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안식일
 안식일이란 뜻의 희랍어 “삽바톤”(sabbaton)은 사도행전의 희랍어 원문에 10회에 걸처 나오고 있다. 최초의 경우는 1:12절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단순히 예수님의 승천하신 감람산이 안식일에 가기에 알맞은 길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성경 중에서 “안식일에 가기에 알맞은 길”이란 표현이 나오는 유일한 경우이다. 서기관들이 만들어 놓은 규정에 따라 유대인이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쉬나(Mishna)에 의하면 2000큐빗의 거리이다(Mishna, Erubin 4:3-8).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포위하여 돌 때 법궤와 백성들의 간격이 2천 큐빗이었다(수 3:4). 레위족들이 사는 도시들의 성벽 바깥 2천 큐빗의 거리에 목장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식일에 이스라엘 백성이 밖으로 나와서 안되는 이스라엘의 진영은 성막으로부터 2000큐빗의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서기관들의 이같은 해석에 얽매었다는 증거는 없다. (105.3)
 예루살렘 총회(행 15:21)에서 야고보가 안식일을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사도행전에서 안식일이 언급된 나머지 사례들은 전부 바울의 선교 여행과 관련된 것들이다. 안식일은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행 13:13-52)과 빌립보(행 16:11-15)와 데살로니가(행 17:1-9)와 고린도(행 18:1-4)에 교회를 세우는 일과 관련되고 있다. 바울은 충성스러운 유대인(행 24:14; 28:17)으로서 안식일을 지켰다. 그는 단순히 가르치려는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다. 그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 같은 다른 날을 주간의 휴일로 지켜도 좋다고 가르쳤다는 암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105.4)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안식일 예배.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의 회당에서 그의 전도하고 가르치는 공공봉사를 시작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마 4:23; 9:35; 12:9; 13:54막 1:21, 39; 6:2; 눅 4:15, 16; 6:6; 13:10; 요 6:59; 18:20). 사도행전에 의하면 사도 바울과 그의 동료들도 이방 세계에서의 선교활동에서 꼭같은 방식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행 9:20; 13:5, 6, 14; 14:1; 17:1; 18:4, 19; 19:8).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의 오론테스 강에서 안수을 받은 직후에 구브로를 향해 항해하였다. 그리고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하였다”(행 13:5). 사도행전에는 흔하게 회당 설교와 안식일이 함께 연결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행 13:14; 16:13; 17:2; 18:4, 19d). 이러한 결합이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경우는 소아시아의 남서쪽 호수 지역안에 있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에 관해 언급한 경우였다(행 13:14). 이 도시에서는 유대인의 거류 집단이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곳에 도착한 다음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행 13:14). 경건한 유대인들이었던 그들은 회당의 예배에 참석하였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은 후에” 설교할 시간이 이르게 되면 대개의 경우 방문온 선교사들에게 회당 책임자가 “권할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106.1)
 바울이 이러한 요청에 응해 행한 설교들은 베드로가 행한 여러 설교들과 함께 초대교회가 선포한 기별을 재구성하는 토대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바울이 어떤 청중을 대상으로 전도했으며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회당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출생이나 개종에 의한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일신론적 신학과 높은 도덕적 원칙에 끌려 나온 경건한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바울은 연설할 때 흔히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고 하였다(행 13:16). 사도행전에서 여러차례 언급되고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유대교에 대하여 여러 형태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회당에 출석은 하고 있었지만 유대 율법의 멍에를 완전히 매었다는 표시인 할례를 아직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지칭한다. 바울의 전도 설교가 크게 성공을 거둔 무리들은 바로 이 이방인들이었다. 안식일의 회당 예배에 이들 이방인 예배자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로제(Lose)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팔래스탄 밖에서는 유대인들만 안식일을 지켰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이방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도 안식 일을 안식의 날로 지켰던 것이다.17 (106.2)
 바울 일행의 비시디아 안디옥의 안식일 회당 전도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예배와 전도를 마치고 바울 일행이 회당을 나가려고 하자 거기 있는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였다”(행 13:42). 그리고 예배가 “폐회한 이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을 좇았다”(행 13:43).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였다. (106.3)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행 13:44). 분명히 지난 안식일의 회당 예배에 참석했던 이방인들이 그들의 이웃들에게 말을 퍼뜨렸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생긴 것이다. 회당이 그 같은 군중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일부 유대인들은 그들의 회당인데도 그 곳에 들어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전도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유대인들로서는 화가 치미는 일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의 적대감은 크게 자극을 받았고 그리하여 그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군중에게 분명히 말하기를 이제 그들이 구원의 절실한 기회를 배척하고 있으므로 이제 자기들은 직접 이방인들을 향하여 기별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선언하였다(행 13:46). 그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개종하였고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행 13:49). (107.1)
 오래지 않아 그들은 그 지역에서 추방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이고니온 지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기가 믿었다”(행 14:1). 안식일이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으나 이러한 일이 일어난 날은 모두 안식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07.2)
 빌립보에서의 안식일.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에서 실라를 수행자로 대동하였다. 그들은 소아시아에서 활동하고 드로아로 왔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 하나가 그들을 향하여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고 호소하는 환상을 보았다. 그들을 이 환상을 소 아시아의 비좁은 경계를 벗어나서 열린 유럽 대륙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으로 해석하였다. 즉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니아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었더라”(16:10). 우리는 누가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도중에 갑자기 3인칭 단수에서 1인칭 복수 “우리가”로 바꾸어 누가 자신이 드로아에서 바울의 선교단에 합류하여 그들과 함께 빌립보에 동행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107.3)
