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생애와 그 시대
 요한계시록은 “그(하나님의) 종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계 1:1). (51.1)
 요한은 신약의 시대에 흔한 이름이 아니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이 예수님의 유명한 제자 요한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관련 문제와 해답편을 참조하라). 저녁 달빛을 받으며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설교를 경청하는 요한에 대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요한계시록을 펴기에 앞서 요한의 일생과 그 시대상에 있어서 주목되는 9 가지 사항들을 살펴 보기로 하자. (51.2)
 1.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본 것은 예수님이 군중틈에 끼어 서서 침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침례 주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을 때였다. 요한은 그때 침례 요한이 갑자기 말을 중단하고 흥분으로 떨리는 듯한 손짓으로 한 인상적인 낯선 객을 가리키며 전령관(傳令官)처럼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을 들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1 (51.3)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호칭 자체가 요한의 의식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성전에서는 날마다 특히 유월절에는 백성들의 죄를 인해 어린 양을 제물로 바쳤다. 요한은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29 회에 걸쳐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언급하였다. (51.4)
 2. 예수님이 사랑한 제자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당시 요한의 나이는 아직도 10대에 속했다. 당시 군중 속에 끼어 있던 요한의 옆에는 그의 가까운 친구이면서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있었다. 침례 요한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지적하자 요한과 안드레는 즉시 예수님을 만나기로 결심하였다(요 1:35-40). (51.5)
 예수님과 요한의 접촉은 그 후 여러 달에 걸쳐 간헐적으로 계속된 듯 싶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가나의 혼인 잔치에도 동석했던 것 같다(요 2:1~11).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는 대부분의 시간을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와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는 일로 보냈다. 고기를 잡는 일은 그들의 업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갈릴리 전도 여행을 시작하시고 젊은 네 친구들에게 어부의 일을 그만두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마 4:18-22)하셨을 때, 이 네 사람은 그물을 놓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51.6)
 예수님이 선택한 열 두 제자 중에, 이 넷중 셋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의 측근이 되었다. 예수님이 이 셋을 편애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이 셋이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51.7)
 이 셋 중에서도 특별히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로 알려지게 되었다(요 20:2; 21:7, 20). (52.1)
 3. 십자가 가까이
 요한은 예수님이 야이로의 어린 딸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을 때 그 방에 베드로 및 야고보와 함께 있었다(눅 8:49~56). 그는 변화산에 서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마 17:1~8).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고 계셨을 때에도 예수님 가까이 있었다(마 26:36~45). 폭도들이 들이닥쳐 다른 제자들이 모두 도망했을 때에도 오직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이 심문받으시는 집 마당으로 들어갔다(요 18:15). 베드로가 겁에 눌려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을 때에도(마 26:69~75) 요한이 홀로 곁에 머물렀다. 요한은 예수님이 운명하셨을 때에도 십자가 곁에 있었다(요 19:25~27). 부활의 일요일 아침에 베드로와 요한이 서로가 뒤질세라 달음질하여 빈 무덤에 도착했을 때에도 요한의 발이 한걸음 빨랐다(요 20:1~4). (52.2)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위탁한 대상도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했던 요한이었다. (52.3)
 4. “내가 다시 오리라”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요 13:33)고 하셨을 때 요한도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불안하였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깨닫지 못했고 그런 생각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또 “내가 가서∙∙∙다시 오리라”(요 14:3)는 약속도 이해하지 못했다. (52.4)
 그러나, 정확히 6 주일 후 요한은 드디어 예수님의 “내가 가서”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요한은 예수님이 마지막 작별을 고하셨을 때 다른 제자들과 함께 서서 예수님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라 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수님이 팔을 펴신 채 그들을 축복하시면서 공중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제자들은 고개를 뒤로 꺾고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52.5)
 그 때 구름이 예수님을 에워싸 하늘 높이 사라졌다. 요한과 다른 제자들이 불길한 예감과 슬픔에 젖어 있을 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의 옆에 나타나 근심에 쌓인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하고 묻고는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다(행 1:11). (52.6)
 이제야 요한은 “내가 가서∙∙∙다시 오리라”한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리라”(마 24 :30) 하신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의 말씀도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요한이 요한계시록의 첫 이상(묵시)에서 예수님을 다시 보기가 바쁘게 서둘러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계 1:7)라 기록했다고 해서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그는 요한계시록의 끝에서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였다(계 22:20). (52.7)
 5. 하나님 왕국에서 한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