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바울은 유대인들이 고의적으로 거절했던 그 영광을 어둡게 한 암흑의 수건으로 인해서(
고후 3:14-16) 그 때까지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에게
“수건”의 개념을 적용한다. 바울은 역사적으로 생각한다. 모세가 백성들의 반역과 불신을 지적하기 위해서 자신의 얼굴에 놓았던 수건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참 이해를 가리웠던 것으로, 바울에게는 상징적으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을 보지 못하도록 막는 어두움의 수건을 나타낸다(
고후 3:15). 그러나, 바울은 계속하기를,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이지리라”(
고후 3:16)고 한다. 크랜필드는 정확하게 지적하기를,
“율법이 폐해졌다는 암시가 없으며, 오히려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갈 때, 그들은 율법의 참 영광을 식별할 수 있다”28)고 한다. 칼빈에 의해서 적절하게 주어진 한 이유는:
“왜냐하면 율법 그 자체는 밝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 가운데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면 우리는 그 율법의 찬란함을 즐기게 된다”29)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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