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영원한 복음 제4부 죄와 심판 제12장 창세기속의 심판사건들과 심판절차
 소돔인들의 죄악상은 창세기 19장에 상세히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심판의 두 천사에게 소돔인들은 비뚤어진 성적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다. 창세기 19:4에 원근에서 모여 든 소돔인들은 히브리어 성경에 ‘남자들’(אַנְשֵׁי הָעִיר אַנְשֵׁי סְדֹם, ´anšê hä`îr ´anšê südöm, 도시의 남성들 소돔의 남성들)이다. 저들의 마비된 양심은 하늘의 방문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천사들을 성적 학대의 대상으로 보았다. (221.1)
 소돔은 외부인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들을 만류하는 롯에게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 도다’고 했다(창 19:9). 롯은 그들과 함께 살았고, 롯 덕분에 목숨과 재산까지도 건졌고, 롯의 두 딸이 소돔인과 결혼을 할 예정이었고, 롯이 그들을 ‘내 형제들아’(אַחַי, ´aHay )라고 부르며 저들과의 일체됨을 주장하였지만, 그들은 롯을 저들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롯은 한명의 거류자, 곧 외국인에 불과하였다. 히브리어 성경은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를 강조한다. 이것은 창세기 18장의 하나님의 심판 주제와 맥을 같이 하는 중요한 표현이다. 이들은 악을 악이라고 지적하며 저들을 저지하는 롯을 통해서 양심의 깨우침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의 심판 받을 짓임을 느껴야 했지만, 그들은 이미 양심에 화인을 맞았다. 그들은 이미 죽은 양심의 소유자들이었다. 롯의 말이 저들의 본성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행동했다. 선은 저들을 분노케 할 뿐이었다. (221.2)
 롯의 사위감들은 진리와 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소돔인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표현해 준다.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כִמְצַחֵק, kimcaHëq 창 19:14). 히브리어 기본형 ‘차하크’(צָחַק, c¹µaq )는 ‘웃다’를 의미하나, 본절에 사용된 강의형 ‘메차헤크’(מְצַחֵק, m•caHëq )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될 때 ‘멸시하다, 조롱하다’를 뜻한다. 소돔인은 아브라함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저들 인근에 있었고, 롯과 같은 의인이 저들 속에 살았지만, 의로우신 심판장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히 마음 문을 닫았고, 심판의 기별을 멸시하고 조롱하였다. 멸망에서 구원 받은 후에 롯의 두 딸이 저지른 근친상간의 죄는 소돔인들의 정신에 물들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며 소돔이 회복될 수 없는 타락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준다(창 19:30-38). (222.1)
 후기 성경들은 소돔의 죄악을 간음, 거짓말, 악행자의 편을 들어 악에서 돌이키지 못하게 함(렘 23:14), 풍족한 중에 교만함, 가난한 자를 외면함, 거만함, 하나님께 가증한 일을 행함(겔 16:49-50), 음란, 다른 육체를 따름(유 1:7)으로 지적했으며, 타락한 유다왕국을 소돔과 비교하였다(사 1:10; 3:9; 렘 23:14; 애 4:6; 겔 16:46, 48, 49, 53, 55, 56). 예수님의 이적을 경험하고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가버나움은 소돔 보다도 심판에 취약한 도시이다(마 10:15; 11:23-24; 눅 10:12). 요한계시록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하나님의 두 증인을 죽이고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을 영적인 소돔이라고 했다(계 11:8). (222.2)
 3) 조사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을 조사하기 위해 ‘야훼’께서 두 명의 천사와 함께 오셨다(창 18:1-2, 20-22; 19:1). ‘야훼’‘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זְעָקָה, z®±¹qâ) 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כָבְדָה, käbdâ)라고 하셨다(창 18:20). ‘부르짖음,’ ‘함성’(זְעָקָה, z®±¹qâ)의 동사 기본형인 ‘자아크’(זָעַק, z¹°aq)는 구약에서 주로 극심한 고통 중에 빠진 이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할 때 사용된다(출 2:23; 삿 3:9, 15; 6:6, 7; 10:10; 삼상 7:8, 9; 대상 5:20; 대하 18:31, 시 22:6 등). 본 절은 소돔인들의 잔인성의 심각함과 그 사회가 짊어지게 된 죗짐의 중함을 강조한다. 그 도성에서 의인 열 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여 이곳은 멸망 당했다(창 18:32). (223.1)
 두 천사는 저녁 때 소돔에 들어와서 롯에게서 환대를 받았는데, 그들이 잠자기 전에 원근의 남자들이 몰려들 정도로 불과 몇 시간 내에 신속하게 도시는 소동 속에 빠져버렸다. 집단적인 광란의 동성애의 시도가 벌어지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신속하게 죄를 행하는 소돔은 인간이 결코 품위를 유지하고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저들이 롯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할 때, 은혜의 시간은 끝났다(창 19:9). (223.2)
