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안디옥 학파의 해석학
 풍유적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와는 대조되게 안디옥의 해석자들은 성경의 명백한, 문자적-역사적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428년 사망) 같은 주석자로 대표되고 설교자 크리소스토무스(Chrysostom, 347-407년)에 의해 파급된 안디옥 학파의 해석학은 이 논문에 제시된 것과 동일한 기본 전제 위에 세워졌다. 그들의 주석은 성경 기자들이 앞선 성경 말씀을 해석할 때 사용한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침들을 따랐다. (119.4)
 D. 중세 해석학
 불행하게도 안디옥학파의 해석학은 희미해지고,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유행시킨 풍유적 해석법에 의해 결국 공식적으로 제거되고 말았다. 요한 캇시아누스(John Cassian, 425년경)는 성경에 대한 오리게네스의 삼중 의미를 사중 의미로 확대하였다.

 (a) 역사적(문자적)의미

 (b) 비유적(tropological, 도덕적 의미, 트로포스[삶의 방식]에서 유래함)의미

 (c) 풍유적(신비적 혹은 기독론적)의미

 (d) 신비적(anagogical, 종말론적 또는 천상적인, 아나고[“위로 이끌다”]에서 유래함) 의미. 1,000년간 이 4두 마차(풍유법의 “네 마리 마차”)가 로마가톨릭 교회를 장악했다. 그러나 핍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체의 명백하고 문자적인 의미대로 성경만의 완전한 권위를 받아들인 소수의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하였다. (119.5)
 E. 종교개혁 해석학과 역사적-문법적 방법
 16세기의 종교개혁 해석자들은 성경에 대한 풍유적 해석을 깨뜨렸다. 점차 마르틴 루터는 성경 속으로 4두 마차“몰고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것의 명백한 의미를 요구하였다. 그의 〈탁상 담화(Table Talk)〉 5285에서 그는 성경을 풍유적으로 푸는 일에 전문가였다는 것을 회상하면서, 지금 그의 최고의 기술은 “성경에 문자적이고 단순한 의미를 주는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능력, 생명, 위로와 교훈이 나온다.”라고 했다. (120.1)
 루터는 성경을 해석하는 네 가지 원칙을 발전시켰다. 첫째 것은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인데, 오직 성경만이 전통과 인간 철학 위의 최종적 권위로 기능한다. 물론 루터는 이 원칙을 발명하지 않았고 단지 강력하게 그것을 적용한 것이다. 솔라 스크립투라솔라 피데(오직 믿음)와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와 함께 종교개혁의 구호가 되었다. (120.2)
 루터의 두 번째 해석학적 원칙은 “성경이 그 자체의 해석자이다.”(스크립투라 수이 입시우스 인테르프레스)인데, 이것 역시 견고한 성경적 기초를 지닌다. 루터는 철학과 교부들의 해석과 교회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성경 해석의 열쇠로 삼는 것을 거절했다. (120.3)
 셋째, 루터는 또한 그리스도 중심적 원칙으로 알려진 것을 적용하였다. 그의 주요 구호는 “무엇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가?”(Was Christum treibet)였다. 성경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강조하며 그분께로 인도하는지를 보고자 하여 칭찬할 만한 일로 시작된 이것이 루터가 모든 성경이다. 그리스도께로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위험한 것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성경의 어떤 부분은 다른 부분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 중심적 원칙에 수반되는 넷째 원칙은 문자와 영(율법과 복음, 행위와 은혜) 사이의 이원론이었다. 신약 전체가 복음은 아니며 구약 전체가 율법이 아니었지만 구약의 대부분을 문자로 보고 신약의 대부분은 은혜로 보았다. 셋째와 넷째 원칙은 성경의 전체성(토타 스크립투라)의 원리를 부정하고 주관주의에 빠지게 한다. 해석자 자신의 경험이 궁극적인 표준이 된다. (120.4)
