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6부 위험에 처한 관계 제35장 아사셀 염소는 대적을 상징한다
 “사단”이란 이름은 히브리어로 대적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는 그가 하나님의 원수로써 설명되어진다(마 4:1~11; 눅 10:17~18; 계 12:7~17).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른 죄에 대해 많은 책임이 있다. 그는 우주에 죄를 처음 가지고 들어왔고, 하와를 유혹하여 인간이 죄에 빠지게 했으며, 우리도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있다(참고 고전 7:5). (306.3)
 사단은 우리로 죄를 짓게 한 배후의 조종자이다. 나의 죄는 사단의 죄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형벌에 대한 나의 책임을 감당해 주시지만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대표된 사단은 형벌에 대한 그 자신의 책임을 감당한다. (306.4)
 만약 내가 은행털이 범죄자 집단에 속해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집단의 두목, 은행에 직접 들어간 그룹, 은행원들을 묶은 동료들, 금고실을 연 팀, 그리고 도주를 위해 차를 운전한 운전사 등 우리 모두는 같은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도 이와 같다. (306.5)
 죄를 짓는다는 것은 사단의 “범죄 집단”에 속하는 것이다. 죄를 짓고 실수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우리를 유혹한 것은 사단의 책임인 것이다. (307.1)
 대속죄일의 제사의식에 사용되어진 짐승들은 그리스도를 뜻하던지 아니면 사단을 의미했다. 그 중 네 희생제물은 그리스도를 뜻하였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만이 사단을 의미했다. (307.2)
 그리스도를 상징했던 네 희생 제물들은 이와 같다. 제사장을 위한 수송아지, 제사장이 아닌 다른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여호와의 염소와 제사장을 위한 번제 제물인 수양, 나머지 백성을 위한 번제제물인 수양이다(레 16:3, 5, 11~19, 24). (307.3)
 이 네 짐승 중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 만이 이스라엘의 성소가 지적하는 실체를 나타내기 위한 독립된 의미를 갖고 있다. 제사장은 흠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제사장을 위한 수송아지와 수양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희생 제사들은 우리의 흠없는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드려야만 하는 어떤 희생 제사를 미리 지적하지는 않는다. 회중을 위한 번제의 수양은 특별하게 구분되어진 의미가 없다. 다른 곳에처럼 한 사람이 번제와 속죄제를 함께 드린다면 그 번제는 단지 더 큰 속죄제가 되면서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속죄제 양이 늘어난 것이었다(참고 레 5:67־; 민 15:24~28). (307.4)
 그래서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 대한 의식(레 16:20~22) 후에 있는 백성들을 위한 번제(레 16:24)가 특별히 분리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잠재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준다. 우리는 아사셀 염소의 추방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이어지는 사단의 추방/감금에 따른 더 나아간 단계의 속죄의 국면을 찾을 필요가 없다(계 20:1~3). (307.5)
 대속죄일의 제사의식에 사용된 짐승들 중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를 위하여 사역하고 계신 것을 의미하며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사단의 의미를 지닌다. (307.6)
 그래서 대속죄일의 성소와 진중을 정결케 하는 모든 절차는 “두 염소 이야기”로써 요약되어질 수 있다. 이것이 대속죄일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308.1)
 그 두 염소는 여호와에 의해 결정되기 전엔 역할을 구별할 수 없었다(레 16:8). 그들은 단지 똑같이 생긴 염소였다. 그래서 인간들은 어느 것이 여호와를 위한 염소인지 어느 것이 사단을 위한 염소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고 오로지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에 의지해야만 했다. (308.2)
 아사셀 염소는 번제단이 있는 뜰에서 제사의 진행을 목격하며 서 있었다. 이것은 마치 사단이 하나님께서 지구를 위해 하시는 일을 목격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왜냐하면 번제단이 상징했던 십자가는 바로 이 지구에 있었기 때문이다(계 11:1~2, 12:7~17). (308.3)
 유혹자로써의 사단은 우리를 대항하는 목격자이기도 하다. 즉 우리에게 죄를 짓도록 유혹한 후 우리가 죄 지은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다(슥 3:1~2). 이것은 “함정”이라고도 불린다. 최초의 거짓말쟁이인(요 8:44) 사단은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정당하게 용서받은 사람들을 참소함으로 하나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는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계 12:10)이다. (308.4)
 우리를 참소함으로 사단은 스스로 자신의 신원을 확인해주고 자신이 원인임을 보여준다. 그는 마치 내 처사촌을 공격했던 강도와 같다. 처사촌은 버클리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는 중에 자신의 아파트 근처 숲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고 그 곳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8.5)
 당황한 죠지가 그 사람에게 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그 사람은 숲에서 나와 사촌을 공격하고 사라졌다. (309.1)
 죠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몇 명의 용의자들을 잡게 되었다. 다음 날 사촌은 경찰서에서 그 용의자들 중에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군지를 찾아내야 했다. 그런데 늦은 밤에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공격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 난처한 상황은 금방 해결되었다. 용의자 중한 사람이 죠지를 가리키면서 “그가 나를 위협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309.2)
 사단이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말할 때 그는 진실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를 받아들인 중에도 사단은 계속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고 고소한다(계 12:10). 그것은 거짓 증언일 뿐만 아니라 그는 거짓말로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악의적이고 거짓된 증인이다. 성경에선 이러한 증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에 대한 법이 나와 있다. (309.3)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신 19:16~21).
(309.4)
 사단이 죄를 시작했고, 자신의 죄를 저지르고, 또 그리스도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사실 외에도 사단이 영멸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그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가 거짓 고소를 한 사람들이 옹호되지 않았다면 받게 될 형벌을 받아야 되는 악의에 찬 거짓 증인이기 때문이다(신 19:16~21, 민 5:31). (310.1)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가는 아사셀의 염소는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사단을 표상한다. 거짓 증언자로써 받게 될 그의 형벌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심판에서 용서받지 못했을 경우 받게 될 그 형벌이다. 그러나 그 모든 책임은 거짓 증언자의 것이다.그 책임은 죄 지은 인간들의 것이 아니다. (3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