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았는가? 또 여러 차례 요한계시록을 통독했는가? (56.1)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요한계시록을 통독한 사람들은 그 책의 선명한 묘사와 강렬한 약속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낱낱의 조각들을 묶어 하나의 통일된 이해를 갖지 못해 크게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56.2)
 첫 눈에, 아니 50 번을 훑어본다 해도 요한계시록은 많은 독자들에게 대단히 산만한 책이란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해 왔다면 필자가 요한계시록은 실로 대단히 아름답게 잘 구성된 책이라고 한다면 의아스러울 것이다. 사실상 요한계시록은 전체 성경 중에서도 그 부피의 책으로는 가장 잘 구성된 책이다. (56.3)
 요한계시록의 구성의 대해 소개하는 데 10여 페이지가 할애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은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는 노력이다. 15 분 이내에 여러분은 표면상으로 혼란스럽게 보이는 요한계시록에 질서를 제공해 주는 지적인 대칭적(對稱的) 모형을 알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우리는 이 책의 의미를 알아낼 가장 유력한 열쇠의 하나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보너스 같은 부수적 결과도 뒤따를 것이다. 즉 우리는 자주 반복되어온 질문인 “요한계시록 예언 중에 아직 성취 안 된 것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56.4)
 우리 앞에 있는 여러 가지 보상들을 생각하면서 몇 분 동안만 요한계시록의 구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56.5)
 시인(詩人)으로서의 선지자
 다니엘를 연구할 때 구약의 선지자들이 시인인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은 우리의 방식과는 다른 그들의 방식을 따라 시를 썼다. 그들은 대구(對句), 대비(對比), 아크로스틱 각((행의 첫자 또는 처음과 끝의 글자를 모아 일정한 어구를 만드는 일종의 유회시(遊戰詩:離合體)), 키아스무스(交义對句), 동음 이의(同音三義)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때론 그들은 사용하는 낱말의 수(數)를 사용함으로써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예컨데 다니엘 9장 24절에서는 두 마디 단어로 된 세 구절과 세 마디 단어로 된 세 구절이 의미있게 연결되어 있다. 문체에 대한 이해를 갖추게 되면 어려운 성경 구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56.6)
 선지자들이 시인들이었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전혀 없다. 시를 쓰는 것이 산문을 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우며 제대로 되기만 했다면 시가 산문보다는 더 매력적이다. 자신들의 기별의 중요성을 깊이 고려했던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기별의 표현에 각별히 고심했다. 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에게 기별의 영감을 허락하신 하나님도 그 기별의 전달을 도우셨다. 하나님이 오순절에 요한에게 방언의 선물을 주신 사실을 잊지 말자(행 1:12-14; 2:1-4). 그가 자신의 사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해서 전혀 놀라울 바 아니다. (56.7)
 요한계시록은 “메리에게 작은 양 한 마리가 있다”(Mary Had a Little Lamb)는 시 나 “세 마리의 눈먼 새앙쥐”(Three Blind Mice)와 같은 의미의 시가는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에이브라함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나 마르턴 루터 킹의 “내게 한 꿈이 있다”(I Have a Dream)식의 시이다. 요한계시록은 문학적 예술품이다. 요한계시록은 모형을 갖춘 웅변이다. (56.8)
 요한계시록은 질서와 우미(優美)를 갖추어 표현된 영감이다. (57.1)
 모티브로서의 수자(數字)
 요한계시록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7이란 수자의 반복 현상에 주목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 일곱 나팔, 일곱 재앙, 일곱 천사, 일곱 인(印)과 그 밖에 수없이 많은 숨겨진 일곱 수들이 있다. 여러분들이 직접 그 목록을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분명히 드러난 것부터 시작해서 표면상 가려져 있는 것까지 조사해 보는 것이 좋다. 셋, 넷, 열 둘의 수자도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의 예술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인(印)과 나팔은 세 개와 네 개의 그룹으로 구분되고 있다(6~11장을 보라). 3x4가 새예루살렘의 열 두(12) 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12 지파에 12,000을 곱하면 7장의 144, 000 명이 나온다. (57.2)
 앞으로 진행해 나가면서 각 구절과 찬송의 내적인 예술성과 요한계시록의 극적인 상징의 타당성을 눈여겨 보도록 하자.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문학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증거는 요한계시록 전체에 걸친 키아스무스(Chiasmus, 交义對句)적 구성 방식일 것이다. (57.3)
 키아스무스(交义對句)로서의 요한계시록6
 교차 대구법 곧 키아스무스라는 것은 관련된 주제의 세목을 이중적으로 기재하는 것인데 두번째 기재할 때는 첫번째 기재하던 순서의 역순으로 기재하는 것이다. 구식 스퀘어 댄스나 그랜드 마치에 부부가 춤추는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키아스무스적 오락은 지금도 재미 있다. 성경 시대에는 키아스무스적 문학 형식이 대단히 널리 보급되었었고 또 존중되었다. (57.4)
 만약 요한계시록 전체를 14장의 끝을 중심점으로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고, 또 이 반쪽을 여러 부분으로 다시 나눈다면 이 부분들을 마치 스퀘어 댄스를 추는 부부처럼 상호 관련을 가지면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여러 개의 쌍으로 배열할 수 있을 것이다(60, 61페이지의 도표를 보라). (57.5)
 요한계시록의 교차 대구법을 알아 보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서론 부분 즉 머리말과 결론 또는 발문(飯文)부터 시작하는 것이 제일 쉬운 길이다. 이 두 부분을 비교해 보면 각 부분에 나오는 여러 구(句)와 절들이 서로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57.6)
 이 유사성이 꼭 맹목적인 정확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57.7)
 

마르틴 루터 킹의 링컨 추모 연설에서 되풀이 되었던 “나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다”는 귀절은 이제 미국을 변화시킨 하나의 싯귀가 되었다. 성경 기자들도 탁월한 시적 요소들을 사용하였다.
(57.8)
서 언
(1:1~8)
서 론
결 어
(22:8~17)
결 론
예수의 증거 1:2
읽는 자는 복이 있다 1:3
보라, 그가 오신다 1:7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1:8
나 예수가 이 증거를 보냈다 22:16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22:12, 20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22:13
(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