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부활하신 그리스도
 십자가가 아무리 중심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신약의 메시지, 심지어 복음서도 십자가와 더불어서 끝맺어진 것은 아니다. 복음서의 기자들은 부활에 관한 이야기로 바로 옮겨간다(마 27:51- 28:20;막 16장;눅 24장;요 20, 21장). 바울이 계시를 통해서 받은 복음(갈 1:12)은“내가 먼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선언에서부터 시작된다(고전 13:3, 4;참조 1절).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둘 모두 복음의 본질에 속한 것으로 선포되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롬 8:34)라는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바울이 이 둘을 분리해서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음을 알 수 있다. (223.1)
 1. 기초적 사건
 그런데도,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들 전체에서 부활이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을 감안해 볼 때 일반적으로 부활 사건은 충분한 관심도 받지 못하고 충분히 이해되지도 못하였다.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로 자신들이 장차 경험할 영원한 영광의 생명으로의 부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로 간주해 왔다(참조 빌 3:20, 21; 계 21:1- 22:5). 부활은 그 자체만으로는 구속 사역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십자가, 오직 십자가로 말미암아서만 구속을 받았다. 하지만 신약의 교회는 예수의 부활을 그것의 완성인 승천과 더불어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단순한 확증이 아닌 그 신앙의 중심으로 이해하였다. 초기 신자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어떤 의미에게서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초석이었다(고전 15:14, 17). 예수의 부활은 부활의 전형적인 실례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독특한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졌다. 또한 그것은 나사로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경우처럼 단순히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가 다시 죽으시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예수의 부활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 곧 메시아의 부활이었다(행 2:36; 롬 1:4). (224.1)
 그리스도의 삶과 봉사를 그 기초로 한 초기 제자들의 믿음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강력한 선포 행위로 여겨진 예수의 부활로 인해 그분의 삶에 기초를 두고 있던 믿음이 재해석되어 새롭게 세워졌으며, 또한 처음으로 그분에게 주와 그리스도라는 참된 지위가 부여되었다고 말한다(행 2:36; 롬 1:4). 예수는 부활을 통해서 주와 메시아로 선포되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주”(행 3:15)와 “구주”(행 5:31)와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행 10:42)으로도 선포되었다. 부활로 인해 그분의 삶과 죽음을 둘러싸고 있던 불명확성이 모두 제거되었다. (224.2)
 2. 빈 무덤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 외에(마 28:4) 예수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시는 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그분의 빈 무덤을 보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그분의 출현은 어떤 경우들에는 예루살렘이나 그 도시의 주변에서 이루어졌으며, 나머지 경우들에는 갈릴리에서 이루어졌다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주님은 그분의 몸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간 여자들에게(9, 10절), 막달라 마리아에게(요 20:11-1), 시몬 베드로에게(눅 24:34; 고전 15:5),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눅 24:13-31; 막 16:12, 13), 부활하신 날 밤에 모여 있던 열한 제자와 다른 제자들에게(눅 24:33, 34; 요 20:19-23), 한 주 후에 도마에게(26-29절), 갈릴리 해변에서 일곱 제자에게(요 21:1-19), 갈릴리의 한 산 위에 모인 열한 제자에게(마 28:16, 17, 많은 사람이 이것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오백 형제에게 나타나신 것과 같은 사건으로 여긴다[고전 15:6]),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본 제자들에게(눅 24:50, 51; 행 1:6-9), 야고보에게(고전 15:7) 그리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 있던 바울에게(행 9:1-19) 나타나셨다. 복음서 기자들이나 바울은 우리에게 이 전체 사건들이 발생한 순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발생순서, 횟수 무덤으로 갔던 여자들의 이름, 천사의 수와 같은 상세한 부분에서 차이점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기자들이 자신의 목적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건들만을 선택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기만 한다면 상세한 사항들에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점들이 우리에게 극복할 수 없는 장애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그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그것들을 보는 관점들을 다르게 만든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각각 자신이 중요시하는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묘사의 세부적인 면에서의 차이점들은 차치하고, 기본적인 증언에 있어서는 그들의 진술들이 현저히 일치된다. 이것들이 후에 꾸며낸 이야기들이거나 서로 담합하여 만든 이야기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24.3)
 3. 육체적 부활
 부활 후의 그리스도의 모든 출현에는 여러 공통적 특성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의 출현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미 그분의 제자가 되어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하나님이∙∙∙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인]∙∙∙우리에게 하신 것이라”(행 10:40, 41)고 선언하였다. 그분의 나타나심은 이전에 이미 그분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성경의 모든 기록 또한 그분의 육체적 부활을 증언한다.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를 만진 것(요 20:27), 그분이 잡수신 것(눅 24:41-43), 그분과 더불어 이야기한 것(요 21:9-22)에 대하여 말한다. 이러한 증언들은 부활을 하나의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사건으로 보려고 하는 헬라적인 풍조에 반하는 것들이었다. 사실 1세기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언제나 육체적인 부활을 의미하였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형태의 부활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비육체적 부활은 엉터리 같은 생각에 불과할 뿐이었다. (225.1)
 제자들이 이전에 수년 간 알고 있던 예수와 부활하신 주님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 하나가 존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강한 어조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고 선언하셨다. 하지만 신약 기자들은 같은 몸이면서 동시에 변화된 상태에 있는 몸이라는 동일한 현상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 몸은 잠긴 문이 그 몸의 출입을 방해하지 못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눅 24:31; 요 20:10, 26) 인간의 본질적 특성의 한계를 초월하지만, 이 몸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특성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능력도 지니고 있다.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이 몸은 “썩지 아니할 것을 입”은몸이다(고전 15:53). 제자들은 때때로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요 20:14; 21:4, 12). 그리스도의 출현의 육체적 특성을 역설하고 있는 두 복음서 기자들(눅 24:39-43; 요 20:20, 27; 21:9-14)이 그분이 출현하신 때에 그분이 이미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셨으며(눅 24:26) “영광을 얻”은(요 13:31; 참조 7:39; 20:20) 상태에 있으셨다고 언급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가는 명백하게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나타나”셨다고 진술하고 있다(막 16:12). (225.2)
