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G. 화잇의 모든 저서 가운데 그리스도의 인성을 타락 전 아담의 인성과 같이 취급한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반대로 예수께서 아담의 죄와 타락이 시작된 4000년 후의 아담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확정한 단언들이 많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타락한 상태에 있는 우리의 육신 곧 사도 바울이 표현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다. (72.3)
타락한 상태의 인간의 본성
엘렌 G. 화잇은 예수님의 본질과 우리 사이에 유사성을 강조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다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타락한 상태’(fallen state), ‘죄로 퇴화되고 손상받은’(degenerated and marred by sin) ‘연약함’(weakness)과 ‘허약성’(infirmities)을 지닌 본성을 취하셨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녀는 이런 표현들을 예수께서 취하신 인성을 묘사하는 데 반복해서 사용하였다. (72.4)
엘렌 G. 화잇이 예수께서 취하신 육신을 묘사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은 사도 바울에게 빌려온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 KJV)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언급함으로 그것을 보충한다. “그(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셨을 뿐 아니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다.”20(72.5)
또 다른 진술 가운데 빌립보서 2장 7절을 사용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그는 또한 로마서 8장 3절을 사용한다. “그는 스스로 어떤 명성도 구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다.”21(73.1)
엘렌 G. 화잇은 자주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인용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그녀는 이것을 “온 세상의 죄를 위한”(요일 2:2) 대치물로서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그의 공생애의 시작과 광야의 시험의 기간과 그의 온 생애 곧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신”(벧전 2:24) 그리스도의 참된 본성을 묘사하는 데 연결시키고 있다. (73.2)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도우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을 그때에 존재 했던 인류의 죄들과 유약성을 지닌 몸을 가지고 계셨다. ∙∙∙ 타락한 인류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인류가 처하여 있던 그 위치에 이르러야만 하였다. 주님은 인성을 쓰셨으며 인간의 유약성과 타락한 상태를 취하셨다. 죄를 알지 못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 인간적인 비애의 가장 깊은 맛을 보시기 위하여 당신 스스로 굴욕을 당하심으로 인간에게 이를 자격을 얻으셨고 인간을 죄 가운데 빠지게 한 타락의 상태에서 건질 수 있게 되셨다.”22(73.3)
엘렌 G. 화잇은 이 문제처럼 심각하고 미묘한 주제에 관해서 이중적인 의미없이 매우 분명한 언어를 사용한다. 타락한 인성에 그리스도께서 참여하신 사실이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될 수 없다. (73.4)
“당신의 왕관을 벗으시고 그분은 겸손하게 타락한 인간의 수준에까지 내려오셨다.”23“그리스도의 겸손을 생각해 보라. 그는 당신 스스로 타락하고 고통 받는 인성을 취하셨고 죄로 타락하고 더럽혀진 인간의 본성을 취하셨다.”24 더 나아가서, “그는 자신을 낮추시고 당신 위에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을 취하셨다.”25“이것은 유한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26(73.5)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간의 연약함을 짊어지셨다. 오직 이렇게 하심으로써만 가장 깊은 타락의 밑바닥에서 사람을 구원해 낼 수 있었다.”27(73.6)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예수께서 참여하신 사실에 관하여 가능한 어떤 오해도 피하기 위하여 엘렌 G. 화잇은 자주 “떠맡다 또는 취하다”는 뜻을 사용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으며, 사람이 굴복한 모든 시험에 굴복하도록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28“그분께서는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모든 부담들이 입증되어야 하고 시련을 당해야 할 것으로 여기셨다.”29“그는 인성을 취하시고 그 연약함과 책임관과 시험을 떠맡으셨다.”30(74.1)
타락한 상태 가운데 충만하고도 완전히 참여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엘렌 G. 화잇은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의 모습과 성품을 스스로 취하셔야만 했던 것은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되기 위한 것이었으며 사단의 강력한 시험에 스스로 견디신 것은 시험받는 자들을 스스로 어떻게 도우실지 그 방법을 더 잘 알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된 것이었다.”31“이같이 자신을 낮추는 행동으로서만 그분은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당신의 축복을 부어주실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분은 우리로 당신의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셨다.”32(74.2)
이것이 또한 히브리서의 저자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가 저희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위치에 있기 위해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히 2:17)셨다. 그는 부가해서 말한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8). (74.3)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엘렌 G. 화잇은 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였다. “우리 구주께서 인간이 받을 모든 시험을 인간 본성으로 견디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33“그는 인간의 연약성이 무엇인지, 우리의 빈곤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우리의 강한 시험거리가 놓여있는지 경험으로 아신다.”(74.4)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34“그는 본성적인 인간의 경향이 얼마나 강한지 아신다.”35 그런 것들을 친히 경험하셨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지금 인간자녀들이 갖고 있는 시험거리들이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우리가 시험당하는 것처럼 한결 같이 시험을 당하셨다고 말한다.”36(75.1)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시험은 가공할 실체였다. ∙∙∙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굴복될 가능성이 없었다면, 그분은 인류가 시험 당한 것처럼 모든 면에서 시험을 당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75.2)
“그리스도의 시험과 그 시험 아래서의 그분의 고통은 그의 고상하고 무죄한 품성에 비례하였다. ∙∙∙ 그분은 도덕적 실패의 공포가 죽음의 공포와 같은 그 시간에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셨다. 겟세마네에서 영혼의 고뇌 중에 엎드렸을 때 그의 땀구멍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지면의 잔디를 적셨다. ∙∙∙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사단의 시험의 엄청난 힘을 아셨다.”37(75.3)
“여인에 의해 태어난 자 중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가혹하게 시험을 받은 자는 없었다.”38“그는 실제적으로 시험을 만나셨으며 인간 자녀의 어느 사람처럼 사단의 시험을 저항하셨다.”39 광야의 투쟁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어떤 인간일지라도 전혀 알 수 없는 괴로운 짐을 지게 되었다. ∙∙∙ 주께서 당하신 시험은 실제적인 유혹들이었으며 허위적인 것이 아니었다.”40 사도는 예수께서 겪으셔야 하셨던 시험들에 대하여 말할 때 이 점을 확실히 단언하였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4). (75.4)
동일한 편지에서 엘렌 G. 화잇은 예수께서 당면하셨던 시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성을 쓰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인간을 공격하는 모든 유혹들 곧 격렬하고 겉으로 보기에 압도적인 시험과 씨름하셨는데 그 시험들이란 식욕의 방종,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 일에 나타내는 주제넘은 모험심, 이 세상의 우상 숭배, 이생의 현혹적인 쾌락 때문에 영원한 축복을 희생시키는 것 등이다.”41(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