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기록은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나는 몸이 하늘로 올리어지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중력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구절에서 하늘이 땅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것처럼 시사되고 있는데, 이는 현대 과학의 지지를 받은 수 없는 묘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기자들은 승천을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분의 성육신보다 특별히 더 어려운 주제로 여기기는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의 일부분이며, 또한 다른 둘보다 더 놀라운 사건도 아니다. 여기에 더하여,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사건들을 원자료들과 목격자들을 통해서 확증했던 매우 주의 깊은 역사가이므로 이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만 그들의 경험의 상세한 부분들에 대한 확증을 생략하였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227.4)
 2. 승천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승천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자기의 일을 이루시고 곧바로 높임과 영광을 받으셨음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빌 2:9). 그분에게 있어서 그것은 자기의 승리의 확증이며(엡 4:8), 영광 중에 아버지와 직접 대면하여 나누는 교제의 재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나님은 그분을 “지극히 높이”셨다(빌 2:9). (228.1)
 신약의 기자들은 우리 주님의 승천 이후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시편 110:1을 인용하였다. “야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마태복음 22:44, 마가복음 12:36, 사도행전 2:34, 35, 고린도전서 15:25, 히브리서 1:13; 10; 12, 13에 직접적으로 인용되었으며, 또한 예수께서 자기의 원수를 정복할 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것(행 2:33; 롬 8:34), 앉으신 것(엡 1:20; 골 3:1), 서신 것(행 7:55, 56)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여러 성경구절에 간접적으로 인용되었다. 이 성경 구절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많은 구절들이 단지 어떤 한 날에 그리스도가 승천하셨다는 역사적 사건만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분의 승천을 하나의 연속되는 직무로 드러내 보여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바울과 베드로가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선언하고 있는 로마서 8:34베드로전서 3:22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상징적 표현은 예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한가히 지내시고 계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이 표현은 그 의미가 아주 명백한 표현이다. 이것은 승천하신 신인(God-man)이 높임과 영광을 받으셨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거대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분이 자기의 아버지께 나아가신 것과 그분의 손에 모든 권세가 들리어져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다. (228.2)
 3. 승천과 신자들과의 관계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그분의 승천은 그분이 육체적으로 멀리 떨어져 계신 존재가 아니라 영적으로 매우 가까이 계신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마 28:20). 그분은 “세세토록 살아”계신다(계 1:18). 하나님은 그분의 “보좌가 영영하”다고 말씀하신다(히 1:8). 신약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때로부터 계속 살아계신다는 확신과 신자들이 그분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심으로 “죄에 대하여∙∙∙세상을 책망하시”기 위해(요 16:8) 성령을 보내시고(요 16:7; 행 2:33), 제자들 속에 거하시며(요 14:17), 그들을 권고하고 가르치시는 일(요 14:25. 26; 16:14, 15) 그리고 그들에게 증거하는 능력을 주시고(행 1:8; 4:8, 31) 백방으로 뻗어나가는 새로운 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행 2:41-47; 고후 13:13; 빌 2:1, 2)을 하실 수있게 되셨다. 위로 올리어지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고(요 14:26)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성령을 통해서 계속해서 당신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신다. 이 성령은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시지 않는데, 이는 “그가∙∙∙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기 때문이다(요 14:14). 이 일은 교회에 예언의 은사가 부어지는 것으로 예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은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 19:10;참조 신론 VII. C;영적 은사들 X. D)고 말한다. (228.3)
 C.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
 1. 성경의 증거
 “승천한신 자”가 지금 이 땅에 있는 그림자가 아니라 참 장막인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계신다(히 4:14; 참조 6:20). 그분은 그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되 끊임없이 간구하신다(히 7:24, 25; 롬 8:34).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은 히브리서의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이다(2:17; 3:1-4, 14, 15; 5:10;6:20 등). 그분은 “참 하늘에 들어 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히 9:24). 십자가에서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단번에 드려졌던 그리스도께서(히 7:27; 9:28; 10:11-14) 승천하신 후에는 그분이 드린 속죄 제사가 그 효력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그분은 희생제물인 동시에 지금 제사장이시다.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십자가에서의 그분의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228.4)
 2. 각기 다른 두 종류의 봉사