 4) 선고
 소돔인들이 ‘야훼’ 앞에 큰 죄인이요 그 부르짖음이 컸다는 세 번의 언급은 심판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말이다(창 13:13; 18:20; 19:13). 끔찍스러운 폭력 앞에 노출되었던 천사들에 의해서 심판이 선고되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는 말로 일방적인 멸망은 불가함을 주장했다(창 18:23). ‘멸하다’로 번역된 ‘사파’(סָפָה, s¹pâ)는 ‘쓸어내 버리다’, ‘멸망시키다’, ‘다 태워버리다’를 의미한다. 소돔이 유황불로 소멸되는 심판을 받을 때 정의를 행하시는 세상의 심판자께서 의인과 악인을 분리하셨다. 열 명의 의인이 없어서 소돔은 유황불로 소멸될 것이나, 한명의 의인도 그 심판에서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이었다. (223.3)
 천사들은 의인에 대한 구원책을 먼저 제시했다. 롯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야 했다. 그 후에 천사들은 도성을 멸망시킬 것이었다(창 19:12-13). 천사들은 스스로의 권능으로 심판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야훼’ 하나님의 명을 수행할 뿐이다(창 19:13). 천사들은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야훼’ 앞에 크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였기에 전적으로 공정하고 전혀 오판이 없는 심판이 집행될 것이다. (224.1)
 5) 집행
 하나님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다’(벧후 2:6). 그러나 소돔을 선택한 롯은 선택에 따른 쓰라린 맛을 톡톡히 봐야 했다. 그의 아내는 도망 도중에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 19:26). 롯은 끊임없이 지체함으로 아내를 잃었다(창 19:15, 16, 18-20). 멸망 앞에서도 제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롯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창 19:29). 롯은 가까스로 구원 받았다. (224.2)
 소돔과 고모라와 인근 도시들은 하나님이 동원하신 자연의 세력, 하늘로부터 비처럼 내리신 유황불로 멸망을 받았다(창 19:24). 창세기에서 대홍수 기사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힘틸’(דִמְטִר, him†îr) ‘비를 내리다’가 소돔에 대한 심판에 사용이 되었다. 소돔인들은 마치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전혀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온 도시와 그 주민들, 그들이 자랑하던 풍요로운 농작물이 모두 뒤엎어져 버렸다(창 19:25). 옹기 가마의 연기처럼 그 지역에서 치솟은 연기는 온 세상을 향해 죄의 값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증거하였다(창 19:18). (224.3)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기사는 아브라함의 목격담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헤브론에서 심판의 하나님을 대접했다. 유황불 심판이 발생하자마자 이른 아침에 그 성을 위하여 하나님과 씨름했던 높은 곳에서 사십여 마일 밖에서 발생하고 있는 멸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창 18:1; 19:27-28). (225.1)
 6) 완화조치
 열 명의 의인은 없었지만 온 도시가 멸망 받은 것이 아니라 롯이 구출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후기 생애는 큰 딸을 통해서 모압 민족을, 작은 딸을 통해서 암몬 민족을 태어나게 함으로 하나님 백성에게 큰 고통과 장애를 가져다 주었다. 악한 도시를 향해서 끊임없이 접근했던 롯은 자신의 의로운 심령을 크게 손상시키고(벧후 2:8) 성경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자신은 구원 받았지만, 그 희생은 얼마나 컸는지. 죄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된다는 산 증인으로 그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225.2)
 참고 문헌
 1. 스킨너가 창 3, 4장의 심판 장면 속에서 ‘죄-조사-심판’의 공통 패턴을 인식한 이래 신학자들은 창 1-11장의 기사들 속에서 심판의 공통 패턴을 발견했다. 폰라드는 전승사적 입장에서 ‘죄-신적 심판-신적 용서 혹은 완화조치’를, 클라인스는 신문학비평적 입장에서 ‘죄-말씀-완화조치-형벌’을, 몰딘은 ‘죄-심판-용서’를 주장했다. Clines, 61-63; Frank L. Mauldin, ‘Singularity and a Pattern of Sin, Punishment, and Forgiveness: [Tower of Babel; Gen 3-11],’ Perspectives in Religious Studies 10 (1983): 42; G. von Rad, Genesis: A Commentary, ed. Peter Ackroyd et al., The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PA: Westminster Press, 1972), 152-155; John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 2nd ed.,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vol. 1 (Edinburgh: T. & T. Clark, 1930), 100.

