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경 자체 내의(Inner-Biblical) 해석 방법
 성경 해석학의 역사는 성경 기자들이 그들 이전에 있던 성경을 해석했던 방식과 더불어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구약의 후기 기자들이 토라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표준으로 돌이켜 순종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소한 것들을 보았다. 신약 기자들은 그 해석학적 맥락으로부터 떼어내어 구약을 취하지 않고, 예수의 모본을 따라서 구약 구절들을 그것들의 더 큰 정경적 맥락에서 보았다. 그들은 모방해야 할 건전한 해석학적 패턴을 제시하였다. (117.1)
 B. 초기 유대인들의 성경 해석학
 1. AD 70년 이전의 서기관들의 주석 방식
 자신의 논문에서 데이비드 인스톤 브루어(David Instone Brewer)는 랍비 시기보다 앞선 때(AD 70년)에 존재한 서기관들의 기록들을 모두 분석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AD 70년 이전의 랍비들을 앞선 이들은 성경을 문맥에서 벗어나서 해석하지 않았고, 명백한 의미 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성경에서 보지 않았고, 그들의 해석에 맞게 하기 위해서 본문을 변경시키지 않았지만, 후대의 랍비들은 이 모든 것을 행했다.”(Brewer). 이 초기 서기관들의 성경에 대한 태도는 다섯 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a) 성경 자체는 전적으로 일관적이다.

   (b) 모든 세부사항은 의미가 있다.

   (c)성경은 그 문맥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d) 성경에는 이차적인 의미가 전혀 없다.

   (e) 성경의 히브리어 본문은 오직 하나의 유효한 형태가 있다. (117.2)
 성경을 신실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초기 서기관 전통은 해석의 규칙들을 발전시켰고, 그것은 힐렐(Hillel, AD 10년경 사망)의 일곱 가지 해석학적 규칙들 속에 깔끔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규칙들 중 다수가 신약에서 적용되었다. (117.3)
 2. 후기 랍비들의 해석
 AD 70년 후의 랍비들은 페샤트(성경의 “분명한, 문자적인” 해석법) 방법을 계속 사용했지만 마찬가지로 이것을 소드(“비밀의, 풍유적인” 방법)와 섞었다. 랍비 이쉬마엘 벤 엘리시(Ishmael Ben Elisha, AD 2세기 전반)의 13가지 규칙은 유대인의 할라카(시민적, 종교적 율법)를 해석하기 위한 미드라쉬적 방법(드루쉬, “탐색된”에서 온 말)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이 방법은 성경의 명백한 의미를 떠나서 본문을 꾸미는 것을 포함하였다. 랍비 엘리에제르 벤 요세(Eliezer Ben Yose, AD 2세기)의 32규칙은 학가다(대중적인 설교)의 해석에 사용되었다. 이 후기의 규칙들은 성경 본문을 꾸미고 명백한 의미에서 벗어나는 해석의 기법들을 포함하였다. 후기의 랍비들은한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 의미를 발견했다 명백한 의미, 숨겨진 의미를 지적하는 암시, 이차적인 혹은 풍유적인 의미, 문자 속에 감춰진 신비한의미. (118.1)
 3. 비(非)서기관적인 전통들: 쿰란
 AC 70년 이전의 모든 유대인의 주석이 본문의 명백한 의미에 머문 것은 아니었다 쿰란의 엣세네파 공동체의 지도자, 의의 교사는 선지서들의 영감 받은 해석자로 여겨졌다. 그는 그들이 그의 종말론적 공동체에 적용하는 선지자의 구절들의 “신비들”을 설명하였다. 그 발전된 독특한 해석학은 라즈 페셰르(“신비적 해석”)로 알려졌다. 쿰란의 라즈 페셰르의 현존하는 표본들 안에 있는 전형적인 접근법은 성경 구절을 인용한 다음에 “이것의 의미는” 혹은 “이것의 페셰르는”라는 말이 뒤따르는 것이었고, 엣세네파 공동체를 성경 본문과 엄격하게 일치시켰다. (118.2)
 선지서의 각 구절, 단어, 심지어 단어의 부분까지도 쪼개서 해석하는 방식을 통해서 모든 것이 쿰란 공동체를 언급하는 것으로 만들어졌다. 쿰란인들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 종말론적 성취의 시기를 선지자들이 수수께끼와 암호로 기록했다고 보았다. (118.3)
 4. 비서기관적인 전통들: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유대인 학자 필론(Philo, AD 1세기)은 성경에 대한 풍유적 해석을 유행시켰다. 그의 작품은 실재에 대한 플라톤적 모델 위에 기초했는데, 거기에서 열등하고 일시적인 감각의 세계는 우월한 영원한 관념(ideas) 세계의 반영이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자신의 풍유적 방법을 통해 성경 본문에 난점이 발견되는 곳마다 문자적 의미를 포기하고 풍유적 해석을 가했다. 문자적 의미는 핵심 즉 숨겨진 영적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벗겨내어야 할 역사적 껍질이었다. (118.4)
 필론의 해석학의 기본적인 주장은 해석자는 성경 저자처럼 영감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해석자는 본문의 풍유적 해석에 대한 최종 결정자이다. 만일 본문이 당시의 지배적인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해석자의 의무는 본문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최종 권위는 성경이 아니라 해석자의 주관적인 영감받은 상상력이다. (118.5)
 C. 초기 그리스도교의 해석학
 1. 초기 교부들
 초기의 몇몇 교부들이 특별한 해석학적 방법들을 도입하거나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단자 마르키온(Marcion)은 2세기 초에 해석학이 발전되도록 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력이 없다고 구약을 거절하였다. 그는 율법-은혜라는 이원론을 발전시켰다. 여기에서 구약은 율법, 복수 증오와 분노의 그림을 제시하고, 반면에 신약은 은혜와 사랑을 대표하였다. 이 개념은 신약에도 적용되었다. 오직 누가만 참된 복음서로 간주되었고, 신약의 다른구절들은 거절되었다. 초기 교부 중 많은 이들이 마르키온의 이설에 대항하는글을 썼다. (119.1)
 리용의 감독인 이레나이우스(Irenaeus, 130년경-200년경)는 “신앙의 규칙” 원칙을 정통 그리스도교 교리를 옹호하는데 활용하였다. 그의 신앙의 규칙은 교회 안에 보존된 전통이었다. 따라서 그는 권위 있는 주석의 아버지가 되었다. 최종 규범은 오직 성경(Scripture alone)이 아니라, 교회의 권위로 해석된 성경이었다. 거의 같은 때,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년경-240년경)는 성경의 통일성을 수호하기 위해 표상학을 사용하였지만, 그의 표상학적인 상응들은 단지 풍유에 불과하였다. (119.2)
 2.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해석학
 클레멘트(Clement, 215년 사망)로부터 시작되는 알렉산드리아 해석 학파에서 필론의 풍유 해석법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 클레멘트는 성경의 다섯 가지 의미, 곧 역사적, 교리적, 예언적, 철학적 및 신비적 의미를 발전시켰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Origen, 185-254년)는 성경 본문은 인간의 삼중적인 본성에 상응하여 만들어진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a) 육체적 혹은 문자적 의미. 이것은 최소한의 중요성이 있다.

   (b) 정신적 혹은 도덕적(윤리적)의미.

   (c) 영적 또는 풍유적/신비적 의미.

 이것은 가장 중요하며 대부분의 성숙한 해석자만 얻을 수 있다.

 플라톤적/필론적 이원론 위에 세워진 이 삼중 의미는 풍유적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 역사적 껍질을 벗겨버리기 위한것이다. (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