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1 부 진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과 함께 (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1. 조직화된 이스라엘의 진영 (나의 모든 계획들은 그리스도의 것임)
 


성막의 기둥들의 배치
(23.7)
 그래서 50규빗을 채우기 위해서는 부수적으로 열 한번째의 기둥인 B는 북쪽의 첫번째 기둥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이것에서 시작하여 열 아홉 개를 더 세어가면 북쪽 경계를 이룬다. 그런데 100규빗을 채우기 위해서는 별개의 C를 더하고, 그것을 동쪽 끝의 첫번째 기둥으로 간주하라. 이 동쪽 편도 서쪽 편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라. 그리고 남쪽 경계도 그 방식을 되풀이 하라. 100규빗을 둘러 싸는 데 필요한, 남쪽 편에 있는 스물 한번째 기둥은 우리가 계수를 시작했던 바로 그 기둥이다. 우리는 이제 50 x 100규빗의 장방형을 둘러싸는, 각기 5규빗씩 떨어진 60개의 기둥을 갖게 된다. 이처럼 단순한 방식으로 성경의 요구들은 총족되며 문제는 해결된다. 동쪽 끝의 중앙에 있는 다섯 개의 기둥 사이에 걸린 입구의 휘장은 너비가 20 규빗에 양쪽 끝에서 15규빗 위치에 있다. (24.1)
 각 기둥의 꼭대기에는 은편 또는 갈 고리가 고정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가름대로 불리워지는(실제로는 “결합”, 막대임), 은으로 씌운 나무로 된 수평의 휘장 막대가 거기로부터 기둥들을 연결시켰다. 흰 세마포 포장이 이 막대들에 걸려 있어서 뜰의 벽을 이루었다(출 27:10, 11; 38:17~20). 기둥의 놋받침대와는 대조적인 은 “기둥머리”는 각 기둥의 머리싸개(출 38:17, 19, 28)가 되었다. (24.2)
 뜰에서 성막의 위치
 하나님께서는 이 뜰 안에 성막이 세워지도록 계획하셨다. 성막의 위치를 정하기 위하여, 뜰은 먼저 두 개의 광장으로 나뉘어져야 하였다. 번제단은 동쪽 광장의 중앙에 놓여졌다. 번제단과 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사이(출 30:18)에, 동서로 선을 그어 뜰을 이등분한다고 할 때, 그 상상의 선 남쪽에 놋대야가 있었다. 이같은 결론은 솔로몬의 놋 “바다”(왕상 7:39; 대하 4:10)에 대한 유추를 통해서 지지된다. 랍비들은 이 중앙선(레 1:11)의 북쪽, 곧 대야의 반대편 땅에 말뚝들이 박혀 있어서 희생 제물들이 죽기 직전에 이것에 붙들어 매어져 있었다고 기억한다(Middoth 3:5 비교). (24.3)
 백성들의 뜰로 불리워진, 뜰의 동쪽 절반에 있는 이 중심부 주위에서는 세 가지 주요한 의식들이 수행되었다. (24.4)
 번제단의 불은 희생 제물을 살랐으며, 대야의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게 하였고, 희생의 피는 잃어버린 자를 구속하였다. 이 세 가지 활동들은 일제히 죄를 제거하고 용서를 획득하며 칭의를 가져오기 위하여 일하였다. (25.1)
 성막은 뜰의 서쪽 광장에 세워졌다. 기원후 40년 경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유대인인 필로는 성막의 양편과 뒷쪽은 뜰의 포장으로부터 동거리였다는 히브리 사람들의 확신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같은 배열은 증거궤를 서쪽 광장의 정중앙에 위치시킨다. 그러므로 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은 뜰을 남북으로 이등분하는 선상에 있었다. (25.2)
 성막의 구조
 성막의 벽은 금으로 입힌 48개의 조각목 널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널판”은 길이가 10규빗에 넓이가 1.5 규빗이었다. 널판의 두께는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는대로, 영감에 의하여 주어진 사실들을 통해 추론되어야 한다. 나란히 고정되어 있었으므로, 널판지들은 10 x 30 규빗에, 높이가 10규빗인(출 26:15~30)건물, 즉 18 x 18 x 55 피트 인 건물을 감쌌다. (25.3)
 각 널판은 아랫쪽 끝에 두 장부(tenon)가 있었다(출 26:17~25). 이 촉들은 길이가 1 규빗이었으며, 두 개의 나무 받침대에 판 구멍이나 “소켓”에 맞도록 되어 있었다. 이 받침대들은 은으로 덮여졌고, 널판의 폭을 가로지르게 부착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1규빗 높이의 대좌를 이루어 그 위에 구조물이 서 있게 하였다. 이 받침대의 길이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으나, 그것들은 전체 구조물의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양 쪽에 있는 널판의 폭보다 조금 더 길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성막의 높이는 1 규빗 길이의 이 받침대를 포함한 높이였다. (25.4)