 2. Wenham, Genesis 1-15, 38.

 3. John E. Hartley, ‘צוה’, TWOT 757.

 4. Wenham, ‘Sanctuary Symbolism in the Garden of Eden Story’, 19-25; Wenham, Genesis 1-15, 76; Edward J. Young, Genesis 3: A Devotional & Expository Study (London,: Banner of Truth Trust, 1966), 74.

 5.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회막에서 시무하는 것과 관련해서 ‘아바드’(עָבַד, `äbad) 는 민 3:7-8; 4:23, 30, 47; 8:11, 19 등에, ‘샤마르’(שָׁמַר, šämar)는 민 1:53; 3:7, 8, 32; 8:26; 18:3 등에 사용이 되었다.

 6. 계 22:3‘라트류오오’(latreu,w, latreuö)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제사장이 종교적 봉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7. 히브리어 ‘샤마’(שָׁמַע, šäma`)는 ‘듣다’(창 3:10; 27:6; 사 1:6) 외에도 ‘순종하다’(창 22:18; 출 24:7)를 뜻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순종해야 한다.

 8. Lange, 232.

 9. 롬 7:11창 3:13의 사단의 미혹과 창 2:17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범할 때 당하게 될 죽음의 주제를 하나로 융합하여 바울 자신의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은 복합동사인 ‘에크사파타오오’(evxapata,w, exapataö, ‘미혹하다’)를 사용하여 고후 11:3딤전 2:14에서 시조의 타락을 그 시대의 상황에 적용하고 있다. 참조, Collins,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152, n.12.

 10. Mathews, Genesis 1-4:26, 242.

 11. Goldingay, 138.

 12. Mathews, Genesis 1-4:26, 244.

 13. ‘ארר’, TWOT.

 14. ‘흙을 먹을지니라’(창 3:14)는 뱀이 흙을 먹고 산다는 뜻이 아니라 원수들에게 비천한 굴욕의 상태에 빠지는 것을 가리킨다(참조, 시 72:9; 사 49:23; 미 7:17). Wenham, Genesis 1-15, 79. 저승에 내려가는 ‘이쉬타르’(Ishtar: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다산과 사랑과 전쟁의 신)의 신화 속에서 저주받은 백성은 ‘흙이 그들의 몫이 되고 진흙이 그들의 음식’이라고 기술되었다. SDABC 1:232.

