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과 그의 형 안드레에게는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이 있었다(막 3:17). 틀림없이 시끄러운 토론꾼들이었을 것이다. 로마의 불의한 압정을 맹렬히 혐오하고 있던 이 젊은이들이 처음에 예수님께 매력을 느낀 것은 예수님이 장차 로마의 압정을 무너뜨릴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싸우고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고 싶었다. (52.8)
 그들은 어머니 살로메를 졸라 예수님께 새 왕국의 좌 · 우 정승의 자리를 그들에게 주도록 청을 드리게 하였다(마 20:21, 22). 다른 제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분노하였을까? “이 야심꾼들이 우리를 무엇으로 보고∙∙∙ ?”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52.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기적인 요청에서도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보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으셨다. 대신에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 20:22)고 물으셨다. (52.10)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게릴라 전투에 응할 열의가 있느냐고 물으시는 줄로 알고 “할 수 있나이다” 하고 힘있게 대답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잔”이 자기 회생의 잔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마 26:39).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시원스러운 겸양의 정신과 남자다운 너그러움과 고매한 인내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봉사하기를 바라고 계심을 깨닫지 못했다. 하늘 왕국의 자격은 전투에 대한 열의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고 동락하며 용서하며 필요하다면 죽기라도 하려는 자발성인 것이다(마 25:31~46; 10:38, 39). (53.1)
 6. 박해를 받은 힘있는 일꾼
 요한은 쾌히 그 잔을 마시겠다고 말했으며 예수님은 요한으로 하여금 그 잔을 마시게 하였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요한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게 되기까지 120 명의 제자의 한 사람으로 끼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였다(행 1:12-14; 2:1~4). 요한은 예루살렘 거리와 성전 마당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였다. 요한과 베드로는 체포되어 관원들과 장로들 앞에 호출되었다. 그들은 다시는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선전하지 말라는 엄명을 받고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20)고 대답했다. 관원들은 이 “학문없는 범인들이” 그렇듯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저들이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을 알게 되었다(행 4:13). (53.2)
 요한의 형 야고보는 후에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았다(행 12:1, 2). 그러나, 동생 요한은 더 오래 살아 그의 주님을 섬기고 길고도 다난한 일생을 통해 그 “잔을 마셨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잠정 기간을 보낸것 같다.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눅 21:20)였을 때 아니면 그보다 이른 어느 시기에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53.3)
 기원 후 70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다시 에워싸고 성전을 허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53.4)
 

어부들이 지금도 요한과 그의 친구들이 오래 전에 고기를 잡던 그런 방식으로 고기를 잡고 있다.
(53.5)
 한때 이스라엘의 수호를 위해 기꺼이 죽겠다고 호언했던 이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요한은 진실로 하나님의 왕국은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요 18:36). (54.1)
 우뢰의 아들 요한은 사랑의 사도 요한이 되었다. 그는 요한복음을 썼으며 그의 편지도 신약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 사랑의 주제가 그의 복음과 편지에 속속들이 스며 있다. 그는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다. 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 (54.2)
 요한은 등잔에 기름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사랑받던 이 제자는 그가 사랑했던 그 주님에 의해 변화되었다. (54.3)
 7. 훌륭한 가정 배경
 요한은 가족간의 친화력이 강하고 헌신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세베대는 그에게 노동의 공과를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두 아들을 따라오라고 부르셨을 때 세베대와 야고보와 요한은 고기 그물을 손질하느라고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살로메는 두아들을 위해 예수님께 특별히 청을 드린 것으로 미루어볼 때 판단력이 훌륭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같은 행위에서도 두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관심이 표명되고 있다. 사실 살로메는 두 아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를 작정했을 때 함께 따라나서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과 그 무리를 위해 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는 등 뒷바라지에 종사했던 것 같다(막 15:40; 마 27:56;마 4:21을 비교하라). (54.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의 노후를 부탁하셨을 때 살로메도 그 자리에 아들과 함께 있었다. 예수님은 요한이 자기 친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므로 그에게 당신 모친의 노후를 부탁하실 수 있었다. (54.5)
 야고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요한과 야고보는 떨어질 수 없는 동료로 함께 지냈다. 두 사람은 모두 우뢰의 아들이었으므로 틀림없이 서로 많이 다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둘은 하나같이 생활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은 후에 권위를 가지고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고 말할 수 있었다. (54.6)
 8. 로마 제국의 행로
 정확을 기할 수는 없지만 요한이 기원 후 10년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도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고 있던 때이다. 그후 기원후 14년에는 티베리우스(Tiberius)가 황제로 선출되었고, 기원 후 37년에는 반 미치광이 칼리굴라(Caligula)가, 다시 기원후 41년에는 좀 따분하면서도 실제적 이었던 클라우디우스(Claudius)가, 그리고 기원 후 54년에는 악명 높은 네로(Nero)가 차례로 황제의 위에 올랐다. (54.7)
 아직 20 대였던 네로 황제가 바울을 참수하였다. 그는 넓은 새 궁전을 지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로마 시에 불을 지른 자였다. 불길은 금방 사방으로 확산되어 로마의 14개 구역 중에 10 개 구역을 불태웠다. 집과 점포를 잃은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이성을 잃고 아우성쳤다. 네로는 이들을 무마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희생 양으로 삼아 그들을 체포하고 자신의 개인 운동장을 개방하여 공공의 위락을 위해 사용했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네로가 일부 그리스도인들에게 짐승 가죽을 씌워 사나운 개들의 먹이가 되게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어둔 밤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장대에 매달려 불타 죽었다. (54.8)
 네로는 기원 후 68년에 죽었다. 69년이 다 지나기 전에 제국 도처에서 일어난 군인들의 폭동으로 갈바(Galba), 오토(Otho), 비텔리우스(Vitellius), 베스파시우스(Vespasius) 등 4 명의 군인 황제가 등장했는데 앞의 셋은 단기간에 사라지고 네번째 베스파시우스만이 10여 년간 유능한 통치력을 행사했다. 베스파시우스는 황제가 되기에 앞서 “유대 전쟁”을 시작했다. 그가 기원 후 79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 티투스(Titus)가 그 위(位)를 계승하였는데 그는 그 전에 예루살렘 정복을 완성하고 “로마 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된 인물이다. 2년 후인 81년에 티투스의 형 도미티아누스(Domitianus)가 집권하였다. (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