 건물의 북편과 남편을 이루는 스무 개의 널판은 각각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미쉬나의 기록에는 “인접하는 널판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성막의 널판”(Shabbath 12:3)에 히브리어 알파 벳의 철자들이 씌어져 있었다고 한다. 널판의 상단 표면의 각 끝에는 반원의 홈이 파져 있어서 두 널판이 인접할 때는 원형의 홈이 새긴 것처럼 형성되었다. 이 홈에 금고리가 채워졌으며, 이것이 널판을 단단히 결합시켰다. (25.5)
 그와같이 사십 여섯 개의 널판은 각각 그 끝에 반원의 홈을 필요로 하였다. 그러나 서쪽 벽의 특별한 두 개의 끝 널판은 인접하는 북쪽과 남쪽 널판과 맞추기 위하여 한 쪽에만 비슷한 반원의 홈을 요구하였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이 두 널판은 이미 언급한 여섯 개의 서쪽 널판의 왼쪽과 오른쪽을 확장해 주었다. 다른 사십 여섯 개의 널판과 마찬가지로 그것에도 “널판”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도 같은 치수였다고 결론짓는다. (25.6)
 그러므로 여덟 개의 서쪽 널판은 나란히 늘어놓게 되면, 12규빗까지 확장될 것이다. 그런데 성막의 내부 치수가 10규빗이기 때문에, 널판은 1규빗 두께였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랍비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대답한다. “널판의 두께는 얼마였습니까? 1규빗이었습니다”(The Talmul, Mo‘ed, Sabbath II 98a). 각 널판은 너비가 33인치, 두께가 22인치, 길이가 18피트였다. 그것들은 단단한 조각목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이 거창한 크기는 그것들이 거의 들어서 옮길 수 없을 만큼 컸음을 나타낸다. (25.7)
 그러므로 우리는 널판은 속이 빈 판자였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26.1)
 각 널판은 바깥에 붙은 “고리”에 맞는 수평의 “띠(막대)” 또는 바디(batten)에 의하여 이웃한 널판과 똑바로 평평하게 지탱되었다(출 36:26~34). 요세푸스가 주장하는대로, 아마도 맞춤못에 의해 접합 부분에서 연결되었을 중간 띠(버팀대)는 건물의 전체 길이를 지탱하도록 널판의 중앙부를 관통하였다. 이들 외에도 구조물을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줄 건물의 폭을 잇는 버팀대들이 있었음에 틀림없으나, 이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26.2)
 성막의 입구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의 휘장은 금으로 입힌 다섯 개의 조각목 기둥에 걸려 있었다. 아마도 이것들은 벽과 같은 1규빗의 두께였을 것이다(출 26:36, 37; 36:37, 38). 두 개는 벽에 붙어 서 있었고, 하나는 가운데 서 있었으며, 나머지 두 개는 그것들 중간에 서 있었다. 휘장을 걸 수 있도록 금고리가 각 기둥의 꼭대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기둥의 안쪽에 걸려 있어서, 금기둥과 그 놋받침이 보이도록 되어 있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짓는 네 개의 기둥은 은 받침대 위에 서 있었다(출 26:32, 33; 36: 35, 36). 가장 안쪽의 휘장은 지성소 쪽에 있는 네 개의 금못에 걸려 있었다. (26.3)
 성막의 지붕
 어떤 성경 학도들은 1세기 반 전에 살았으며 성막의 지붕은 박공(gable)으로 되어 있었다고 최초로 주장했던(Smith‘s Dictionary of the Bible, 1863) 건축가 J. 퍼거슨(Fergusson)의 견해를 따른다. 그러나 지붕마루 막대기들로 지어진 천막은 고대 근동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실제로 경사진 지붕은 눈이 오는 지역에만 필요하다. 성경 시대에는 지붕들이 평평하였다. 1722년, 아우구스투스 칼멧은 성소의 지붕이 평평하였다고 주장한 최초의 주석가였다. 성경이나 고대의 어떤 출전에도 지붕마루 막대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암시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연구자는 잠정적으로 성막의 지붕은 정말로 평평하였다고 결론지었다.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