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그레이디 대위의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 적들은 그가 탄 비행기를 격추시켜 사로잡으려고 했고 후에는 그를 구하여 돌아가는 해병대 헬기를 격추시키려 했다. (302.1)
이 지구는 전체가 전쟁터다.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시지만 악은 쉽게 우리를 놔주지 않는다. 이 악의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누가 우리의 대적인가? 이 끔찍한 학살의 배후에 누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은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302.2)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회중들은 “속죄제를 위한 두 마리의 수염소”(레 16:5; 저자 역)를 예비했다. 이 두 염소가 각각 어떤 역할을 담당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대제사장인 아론은 제비를 뽑았다. (302.3)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8~10).
(302.4)
대제사장이 제비를 뽑기 전에는 두 염소가 서로 바뀔 수 있었다. 그 염소들은 똑같이 생겼으며 어느 것이든 하나님을 위하거나 아사셀을 위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제비가 뽑히게 되면 그들의 역할은 정해져서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303.1)
이 두 염소의 역할을 고르는 것은 대제사장의 몫이 아니었다.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셨다. 성경에 나오는 제비 뽑는 다른 예로써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선택하신 이야기가 있다(삼상 10:19~24). (303.2)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하고”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하여” 선택되었다. 이것은 한 염소는 하나님께 속했고, 다른 하나는 아사셀에게 속한 것임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름 앞에 “위하여”를 덧붙이는 이 같은 표현은 고대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을 표시하는 데 사용한 돌인장에 새겨졌었다. 내가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에서 고대 명문(銘文)에 관해 공부할 때 나베 교수가 매 수업시간에 이와 같은 인장들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읽을 기회를 가졌다. (303.3)
하나님의 염소와 아사셀을 위한 염소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각각 소유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염소 한 마리를 선택하셨던 것처럼 아사셀 또한 한 마리의 염소를 소유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존재였음에 분명했다. (303.4)
하나님을 위한 염소는 하나님의 성전을 정결케 하기 위한 속죄제물로 드려졌다. 그러나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희생제사로 드려지지 않았다. 레위기 16:5에서 아사셀의 염소를 하나님의 염소와 함께 “속죄 의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속죄 의식”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다른 곳에서 “속죄제”로써 번역되어지기도 한다. (303.5)
그러나 아사셀 염소의 경우는 그 염소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제사는 속죄제나 희생 제사가 아니었다. 그 대신 그 염소는 하나님과 성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보내졌다(10절). (304.1)
아사셀은 분명 하나님의 대적임에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를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 전가시키라고 지시하셨고 그 염소는 이 해로운 짐으로 인해 멸절되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의 집 앞 잔디에 한 트럭이나 되는 화학 폐기물이나 악취 나고 구더기가 들끓는 닭똥을 부어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 친절한 행동이 아닌 것이다. 자, 아사셀 여기 이 쓰레기들을 받아라! (304.2)
만약 아사셀이 하나님의 대적이라면 왜 레위기 16:10은 그 염소가 “속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속죄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들은 사람들이나 성소를 위하여 속죄한다. 그러나 여기서 속죄는 짐승 자체 그 위에 이루어졌고, 그 염소는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졌다. 염소 자체 위에 이루어지는 속죄는 염소를 위해 속죄가 행해지는 것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그들의 진영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였던 것이다. 그리고 악을 멸망시킴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304.3)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속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악을 제하여 버림으로 하나님과 다시 하나가 되는 기본적 의미의 속죄이다. 민수기 25장에 대제사장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뻔뻔하게 죄를 짓고 있는 시므리와 고스비를 죽임으로(6-8절)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는 장면을 비교해보자(13절). 그러나 이 두 남녀는 속죄를 받지 못했다. (304.4)
오히려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이 두 남녀가 죽음으로서 속죄가 된 것이었다. 즉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갈라놓았던 것이다. 이들이 죽임을 당하자 하나님께서는 염병을 멈추셨다. (305.1)
우리는 “속죄”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를 위해 “대속적인 속죄”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죽지 않도록, 우리의 대속자로서,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본래 속죄의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과 우주가 정결하여지고 하나님과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죄인들 자신들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305.2)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죄로부터 분리되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죄인들을 멸하실 때 죄도 파멸시키실 것이다(계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없이 하시기 전에 성소 정결을 통해 죄의 모든 책임을 자신으로부터 제거하시고 그 책임을 그분과 그분의 백성에게서 “아사셀”이라 일컫는 어떤 존재에게 전가시킬 것이다. (305.3)
백성들을 범죄하게 하는 아사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대적이다. 아사셀은 그리스도가 아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광야로 보내질 때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희생 제도를 통해 사람들은 이미 용서를 받았고 성전도 이미 정결함을 입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실제로 우리의 죄를 처리하는 유일한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히 9:28). 우리는 또 다른 메시야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305.4)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여호와께 속하였던 것이고, 여호와께 드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의미하기도 했다.그리스도가 곧 여호와라는 것은 요한복음 8:58과 10:30에 나와 있다. 그러므로 아사셀에게 속하고 그에게 보내진 염소는 또한 아사셀을 대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305.5)
하나님은 그들의 죄의 형벌로부터 그분의 백성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그의 희생을 통하여 그분 백성의 죄를 담당하셨다. 아사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감당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감당을 하게 된다. (306.1)
어떤 사람들은 아사셀이 악마와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을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의 정체가 레위기서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그를 숭배하도록 유혹 받을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아사셀이 레위기에서 불분명하게 나타나있지만 그의 전체적인 신상명세는 분명한데 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존재는 우주에서 단 한 존재 밖에 없다. 바로 사단이다. (3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