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남아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사 11:16).
(165.2)
 선지자 이사야는 모세의 인도아래 있었던 과거의 출애굽과 미래의 출 바벨론 사이에 서 있다(도표를 참조하라). (165.3)
과거 현재 미래
이스라엘의 첫 탈출. 애굽에서 이사야가 예언함 이스라엘의 두 번째 탈출, 바벨론에서
시기: 모세의 인도로 시기: BC 700년 경 시기: BC 536년 스룹바벨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돌아올 때 성취됨.
(165.4)
 다윗가의 총독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신실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아(에 1:5) BC 536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실제로 이방 나라들 가운데 흩어진 것으로부터(에 1-2장) “두 번째” 신실한 남은 자들을 다시 부르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셨다. BC 536년과 이후 BC 457년,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이스라엘이 모인 것이 이사야 11:11-15 의 완전한 성취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분명히 옳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룹바벨은 다윗의 집에서 나온 총독이고 그런 의미에서 메시아의 표상이다. 이것이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있는 이스라엘의 탈출이 근본적으로 메시아적 모임에 대한 예언의 최초의 성취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오실 때에 이스라엘과 모든 열방으로부터 메시아를 믿는 모든 백성들이 종말론적으로 모일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한층 강력하게 해준다. (166.1)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유브라데 하수를 마르게”(사 11:15) 하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도 놀라운 역사적 성취를 보았다. 페르시아 장군 고레스는 BC 539년 갑작스러운 바벨론의 멸망을 초래하기 위해 유프라테스 강의 물줄기를 도성 북쪽으로 돌려놓았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유프라테스 강물을 마르게 한다는 이사야의 예언의 더 깊은 의미는 마지막 때의 교회의 남은 자와 관련하여 신약의 묵시록에서 밝혀 졌다(계 16:12).8 (166.2)
 2. 이사야 11장의 기독론적—교회론적 성취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의 이중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으로 시작한다. 한 번은 여호와의 신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시는 이새의 줄기에서 오는 짝으로 비유되었다(1-3절). 두 번째 오심은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4절)이는 영광스러운 심판자로서다. 신약은 이러한 메시야의 두 번의 오심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다른 두 역사적 강림임을 밝혀준다. 오시는 분이 같은 메시아이기 때문에 근 본적으로 이 두 사건은 그리스도의 같은 주권 혹은 왕권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11:6-9에 묘사된 바와 같이 메시아 왕국의 평화와 의는 그리스도의 출현에 맞추어 성취된다.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은,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는 희생과 성령으로 말미암아—하나님과 동료, 인간 들과의 사이에 내적 평화를 가져온다(골 1:19-20; 엡 2:14-18). 두 번째 오심은 세상에 대한 그의 심판과 새로운 창조를 통하여 외적 평화와 우주적 의를 더하게 될 것이다(살후 1:5-10; 2:8; 계 21:1-5). (166.3)
 이스라엘의 모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은 깊이 하나님 중심적이고 메시아 중심적이다. 그 모임은 본질적으로 메시아 그 자신을 향한 것이고 이스라엘 땅을 향한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더 나아가 그 모임은 결코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모든 믿는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다(사 11:10). 이 하나님의 “안식처”로 모이는 메시아적 사건의 역사적 성취는 이미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시작되었다(마 12:30; 요 12:32; 히 4:14-16). (167.1)
 사도 바울은 메시아적 안식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경험되고 있다는 사실을 로마 교회에 확신시키기 위하여(롬 15:8, 9, 12) 이사야 11:1, 10의 핵심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사야 11:10을 의심할 여지없이 기독론적—교회론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이사야가 예언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민족적—정치적 나라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남은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남은 자들이 그 아래 모여들어야 하는 “군기” 이다. 민족적 이스라엘과 이방인 가운데서 나온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의 우물에서 나온 샘물”을 메시아적 기쁨으로 마시고 있다(사 12:3; 요 7:38, 39; 15:11). (167.2)
 3. 이사야 11장의 묵시론적 완성
 흩어진 이스라엘이 다시 모이는 것에 관한 이사야 예언의 가장 깊은 의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묵시적인 것이다. 오직 신실한 남은 자들이 낙원에 다시 회복 될 때에 모든 이스라엘의 회집은 완성될 것이다. 오직 모든 악인들이 메시아의 의로 심판을 받을 때에만(사 11:4),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는 이사야의 약속은 완전히 실현될 것이다. 이 우주적 조망은 “구약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부분”(E. Sellin)이라고 인정되면서 소위 이사야 묵시록이라고 불리는 이사야 24-27장에서 확대되어 있다. 이 묵시론적 문단은 이스라엘을 그의 영원한 왕국으로 이스라엘의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에서 절정을 이룬다. (167.3)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일일이 모으시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을 울려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파멸케 된 자와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가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사 27:12-13, 강조 첨가).