 15. Flint, 43.

 16. Waltke and Yu, An Old Testament Theology: An Exegetical, Canonical, and Thematic Approach, 265.

 17. 기간의 경과에 대한 ‘야밈’(יָמִם, yämîm. יוֹם, yöm의 복수형, ‘날들’)의 용법은 창 40:4; 민 9:19, 20, 22를 참조하라.

 18. Kok, 156.

 19. 창 4:10에서 ‘아벨의 피’는 복수형(דְּמֵי אָחִיךָ, Dümê ´äHîkä, ‘네 아우의 피들’)인데, 히브리어에서 동물의 피는 언제나 단수(דָּם, Däm)이고, 인간의 경우에 자연적 상태에서는 ‘담’((דָּם, Däm)이지만 출혈 후에는 복수로 쓰인다. Waltke and O’Connor, An Introduction to Biblical Hebrew Syntax, 120. 참조, 왕하 9:26; 사 26:21.

 20. 의문사 ‘마’(מָה, , ‘무엇? 어떻게? 왜?’) 와 문장 처음의 ‘콜’(כֹּל, qôl, ‘소리’, ‘음성’)이 놀라움을 표시한다. 참조, GKC §146.1.b., §148.b.

 21. 피의 보복자는 가장 가까운 친척(보통 피살자의 아들)이 취해야 할 책임이었지만, 가장 가까운 친척이 피살자에 대한 의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거나 수행하고자 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다. 고의성이 없는 사고일 경우에 이스라엘은 도피성 제도를 두어서 살인자가 도망하여 목숨을 구하도록 했다. 참조: 민 35:12, 22-25; 신 19:4-7; 수 20:2-3, 5, 9.

 22. Reyburn, 116.

 23. 영어로 놋 땅(land of Nod)은 잠자는 장소를 뜻하기 때문에 TEV는 이 표현을 회피한다. 놋 땅(אֶרֶץ־נוֹד, ´erec-nôd)과 관련된 번역 문제는 다음을 참조하라. Ibid., 119.

 24. Wenham, Genesis 1-15, 109. 일곱이 갖는 완전성에 관해서는 시 12:7[6]; 79:12; 잠 6:31; 사 30:26을 참조하라.

 25. Joseph Blenkinsopp, ‘P and J in Genesis 1:1-11:26: An Alternative Hypothesis,’ Fortunate the Eyes That See: Essays in Honor of David Noel Freedman in Celebration of His Seventieth Birthday, ed. Astrid B. Beck et al(Grand Rapids, MI: Eerdmans, 1995)., 9; Mathews, Genesis 4:27-11:26, 334-335; Laurence A. Turner, Genesis, A New Biblical Commentary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44; Claus Westermann, Genesis: A Practical Commentary, Text and Interpretation (Grand Rapids, MI: Eerdmans, 1987), 44.

 26. Richard M. Davidson, ‘Flood, The,’ Baker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Bible, ed. Walter A. Elwell(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6), 262; Hamilton, The Book of Genesis: Chapters 1-17, 269; Carl Friedrich Keil and Franz Delitzsch, Pentateuch, trans., James Martin, vol. 1 (Grand Rapids, MI: Eerdmans, 1949), 136; E. A. Speiser, Genesis, Anchor Bible (Garden City: Doubleday & Co., 1964), 46.

 27. Sarna, 47.

 28. Rainer Albertz, ‘Das Motiv für Die Sintflut im Atramhasis-Epos’, Mythos im Alten Testament Und Seiner Umwelt: Festschrift für Hans-Peter Muller Zum 65. Geburtstag, ed. Armin Lange et al., Beihefte Zur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 mentliche Wissenschaft, 278 (Berlin; New York: Walter de Gruyter, 1999), 9; Richard J. Clifford, ‘Review of Mythos im Alten Testament Und Seiner Umwelt: Festschrift Für Hans-Peter Müller Zum 65. Geburtstag by Hans-Peter Muller’, Catholic Biblical Quarterly 62 (2000): 782; Hans P. Müller, ‘Das Motiv für Die Sintflut: Die Hermeneutische Funktion Des Mythos Und Seiner Analyse’,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97 (1985): 295-316.

