (14.1)
 같은 견해가 추기경인 카디날 장 다니엘루(Jean Danielou)에 의해서도 “주의 날은 순전히 기독교적인 제도이다; 그것의 기원은 철저히 안식 후 첫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사실에서 찾아야만 한다”33)라는 견해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개신교의 신학자인 폴 제웨트(Paul Jewett)도 “어떻게 일요일이 원시 유대교회로 하여금 정규적인 집회 일로 정착시키도록 자극했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전에 우리가 주목한 바로는 복음서의 일관된 증언에 따르면 주일 중 첫째 날에 발생한 부활과 더불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34)라고 기록하고 있다. (14.2)
 부활에 대한 평가
 부활 사건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주요 역할을 일요일 준수에 채택 한 것은 성서적으로 지지를 받기에는 부족하다. 부활과 관련된 모든 언급들을 세밀히 연구하면 그 사건에 대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중요성이 나타나고 있으나,35) 그 날을 기념할 만한 특별한 날로 가르치는 곳은 전혀 없다. 사실, 하롤드 리센펠드(Harold Riesenfeld)의 언급에 의하면 “부활 사건을 다루면서 복음서가 그리스도의 엄청난 부활 사건은 그것이 발생한 주일의 특정한 어느 날을 기념해야 된다고 가르치는 곳은 전혀 없다.”36) (14.3)
 더 나아가, 같은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신약의 기록 가운데서 주일 중 첫째날이 결코 ‘부활의 날’(Day of the Resurrection)이라고 불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후에 나타난 용어이다.”37) 그 용례는 4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예수께서 그 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일요일이 준수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맥카슬랜드(S. V. Mccasland)가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처럼, “실제로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a petitio principii]이 된다. 그 이유는 그러한 축제는 지금까지 월별이나 해마나 특별한 날에 있는 것들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38) (14.4)
 신약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에대한 어떤 예전적인 중요성도 부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그 부활이 일요일 예배와 관련된 어떤 예전적인 행위가 아니라 단순히 부활하신 구주의 능력에 의한 승리의 생애를 삶으로 경험된 실존적인 현실로 보았기 때문이다. (14.5)
 만약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기를 원하셨다면 자신의 부활의 날을 그 사건을 기억할 만한 날로 만드시기 위해 대문자로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구세주의 한 말씀도 자신의 부활의 날을 그리스도인의 새 휴식과 예배의 날로 만드시려는 의도를 나타내지 않으셨다. 안식일, 침례, 그리고 주의 만찬과 같은 성서적인 제도들 모두는 그 기원을 그것들을 만드신 하나님께 두고 있다. 그러나 주일 중 일요일이나 또는 부활절 일요일을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도록 한 하나님의 행위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 (14.6)
 이 문제에 대해서 신약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그 대부분의 책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은 지 여러 해 후에 기록되었다는 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만약 첫 세기의 반이 지난 후에, 일요일이 구약 안식일의 창조와 구속적 기능을 성취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알려졌다면, 요한 바오로가 주장하는 바대로 우리는 신약에서 주일 중 일요일이나 또는 매년 있는 부활절 일요일에 대한 어떤 종교적인 의미와 준수에 대한 암시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15.1)
 그러한 일요일 준수에 대한 종교적 암시가 전혀 없는 것은 그러한 전개가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런 내용들은 본인의 논문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에서 길게 취급하였다. (15.2)
 신약에는 부활절 일요일이 없음
 주일마다 오는 일요일과 해마다 있는 부활절 일요일에 행하는 그리스도의 부활 축제가 “주님의 부활 후에 얼마 있지 않아서 발생되었다”39)는 교황의 주장은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입증될 수가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유월절은 적어도 그리스도께서 돌아 가신지 1세기 후에 부활의 기념일로 부활절 일요일에 지켜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속죄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서 니산월 14일(주일 중 지정된 날과는 상관없이)에 지켜졌다고 한다. (15.3)
 유월절에 대한 유대인적 계산법을 거절하고 대신에 부활절 일요일을 채택한 것은 요아김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가 놓고 있는 것처럼 “유대교로부터 단절시키려는 의도”40)에서 기인되었으며, 또 라이트후트(J. B. Lightfoot)가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더 나아가서 유대교에 동화되는 것”41)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볼 때 이 것은 사도 시대 이 후에 발전 된 것이다. (15.4)
 로마 교회에 의한 2세기경의 부활절 일요일의 소개와 권장은 로마의 감독인 빅토르(Victor)가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 일요일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파문시키도록 한 그 유명한 유월절 논쟁(Passover[Quartodeciman] controversy)을 유발시켰다(A.D. 191년 경).42) 이러한 충분한 자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기독교의 발생으로부터 주일 일요일과 부활절 일요일에 축하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식일이 일요일로, 그리고 유월절이 부활절 일요일로 바뀌어지도록 한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요인들은 본인의 논문에서 충분히 논의되어 있다. (15.5)
 출현(Appearances)에 대한 평가
 요한 바오로는 주일 중 첫째 날에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을 “엠마오의 두 제자들(눅 24:13-35 참조)과, 또 함께 모여 있었던 11명의 사도들”(눅 24:36-49; 요 20:19 참조)에게 적용하므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43) 그분께서 또한 그 다음 일요일(“8일 후에”요 20:26)에 도마에게 자신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과, 그가 어느 일요일(눅 24:49; 행 1:4-5)에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한 약속을 성취하신 사실을 일요일 준수의 일관성 있는 형태의 출발로 보여진다는 것이다.44)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