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의 결혼 언약 제 3 장 결혼과 성(性) 2. 성의 성서적 개념
 성서적으로 말한 성교는 하나됨과 출산, 다른 말로, 교제와 출산(증식) 둘 모두를 말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하나님의 명령은 성적인 존재가 되라는 명령이다. 그것을 순종할 때, 우리는 “한 몸이 됨”과 자녀를 낳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다. 그러므로 결혼에 있어서 성교는 연합과 출산에 있다. 피퍼스(David Phypers)는 기록한다. “중세의 그리스도인은 성이 갖는 연합이라는 목적에 부주의하거나 때로는 경멸하면서 출산의 개념만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연합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자식을 낳고 수를 늘리라는 명령은 무시하는 것 같다.”8 (95.2)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교에 대한 관계와 출산의 기능 사이에 성서적 균형을 발견하고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교는 새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날 가능성을 제공함과 동시에 하나됨을 가져올 완전한 교제이다. 성은 결혼 생활에서 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거룩한 선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른 신령한 은사들처럼, 성교도 감사하며 적절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95.3)
 신성한 은사로서의 성
 지혜자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즐거움을 위하여 부여하신 선한 은사들로서 떡과 포도즙과 옷과 결혼의 사랑을 함께 말한 것은 주의를 끌 만한 것이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전 9:7~9). (96.1)
 성교는 동물보다 인간에게 더욱 중요하다. 포유동물 중 인간만 이 성기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 경험이 배우자간에 서로를 감정적으로뿐만 아니라 동시에 육체적으로 묶는다는 것을 뜻한다. 남녀가 성교제의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결혼 생활의 성교가 부부에 의하여 즐겁게 되기를 의도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96.2)
 아가서에 신랑과 신부 사이의 성적 사랑의 찬양이 암시되어 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 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아 7:10-12). (96.3)
 성에 대한 이 같은 적극적인 개념이 신약에서도 발견된다. 고린도에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은 부부에게 결혼의 의무를 함께 이루라고 간곡히 말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이 혼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동의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특별한 시간을 내는 일 외에는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함께 함으로 자제의 부족 때문에 사단이 시험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였다(고전 7:2-5). (96.4)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남녀의 육체 연합을 심오한 “신비”로서 당신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부가 나누는 성교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함께함으로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구속의 사랑의 어떤 면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97.1)
 히브리서 저자는 교훈한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히 13:4). 여기서 결혼 생활의 성교는, 어찌할 바 모르는 어떤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고상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동일한 저자는 다시 말한다.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 (97.2)
 성서 기자들은 만장일치로 결혼 생활의 성교를 찬성하고 혼외의 모든 형태의 성행위를 정죄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경고한다. “미혹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 10). 계시록은 “행음자들”“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계 21:8) 하게 될 것을 말한다. (97.3)
 출산으로서의 성
 이미 말한 대로, 성서의 성의 기능은 연합과 출산에 있다. 성교는 영혼의 신비스러운 하나됨을 야기시킬 뿐 아니라 또한 세상에 자녀를 낳을 가능성도 제공한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하나님의 명령은 성의 목적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적인 의도를 나타낸다. 결혼 생활의 성교와 자녀의 출산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남, 여로 하여금 당신의 창조 활동을 나눔으로써 그의 형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셨다. 이것은 자녀를 갖고자 하는 의도가 없는 결혼 생활의 성교는, 성에 대한 기본적인 거룩한 목적을 줄 수 없음을 뜻한다. 어떤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갖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주신 창조적 욕망을 강하게 나타내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97.4)
 물론, 모든 부부가 아이를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쇠나 불임, 그리고 성병은 아이를 낳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권고할 수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부들의 성 생활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 소망을 포함한다. 성교에 의하여 결혼을 완전하게 한 것같이 역시 자녀를 갖는 것도 성행위를 완전하게 한다. 이것은 성생활의 매 행위가 임신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으나 아기를 갖고자 하는 희망은 성 관계의 부분이 되어야 한다. (98.1)
 오늘날 여러 가지 피임 기술은 아이를 낳지 않고도 성교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녀에 대한 소망이나 계획 없이 성행위로 일생을 즐기기로 선택하는 부부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지체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갖는 것을 회피한다. 자녀는 맞벌이 수입이나 두 사람의 경력과 관계된 더 나은 생활을 살아가는 데 방해로 여겨진다. 피퍼스(David Phypers)는 말한다. “성교는 자녀를 낳는 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자들은, 전적으로 그리고 마침내, 순전히 개인적 이유로, 그들의 생애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결혼 생활과 성교는 자기 쾌락의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새 생명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양육하는 창조적인 경험의 외적인 것 보다 단지 자신의 자아 만족을 위한 내적인 것만 생각한다.”9 (98.2)
 생명을 낳는 성의 기능은 부부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게 하시는 일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증진 시킬 수 있다. 성생활로 생명을 낳는 즐거운 경험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연속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분의 첫 창조를 기뻐하여 외치지 아니하였던가?(욥 34:7)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새 생명을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혼인한 부부에게 대리하신 즐겁고도 엄숙한 특권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증진시키는 그분의 동역자들이다. (98.3)
 자녀의 중요성
 자녀는 결혼과 성생활의 기본적인 부분이다. 그들은 결혼연합에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이다. 시인은 이 진리를 표현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시 127:3-5). (99.1)
 인구 폭발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폐하지 않았다. 세상의 기근은 탐욕, 횡령, 무책임한 정부, 천연자원의 남용, 그리고 농업에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채택하거나 사람들에게 책임 있는 가족계획을 하도록 가르치기를 기꺼이 하지 않은 만큼, 사람이 너무 많음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는 결코 크지 않다. 여러 개발 도상국가들은 인구 폭발에 직면하는 반면에 대개의 서부 국가들은 인구 침체나 쇠퇴 현상에 처해 있다. 서부 사회가 노쇠화되어 가는데, 현재의 경향이 바뀌지 않는 한, 수가 증가하는 노인을 부양하기 위한 어려움이 그들에게 증가하게 될 것이다. (99.2)
 대가족 제도가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아니나 여전히 가족은 요긴하다. 교회는 가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들을 필요로 한다. 사회는 그리스도인 가정들의 봉사와 도덕적 감화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 서구 사회는 대개 사회 분석가들이 “후 기독교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에 살아간 다. 이것은 사회적 가치나 관습이 그리스도인 원칙에 더 이상 저촉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주의적 관념론에 영향을 받는 시대이다. 인간적 관념주의는 결혼에 대해 세속적 견해를 갖도록 하고 또한 성교에 대하여 쾌락적 견해를 갖도록 하였다. 결혼은 영원한 신성한 언약이라기보다 파기될 수 있는 사회적 계약이요, 성교의 목적을 출산보다는 쾌락에 두었다. (99.3)
 그리스도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부르심을 받았으나(롬 12:2), 하나님의 주신 원칙과 능력을 따라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결혼과 성생활을 통하여 우리가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2)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야만 한다.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