(168.1)
 이스라엘의 최후의 남은 자는 민족적 집단이나 정치적인 실체가 아니라 종교적인 남은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의 목적은 이스라엘 사람 각자를 모으기 위한 것이고 그 결과 모든 이스라엘이 신령과 진정으로 진리와 모든 압박에서 벗어난 영원한 자유로 그의 성전에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될 것이다. (168.2)
 그리스도와 신약의 기자들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있을 그와 같은 이스라엘의 묵시적 회집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재림을 그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는 그의 사명의 마지막 추수로 보았다(요 12:24, 32; 14:1-3). 그는 그가 이스라엘과 지상의 열방을 심판하기 위하여 권능과 위대한 영광중에 돌아오신다고 선포하셨다. 그 심판은 그들의 죄를 인하여 죽으신 그의 메시아적 사명을 믿느냐 아니면 거절했느냐에 관한 것이다(요 5:22-24). 그는 그들 모두를 자기 친 백성과의 관계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마 25:31-46). 그가 돌아올 때,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마 24:31)실 것이다. (168.3)
 그리스도는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그의 택하신 자들”을 언급하셨다. 이 메시아적 이스라엘은 중동이 아니라 “하늘 이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그에게로 모여들 것이다(요 14:2, 3; 살전 4:16, 17 비교). 이것이 이사야의 모임 약속에 대한 그리스도의 마지막 적용이다(마 8:11, 12과 비교). (168.4)
 4. 이사야 11:11-15에 대한 세대주의 해석
 히브리 그리스도인인 칵(Arthur W. Kac)은 1948년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창설이 이사야 예언의 초기 혹은 “예비적” 성취라는 이론을 옹호하였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한 독립 주권 국가”9로 재건하기 위하여 열방으로부터 그의 고토로 “두 번째” 모으셨다(사 11:11)고 하였다. 그러면 칵은 무엇을 첫 번째 이스라엘의 회집으로 보았는가?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모음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 머문 것은 “약 400년간 자발적인 것이었기”(그러나 창 15:13-16을 보라) 때문이라는 것이 다. 칵은 다음과 같이 확언하였다. “유대인들의 첫 번째 흩어짐은 바벨론 포로로 이루어졌고 첫 번째 귀환은 바벨론 유수 끝에 발생하였다. 위에 인용된 구절[사 11:11]은 두 번째 회집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그것은 두 번째 흩어짐을 의미한다.”10 심지어 그는 회복의 “약속은 바벨론 포로가 끝난 이후∙∙∙ 결코 성취되지 않았다” 11고 하였다. 결국, 칵은 이사야 11:11 의 사건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정리하였다. (169.1)
이사야가 미래에 있을 두 모임을 예언하다 첫 번째: 바벨론으로부터의 이스라엘 모임 모든 나라로부터의 두 번째 모임
BC 700년 경 BC 537년 이후에 성취 AD 1948년 이후 성취
(169.2)
 칵은 바벨론 포로 이후의 기간에는 이사야의 예언에 대한 어떤 성취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그는 모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바벨론 포로가 끝난 이후에는 전혀 성취되지 않았다”고 단정적으로 진술하였다. 그러나 그는 “첫 번째 귀환은 바벨론 유수 끝에 발생하였다”고 인정하였다. 이스라엘의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이 비록 부분적이지만 이사야의 모임 예언에 대한 진실한 성취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두 번(two times)” 모으시겠다고 하지 않고 두 번째에 모으시겠다고 예언하였다. 물론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첫 번째 모임은 이사야의 과거에 이미 성취되었다는 것이다(사 11:16 참조). 칵의 주장에서 근본적인 역사적 주석의 부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는 스가랴 8장의 예언이 “바벨론 포로들의 모임이 이미 발생한” 후에 이루어진 것이며, 결국 그것은 “또 다른 회복을 의미한다”12고 언급한 데서 발견된다. 칵은 스가랴의 예언은 BC 518년에 있었고(슥 7:1), 그것은 이후 BC 457년 에스라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의 추가 바벨론 귀환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스가랴가 예언한 회복이었다. (169.3)
 그러나 좀 더 심각한 것은 칵이 이전 세대로부터 새 세대로 넘어가는 구약 예언을 해석하는 신약의 근본적인 원칙을 범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이스라엘의 본질과 그 모든 종말론적 성취를 돌이킬 수 없도록 변화시켰다(제7장 참조). (1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