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G. 조셉 베이츠(Joseph Bates)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안식일 신학
 이처럼 에드손은 “인자”다니엘 7장에 기술된 심판의 시간에 이 지구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옛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로 나아가며 그의 혼인 잔치는 땅위에서 치러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치러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342.3)
 에드손은 또 요한계시록 11:15-19“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이에 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라는 말씀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8 그 얼마 후 안식일에 관한 티. 엠. 프레블의 한 책자가 뉴욕, 포트 깁슨에 있는 에드손의 거처에 전달되어 에드손은 넷째 계명을 하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십계명을 간직한 언약궤)와 연결시키게 되었다. 1844년에 그리스도가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사건이 안식일 준수에 대한 새로운 강조로 귀결되어야 하는지를 검토하게 되었던 것이다.9 (342.4)
 그 후 몇 달 동안 에드손은 학교 교사인 오. 알. 엘. 크로지어(O. R. L. Crosier)와 의사인 에프. 비. 하안(F. B. Hahn)과 더불어 성경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같은 성경 연구의 결론적인 결과를 크로지어가 “모세의 율법”(The Law of Moses)이라는 제목의 글로 정리하여 1846년 2월 7일에 오히이오, 신시내티의 이녹 제이콥스(Enock Jacobs)에 의해 편집되고 있던 밀러파 정기간행물인「데이-스타」(Day-Star)의 “부록”으로 출판하였다. 이 부록에서 크로지어는 성경에 기초하여 다니엘 8:14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이고 1844년 10월에 예수님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대속죄일에 성소를 정결케 하였듯이(레위기 16장) 대속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주장하였다. 크로지어는 심판의 개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하여(행 3:20,21) 현재 하늘 지성소 안에서 “죄를 도말 하는” 일(행 3:19)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42.5)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조셉 베이츠는 1845년 3월에 티. 엠. 프레블의 책을 통하여 제칠일 침례교회의 제칠일 안식일 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1846년 2월이나 3월 경에 “데이 스타”지의 부록으로 나온 크로지어의 글을 읽었다. 베이츠는 다니엘 8:14의 성소가 하늘의 성소라는 크로지어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즉각 39면의 작은 책자인 「열리는 하늘」(The Opening Heavens)를 집필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하늘 성소의 개념을 성경과 천문학의 관찰로 보강했다. 이것은 그가 안식일에 대한 책자를 출판하기 5개월 전의 일이었다. (343.1)
 베이츠는 「열리는 하늘」의 끝 부분에 안식일 문제에 관한 짤막한 항목을 끼워넣고 제칠일 안식일을 구약성경에 설명된 성소 안의 언약궤와 연결시켰다. 그러나 그가 이 작은 책에서 하늘의 성소를 다루었고 안식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할지라도 그 당시에 베이츠가 하늘 성소의 언약궤와 안식일 사이의 어떤 연결을 확신하게 인식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343.2)
 그 당시는 베이츠가 아직도 제칠일 침례교회의 입장에 머물러 있었고 여러 달 후인 1846년에 「제칠일 안식일, 영원한 표징」을 출판하여 안식일을 셋째 천사의 기별과 연결시킴으로써 비로서 제칠일 침례 교회의 안식일로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343.3)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신학의 발전에 있어서는 역사와 신학을 의미있게 분리시킬 수가 없다. 안식일에 관한 베이츠의 소책자가 출간되었던 1846년 8월에 제임스 화잇(James White)과 엘렌 하몬(Ellen Harmon)이 결혼하고 그들이 곧 제칠일 안식일의 교리를 수용하게 됨으로써 제칠일 재림 신앙의 계속적인 발전에 있어서 화잇부부와 베이츠가 서로 협조할 수 있는 동일한 정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343.4)