 츠빙글리(Zwingli), 칼뱅(Calvin), 재침례파 교도들을 포함해서 다른 모든 종교개혁자들은 루터의 두 가지의 원칙을 받아들였다. 이 종교개혁자들은 전통이나 학자들의 철학을 성경 해석에 사용하는 대신 일관되게 성경을 지지하고 성경만을 진리의 표준으로 삼고 성경을 사용하고자 노력하였다. (120.5)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성경 해석 원칙들은 문예부흥이 가져온 본문 및 역사적-문법적 분석(historical-grammatical analysis)의 발전(에라스무스 같은 인물들)과 짝을 이루어 탄탄한 개신교 해석학을 일궈냈는데, 현재까지 수행되고 있는 이 해석학은 역사적-문법적-문학적-신학적 접근법(the historical-grammatical-literary-theological approach) 혹은 축약하여 문법적-역사적 방법(the grammatico-historical method) 혹은 역사적-성경적 방법(historical-biblical method)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개혁 시대 이후로 이 연구법은 유능한 지지자들을 많이 얻고 있는데, 에른스트 헹스텐베르크(Ernst Hengstenberg)와 프란츠 델리취(Franz Delitzsch)같은 19세기의 주석의 대가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것은 현재 보수적인 복음주의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120.6)
 F. 계몽주의 해석학과 역사적-비평적 방법
 1. 역사적 발전
 17세기에 개신교 해석은 엄격한 정통주의 속으로 화석화했고, 그 강조점은 신조 안에서 올바른 교리를 정확하게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질식할 것 같은 교회의 권위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개인적 영성 생활을 강조하는 경건주의 노선을 취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의 파도와 과학과 종교의 갈등 사이에서 모든 외적인 권리들을 내던져 버렸다. 따라서 경험주의, 이신론, 합리주의가 강력하게 되었다. (120.7)
 가톨릭교회 사제가 된 개신교인인 리샤르 시몽(Richard Simon, 1638-1712년)은 성경 비평의 창시자였다. 개신교를 반박하기 위한 시도로 그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는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화란 철학자인 스피노자(Spinoza)의 원칙들을 적용하여 시몽은 개정과 편집의 긴 과정을 선호하여 오경의 모세 저작권을 거절했다. 그의 1678년 책은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금서 목록에 올려놓았다. (121.1)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일어난 합리주의의 물결 속에서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다른 여느 책과 같은 방식으로 보기 시작했다. 계몽주의의 분수령은 요한 제믈러(Johann Semler, 1725-1791 년)와 24권으로 된 그의 〈정경에 관한 자유로운 조사 논문(117-1775년)〉과 더불어 이르러왔다. 그는 성경이 전적으로 영감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정경의 신적 권위에 도전하였다. 성경을 순수하게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었고, 다른 여느 고대 문서들처럼 연구하게 되었다. (121.2)
 이어진 수십 년 동안 독일 학자들은 신적 요소를 언급함 없이 이른바 “아래로부터(from belos)”라는 성경 연구법을 발전시켰다. 이 방식은 18세기와 19세기 동안 내내 꾸준하게 성공하였고 고등비평 혹은 역사 비평적 연구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연구법의 목적은 세속적 역사학의 원리와 방식을 사용하여 성경 자료의 진실성을확인하는 데 있었다. (121.3)
 2. 역사적 비평주의의 전제들
 역사 비평주의의 기본 전제들, 곧 비평, 유비, 상관의 원칙은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sch)에 의해 1913년에 주창되었다. 이 연구법의 가장 큰 특징이 되는 원리는 비평의 원칙(The principle of criticism)이다. 여기 사용된 “비평”이라는 단어는 전문적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懷疑)”이며, 성경적 증거에 대해 질문하고 평가하고 성경의 특정한 선포에 대해 진실성과 적합성과 이해성을 판단하기 위한 연구자의 자율성을 가리킨다. (121.4)
 비평의 원칙과 매우 밀접한 것은 유비의 원칙(The principle of analogy)인데, 이것은 현재 경험을 성경 안에 진술되어 있는 사건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건들은 원칙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해석자는 오늘 발생하는 것에 비추어 성경시대에 발생한 것을 판단해야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어진 현상이 오늘 발생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모든 가능성은 그때의 그것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별 창조나 세계적인 홍수는 현재 전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 발생하지 않은 것도 매우 당연한 일이다. 기적 및 죽음으로부터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비역사적인 것이라고 설명되어야 한다. (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