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1 부 진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과 함께 (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1. 조직화된 이스라엘의 진영 (나의 모든 계획들은 그리스도의 것임)
 각 지파의 사람들은 레위인에 의해서 경계가 지워지는 광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배열되었다. 이들 헌신한 봉사자들은 이 구역을 항상 깨끗하게 보존하였으며, 주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지켰다. 백성들은 명상과 기도를 위하여 그 곳에 모이기도 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조용한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심지어는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죄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21.5)
 주께서는 이 구역의 중심에 흰 포장으로 둘러싸인 성막의 뜰이 위치하도록 하셨다. 이 곳은 오직 제사장들과 진지한 경배자들만을 위한 장소로 지정되었다. 뜰은 주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칭의를 위해 마련하신 준비를 표상하였다. 이곳은 결국 비난과 정죄로부터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나중에 더 다루기로 하자. (21.6)
 그 중심에는 해달의 가죽에 덮인 쌍둥이 방으로 된 성막이 조용히 따로 떨어져 서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의 백성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시야와 소음에서 벗어나 당신의 거룩함이 서린 은밀한 장소에 거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하신 준비를 표상하였다. (21.7)
 어떤 평신도도 이 성소의 첫째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곳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봉사할 수 있는 곳으로 지정 되었다. (21.8)
 주께서는 당신의 “왕같은 제사장들”에게 허락된 특권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하고 계시는가? 이 구역은 그들의 제사장에 의해 대표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화되는 가운데 성장 할 수 있는 장소를 표상하였다. 성소는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였다. (22.1)
 지성소 또는 신탁의 장소는 성막의 두번째 방이었다. 그 곳은 하나님의 임재만을 위해 바쳐졌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은혜와 자비의 보좌에 좌정하신 것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쉐키나에 의해 상징되었다. 이 방은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것도 피와 향을 가지고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시은좌 위의 그룹은 죄로부터 자유케 되어 영광을 옷입고, 그분의 면전에서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표상하였다. (22.2)
 거룩함이 증대되는 이 일곱 단계는 애굽인의 비열한 속박에서 영원한 보좌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순례 여행을 예시하였다. 각 단계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장하는 제자가 믿음의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적절한 은혜의 수단들을 제공하셨다. 이 단계들 가운데 어느 것을 회피하고자 애쓸 것 같으면, 영광에 이르는 그의 여행은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22.3)
 진영의 핵심이 되는 성막
 성소는 그분께서 선택하실 때는 언제든지 여호와의 영광이 비쳐나오던 장소였다. 이 찬란한 빛은 낮에는 시원케 하고 보호하는 구름으로, 밤에는 따뜻하게 하고 길을 밝혀 주는 불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예배의 감동을 주는 초점이 되시는 분은 이 광채나는 덮개아래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부가 그들의 생애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알려 주기 위하여 당신의 임재의 이같은 증거들을 바로 진영의 한가운데 두도록 계획하셨다. (22.4)
 약속의 땅에서의 다양한 장소 가운데서와 마찬가지로, 사막에 펼쳐진 50개의 장소 가운데서 그분의 움직이는 전(殿)은 경건한 자들이 모여 여호와를 공경하는 중심지였다. 출애굽한 지 약 480년 후에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지은 훌륭한 성전을 그분을 찬양하기 위한 영구적인 장소로 봉헌하였다. 배교와 포로 생활로 인하여 중단한 적이 있었지만, 이 봉헌 장소에서 히브리인들의 예배는 기원후 70년에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하여 두번째 성전이 멸망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제는 성막의 특별한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이 상징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당신의 빛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22.5)
