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G. 조셉 베이츠(Joseph Bates)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안식일 신학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Seventh-day Adventists)는 금요일 밤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가장 교인 수가 많은 교단이다. 이 교단의 안식일 신학의 발전에 조셉 베이츠(Joseph Bates)가 기여한 부분을 이 글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339.1)
 익히 알려진대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19세기초의 제칠일 침례교회(Seventh Day Baptists)의 안식일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제칠일 침례교회로부터 배운 안식일 신학에 자신들의 성서적 종말론을 결합함으로써 자신들의 고유한 안식일 신학을 수립하게 되었다. 조셉 베이츠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다른 선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의 재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으로부터 부분적인 영향을 받아 종말론적인 안식일 신학으로 이끌리게 되었다. 제칠일 안식일 재림 신앙(Seventh-day Adventism)에 대한 조셉 베이츠의 단계적인 기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윌리암 밀러의 재림 운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339.2)
 윌리암 밀러의 재림운동
 뉴욕, 로우 햄튼(Low Hamton)출신의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에 의해 일어난 밀러파 재림운동(Millerite Movement)은 19세기 초에 세계적으로 일어난 이른바 대 재림 각성 운동(The Great Second Advent Awak-aning)이라고 불리우는 현상의 북 아메리카적인 반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밀러파 재림운동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징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1) 다니엘 8:14“2300일”은 1843-1844년경에 그리스도가 재림함으로써 끝난다. (2) 다니엘 8:14에 언급된 “성소의 정결”다니엘 7:9-14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사건의 동일 사건이다. (3)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6, 7에서 첫째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외치는 시간이 이제 박두하였다. (339.3)
 밀러는 상당한 주저 끝에 1831년에 이르러 비로소 위와같은 기별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자신마저 놀랄 정도로 많은 개신교회 목사들이 그의 기별을 열성적으로 수용했다. 5만 명에서 15만 명에 이르는 평신도 지지자들 외에도 여러 교단에 속하는 수백 명의 목사들이 그의 기별을 수용했다. 그러나 1843년 여름과 특별히 1844년에 밀러파 무리들이 주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기 위한 최종적인 헌신을 경주하고 있을 무렵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밀러의 재림 신앙에 동참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몸담고 있었던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 개신 교회들로부터 출교되었던 것이다. (340.1)
 요한계시록 14장을 다시 검토하고 있던 밀러파 재림 신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이 발생하기 이전에 첫째 천사의 기별에 이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는 둘째 천사의 기별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배척한 교회들을 상징하며, 이제 둘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계 18:4)을 타락한 교회로부터 불러나오게 해야 할 시각이 이르렀다고 판단하였다. (340.2)
 이것이 조셉 베이츠가 제칠일 안식일의 교리를 처음으로 접했을 당시에 조셉 베이츠를 포함하는 밀러파 재림신도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던 특징적 교리의 핵심이었다. (340.3)
 조셉 베이츠의 초기 안식일 신학
 조셉 베이츠는 1845년 3월에 티. 엠. 프레블(T. M. Preble)의 안식일 책자를 통해 안식일의 교리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1846년 8월에 안식일에 관한 그의 첫 번째 팜플렛「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The Seventh Day Sabbath, a Perpetual Sign, From the Beginning, to the Entering into the Gates of the Holy City. According to the Commandment〈New Bedford, Mass.〉)이 출간되었다. (340.4)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신앙의 개척자에 의해 처음으로 출판된 이 팜프렛은 밀러파 독자들에게 친숙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또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미래에 독특하게 전개될 특별한 요소들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340.5)
 티. 엠. 프레블은 자신의 책자에서 제칠일 침례교회의 안식일 신학을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 따라서 베이츠의 소책자가 전하는 내용도 본질적으로는 제칠일 침례교회의 관점이었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제칠일 침례교회의 안식일 신학 자체가 영국 청교도들의 안식일 신학을 수정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조합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신자들은 베이츠가 주장하는 안식일 신학의 상당 부분에 공감할 수 있었다. 예컨데 청교도의 신앙 전통안에 있었던 그들은 안식일 계명이 도덕적인 구속력을 가진 계명이며, 안식일은 거룩하므로 마땅히 지켜야 하며, 골로새서 2:14-17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되어있는 “의문에 쓴 증서”는 십계명이 아니라 제사 율법이라는 주장에 이미 친근해 있었다. (340.6)
