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제 2부—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과 일요일 제10장—서양 중세 교회의 안식일과 주의날
 일요일의 준수 방식을 위해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에 호소하는 일은 갈수록 더 당연시되고 일반화되었다.「알레마니의 법」(Laws 0Mhe Alemani. 925)을 보면 인간의 법과 하나님의 법의 이름으로 일요일의 신체적인 노동을 금지하고있다.58 바바리아 법률(Bavarian Laws)은 최초로 직접 십계명에 근거하여 일요일 준수를 가르쳤다. 일요일에는 밭에서 곡식을 추수해도 안되고 배나 4륜 마차로 여행해서도 안되었다. 하나님께서 “너나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네 소나 나귀나 네 수하의 누구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9 교황 유게니우스 2세(Eugene D)가 주재한 826년의 로마 공회의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그 사이의 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사람들이 일요일에 하나님의말씀을 잊고 세속 활동에 종사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을 위협해서라도 일요일을 지키게해야 한다고 결정했다.60 (194.4)
 「하늘에서 온 편지」(The Letter from Heaven)는 당시에 교회의 그 어떤 규정들 못지 않게 일요일의 엄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하늘의 천사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직접 자신의 피를 찍어 황금 문자로 기록했다고 하는 이 편지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일요일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주일에는 법정에 앉아 있지 말고 급하지 않는 사건으로 재판하지 말며 사냥이나 오락 경기를 하지 말라. 젖소의 우유를 짜는 일도 하지 말라.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라. 너의 소에게 일시키지 말라. 옷 세탁이나 세발이나 이발을 하지 말리一 채소밭에서 채소를 거두지도 말고 주일을 성심껏 지키라.”61 이 편지에 따르면 일요일은 경건한 목적에만 사용되어야 했다. 교회에 출석하고 병든 자를 방문하고 근심하는 자를 위로하고 이웃과 화목하는 일을 위해 사용해야한다. 그리고 일요일을 범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적인 재앙들과. 초자연적인 재앙들이 내리게 되어있다. 이 모든 규정들은 구약성경의 안식일 계명에 기초한 것이었다.62 그런데 중요한 것은「하늘에서 온 편지」같이 일요일 범법자들에 대해 하늘의 재앙들을 경고하는 이야기들이 계속적으로 늘어 갔다는 것이다. (194.5)
 일요일에 대한 찬양도 점점 더 깊어지고 강화되었다. 라이케나우(Raichenau) 수도원의 창설자인 피르민(Pirmin)은 일요일을 구속사의 모든 중요한 사건들에 연결시켰다. 피르민의 주장에 따르면 “주일은 최초로 창조된 날이다. 이 날이 창조되었을 때 어둠이 물러났고 빛이 비쳤다. 세계의 원소들과 천사들이 이 날에 창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날도 일요일이다. 그들이 마치 침례를 받듯이 홍해를 건넜다. 만나가 처음으로 내린 날도 일요일이었다. 그리스도가 부활한 날도 그 날이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내린 날도 그날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날을 주일로 부르면서 모든 세속의 일을 그날에 삼가하고 하나님의 일에 우리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다.”63 (195.1)
 안식일을 준수 방식으로 일요일을 준수하는 운동은 아일랜드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아일랜드에는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자연스럽게 일요일을 준수하는 방식에도 반영되었다. 아일랜드 교회의 일요일 성수에 대한 이상은 그 교회의 일요일 법인「카인 돔나이그」(Cain Domnaig)에 잘 나타나있다. 이 문건에는 일요일 준수에 관한 “그리스도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편지는 일요일의 성수를 경멸하는 자들에대한 초자연적인 형벌들이 소개되고 있다.64 일요일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명령 때문만으로 거룩히 지켜져야 하는 날이 아니라 그 날에 초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온갖 놀라운 일들 때문에도 거룩히 지켜야 하는 날로 나타나고 있다. 이날에 금지된 목록을 보면 유대인들의 안식일 금지 규정들을 회상케 된다. 일요일에 금지된 목록에는 “논쟁, 재판소송이나집회, 투쟁, 흥정, 말몰이, 마루청소, 수염깎기, 빨래, 목욕, 곡식기, 요리, 우유 휘젓기, 털실뜨기, 간음, 자기 구역 너머로 여행하기, 달리기 경주, 창던지기, 활쏘기. 말타기, 수영, 음식 끓이기, 땔나무 쪼개기, 물놀이 가기, 그 밖의 나쁜 일들”이다.65 (195.2)
 그러나 일요일의 안식일화 운동이 어디서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743년의 레스 에스틴네스 공회의(Council of Les Estinnes)는 일요일의 유대교화 의도에 강력히 반대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문자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은 부정직과 협잡과 거짓 맹세와 신성 모독과 그 밖의 모든 불법의 일들을 멀리하는 것이다.”66 (195.3)