 역사적으로 두 번째의 의미심장한 사건은 1846년 11월에 베이츠가 뉴욕, 카난다이구아(Canandaigua)와 포트 깁슨(Port Gibson)으로 에드손과 하안과 크로지어를 방문한 것이었다.10 1844년에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의 지성소로 들어간 사건과 안식일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베이츠가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베이츠가 “데이 스타”지의 부록으로 “모세의 율법”을 발표한 위의 세 사람을 만나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눔으로써 가능했다. (343.5)
 베이츠는 세 사람을 방문하고 마사추세츠의 페어헤이븐(Fairhaven)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 이후인 1847년 1월에 그의 「안식일, 영원한 표징」의 증보판을 출간하였다. 그는 중보판에서 요한계시록 14장의 셋째 천사의 기별에 관한 자신의 설명을 더 확장하여 요한계시록 14장의 셋째 천사의 기별과 요한계시록 13:16, 17에 언급되고 있는 짐승의 표를 확인하였다. 그는 “주간의 첫째 날을 안식일로 또는 거룩한 날로 지키는 것이야말로 짐승의 표라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느냐?”고 도전했다.11 (343.6)
 이 중보판에서 베이츠는 또 요한계시록 11:15-19의 실현에 대한 에드손의 주장을 더 발전시켰다. 베이츠는 그에 앞서 최근에 프레볼, 제이. 비. 쿡(J. B. Cook)등 여러 사람들이 제칠일 안식일을 옹호하는 주장들을 발표한 사실을 주목했다. (343.7)
 그는 안식일에 관한 관심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현상의 원인으로써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제시했다. 즉 요한계시록 11:15의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가 열리고 언약궤가 영적으로 드러남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도록 깊은 감명을 끼쳤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2 그는 조심스럽게 첨언하기를 “나는 요한계시록의 언약궤에 관한 이 주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추론은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그 밖의 다른 무엇을 언급한다고 볼수가 없다”고 했다.13 (344.1)
 1847년 1월에 들어오면서 베이츠는 종전의 망설임을 신속하게 털어내기 시작하였다. 엘렌 화잇은 3월 6일에 마사추세츠의 페이헤이븐에 있는 베이츠의 집에서 그리고 4월 3일에는 메인 주 톱스햄(Topsham)에 사는 어떤 안식일 준수 재림 신자의 집에서 묵시를 보았는데 묵시에서 엘렌 화잇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계시는 예수님이 언약궤에 있는 십계명의 돌판을 주목하도록 요청하시는 광경과 십계명의 넷째 계명 주변에 영광의 광륜이 서리어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 두 차례의 계시는 엘렌 화잇이 안식일에 관해 본 첫 번째의 묵시였으며 그가 안식일 신앙을 수용한지 몇 달이 되지않은 때의 일이었다.14 이 두 차례의 계시로 말미암아 베이츠는 자신의 성경 연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즉각 4월 3일자의 계시 내용을 「묵시」(Vision) 제 1권 제 1호로 출판하였다. 1847년 4월 7일의 일이었다. (344.2)
 이제 베이츠와 화잇 부부와 그 밖의 10여명의 사람들은 제칠일 안식일이야말로 이 시대의 기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1844년 10월 22일에 실망을 겪은 다른 재림 신자들에게 자신들의 신념을 설득시키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은 1844년 10월이 중요하다는 사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344.3)
 베이츠는 재림 운동에 대한 신념을 회복시키고 또 제칠일 안식일 신앙에 대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1847년 5월에는 8면짜리 소책자「재림의 이정표」(Second Advent Way Marks and High Heaps, or a Connected View, of the Fulfillment of Prophecy, by God’s Peculiar People, From the Year 1840 to 1847)을 출판하였다. 베이츠는 성경과 예언의 성취와 밀러 운동의 전체적인 경험과 밀러파 지도자들의 여러 출판물을 이용하여 하나님은 재림 신도들을 가장 확실하게 이끌어 이들로 하여금 다니엘 8:14의 2300일에 초점을 맞추게 하였다고 주장했으며 재림 각성 운동의 진정한 의의는 1844년 10월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의 지성소로 들어간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베이츠는 이같은 기초 위에서 안식일이 셋째 천사의 기별과 하늘의 성전문이 열리는 예언에 연결되는 적시성(適時性)을 강조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요한계시록 14:6-11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 중 첫째 천사의 기별은 언약궤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선포된 명령이며 이 기별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촉구되어 자신들의 신실성과 정직성을 하나님의 전체 말씀 안에서 시험하도록 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 하였다.15 (344.4)