 심지어는 베이츠의 책의 명칭에 나타나있는 “영원한” 안식일이라는 표현까지도 청교도적인 것이었다. 예컨대 대표적인 청교도 저술가의 한사람인 니콜라스 보운드(Nicholas Bownde) 자신도 1595년에 쓴 글에서 유대의 절기 안식일들을 “주간들과 년(年)들의” 안식일이라고 부른 반면 십계명의 안식일에 대해서는 “영원한 안식일”이라는 호칭을 붙였다.1 (341.1)
 18세기 초의 조나단 에드와드(Jonathan Edwards)도 “안식일의 영원성과 변화”(The Perpetuity and Change of the Sabbath)라는 한 설교에서 안식일의 영원성을 옹호하였다.2 윌리암 밀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핵심으로 나아가 안식일을 “영원한 표징”이라고 옹호하였다.3 물론 위에서 저술가들이 “안식일”로 언급한 것은 모두 일요일을 두고 말한 것이었다. (341.2)
 사실대로 말하면 초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안식일 신학은 청교도들의 안식일 신학에 이중의 부채를 지고 있다. 영국의 초기 청교도들은 넷째 계명을 강조하였으며 제칠일 침례교회의 창건자들은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안식일이 “제칠일”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이 발견이 후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도들에게 전달되었다. 한가지 더 추가하여 말한다면 초기 청교도들의 이상이 미국 땅에 이식되면서 19세기 중반의 이러한 문화적 조건에서 제칠일 안식일 재림 신앙이 용이하게 전파될 수 있었다. 때문에 1844년 여름 밀러파 재림 신도들 사이에 제칠일 안식일의 교리가 밀러파 지도자들이 크게 당황할 정도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4 (341.3)
 이리하여 베이츠의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첫판이 출판되었을 때 이 앞서 밀러파 신자들이었던 대부분의 독자들은 베이츠의 주장에서 공감되는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그들은 주로 거룩하게 준수되어야 할 안식일이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라는 주장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베이츠의 팜플렛은 제칠일 침례교회의 안식일 주장 외에 전혀 새로운 주장들도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베이츠는 1845년 3월에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한 후 대부분의 밀러파 재림 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을 주목했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요한계시록 14장의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기별에 곧이어 짐승의 표를 경고하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베이츠는 또 요한계시록 14:12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백성으로 묘사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하였다. (341.4)
 베이츠는 “계명을 지키는”것에 관한 이같은 언급에 의해 안식일에 관한 자신의 확신을 더욱 확실하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첫째 천사의 기별과 둘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한 백성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인식하고 십계명의 안식일을 지켜야 할 때가 당도했다고 확신하게 되었으며 이같은 깨달음을 그는 자신의 책에서 간략하게 표명하였다.5 (341.5)
 안식일과 하늘 성소에 대한 베이츠의 상관관계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제2판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베이츠는 후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안식일 신학의 고유한 특징으로 발전하게 될 두 개의 새로운 개념을 착안하게 되었다. 이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밀러파 재림 신앙의 또다른 한 면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341.6)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밀러파 재림 신도들은 다니엘 8:14“성소 정결”다니엘 7:9-14의 심판 장면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이에 평행 관계가 수립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밀러는 다니엘 7:13에서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심판 현장으로 임하는 사건과 그리스도가 이 시대의 끝에 구름을 타고 땅에 임하는 사건을 같은 사건으로 보았다.6 이와같이 밀러는 다니엘 7장에서 “인자”가 지구가 아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의 심판장으로 나오는 사실에 대해 적절하지 못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342.1)
 그러나 1844년 10월 22일에 재림의 실망을 겪고 난 다음날 감리교회 평신도 출신의 밀러파 재림 신도였으며 후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목사로 활동하게 되는 하이람 에드손(Hiram Edson)에 의하여 두 사건의 핵심적 차이가 간파되었다. 그의 직접적인 설명에 따르면 에드손은 갑자기 “우리의 대제사장이 1844년 10월 22일에 이 지구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의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들어가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고도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즉 우리의 대제사장은 그 날에 먼저 하늘 성소의 둘째 칸(지성소)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에(어린양의) 혼인 예식장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기 위하여 하늘 지성소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자”에게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7 (3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