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전체성이라는 원칙에 내포된 두 번째 필연적 귀결은 성경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증거는 압도적이다. 구약에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명백하게 지적하는 히브리어 단어가(네 개의 약간 다른 구절의 형태로) 1,600번이나 나타난다.

   (1) “야훼의 경고[느움]”, 약 360회,

   (2)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아마르]”, 약 425회,

   (3)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딥베르]”, 약 420회,

   (4) “야훼의 말씀[다바르]”, 약 395회.

 선지자의 기별과 하나님의 기별 사이의 동일성에 관해서 여러 번 기록되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위해서 말한다(참조 출 7:1, 2; 출 4:15, 16). 하나님은 선지자의 입에 그분의 말씀을 넣어 주신다(참조 신 18:18; 렘 1:9). 야훼의 손이 강하게 선지자 위에 임한다(참조 사 8:11; 렘 15:17; 겔 1:3). 야훼의 말씀이 그에게 온다(참조 호 1:1; 욜 1:1; 미 1:1). 예레미야는 선지자들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의 청중들을 책망하는데(렘 25:4), 그것은 야훼를 듣지 않는 것과동일하다(7절). (92.3)
 이스라엘에게 선지자의 기별을 보내는 것은 열왕기하 21:10에 요약되어 있다. “야훼께서 그의 종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이르시되.” 역대하 36:15, 16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그 조상들의 하나님 야훼께서∙∙∙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선지자의 기별은 하나님의 기별이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선지자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3인칭(“그”)으로 언급하다가 “야훼께서 이르시되”라는 말도 없이 신적 연설의 1인칭(“나”)으로 자주 전환하였다(사 3:1-4; 렘 5:3, 4; 호 6:3, 4; 욜 2:23, 25; 슥 9:4, 7). (92.4)
 신약에 여러 번 나오는 “기록되었으되”“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말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 1:5-13에서 구약의 일곱 개 인용절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인용된 구약의 구절들은 특별히 하나님이 진술하신 것이라고 언제나 언급하고 있지 않다(시 45:6, 7; 102:25-27; 104:4). 또 로마서 9:17갈라디아서 3:8(각각 출애굽기 9:16창세기 22:18을 인용하면서)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밀접한 일체성을 나타낸다. 신약의 구절들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분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성경이 말하기를”라는 말로 인용구를 도입한다. 구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롬 3:2)으로 여겨졌다. (92.5)
 비록 성경이 인간 저자의 개성을 무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구술하여 받아쓰는 방식으로 기록되지는 않았고, 따라서 특정 단어들이 인간 기자에 의해 선택되었지만, 인간적이고 신적인 요소는 분리할 수 없고 인간 기별자는 신적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들을 선택하는 데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으므로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일컬어진다. 성경의 개별적인 말들은 신적 기별을 믿을 만하고 정확하게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93.1)
 이것은 신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해서 예증이 된다. 예수는 신명기 8:3을 인용해서 말하고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헬라어 판티 레마티, ‘모든 말씀’, ‘모든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콜을 번역했음]으로 살 것이라”(마 4:4). 바울은 자기의 영감 받은 기별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동일한 저자가 기록한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93.2)
 신약에 명백하게 기술된 것은 예수와 사도들이 구약의 중요한 단어나 심지어 문법적 형태 위에 전체적인 신학적 논증을 세우고 있는 예를 보여 준다. 요한복음 10:34에서처럼 예수는 시편 82:6에 호소하여 “신들”이라는 특정 단어로 그의 신성을 확증하고 있다. 수반된 용법은 주목할 만한 언급을 담고 있다. “성경은 폐하지[루오] 못하나니”(35절). 특정한 단어까지도 루오(“풀리다, 깨지다, 철회되다, 무효가 되다 또는 폐지되다”)될 수 없다. 마태복음 22:41-46에서 그는 시편 110:1“주”라는단한단어의 신뢰성 위에 기초하여 바리새인들에게 최종적이고, 반박할 수 없는 논증을 제시하였다. 사도 바울(갈 3:16)도 마찬가지로 창세기 22:17, 18“씨”라는 단어의 단수 형태에 근거하여 그의 메시아 논증을 제시했다. 바울은 이 구절의 더 넓은 메시아적 문맥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집합적 복수로부터 단수적 씨로 옮겨간다 예수는 구약의 전체성을 인정하면서 구약 토라의 충만한 권위에 대해 최고의 존경을 보인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93.3)
 C. 성경의 유비
 성경 해석의 셋째 기초가 되는 대원리는 ‘성경의 유비(또는 조화)’(아날로기아 스크립투라에)라고 명명될 수 있다. 모든 성경은 동일한 성령에 의하여 영감 되었고 성경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다양한 부분들은 근본적인 통일성과 조화를 지닌다. 구약의 다양한 부분들은 신약 기자들에 의하여 조화 있고 동일한 신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면, 로마서 3:10-18에서 우리는 전도서(7:20), 시편(14:2, 3; 5:10; 10:7), 이사야(59:7, 8)에서 인용한 성경절들을 갖고 있다. 성경은 분리할 수 없고, 전체가 일관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약의 주요 주제들은 신약 기자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한층 더 발전되었다(참조III. E. 1). (93.4)
 구약과 신약은상호관련을 갖고 서로에 대하여 조명한다. 예수는 구약이 어떻게 신약을 조명 하는지에 대해(특별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요한복음 5:39에 묘사하였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다른 곳에서 예수는 그가 구약에 대하여 어떻게 조명자가 되고, 성취가 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함이라”(마5:17). (93.5)
 후의 계시는 전의 계시에 의해 검증을 받지만 구약과 신약 중 어떤 성경도 다른 성경을 폐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베뢰아인들의 경우가 예증한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상고하므로”(행 17:11). 예수도 제자들의 확신은 일차적으로 감각적인 현상에만 기초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들은 구약의 증언 때문에 그분을 믿어야 했다(눅 24:25-27). (94.1)
 “성경의 유비”라는 원칙은 3대 측면을 갖는다.