 지상 성소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수행했던 각기 다른 두 종류의 봉사는 구원의 계획을 그림처럼 묘사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를 상징하거나 예증하였다(참조 성소 III. D). 이것이 지상 성소에서 봉사하던 제사장과 대제사장에 대한 히브리서의 언급들이 의도하는 점이다(히 4:14, 15; 6:20; 7:27; 8:3; 9:7, 12, 24). 지상 성소 제도에서, 성소의 첫째 칸에서 이뤄졌던 매일의 봉사는 본질적으로 중보와 화목을 위한 봉사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를 통해서 회개한 죄인이 지속적으로 담대히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히 4:14-16; 7:25; 10:19-22; 참조 성소). 1년에 한 번 대속제일에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은 홀로 성소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속죄함으로 이 둘 모두를 정결하게 하는 봉사를 행하였다(레 16:16-20, 30-32).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그날에 대제사장이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며∙∙∙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레 16:33)하라고 말씀하셨다. 속죄일은 심판하는 일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었으며(레 23:29; 참조 성소 I. C. 3. a, b), 표상적으로는 그 기능에 있어서 죄를 도말하는 마지막 심판의 과정을 예표하였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심판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그분이 영광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각기 행한 대로 갚으시기 위함이다(마 16:27; 25:31-46;참조 롬 2; 6). 다니엘 7-9장은 그리스도께서 이 정결과 심판의 원형적 봉사를 시작하시는 날을 명시하고 있다(참조 심판 III. B. 1). (229.1)
 3. 만물을 다스리고 충만케 하기 위해 승천하심
 신약은 또한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셔서 만물을 다스리고 충만케 하시는 일도 하셨다고 말한다(엡 4:10; 계 1:5). 그분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자리에 앉으셨다(엡 1:21). 그분이 높임을 받으신 것은 우주에 거하는 자들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기(빌 2:10) 위함이었다. 베드로는 그분이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한다(벧전 3:22)고 말한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분에게 주어졌다. 그분은 “교회의 머리”(엡 1:20-23; 5:23; 골 1:18) 곧 제사장인 왕이시다. 그분의 왕권은 우리로 선이 악을 이기고 승리할 것임을 확신케한다. (229.2)
 D. 그리스도의 재림
 1. 성경의 증거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분의 승천 및 대제사장 직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의 참된 영적 의미를 완성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시기는 하셨지만, 그분은 자기의 사명이 초림을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 땅의 일과 관련해서 가시적으로는 잠시 떠나 계시게 될 것이었다(마 16:21). 그분이 한동안은 떠나 계실 것이었다(요 14:19; 16:7). 하지만 그분은 자기의 일을 완성하시고(요 14:1-3) 하나님의 나라의 최후 승리와 영광을 이루시기 위해(마 25:31-46;참조 재림 I. D. 4) 다시 오실것이라고 약속하셨다. (229.3)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파루시아, 아포칼륍시스, 에피파네이아 둥과 같은 용어들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파루시아“임재”, “도착”, “오심”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로 종종 통치자나 왕의 임재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마 24:27, 37, 39; 고전 15:23; 살전 2:19; 3:13; 약 5:7, 8; 벧후 1:16; 3:4). 아포칼륍시스는 영광 중에 “드러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눅 17:30; 고전 1:7; 살후 1:7, 8; 벧전 1:13). 에피파네이아“나타남” 또는 “출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성육신(딤후 1:10)과 그분의 재림(살후 2:8; 딤전 6:4; 딤후 4:1, 8; 딛 2:13)을 표현하는 용어로 쓰였다. 이 용어들은 지금 아버지의 임재하심 앞에서 자기의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의 눈이 볼 수 있게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생각을 강조하는데 쓰인다. “심판의 날”(행 17:31), “그날”(마 7:22; 살후 1:10; 딤후 1:18; 4: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8), “인자의 나타나는 날”(눅 17:30), “그리스도 예수의 날”(빌 1:6), “그리스도의 날”(10절;2:16), “마지막날”(요 6:39, 40; 12:48) 등과 같이 수정되어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는 구약의 “야훼의 날”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시간표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마 25:31; 막 8:38; 행 1:11; 고전 4:5;참조 재림 I.B). (230.1)
 2. 재림의 방식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만이 아시는 날에(마 24:36; 행 1:7),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상태로(눅 17:23, 24; 계 1:7), 큰 소리와 더불어(살전 4:16), 권세와 영광 중에(마 24:39; 살후 1:7) 재림하실 것이다. 그분은 구속받은 자들을 모으기 위해 오실 것이다(마 24:31; 25:32-34). 죽은 의인들이 부활할 것이며(고전 15:23, 52, 53; 살전 4:16), 살아 있는 의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썩지 않을 몸으로 홀연히 변화될 것이다(고전 15:52, 53; 살전 4Ί7;참조 히 11:40;재림 I. E).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재림하실 것이지만 그때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신약의 상당수의 구절들에서 그것은 예상치 못할 깜짝 놀랄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경이 재림 전에 그 일이 가까웠음을 보여 주는 특정한 징조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마 24:5, 7, 9, 29), 그분의 오심 자체는 도둑이 아무 예고도 없이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눅 12:39, 40). 이 엄청난 사건은 예고 없이 갑자기 “생각지 않은 때에”(마 24:44) 일어날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매우 가까이 이른 일이기도 하다(벧전 4:7; 약 5:8, 9; 요일 2:18).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마 24:36), 예수와 신약의 기자들은 신자들에게 항상 깨어서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고(마 24:44; 25:1-12; 약5:9) 자기를 깨끗이 하기 위해 힘쓰라고 강력히 권고한다(벧후 3:11, 12; 요일 3:2, 3). (230.2)
 3. 하나님 나라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