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경, 오직 성경
 성경에 관해서 성경 자체에 의해 제시된 기본 원칙은 오직 성경만(솔라 스크립투라)이 진리의 최종적 규준이다. 이 기본 전제를 표현하는 고전적 본문은 이사야 8:20이다. “마땅히 율법과 중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두 개의 히브리 단어인 토라(율법)과 트우다(증거)는 이사야 시대의 두 개의 권위의 소재를 가리킨다. 오경 및 이전에 토라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선지자들의 증거, 이것들이 지금 성경을 구성하고 있다. 예수가 “율법과 선지자”(마 5:17)를 언급했을 때 구약의 두 부분을 유사하게 요약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의 증거로 주어진 권위 있는 계시를 추가하고 있다(참조 엡 2:20; 3:5). (89.1)
 1. 성경의 수위성
 이사야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권위로부터 돌아서서 강신술사 영매들에게로 향한 배도한 이스라엘에게 경고했다(사 8:19). 신약 시대에 또 다른 권위의 원천들이 성경적 계시의 최종적 권위를 빼앗기 위하여 위협하고 있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전통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은 전통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적하셨다(마 15:3, 6).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진리의 최종적 규범으로 전통과 인간의 철학을 내세우는 것을 강력하게 거절하였다(골 2:8).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의 “지식”(헬라어 그노시스)을 최종적 권위로 삼는 것을 거절하였다(딤전 6:20). (90.1)
 천연계는 제대로 이해된다면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와 조화를 이룬다(참조 시 19:1-6[천연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7-11절[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 그러나 천연계는 하나님과 실재에 관한 제한적이고 깨어진 지식의 원천이기 때문에 성경의 최종적 권위에 종속되고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롬 2:14-16). 구약과 신약의 기자들은 타락 이후로 천연계는 부패했고(창 3:17, 18; 롬 8:20, 21) 더 이상 완전하게 진리를 반사할수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90.2)
 인간의 정신적이고 감성적인 기능도 타락 이후로 부패하였다. 그러나 타락 전일지라도 인간의 이성이나 체험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안전하게 신뢰 할 수 없었다. 하와는 그녀 자신의 이성과 김정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이 믿었기 때문에 타락하였다(창 3:1-6).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참조 죄론 V. A)고 예리하게 관찰하였다. (90.3)
 2. 성경의 충분성
 ‘오직 성경’(솔라 스크립투라)이라는 원칙은 성경의 충분성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오류가 없는 안내자로 홀로 서 있다. 성경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하기에 충분하다(딤후 3:15). 성경은 모든 교리와 체험들이 그것에 의해 시험 받아야 할 기준이다(사 8:20; 요 17:17; 딤후 3:16, 17; 히 4:12). 따라서 성경은 지식과 체험의 모든 분야를 위한 틀과 하나님의 관점과 기초가 되는 원칙들을 제공한다. 모든 부차적인 지식, 체험 혹은 계시는 성경의 전적인 충분성의 기초 위에 세워지고 그 위에 신실하게 남아 있어야한다. (90.4)
 이렇게 ‘오직 성경’(솔라 스크립투라, 진리의 유일한 최종적 규범으로서의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號)는 혹증되었다. 모든 다른 지식의 원천들은 오류가 없는 이 기준에 의하여 시험되어야 한다. 적절한 인간의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의 궁극적인 권위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사 66:2). (90.5)
 B. 성경의 전체성
 성경 해석의 두 번째 대원칙은 성경의 전체성이다(토타 스크립투라). 성경의 수위성을 인정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르틴 루터처럼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치기는 하나 성경의 전체성이라는 면에서 성경을 충분하게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는 이들은 “정경 안의 정경”으로 끝났다. 루터의 경우에 이것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평가절하하고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복음이 아닌 율법의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90.6)
 성경의 자기 증거는 디모데후서 3:16, 17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91.1)
 일부만이 아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 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하게 사도교회의 정경이었던 모든 구약을 포함한다(눅 24:44, 45; 요 5:39; 롬 1:2; 3:2; 벧후 1:21). 그러나 바울에게 이것은 신약의 거룩한 책도 포함하였다. 디모데전서 5:18에서 “성경”(그라페, “글”)이라는 단어는 이 방향을 지적한다. 그는 “성경이 말하기를”라는 말로 두 개의 인용문을 도입하고 있다. 하나는 신명기 25:4에서, 다른 하나는 누가복음 10:7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따라서 “성경”이라는 단어는 구약과 누가복음 모두를 언급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베드로는바울의 글들을 어떤 무식한 사람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억지로 풀”(벧후 3:15, 16)고 있다고 지적함으로 사도의 저작을 성경의 범주에 놓고 있다. 따라서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들은 이미 신약 시대에 “성경”으로 이해되었다. (91.2)
