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1 장 요한 바오로 2세와 안식일 제 1 부 안식일과 일요일의 신학적인 관련성
 사목교서의 놀라운 면은 교황 요한 바오로의 일요일 준수에 대한 방어가 안식일로 둔갑된 것과 또 그 날을 안식일로 “완전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 이러한 견해는 일요일 준수가 안식일과는 달리 교회가 제정한 제도라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설명에서 상당히 떠나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과거에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설명은 가톨릭 신학자들과 역사가들에 의해서 제정된 사실로 간주되어 왔다. 예를 들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of Aquinas)의 다음과 같은 모호한 진술에 나타나 있다. “주님의 날을 지키는 새로운 법은 그 계명(안식일 계명) 때문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관습에 의한 제도에서도 안식일의 준수를 대신했다”.9) (8.1)
 빈센트 켈리(Vincent J. Kelly)는 미국 가톨릭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에 제출한 자신의 논문에서 이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있다.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일요일을 신약에서 지키는 예배일로 결정했으며, 그분 자신이 일요일을 안식일로 직접 대치하신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 이론은 현재 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보편적으로 지금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자신의 교회에 어떤 날이나 날들을 거룩한 날들(Holy Days)로 적절히 평가하여 간주하는 일감을 주셨다고 받아들인다.”10) (8.2)
 새로운 가톨릭교회 교리문답(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1994)은 안식일과 일요일 준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일요일은 매주일 오는 안식일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날을 예배의 날로 준수하는 것은 곧 안식일에 그렇게 해야 할 것을 대치했기 때문이다.”11) (9.1)
 요한 바오로는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안식일과 일요일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는 것에서 떠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일요일 준수의 도덕적인 뿌리를 십계명 자체에 놓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렇게 하므로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을 단순히 교회가 제정한 제도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명하신 날로 존경하도록 도전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교황은 일요일 준수를 안식일 계명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시민법이 일요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신들의 의무를 존경하고 확고히 하도록”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9.2)
 일요일이 안식일의 구현이며 안식일의 “완전한 표현”으로 보는 교황의 견해는 소위 말하는 “새 언약”과 안식일과 일요일 사이의 분명한 비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는 세대주의 저자들(Dispensational authors)의 주장과는 너무나도 큰 대조가 된다. 다음 장에서 볼 것이지만 후자는 안식일을 십자가에서 종결된 모세와 옛 언약의 제도로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이전의 안식일 준수 자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교황은 오히려 일요일 준수의 신학적인 근거를 안식일의 창조적인 제도에서 찾으므로 이들의 견해를 배척한다. 그는 “따라서 일요일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대한 창조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그리고 안식일의 신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게 해야 한다”12)고 기록하고 있다. (9.3)
 안식일의 창조적이고도 구속적인 의미
 안식일의 신학적인 의미에 대한 교황의 반응은 대단히 지각력이 있으며 특별히 안식일 준수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창조의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쉬신 것에 대해 말하면서 요한 바오로는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쉬신 것은 하나님의 비 활동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완성하신 충만함(fullness)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분께서 자신의 손으로 만드신 ‘매우 좋았던’(창 1:31) 작품 이 전에 하나의 완전하고도 충만한 기쁨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응시를 말하는 것이다.12)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완성을 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취된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생각에 잠긴’ 응시이다.”13) (9.4)
 완성과 완전한 창조, 그리고 그분의 창조물과의 교제에 대한 만족을 표현하기 위해 일을 중단하고 쉬신 하나님의 안식(Shabbat)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깊은 신학적인 통찰력은 본인의 책 쉼 없는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쉼(Divine Rest for Human Restlessness)이라는 책에서 상당 부분을 다루었다. 거기서 본인은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하시던 (doing)에서 중지하신 것은 자신이 창조하신 것과 함께 계시고(being), 아울러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일감(things)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Himself)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기 위해서 였다”14)고 기록하였다. (9.5)