   (1)‘성경 자체에 대한스스로의 해석자로서의 성경’(스크립투라 수이 입시우스 인테르프레스)

   (2) 성경의 일관성

   (3) 성경의 명료성. (94.2)
 1. “성경은 그 자체의 해석자이다”
 마르틴 루터가 표현한 것처럼, “성경이 성경 자체의 빛이다.” 성경의 다양한 부분에 통일성이 깔려있기 때문에 성경의 한 부분은 다른 부분을 해석하고, 관련된 단락들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94.3)
 예수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이 원칙을 드러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그날 밤 늦게 다락방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4, 45절). (94.4)
 바울은 동일한 원칙을 고린도전서 2:13에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이 본문은 다양하게 번역되었다. 그러나 사도 자신의 성경 사용은 사도가 원칙을 수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이미 로마서 3:10-18이 구약을 전체적으로 인용하고 있음을 보았다. 동일한 현상이 히브리서 1:5-13; 2:6, 8, 12, 13 에서 목격된다. (94.5)
 성경이 그 자체의 해석자라는 이 원칙을 적용하여 예수는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어떤 주제에 관해 모든 성경이 그 주제를 해석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보여 주셨다(눅 24:27, 44, 45). 이것은 각 본문의 문맥과 상관없이 “증거 본문”을 삼기 위해서 무분별하게 짜 맞춰야 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궁극적으로 한분의 신적 저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주제의 모든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서 특별한 주제에 관해서 기록된 모든 것을 통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94.6)
 2. 성경의 일관성
 예수께서는 성경의 유비성에 관한 이 부분을 간결하게 진술하셨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 성경은 단일한 신적 저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다양한 부분들은 서로 일관성이 있다. 따라서 성경은 성경을 대적하지 못한다. 성경의 모든 교리들은 서로 일관성을 지닌다. 즉 개별 구절의 해석은 성경이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가르치는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94.7)
 각기 다른 성경 기자들이 동일한 사건이나 주제에 대하여 다르게 강조할수 있지만,이것은 모순이나 오해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복음서의 평행 구절들 속에서 특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각각의 기자는 성령의 영감 아래 자기에게 인상 깊었던 것을 기록했으며, 전체의 각 측면은 전체적이고 균형 잡힌 그림을 얻는 데 필요하다. (94.8)
 3. 성경의 명료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