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는 지시를 받은 직후에 다음과 같은 또 하나의 분부를 받았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 하리라”(계 11:2, 3). “성전 밖 마당”의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제3문에서 취급할 것이다. (295.1)
만일, 요한계시록 10장의 작은 책이 다니엘를 뜻하는 것이란 사실에 일말의 의심이 간다면 그 의심은 위의 성경절에 의해 말끔히 씻어져야 한다. 작은 책은 펼쳐져 있고 요한은 다니엘 7, 8장의 예언 기간에 주목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295.2)
다니엘 7장에는 신성 모독과 박해를 자행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변개코자하는 한 체제를 다룬 1,260일 예언이 들어 있다. 다니엘 8장에는 “성소”와 “백성”을 짓밟은 한 체제에 대한 2,300일 예언이 들어 있다. (295.3)
요한은 하나님의 “두 증인”이 1,260일 동안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하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니느웨 백성들은 요나가 회개를 촉구하자 베옷을 입고 회개했다(3:6~9). 다니엘도 정성을 다해 기도할 때 베옷을 입었다(단 9:3). “두 증인”은 열심을 다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의 기별은 인기가 없는 것이었다. 그 기별들은 듣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계 11:10) 것이었다. 사람들은 1,260일 동안 그 기별을 배척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일에 개입할 준비가 돼 있으셨다. 요한은 묵시에서 “두 증인”을 보았는데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증인”은 권세를 가지고 “비 오지 못하게”도 하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기도 하며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재앙으로 땅을 치”는 것이었다(계 11:5, 6). (295.4)
그렇다면 이 신비스러운 두 증인은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앞에서 이들을 신구약 성경이라고 해석했었다. (295.5)
요한은 4절에서 두 증인을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언급한다.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다른 표현들과 마찬가지로 구약 성경에서 빌려 온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등대”의 오른쪽과 왼쪽에 하나씩 서 있는 “두 감람나무”에 대해 말했다(슥 4:2, 3). 그러나 스가랴가 말하는 등대는 하나이고(4장 6절에서는 이 등대가 성령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두 감람나무 또한 그 당시 정치적 및 영적 지도력을 대표하는 두 사람 곧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나타내고 있었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 중 그 누구도 비를 내리지 못하게 했거나 재앙을 내리게 한 사실이 없었다. 따라서 요한이 본 두 증인과 스가랴가 본 두 감람나무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295.6)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가 하늘을 “닫히게” 하고 “비”를 내리지 않게 하여 3년 반 동안 흉년이 계속되게 하였다(왕상 17장; 눅 4:25). 구약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를 가리켜 감람나무라 칭한 일은 없으나 여기의 3년 반이란 표현은 요한계시록 11장 11절의 “3년 반”과 동일한 것이다. 엘리야는 자신을 붙잡아 처형하려는 군인들을 소멸하려고 두 번씩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했다(왕하 1장). (295.7)
우리는 또 모세(성경 어느 곳에서도 모세를 감람나무로 부른 적이 없다)가 나일 강물을 “피” 빛으로 변하게 하고 애굽에 대재앙을 내리게 했던 사실을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가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서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마 17:1~8). 그리하여 일부 성경 독자들은 두 증인을, 문자 그대로 말세 때 부활하여 1,260일 동안 활약할 모세와 엘리야로 해석했다. (295.8)
그러나, 우리는 지금 상징들을 취급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어떤 경우에서는 단지 어떤 인상들을 취급하고 있을 뿐이다. 상징들과 인상적인 언어들은 단순히 그 언어가 뜻하는 것 이상의 무엇을 가리킨다. 1,260일은 1,260년을 말한다. 요한계시록과 같은 책에서는 두 증인이 실제의 두 선지자를 의미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296.1)
그렇다면, 두 증인은 누구란 말인가? 증인이란 무엇에 대해 증거하는 사람을 뜻한다. 증언하는 것과 증거하는 것은 같은 말이다. 이 말은 희랍어 마르투레오와 관련되어 있으며 마르투레오는 “순교자”란 뜻의 영어 단어 “마터”(martyr)의 희랍어 어원이다. 순교자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이다. (296.2)
(1) 구약 성경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감람산 설교에서는
(2)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고 하셨다(마 24:14). (296.3)
구약 성경에는 선지자들의 증언들이 수록되어 있다. 신약 성경에는 초기에 복음을 전파한 자들의 증언이 수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이 자신에 대해 증거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직 신약 성경은 기록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한이 요한계시록 11장을 기록할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었다. 이와같이 요한의 시대에 이르러 구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도 1,260년에 걸쳐 그리스도를 증거할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요한계시록 1장, 2. 예수님과 증언 항을 참고하라). (296.4)
요한은 두 증인을 “감람나무”와 “촛대”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감람유(油)가 등불의 주 연료로 사용되었다. 시편 119장 105절에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여 감람유 등(燈)을 성경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사용했다. 시편 119장 130절은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요한이 본 두 증인은 감람나무와 촛대로 일컬어졌다. 신구약 성경은 영적인 빛의 주요 원천이기 때문이다. (296.5)
이렇게 볼 때 모세와 엘리야 뿐만 아니라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두 증인의 하나에 포함된다. 두번째 증인에는 신약 성경의 모든 기자들이 포함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증인을 신구약 성경으로 결론짓는 것이다. (296.6)
그렇다면 신구약 성경이 실제로 재앙을 내릴 권세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라고 했다. (296.7)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어린 양을 통해 세상에 전해진 요한계시록의 기별 곧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을 왜곡하거나 배척한다면 순종과 믿음에 부수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게 될 때 우리는 완고한 이방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요한계시록 8, 9장을 통해서 유대 민족과 그리스도인들과 모슬렘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저버렸을 때 일곱 나팔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 사실을 살펴 보았다. (296.8)
1,260년간 성경의 빛을 가볍게 여기고 성경의 진리를 왜곡했던 사회는 때로 뼈아픈 고통을 치뤄야 했다. 우리는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연구할 때, 서유럽 세계가 흑사병의 전염으로 말미암아 “침상에 내던져지는” 처참한 광경을 살펴 보았다. 또 기근에 대해서 말해보자. 970년~1048년의 78년 간을 예로 든다면 그 기간 중 48년이 극심한 기근을 치렀다. 사람들의 고통이 어떠했을 것인가. (297.1)
성경에 제시된 은혜의 백마 기사(白馬騎士)를 괄시한 그리스도인 세계는 별도리 없이 전쟁과 기근과 염병의 무서운 세 기사들을 맞이해야 했다. 앞에 나오는 나팔들을 무시했던 사회들은 뒤따라 오는 “화”를 치뤄야 했다. 이러한 뜻에서 두 증인 곧 성경은 재앙을 내린다고 말할 수 있다. (2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