 선교사들은 유럽으로부터의 전도 요청이 긴급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였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이 요청에 부응하였다. 그들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항하여 거기서 다시 마게도니아에 있는 빌립보의 항구인 네압볼리로 갔다. 그들은 빌립보에 도착하여 “마게도니아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인 이 성에서 수일을 유했다”(행 16:12). 안식일이 이르자 그들은 경건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모이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합류하였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갔다”(행 16:13)고 하였다. (107.4)
 바울이 유럽에서 얻은 최초의 회심자는 두아디라 성에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라하는 여자였다. 사도행전은 이 여자를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데(행 16:14) 따라서 루디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일 것이다. 그녀와 그의 가족과 그의 피 고용자와 하인들이 모두 침례를 받았으며 선교사들에게 자기 집에서 머물도록 강권하였다. 빌립보 4:2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아마 이 때에 같이 침례를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도 역시 안식일 예배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7.5)
 데살로니가에서의 세 안식일.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군사용으로 사용되는 큰 길인 비아 에그나티아를 따라 데살로니가로 갔는데 “거기에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행 17:1).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러 안식일에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고 언급하였다(눅 4:16). 그런데 꼭 같은 표현이 바울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갔다는 것이다(행 17:2). 세 안식일 동안 그는 데살로니가 사람들과 함께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였다”(행 17:2, 3). (108.1)
 사도행전 17:2절에 나오는 “삽바타”는 영어 성경 R.S.V에서는 “안식일들”이란 각주와 함께 3주간(Weeks)으로 번역되었다. “삽바타”가 의미와 형식 모두에서 복수로 사용되고 있는 신약성경 유일의 경우가 여기이다. 그러나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보다 더 길게 머물며 수고하였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기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빌립보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냈다”고 했다(빌 4:6). 따라서 사도행전 17:2절에서 나오는 세 안식일은 그가 실지로 회당에 가서 수고한 안식일의 숫자만을 뜻하는 것 같다. 바울의 이 같은 수고의 결과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행 17:4). 데살로니가전서는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대부분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확인하고 있다(살전 1:9). 바울과 이방인들의 첫 접촉은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이루어졌다. (108.2)
 뵈레아. 뵈레아에서의 바울의 선교 활동과 관련하여 직접 안식일이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그가 회당에 출입 한 언급들은 나타나고 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여러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게 되었다(행 17:12). (108.3)
 고린도에서의 안식일. 바울은 아데네에서 낙심되는 경험을 겪은 후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숙식할 장소와 돈벌이가 될 일거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집에서 숙식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로마의 클라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말미암아 이탈리아로부터 이 곳에 이주한 그들도 바울과 마찬가지로 장막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행 18:1-3). 그래서 바울은 주간에는 이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 회심자들인 이들과 함께 장막 만드는 일에 종사하고 매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18:4). (108.4)
 실라와 디모데가 재정을 마련하여 올라오자 바울은 본래의 선교 사업에 전업적으로 몰두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메시야로 강력하게 강조하였으므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로부터 상당한 반발이 야기되었다. 그래서 그는 회당을 떠나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강론을 계속했다(18:6, 7). 기독교로 회심한 사람들 중에는 “회당장” 그리스보가 있었다(18:8).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년 반 동안 체류하였다(18:11). (109.1)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에서 다시 에배소를 방문하였다. 기록을 보면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다”(19:8). 2년 동안 날마다 강론하였다(19:9, 10).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 (19:10). (109.2)
 바울은 비록 몇가지 이유 때문에 회당에서 철수했으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자신들을 회당 예배자들과 분리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울 자신이 기독교로 회심하기 이전에 “대제사장에게로 가서 만일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했다”(행 9:1, 2). 당시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 회당 그룹과 분리하여 나와 별도의 독립적인 회중을 구성하고 있지 않았다(22:1926:11을 참고하라).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불가불 유대 회당을 결별 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왔다. (109.3)
 안식일과 예루살렘 총회. 이방인 출신 기독교 회심자가 증가하기 시작하자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신앙 윤리를 기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교회에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그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먼저 참된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기초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유대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그 중에서도 바리새인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만약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유대 율법의 멍에를 전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방인의 회심자들을 향한 그들의 기별은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는 것이다. 할례가 강조된 것은 그것이 기록된 율법과 구원의 율법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유대 율법에 대한 순종의 표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생각이 달랐다. 유대 율법의 멍에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109.4)
 예루살렘 총회는 바로 이 문제를 논의하여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이 방인 교회의 대표들은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로 갔다(행 15:2). 상당한 토론이 진행된 이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성령에 의하여 이미 기초적인 원칙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성령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에게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평등한 능력으로 임하였으며 이로써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대등한 자리에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자마자 성령을 부어 그들의 심령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기독교회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을 이방인들에게 요구해서야 되겠느냐고 주장하였다(행 15:7-11). (1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