 현대의 지성인들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배제하는 자신들의 규정에 따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초자연적 특성을 지닌 역사적 실재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단순히 그분의 시체를 훔쳐다가 다른 곳에 숨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속이신 것이지 진짜로 죽으신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고 장사되신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계셨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아마도 매장하는 장소에 비슷한 무덤들이 여럿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어둠으로 인해 길을 잘못 찾은 여자들이 실제로 비어 있는 다른 무덤으로 갔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들 외에 또 다른 사람들은 제자들이 실제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 것이 아니라 그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열망으로 인해서 그들이 마음으로 자신들이 그분을 보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들은 것으로 상상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들어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비신화화하고 재해석하면서 더 이상 그 사건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부활을 단지 하나님께서 독특한 방법으로 나사렛 예수를 통해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역사 속에 거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신 수단으로 이해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지의 여부는 크게 중요시되지 않는데, 이는 이 견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믿음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225.3)
 그리스도의 빈 무덤과 부활 후의 그분의 나타나심을 설명하고자 시도한 이론들 중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 사건들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제공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 이론들을 서로 결합시켜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분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하신 행위로서(행 2:24, 32; 롬 6:4; 벧전 1:21) 구약의 예언들의 성취였으며(행 2:25-36; 고전 15:4)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한 부분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지치고 의기소침했던 그 제자들이 몇 주 후에 예수를 정죄한 사람들을 담대히 대면하여 그들에게 그분의 부활과 주되심을 선포한 것이야말로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임을 보여 주는 참된 증거이다(행 2:22-24; 3:14, 15;특히 4:10). 그들은 자기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처음부터 강력하게 그들의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였다(행 2:24; 4:33). (226.1)
 4. 그리스도의 부활의 중요성
 신약의 기자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행하신 새로운 행위로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 신학적 의미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226.2)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론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자신의 위격과 사역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하나님이 확증하셨다는 것이다. 악한 세력에 의해 행하여졌던 일들이 하나님의 옹호하시는 행위에 의해서 모두 타파되었다. 예수를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살리셨으니”(행 2:23, 24; 10:39, 40).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을 살리셨다는 것도 지속적으로 강조하였다(행 2:32, 36; 3:15; 4:10; 5:30; 롬4:24, 25; 6:4; 8:11; 고전 15:4, 15; 고후 4:14; 갈 1:1; 히 13:20; 벧전 1:21 등). 예수께서는 자신의 부활로 말미암아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 1:4;참조 행 13:33). 이는 그분이 주와 그리스도로 높임을 받으시는 일의 시작점이었다(행 2:29-36; 빌2:9-11). 예수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마 28:18)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으며(행 3:13), 또한 그분을 세상의 재판장으로 삼으셨다(행 10:42; 17:31; 참조 요 5:22, 27). 그분은 “산 자”로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계 1:8). (226.3)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론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구원을 이루는 사건 중의 하나인데, 바울의 말에 따르면 예수께서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기(롬 4:25) 때문이다. 구원은 오직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롬 10:9).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사람들, 곧 그분의 죽음과 동일한 죽음을 경험함으로 그분과 연합한 사람들은 또한 “그의 부활을 본 받아 연합하”게 된다(롬 6:3-5; 참조 부활 I. A. 2. a). 그들은 죄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갈 2:20) 난 후 그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또한 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는데,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그들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여(롬 6:4; 참조 8:9-11;엡 2:4-7; 골 2:12; 3:1-3)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다(롬 7:4;참조 벧전 1:3). 바울이 다음의 성경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4니7)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복음 전도와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분리되어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그분의 부활은 구속 사역의 완성을 확약하는 하나님의 보증이다. (226.4)
 B. 승천하신 주 (227.1)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을뿐 아니라 신인(God-man)이시며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늘로 올리어지셨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삶 모두에 있어서 핵심적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승천과 그것에 따르는 부수적인 사건들이 포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완성된 견해가 제시될 수 없다 승천이 제외된 상태에서는 하늘에서의 우리 주님의 봉사와 그분의 재림을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227.2)
 1. 성경의 증거
 승천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1:2-11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매우 간략한 기록이 누가복음 24:51마가복음 16:19에서도 발견된다.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여러 진술은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지상 봉사 기간 동안 그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을 입증한다(눅 9:31, 51; 요 6:62; 7:33; 14:12, 28; 16:5, 10, 28). 그것은 또한 사도행전의 여러 구절들에도 언급되거나 암시되어 있다(2:33-35; 3:21; 7:55, 56; 22:6-8; 26; 13-15). 추가적인 언급이나 암시들이 빌립보서 2:9, 디모데전서 3:16, 히브리서 1:3; 2:9; 12:2, 베드로전서 3:22, 요한계시록 1:13; 5:6 등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이 사건은 충분히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