 이같은 태도는 747년의 클로브소어 공회의(Council of Cloveshore)에서도 나타났다.67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프랑크 왕국의 지도자들도「하늘에서 온 편지」의 파급에 대해 적대감을 나타냈다.「일반적인 교훈」(Admonitio generalis, 789)에서는「하늘에서 온 편지」를 “가장 나쁘고 가장 거짓된 것이며 이 글이 많은 사람을 과도로 오도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믿지 말고 읽지 말고 오히려 불태워 마땅하다”고 하였다.68 이 편지는 745년의 로마 공회의 에서도 정죄 되었다.69 (196.1)
 일요일의 엄격한 준수를 위한 민간 정부의 노력
 카롤링가 왕조의 프랑크 통치자들은 일요일 준수의 열렬한 옹호자들이었다. 단구왕 피핑(Pepin the Short)과 샤를르마뉴(Charlemagne)를 위시한 그의 후계자들이 일요일 준수의 강화에 주력했다. 공교롭게도「하늘에서 온 편지」를 정죄한「일반적인 교훈」은 일요일 성수주의의 승리를 나타낸 것이었다. 그 문서는 제 81조에서 “우리는 주님이 그의 법에서 가르치신 것을 명령한다. 그 날에는 남다른 기억력의 소유자이셨던 나의 선친께서 그의 공회의의 칙령에서 말씀하셨듯이 아무 육체적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밭에서도 일하지 말고 포도원에서도 일하지 말고 밭도 갈지 말며 곡식을 추수하지도 말며 건초를 만들지 말고, 울타리를 만들지 말고, 나무를 베어 개간하지 말라. 도로의 돌을 깨지 말고 집을 짓거나 정원 가꾸는 일을 하지 말라. 단지 세가지 일이 허용된다. 전쟁에 나가는 일, 음식물을 나르는 일, 갑작스러운 일로 시체를 공동묘지로 옮기는 일이다. 여자들은 털실짜기, 옷 감자르기, 바느질, 수놓는 일 등을 하지 말고 양털을 빗질하기, 삼을 방망이질하는 것, 공개적으로 빨래하는 것, 양털을 깎는 일을 하지 말라. 갖가지 모양으로 주일을 존귀하게 해야한다. 모두 교회로 가서 미사에 참가하고 하나님께 그의 모든 축복을 감사하게 해야한다.”70 (196.2)
 사를르마뉴의 대리인들인 “미시 도미니치”(Missi dominici:순찰사. 巡察使)도 지방을 순행할 때 그 지역의 주민들이 일요일을 잘 지키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황제로부터 지시를 받았다.71 813년에는 아를스(Arles), 라임스(Reims), 마인츠(Maing), 차론 수르 사온네(Chalon Sar Saone), 투르(Tours)등 5개지역에서 개혁 공회의를 개최하여 일요일의 신체 노동 금지 규정을 반복하여 강조하였으며 특히 일요일에 공적으로 시장(Public Market)을 여는 일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장날이기 때문에 교회 출석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72 (196.3)
 일요일 성수에 대한 열성은 새로 개종한 통치자들에게서도 나타났다. 항가리 국왕 스테판은 1016년에 자신의 왕국을 기독교화 하기로 작정하고 일요일 법을 반포하였다. “만약 성직자와 귀족,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일요일에 일하다가 발각되면 일하지 못하도록 그 사람들을 현장에서 쫓아내라. 소를 가지고 일하다가 발각되면 그 소를 빼앗아서 사람들에게 주어 잡아먹게 하라. 말을 가지고 일하다가 발각되면 말을 압수하라. 주인은 황소를 주고 말을 찾아갈 수 있고 그 황소는 백성에게 주어 잡아먹게 할 것이다. 연장을 가지고 일하다가 발각되면 연장과 의복들을 압수하라. 그 사람들에게 매를 때린 다음에 연장들과의 복을 되돌려 주라.”73 (196.4)
 일요일로 안식일을 대신하게 함
 카롤링 왕조 시대에 나온 안식일에 대한 문헌들은 그 전 시대의 안식일관과 여러가지로 비교가 된다. 또 이시대의 대표적인 일요일 엄수 문헌들은 라바누스 마우루스의「성직자의 교육」(Education of the Cleigy)의 제 51장과 829년 파리 공회의(Th Synod of Paris)교회법 50조와 오를레앙스의 대오둘프(Theodulf of Orleans)의「교령집」(Capitula)과 부르게스의 루돌푸(Rudolf of Bourges)의「교령집」(Capitula) 제26장이다. (197.1)
 이 문서들은 모두 일요일의 기원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일요일의 빛의 창조, 그리스도의 부활, 성령강림, 만나의 선물 등을 추가로 강조하였다. 이 문서들은 일요일에 세속활동을 중단하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안식일보다 일요일의 우월함을 강조하였다. 일요일을 강조하기 위해 중세 초기에 활동했던 시벨레의 이시도레의 주장을 많이 의존하고 있지만 일요일에 세속활동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앞 시대에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현상은 이제 일요일이 확고하게 안식일을 대신하는 제도로 교회의 질서 안에 자리 매김을 하였다는 것이고 이 변화는 성서적인 명령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전통의 권위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197.2)
 일몰부터 일몰까지의 일요일 엄수
 카로링 왕조 기간에는 일몰부터 일몰까지 일요일을 성수하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졌다. 사를르마뉴의 종교 고문이었으며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아킬레이아의 총 주교가 주재한 프리울 공회의(The Synod of Frioul, 796또는 797)는 제 13조에서 주일은 일몰과 함께 시작한다고 못박았다.74 9세기 중엽에 개최된 루엔 공회의(Synod of Rouen)에서도 주일이 저녁부터 저녁까지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75 꼭같은 내용이 9세기 중엽의「공회의의 담화록」(Serma Synodolis)에 수록되있다. “성직자들은 일요일과 다른 성일들을 저녁부터 저녁까지 기념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76 앞에서 언급한 라바누스 마우루스의 설교에서도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저녁부터 저녁까지 지키라 명령하신 그대로 우리도 주일을 그렇게 기억하여 지키도록 하자. 안식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밭일이나 모든 업무를 멀리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헌신하자”고 하였다.77 (197.3)
