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영원한 복음 제4부 죄와 심판 제12장 창세기속의 심판사건들과 심판절차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창 3:14)는 심판의 이유가 행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저주를 받아’(אָרוּר, ´ärûr)는 ‘간교하니라’(עָרוּם, `ärûm)의 언어유희로12 ‘심히 좋았’던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근본적인 손상이 발생했음을 알려준다. 인류가 범죄 했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아닌 뱀과 땅을 저주하셨다. 인류는 결코 저주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인류는 구원의 대상이다. 히브리어 ‘아랄’(ררא, ´ärar, ‘저주하다’)은 권세자가 무능력하여 저항할 수 없게 하위자를 장애물로 둘러 가두는 것을 가리킨다. 창세기 3:14, 17의 저주는 ‘너는 여타의 동물들로부터 추방되었다/파문되었다’, ‘너 때문에 땅이 저주를 받아’ 인간에게 많은 소출을 내는 일이 금지되었다는 뜻이다.13 인간에게는 숨겨진 천상의 지식을 가진 뛰어난 존재인 것처럼 오만하게 하나님을 훼방하고 인간을 타락시킨 뱀은 배로 땅바닥을 기는 가장 미천한 존재가 되었다.14 인류에게는 해산과 노동의 수고가 부여되었고 결국 근본 된 흙으로 죽음을 통해 돌아가도록 하나님은 정하셨다. (200.2)
 창세기 3:15은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며, 교회에게는 최초로 선포된 복음, 곧 원복음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처녀잉태를 간접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여자를 속이고 인류를 넘어뜨린 바로 그 순간에 사단에게 절망의 근원이 될 저주를 내리셨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더욱 찬란히 빛나서 ‘의의 태양’(말 4:2)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광명한 시대로 온 인류를 인도하게 될 것인데, 그때까지 사단은 더욱 충만한 계시가 주어질 때까지 여자가 낳는 모든 아이를 위협 가능성을 지닌 인물로 보게 되었다.15 (201.1)
 창세기 3:15은 인류의 역사를 선악의 대쟁투의 관점에서 보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대쟁투를 보여주고 있으며 인류는 하나님 편과 사단 편으로 예리하게 구분될 수 밖에 없는 초자연적인 영적 전쟁에 개입되어 있다. 선과 악의 대쟁투는 조로아스터교가 말하는 선악의 영원한 이원론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선과 악 중 그 어느 것도 승리하지 못한다. 또한 이 세상의 악이 아무리 강하게 보일지라도 옛 스칸디나비아인들의 신학(Norse theology)처럼 악이 궁극적인 승리자라고 비관적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창세기 3:15의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 진정한 인간의 길, 하나님 편을 선택한 사람들이 사단을 궁극적으로 이길 것을 바라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다.16 (201.2)
 5) 집행과 완화조치
 창세기 3:22-24은 하나님의 심판 집행을 기술하고 있다.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아담과 하와의 추방을 ‘그’(וּה, hû) 로 한정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창 3:23). 남성명사로서 ‘그’의 정체는 아담이며 아담은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되어 그의 근본인 ‘땅’(הָאֲדָמָה, hä´ádämâ) 을 갈게 되었다(창 3:23. 비교, 창 3:19; 2:7). 결국 인간은 생명나무로부터 분리되어 땀 흘리는 수고를 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이 되어 에덴을 떠났다. (202.1)
 창세기 3:19-24 속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빛나고 있다. 아담은 창세기 3:15의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영생이 회복될 희망을 갖고 아내를 ‘하와’(חַוָּה, Hawwâ) 곧 ‘생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가죽옷은 최초의 동물 희생으로부터 온 것이며, 이것은 아담 부부의 벌거벗음을 가려주었을 뿐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바라보는 믿음을 통해 저들의 수치스러운 죄를 가려주었다(창 3:21 참조, 요 1:29; 사 61:10). (202.2)
 인류의 시조는 대속주가 되실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갖고 에덴으로부터 추방되었다. 에덴 추방의 비통한 그늘 속에서도 희망은 빛난다. 인간이 근본 된 토지를 ‘갈게’(עָבַד, `äbad, 창 3:23) 하신 것, 그룹 천사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에덴 동산 동편에 ‘두셔서’(שָׁכַן, šäkan)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שָׁמַר, šämar) 하신 것 등을 기술할 때 창세기는 성소제도에 사용된 주요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노동과 예배를 통해 인간의 회복을 위한 길이 인류에게 열렸다. (202.3)
 3. 가인과 아벨
 1) 은혜의 기간