 성막의 뜰
 뜰을 두른 포장(布帳)은 “세마포”(qelain, 출 27:9, 38:9)로 만들어졌다. “치다”(걸다)는 말은 자르거나 절개하는 것을 의미하는 어근(qala)에서 유래하므로, 올이 성기게 짠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탈궁(Targum)은 그 것을 “창살 모양의 수예품”(grate-work)으로 번역하며, 엘렌 화잇은 “휘장”(screen)이라고 시사한다( 부조와 선지자, 347). 이 포장은 뜰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바를 완전히 숨기지는 않았다. 성경의 상징 언어에서 “세마포”는 구주의 “의”를 상징하는데, 그분께서는 그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준비하고 계신다(계 19:8). 그 느슨하게 짜여진 형태는 단지 상징적인 장벽에 불과했으며,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게 하였다. (22.6)
 바람이 이 포장을 통과하면서 내는 속삭이는 소리를 통하여, 성령의 음성은 “예수님은 그대의 의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소의 거룩한 평화가 그대를 감싸 안으실 것이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노래하였다. (23.1)
 회개한 사람이 속세의 진영을 떠나 평화스러운 광장을 가로 질렀을 때, 그는 삼분의 이 마일(1.1 km)이란 다소 길고 외로운 길을 걸어 성소에 도달하였다. 오는 도중에 그는 자신이 성소를 향해 출발하는 것을 목격한 이웃들의 험담에 낙담하기 쉽다. 그는 귓전으로 듣는 자신의 행위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말과, 왜 그가 희생 제물을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에 대한 추측의 말에 동요되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밧줄에 묶여 끌려가는 희생 제물과 더불어, 그는 거룩한 뜰에 들어가기까지 계속 그런 상태에 있어야 하였다. 주께서는 거기서 그를 동정해 주고, 용서와 정결함을 구하도록 그에게 용기를 주며, 은혜의 새 언약을 통하여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한 제사장을 제공해 주셨다. 한 때는 그의 길에 서 있는 장애물처럼 보였던 흰 휘장이 이제는 그의 구속주의 의로운 품성의 성채 안에서 그를 보호하였다. (23.2)
 뜰 안으로 들어가는 오직 하나의 입구
 하나님께서는 뜰로 들어가는 하나, 오직 하나의 “길” 만을 제공해 주셨다. 이것은 동쪽편에 있는 화려한 휘장이었다(출 27:16, 17; 38:18, 19).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두 개의 휘장(출 26:31~37)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청색 자색 홍색 실과, 아름다운 금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 놓아 짜여졌다. 그리고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었다(히 10:20). 이 유일한 입구는 “천하 인간에”(행 4:12) 그것을 통해서 구원의 계획의 모든 단계에 이를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요 14:6; 히 10:20)만이 있음을 강조하였다. 예수님은 “길”, 곧 유일한 길이시요, 거룩함에 이르는 유일한 문(요 10:7)이시다. 그분은 “우리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히 12:2)시다. (23.3)
 장방형으로 계획된 성막
 뜰 둘레에는 60개의 조각목이 서 있었다. 놋으로 입힌 조각목들은 아마도 둥글었을 것이며, 길이는 각각 다섯 규빗 내지 아홉 규빗 되었다(출 27:9~15). 그러나 그 두께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각 기둥들은 놋 받침대 위에 서 있었고, 뜰의 안팎으로 땅에 박힌 놋 말뚝(출 27:19)에 부착된 버팀줄(출 35:18)에 의해서 똑바로 세워졌다. (23.4)
 이 기둥들의 배열에 대해서는 약간의 연구가 필요하다. 열 개는 뜰의 길이가 짧은 동쪽과 서쪽 끝에 서 있었으며, 반면에 스무 개는 각각 긴 쪽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기둥들은 사이가 5규빗 되게 해서 50 x 100 규빗 되는 장방형을 둘러쌌다(출 27:9, 13, 18; 38:9, 13).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면, 열 개의 기둥들 사이는 50규빗이 아니라, 단지 45규빗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23.5)
 다음 그림은 일정한 사이를 두고 기둥들을 배치한 성경의 방법을 설명해 준다. “A” 점에서 시작하여 열 개의 기둥들은 5규빗의 사이를 두고 세워져 서쪽 경계를 이룬다. 그러나 앞에서 주목했던 대로, 이 열 개의 기둥들 사이는 단지 45규빗밖에 안 된다.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