 29. 창 6:17‘함맙불 마임’(הַמַּבּוּל מַיִם, hammabbûl mayim, 한글 성경에 ‘홍수’)을 흠정역은 ‘물들의 홍수(a flood of waters)’, NASB는 ‘물의 홍수(the flood of water)’, NIV는 ‘홍수의 물(floodwaters)’로 번역하고 있다. 두 번째 용어인 ‘마임’(מַיִם, mayim)을 게세니우스(Gesenius)는 후대의 주석(later gloss)으로 보는 반면에 데이빗슨(Davdison)과 반드스트라(Bandstra)는 각각 동격어(apposition)와 후수식어(post-modifier)로 보아 ‘홍수, 물들’이라고 번역한다. 참조, GKC §131k n2; Dav §29b; Bandstra, 368.

 30. 시 29편이 거짓예배와 참 경배자를 구별한 것처럼 계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도 거짓 예배와 참 예배의 구분을 창조주 경배로 구별하고 있다. 창세기 밖에서의 이러한 구별은 창세기의 홍수 심판의 주요 원인이 하나님 백성들(셋의 후예들)이 타락하여 우상숭배자가 된 것임을 암시한다. 말세의 고통의 주된 요인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이들을 가리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고 말한다(딤후 3:1-4 참조).

 31. Bernhard W. Anderson, ‘From Analysis to Synthesis: The Interpretation of Genesis 1-11’,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97 (1978): 23-39; Umberto Cassuto, A Commentary on the Book of Genesis: Part 2, from Noah to Abraham, Genesis Vi9-Xi32, trans., Israel Abrahams (Jerusalem: Magnes, 1964), 30-33; Robert E. Longacre, ‘The Discourse Structure of the Flood Narrative’, Annual Meeting Seminar Papers,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Missoula, MT: Scholars Press, 1976), 235-262; William H. Shea, ‘The Structure of the Genesis Flood Narrative and Its Implications’, Origins 6 (1979): 8-29; Gordon J. Wenham, ‘Coherence of the Flood Narrative’, Vetus Testamentum 28 (1978): 336-348.

 32. ‘케셰트’(תשֶׁקֶ, qešet)는 ‘활’‘무지개’를 모두 의미한다.

 33. ‘니눌타’는 수메르의 최고(最古)의 도시인 ‘닙푸르’(Nippur)의 신이며 ‘엔릴’(Enlil) 신의 아들인 ‘닌길수’(Ningirsu)와 일치되는데 그는 군사와 추수의 신으로 활과 화살, 낫과 검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수메르-바벨론 신화에서 ‘니눌타’는 전쟁과 사냥에서 앗시리아의 왕들을 보호하기 때문에 폰 소덴(Von Soden)은 니므롯을 이 신과 일치시켰다. Richard S. Hess, Studies in the Person al Names of Genesis 1-11 (Kevelaer: Verlag Butzon & Bercker, 1993), 74.

 34. 수메르어로 ‘아말 우투’(Amar Utu)는 ‘태양의 송아지(solar calf)’라는 뜻을 가진 폭풍의 신으로 바벨론의 수호신이다. 악카드인들의 창조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의 제 6, 제 7 토판에 의하면 신들의 회의에서 하늘과 땅, 신들과 인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왕적 존재로 그 모든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50가지의 이름을 ‘말둑’ 신에게 부여하였다. Benjamin R. Foster, ‘Epic of Creation (1.111): Enuma Elish’, The Context of Scripture: Canonical Compositions from the Biblical World, ed. William W. Hallo et al(New York: Brill, 1997)., 400-401.

 35. Sarna, 73. (2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