 교회의 제도로 정착된 일요일
 12세기에 이르러 일요일은 제칠일을 대신하는 교회의 한 제도로 완전히 정립되었다. 일요일 안식은 일요일 일몰부터 다음날 일몰까지 계속되었다. 이날에 모든 세속적 활동은 교회법과 세속법에 의해 엄격히 규제되었다. (197.4)
 중세 교회의 일요일 신학은 13세기의 위대한 스콜라 신학자들의 저술에서 마지막으로 다듬어졌다. 합법적으로 제칠일 안식일을 제1일 일요일로 변경하기 위하여 신학자들은 제칠일을 유대의 예식제도로 규정하고 넷째 계명을 예식계명으로 규정하였다. 제칠일 안식일은 보편성이 없는 예식의 제도이고 예식의 계명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폐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떻게 도덕적인 십계명 안에 예식적인 명령인 넷째 계명이 포함될 수 있었느냐 하는 신학적인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할레스의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 1245사망)는 자연법을 끌어들였다. 자연법 안에서 안식일과 일요일의 공통성을 찾아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하여 다른 염려로부터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야 하지만 현세적인 필요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 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시간을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하여 떼어놓도록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제칠일을 지명하셨고 교회는 주님의 부활의 날을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필요를 위한 휴식의 명령은 자연의 명령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순종해야 하는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명령이라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이러한 보편성과 도덕성 때문에 도덕적인 율법인 십계명에 포함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인간의 휴식을 위해 아무 날이나 사용하면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특정한 날인 제칠일을 한정하여 구별하였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의 법은 보편적인 자연법이나 도덕적인 율법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구속력이 없는 유대의 율법이고 예식의 율법이라는 것이다.78 (198.1)
 넷째 계명에 대한 이 같은 새로운 해석은 제2 봉건시대의 기독교 사상에 일어난 일대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십자군 운동과 무역의 증대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새로운 평가, 그리고 교회와 제후 사이에 빚어진 긴 권력투쟁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로마법 연구 등에 의하여 중세인들의 인식 지평은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인간 이성에 의하여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려하는 새로운 학풍이 진작되었다. 이 “신학문”에 의하면 이 세계는 질서의 세계이며 제일 원인이신 하나님에 의해 지명된 제2 원인 곧 자연의 질서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계이다. 이 질서는 여러 가지 학문적인 노력으로 발견할 수 있는「렉스 아이테르나」(Lexaeterna) 곧 “영원한 법”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을 잘 활용하는 이교도나 모슬렘을 통해서도 인간의 도덕적 구조의 신적 질서를 알아낼 수 있다. 모든 도덕적 체계와 모든 사법적 조항들과 사회제도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자연법이다. 또 자연법은 십계명의 핵심이며 안식일 계명의 핵심이다.79 이같은 해석에 따르면 일요일은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해야 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의무를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날이다. 스콜라 철학자들에 의하면 일요일은 이렇게 순수하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교회 제도로 수립되었다는 것이다. (198.2)
 일요일에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 지는 교회가 결정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진술했다. “새 법에서는 일요일의 준수가 안식일의 준수를 대신 한다. 율법의 교훈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결정과 그리스도인들의 관습에 의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관습은 앞으로 구약의 안식일 계명의 관습처럼 되지는 않는다 일요일의 노동 금지는 안식일의 노동금지 처럼 엄격하지 않다. 안식일에 금지된 노동들 중에는 일요일에 허용되는 것들도 있다. 예컨대 음식을 준비하는 것 같은 일들이 그렇다. 심지어 일요일에 금지된 일들에 대해서도 필요의 이성에 의한 면제가 옛 법에서 보다는 새 법에서 더 쉽다. 이성이 진리의 선포에 속하고 있기 때문에 세밀한 어떤 사항도 이성적인 배려에서 도외시 될 수 없다. 절대적이라고 간주되었던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의 상황에 따라 재고 될 수 있다.”80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