 요한 바오로는 안식일이 창조의 쉼(창 2:1-3; 출 20:8-11)으로부터 구속의 쉼(민 5:12-15)으로 신학이 발전된 것에 대해서 매우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구약에서 안식일 계명이 창조 후의 “하나님의 ‘오묘로운 쉼’ 뿐만 아니라(출 20:8-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신 구원과도 연결되어 있으며(신 5:12-15 참조), 아울러 당신의 창조를 기뻐하시면서 일곱째 날에 쉬신 그 하나님은 바로의 압제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해방시키시므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꼭 같은 바로 그 하나님이신 것”15)에 주목하고 있다. (9.6)
 창조와 구속의 기념일로서의 바로 그 ‘안식일’은 따라서 성서적인 계시를 보증하는 시간의 “거룩한 건축술”의 결정적인 요소로 해석되어 왔다. 그것은 우주와 역사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 진리의 지속적인 인식이 없이는 사람이 결코 세상에서 창조주의 동역자로서 그분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회상시켜 준다.16) (10.1)
 안식일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의 함
 안식일을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모세의 의식적인 제도로 그 의미를 축소하는 저자들과는 반대로, 요한 바오로는 “안식일 법은 하나님의 깊은 계획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다른 많은 법들과는 달리 엄격한 종교적인 약정에 그 배경을 두고 있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마음속에 각인 된 도덕적인 생활을 살아가는데 있는 바로 그 기둥을 나타내는 십계명의 말씀의 배경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라고 바로 이해하고 있다. 이 계명을 윤리의 기본적인 구조의 배경에 두므로 이스라엘과 교회가 그 계명을 단순히 공동체의 종교적인 훈련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성경의 계시 속에서 선포되었고 설명된 불가피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다. 바로 이점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명령을 다시 발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17) (10.2)
 이 얼마나 숙고해 볼 가치가 있는 진술인가!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공동체의 단순한 종교적인 훈련이 아니라 분명하고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술 속에 있는 진리를 감사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며, 우리가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은 곧 우리의 삶의 우선권을 가리킨다. 안식일에 대한 생각과 삶에서 하나님께 우선권을 두는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주관하고 계심을 실제적이고도 분명한 방법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은 실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10.3)
 요한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므로 이 점을 분명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분명히 기도의 시간들을 요구하며, 그 속에서 관계는 그 사람의 모든 국면을 포함하는 집중적인 대화가 된다. 남녀가 하나님께 그들의 노래를 부르며 또한 모든 창조물의 음성이 될 때 ‘주의 날’은 이 관계를 훌륭히 맺는 날이 된다.”18) (10.4)
 안식일의 완성으로서의 일요일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활동을 드러내는 표가 되는 시간을 일종의 ‘거룩한 건축물’이 되는 안식일로 보고,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의미심장한 신학적인 통찰의 빛 가운데서, 더러는 교황이 일요일 준수를 위해 신학적인 정당성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의아해 한다. 교황은 일요일을 성서적인 안식일의 구현(embodiment)으로 만들므로 이 의문을 해결한다. (10.5)
 예를 들어, 요한 바오로는 주저하지 않고 창조 시에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과 성화를 일요일에 적용시킨다. “일요일이 쉼의 날이 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복 받은’ 날이고, 그분에 의해서 ‘거룩하게 된’ 날이며, 모든 다른 날들로부터 구별된 ‘주의 날’이 되기 때문이다”19) (10.6)
 더욱 중요한 것은 교황이 일요일을 안식일의 창조와 구속적인 기능을 실현하는 주의 날로 제시하므로 안식일이라고 “완전히 표현”하는 것이다. 교황은 이 두 기능이 “창조와 구원을 융합시키는 하나의 신학적인 이상 안에서 주의 날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20)고 주장한다. (10.7)
 요한 바오로는 “구약의 안식일이 창조 사역과 출애굽을 연결시키듯이(창 2:1-3; 출 20;8-11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새 창조와 새 언약이 그리스도의 부활절 미사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선포하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창조의 축제는 폐하여지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 중심적인 전망 속에서 더 의미심장하게 되었다. . . 출애굽의 해방에 대한 기억 역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에 의해 그 의미가 더욱 충만하여진다. 따라서 일요일은 안식일을 ‘대치’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것의 성취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구원의 역사의 올바른 표출 가운데서 확장되고 충만하게 표현되고 있다”21)고 설명한다. (10.8)
 교황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후의 첫날을 축제일로 만든 것은 비록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파루시아(Parousia) 전까지는 결코 없을 것이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가운데서 그들의 완전한 표현을 찾는 안식일에서 경축된 창조와 구속의 성취를 발견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22)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