 창세기 4:1에 에덴 밖에서 아담 부부는 가인과 아벨 형제를 갖게 되었다. 생명을 상실하는데 기여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된 하와는 첫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기억했다.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 4:1). 비록 인간이 생명나무를 상실하고 에덴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근본적인 축복을 거두어 가지 않으셨다(창 1:28). (203.1)
 ‘가인’(קַיִן, qayin)은 ‘얻음’을 뜻하는데, ‘아들’(בֵּן, Bën)이 아닌 ‘남자’(אִישׁ, ´îš) 를 얻었다고 한 하와의 말은 매우 의도적이다. ‘이쉬’(אִישׁ, ´îš, 남자)는 범죄 전의 유일한 남자였던 아담과 같은 존재(창 2:23, 24)인 새 아담을 얻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아우를 낳았을 때는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기대감은 상실되고 ‘호흡, 헛됨, 증발기체’를 의미하는 ‘아벨’(הֶבֶל, hebel)로 지을 만큼 죄악 세상에서 허무를 느꼈다(창 4:2). (203.2)
 ‘세월이 지난 후’(창 4:3)는 ‘날들의 끝’(מִקֵּץ יָמִים, miqqëc yämîm)이며 상당 기간의 경과를 뜻한다.17 노동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누렸던 부모로부터 창조와 타락, 구속의 경륜과 예배를 배우며 개인적인 신앙관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이들의 진정한 영적 상태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통해 드러나는 시험의 날이 왔다. (203.3)
 창세기 4:4-5에 하나님께서 제사자와 그의 제물을 받으시거나 거절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선물(מִנְחָה, minHâ, ‘선물’, ‘제물’)보다 예배자에게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자를 찾으신다(요 4:23, 24). 제물은 저들의 예배 정신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속죄의 피를 통한 죄 용서와 구원의 길을 오만하게 거절한다는 것을 가인의 농산물 제사는 나타냈다. 반면에 아벨의 동물 제사는 아벨이 속죄에 관한 영원한 진리를 겸손하게 수용한다는 것을 나타냈다(참조, 레 17:11; 히 9:22; 롬 5:9). 자신의 공로를 가납의 기초로 삼는 행함의 종교 창시자인 가인은 결국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선을 행하고 죄를 다스리라는 교훈에 걸려 넘어져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길, 악에 속하여 죄의 지배 아래로 떨어졌다(창 4:7). (204.1)
 2) 범죄
 이야기를 살펴보면 하나님과 가인의 대화가 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인은 하나님께 대답이 없고 아벨에게 한 말도 생략되어 있다. 모든 관계는 단절되고 형제 살해 실행을 향해 이야기는 급박하게 진행된다.18 (204.2)
 창세기 4:8은 가인의 형제 살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가인이 아벨에게 말하니라.’ 가인은 아벨을 기만하는 듣기 좋은 말이나 비난과 거짓 고소와 같은 추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아무에게도 제지당하지 않고 범죄를 은닉할 수 있는 장소를 가인은 찾았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에 의해 하나님의 참 백성이 순교 당하는 최초의 사건이 발생했다(비교, 마 23:35). 형제 살인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무서운 교훈이 빈 말이 아닌 진리라는 것을 타락의 도입자인 아담과 하와의 가슴 속에 고통스럽게 새겨주었다. (204.3)
 3) 조사
 하나님이 가인을 찾아오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대답했다(창 4:9).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 속에서 그는 거짓을 말하고 하나님이 인간 사회에 세워놓으신 윤리적 책임과 전적으로 무관한 태도를 취했다. (205.1)
 증인이 없는 완전 범죄에 대해서, 반성의 빛도 전혀 없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화인 맞은 양심의 죄인에 대해서 하나님은 스스로가 증인이 되셨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은 그의 행동에 대한 보이지 아니하는 증인이시다.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19 히브리어 표현법에 따르면 이 두 말은 기계적이고 냉정한 질문과 사건 진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과 감정이 배어있는 경악스러운 외침이다.20 (205.2)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접할 때마다 고통을 당하시며, 무죄한 자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피의 보복자’(גֹּאֵל הַדָּם, Gö´ël haDDäm 민 35:19-21)이시며, 공의를 세우시는 의인의 옹호자이시다. 외로운 순교자에게 하나님은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서 ‘고엘’(גֹּאֵל, Gö´ël)의 역할을 하신다.21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