 안식일에 관한 베이츠의 여러 차례에 걸친 출판 활동으로 말미암아 재림 집단 내에 안식일에 관한 격렬한 토론이 촉발되었으며 안식일에 관한 기사들이 뉴욕, 로체스터의 「아드벤트 하빙어」(Advent Harbinger)지와 콘넥티커트, 하트포트의 「바이블 아드보케이트」(Bible Advocate)지에 나타나게 되었다. 씨. 스토우(C. Stowe), 제이. 크로푸트(J.Croffut). 제이. 비. 쿡(J. B. Cook), 에이. 카펜터(A. Carpenter)등이 안식일을 옹호하는 진영에 속했고 「아드벤트 하빙어」지의 편집인 조셉 마아쉬(Joseph Marsh), 조셉 터너(Joseph Turner), 지. 니드햄(G. Needham), “바나바스”란 필명을 사용한 제이콥 에스톤(Jacob Weston)등이 안식일을 반대하는 진영에 속했다.16 (345.1)
 안식일에 관한 토론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을 때인 1947년 늦은 가을에 조셉 베이츠는 「제칠일 안식일의 옹호와 하나님의 계명」(A Vindication of the Seventh-day Sabbath, and the Commandments of God:With a Further History of Gods´ Pecaliar people, from 1847 to 1848)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 책을 출간하느라고 소지하고 있던 현금을 모두 지출하여 무일푼의 신세가 되었다.17 (345.2)
 「제칠일 안식일의 옹호」에서 베이츠가 기여한 가장 의미 심장한 신학적 혁신은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사업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품의 개발로 확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는 그 어느때 보다도 이 문서에서 확실하게 안식일을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서 시작한 그리스도의 새로운 봉사에 연결시켰다. (345.3)
 베이츠에 따르면 인치는 사업은 1840년에 밀러 운동이 처음으로 광범위한 관심을 끌어낸 이후로부터 지난 8년동안 계속적으로 긴행되어 왔으며 다니엘 12:21의 임박한 “야곱의 환난”의 때에 이르러 그 작업이 완료되는 것이었다.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인이 “그들의 생활과 빛나는 이마(얼굴)에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분명한 발전을 내보여주는 144,000 성도들의 경험에 적용되며 예수께서 그들을 모든 죄로부터 구속하시어 선한 일에 열심이 많은 독특한 백성으로 성별하셨음을 “분명히 나타내게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18 (345.4)
 베이츠는 또 예수가 하늘에서 구속의 일을 마칠 때. 즉 “이 구속의 날에 우리의 대 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가 그의 백성의 죄를 도말하여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처음으로 주 우리 하나님의 올바른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안식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즉 “그리스도의 백성은 그들의 대제사장이 그들의 죄를 도말하고 성결케하여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고 있는 동안 세상의 일들로부터 떨쳐나와 시련의 시간을 잘 참으며 기다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19 (345.5)
 조셉 베이츠에게 그리스도가 1844년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갔다는 개념은 어떤 형이상학적인 발상이 아니었다. 베이츠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성소 봉사가 안식일 준수의 특권과 책임감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왔다고 믿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의 정결은 하늘 성소에 있는 기록에서 죄를 없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이 땅에 사는 144,000 성도들의 성품의 정결을 포함하였다. 안식일의 기별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안식일의 기별은 144,000 성도들의 성화에 기여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선한 일에 열심을 나타내도록 할 것이었다. (3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