 신약은 예수님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이며, 또한 구약의 표상과 예언들을 그분이 성취하신 것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이다. 예수님은 그가 가르치신 것을 기억나게 하려고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4:26).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바(엡 3:4, 5)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바울은 자기를 사도라고 부른다(롬 1:1; 고전 1:1). 그는 또 “하나님의 영을 받”았고(고전 7:40), “주의 명령”(고전 14:37)을 기록했고, 인간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그에게 계시해 주신 복음을 설교한다고 주장하였다(갈 1:11, 12). 이렇게 신약은 사도들의 증거를 직접적으로(벧후 1:16; 요일 1:1-3) 혹은 간접적으로는 마가나 누가처럼(행 2:12, 25; 15:37; 눅 1:1-3; 딤후 4:11;몬 24) 사도들과 친분을 가진 자들을 통해 예수의 생애와 봉사에 통합하여 수록하고 있다. 모든 성경 곧 구약과 신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것”, 문자적으로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넣으신”(딤후 3:16)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바람” 즉 성령이 선지자들 위에 내려오시는 모습을 담은 모습이며,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숨에 의한 생산품이다. 따라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유익하”다. (91.3)
 1.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불가분적인 연합
 전체 성경’(토타 스크립투라)이라는 원칙에서 비롯된 결과는 모든 성경은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불가분적이고 구별할 수 없는 연합이다. 성경 기자들의 인간적 차원과 관련하여 성경의 신적 성격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열쇠가 되는 성경 구절은 베드로후서 1:19-21이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쒤레마] 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페로] 말한 것임이라.” (91.4)
 이 구절에서 여러 가지의 관련된 요점들이 전개되고 있다. 19절은 성경의 신뢰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더 확실한 예언”이다. 20절에서 우리는 이것이 왜 그런지 알게 된다. 예언은 선지자 자신의 해석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문맥은 일차적으로 선지자가 기별을 전달하는 것을 지적한다. 비록 그 진술을 영감 받지 않은 성경 해석자가주시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선지자는 자기 생각을 기별 속에 무리하게 밀어넣지 않는다. 21절은 이 점을 자세히 설명한다. 예언은 인간 대리자의 쎌레마(주도권, 충동, 의지)에 의해 온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은 자기 자신의 것을 전달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성경 기자들은 그들이 성령에 의해서 감동하심을 받는 대로, 끌려가는 대로, 심지어는 내몰려가는 대로[페로] 말한 선지자들이었다. (91.5)
 이 구절은 성경이 직접적으로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도구들을 사용하셨다는 것을분명히 한다. 성령은 성경 기자들의 자유를 삭감하지 않았고, 그들의 고유한 개성을 억제하지 않았고, 그들의 개성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들의 저술은 때때로 인간의 연구를 포함하였다(눅 1:1-3). 기자들은 때때로 그들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신명기의 모세, 사도행전의 누가, 시편 기자들). 그들은 다른 문체로 제시하였다(이사야와 에스겔, 요한과 바울은 대조된다). 그들은 동일한 진리 혹은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전망을 제시하였다(예컨대, 사복음서들). 그러나 이 모든 사상적 영감을 통하여 성령은 성경 기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기록해야 할지를 선택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제시한 것은 단순한 그들의 해석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뢰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좀 더 분명한 예언의 말씀이다 성령은 인간 도구들의 사상을 신적 진리로 적셔주었고 그들이 기록 할 때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들에게 신적으로 계시된 사물들을 적절한 말로 신실하게 기록하는 일에 헌신했다(고전 2:10-13). (92.1)
 토타 스크립투라 원칙의 첫 번째 당연한 귀결, 곧 성경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요소들이 불가분적으로 함께 묶여 있다는 점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성육하신 말씀을 비교할 때 강화된다. 예수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에(히 4:12; 계 19:13), 그들의 신적 성질들을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다. 성육신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가 전적으로 하나님이요 전적으로 인간이셨던 것과 마찬가지로(요 1:1-3, 14), 기록된 말씀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분리될 수 없는 연합이다. (92.2)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것이지, 하나님 말씀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