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영원한 복음 제3부 인 간 제7장 하나님의 형상
 1) 존재론적 해석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해석은 크게 존재론적(ontological )해석과 기능적(functional)해석으로 분류된다.5전통적인 존재론적 해석은 인간의 본성 속에서 하나님을 닮은 것을 주목한다. 인간은 이성과 의지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순결과 지혜를 사랑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과 조화된 삶을 살 수 있다. (134.2)
 창세기 1-2장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 인간과 ‘나와 너’(I-Thou)의 친밀한 관계를 맺으셨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길에 대한 교훈을 이해할 수 있는 지성을 가졌다(창 2:16-17). 그는 맡겨진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며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창의성과 신체적 능력과 의지력을 가졌다(창 2:15, 19).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배우자로 인하여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정서적 능력과 순수한 사랑과 순결한 도덕성과 사회성을 가졌다(창 2:22-25 )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제외하고는 에덴동산의 각종 나무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였다(창 2:16-17). 창세기 3:8-9에서 에덴동산을 거니시며 아담을 찾으신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인류의 시조가 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일상적인 교제를 나누는 영적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35.1)
 하나님의 형상은 도덕적(순결, 거룩, 창조주와의 교제)이고 자연적(지성, 상상력, 도덕적이고 심리학적인 자기지향성)이다.6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고, 순결한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데서 거룩하고 행복한 삶을 즐겼다. 타락 때문에 인간 속에 하나님의 형상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지만 여전히 성령의 도우심으로 중생과 칭의와 성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벧후 1:4). 우리는 특별한 축복으로 초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실 되게 살므로 범사에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된다(엡 4:15).7 (135.2)
 2) 기능적 해석
 (1) 하나님을 대표함
 현대 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적 측면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8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지니신 왕으로서 창조적인 명령을 통해 천지만물을 존재케 하시고, 질서를 세우셨다. 하나님이 그분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처럼 신들을 위해 노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9 인간에게 종속된 동물들과 세계를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창 1:26). 인간은 이 땅에서 왕적인 존재로 세움을 받은 것이다.10 (136.1)
 하나님을 대표하는 왕적 위치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고대 근동은 신을 대표하는 지위를 오직 왕에게만 국한 시켰지만, 성경은 그것을 모든 인간에게 적용하였다.11 창세기 5:1-3은 창조와 아담의 계보를 연결시킴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이 땅에 출생하는 후손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엄성이 손상 받지 않도록 대홍수 후에 인위적인 살상 행위가 금지되었다(창 9:6). (136.2)
 (2) 왕 같은 제사장
 인간은 에덴을 ‘경작하며’(עָבַד, `äbad‘지켰다’(שָׁמַר, šämar, 창 2:5, 15). 성경에서 ‘아바드’(עָבַד, `äbad, ‘섬기다’)와 ‘샤마르’(שָׁמַר, šämar, ‘지키다’)는 함께 사용될 때 제사장의 성전 봉사를 가리킨다(민 3:7-8; 8:25-26; 18:5-6; 대상 23:32; 겔 44:14).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왕 같은 제사장적 사역을 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에덴은 성소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성일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다(창 2:3, 8, 15; 3:8). 에덴 동산의 나무들은 후에 성소에 둔 일곱 가지를 가진 금 촛대로 형상화 되었다. 솔로몬 성전은 사방벽과 문짝에 나무와 꽃과 그룹 천사를 조각하여 에덴 동산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왕상 6:18, 29, 32, 35). 인간은 에덴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함에 따라 온 땅을 에덴처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소로 만들어야 했다. 이것이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문화명령의 의미이다(창 1:28 )요한계시록은 온 땅이 하나님의 성소가 되는 시대에 대한 기대로 책을 마감한다(계 22:1-5). (137.1)
 6. 하나님의 성령의 전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창조가 되었다. 창세기 2:7은 하나님이 흙으로 창조한 인간 속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한다. 창세기 6:3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현상과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욥기 33:4은 성령, 곧 ‘전능자의 기운’이 생명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욥기서의 빛 속에서 창세기 2:7을 바라보면 인간 속에 성령이 거하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땅을 경작하고, 짐승들을 다스리게 되었다(창 2:15, 19).12 하나님의 성령의 전으로서 인간의 거룩한 삶은 안식일의 예배에서 뿐 아니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가 내포하고 있는 일상적인 업무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출 20:9 ).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삶의 모든 영역을 주관하셔야 한다. (137.2)
 참고 문헌
 1. 싱클레어 퍼거슨, ‘하나님의 형상’, 아가페 신학사전(서울: 아가페, 2001), 1115.

 2. 생물의 종류대로의 창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민’(מִין, mîn)은 오경에서 창조기사(창 1:11, 12(2회), 21(2회), 24(2회), 25(3회)), 대홍수기사(창 6:20 <3회>; 7:14 <4회>), 레 11장신 14장의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 분류(레 11:14, 15, 16, 19, 22 <4회>, 29; 신 14:13, 14, 15, 18)에 등장하고, 오경 외에는 겔 47:10에서 한 번 더 등장한다. ‘민’은 자연과학에서 생물을 종으로 분류하는 것에 해당하지만 외형적으로 보이는 대로 나누고 있기 때문에 더 포괄적이다. 예를 들자면 근대 분류학에서 새와 벌은 다르게 분류되지만 성경은 날개 있는 생물을 하나로 묶는다(창 1:20-21). 두 가지 모두 적합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도 거절할 필요가 없다. Mark D. Futato, ‘מִין’, NIDOTTE 2:934.

 3. Waltke and Yu, 215-216. 히브리어 ‘첼렘’(צֶלֶם, celem) ‘형상’은 다음과 같이 17회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형상’ 4회(창 1:26, 27; 9:6), 이교의 신들을 대표하는데 6회(민 33:52; 왕하 11:18; 대하 23:17; 겔 7:20; 16:17; 암 5:26), 종양과 쥐를 물리적으로 대표하는데 3회(삼상 6:5, 11), 그림자와 꿈처럼 지나가는 형상에 대한 회화적 표현에 2회(시 39:6 [7]; 73:20), 벽화(겔 23:14), 아담의 형상으로서의 셋(창 5:3). 참조, Waltke and Yu, 215. 히브리어 ‘첼렘’에 해당하는 아람어 ‘츨렘’(צִלֵם,, cülëm)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 본 신상과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세운 금 신상을 언급하는 단 2, 3장에서만 17회가 사용이 되었다(단 2:31<2회>, 32, 34, 35; 3:1, 2, 3(2회), 5, 7, 10, 12, 14, 15, 18, 19).

 4. 헬라의 이원론적 사고의 영향 속에서 인간의 신체적인 면을 제외한 정신적인 면에서 ‘첼렘’(צֶלֶם, celem) ‘형상’‘드무트’(דְּמוּת, dümût) ‘모양’이 동일한 것인지의 여부와 그 의미에 대해 초기 교부시대로부터 많은 논의가 있었다. 교부시대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서로 별개의 것으로 분리한 인물로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96-212년경 활동: 하나님의 형상은 범죄 후에도 보존되었지만 하나님의 모습은 침례 때에 성령을 통해 회복된다고 주장함), 이레나리우스(Irenaeus, c. 130-200), 오리게네스(Origenes, c. 185-254: 창조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고귀함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모습의 성취는 최종적인 완성의 때에 이루어진다고 주장함)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는 삼위일체의 ‘자취’(베스티기아, Vestigia)인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기억, 지성, 의지에서 발견하였으며, 중세신학은 이분법을 유지하되 이성적 능력과 의지력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분법에 따라 은혜 없이도 선행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자리를 잡게 되어 카톨릭 신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이러한 사상은 후에 특별계시 없이도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는 자연신학이 발생할 여지를 주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분법을 거부했다.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형상과 모양을 동의어적 표현으로 보았고,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윤리적 측면인 진리의 거룩함과 의와 지식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본다. Millard 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2nd ed.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8), 520-523; 퍼거슨, 1116; Alister E. McGrath,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3rd ed. (Malden, MA: Blackwell Publishers Inc., 2001), 440-443.

 5. John C. Collins, Genesis 1-4: A Linguistic, Literary, and Theological Commentary (Phillipsburg, NJ: P&R Publishing Company, 2006), 61-67.

 6. W. T. Purkiser, Exploring Christian Holiness: The Biblical Foundations, vol. 1 (Kansas City, MS: Beacon Hill Press of Kansas City, 1983), 1:35.

 7. 골딩게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의 외모에까지 적용시킬 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문제가 가진 난제가 훨씬 크게 감소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John Goldingay, Old Testament Theology: Israels Gospel, vol. 1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3), 102-103.

 8.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적 측면을 최초로 주장한 학자는 H. Holzinger(1898)와 J. Hehn(1915)인데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현재는 D.J.A. Clines(1968), W.H. Schmidt(1964), W. Grosse(1981), E.M. Curtiss(1984), B. Ockinga(1984)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G.J. Wenham(1987), W. Brueggemann(1982), W.J. Dumbrell(1984), R.W. Klein(1979), W. Janzen(1982), J. Goldingay(1986), B.W. Anderson(1984), N.H. Snaith(1979-1980), W. Zimmerli(1967) 등이 긍정적 입장을 갖고 있다. 참조, Ian Hart, ‘Genesis 1:1-2:3 as a Prologue to the Book of Genesis’, Tyndale Bulletin 46, (1995): 317-318.

 9. Benjamin R. Foster, ‘Atra-Hasis (1.130)’, The Context of Scripture: Canonical Compositions from the Biblical World, ed. William W. Hallo et al., The Context of Scripture (Leiden, New York: Brill, 1997), 450-451; Thorkild Jacobsen, ‘The Eridu Genesis (1.158),’ The Context of Scripture: Canonical Compositions from the Biblical World, 513-514.

 10. Raymond C. Van Leuwen, ‘Form, Image’, NIDOTTE 4:645.

 11. Ibid., 643; Waltke and Yu, 218.

 12. 고대 근동에서 신들의 우상은 신들의 영이 사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믿어졌으며 우상이 세워지는 곳은 어디나 그 신이 지배하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일반적으로 왕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신을 위해 통치하기 때문에 신의 형상으로 여겼다. Hart, 318. (1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