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 부 왕의 인격체 (1:1-4:16) 1. 약속된 왕 예수 (1:1-2:23)
 그 주제들 중의 하나는 예수의 오심은 항상 백성들을 분열시키고 쟁투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의 생애, 가르침, 그리고 주장들에 마주칠 때 각 사람은 (1) 찬양과 환영, (2) 적의와 반대, 혹은 (3) 냉담한 무관심의 형태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60.2)
 2장에서 부각된 마태복음의 두 번째 주제는 왕 예수에 대한 이방인들의 영접과 숭배 대(對) 유대인의 배척이란 주제이다. 양자(兩者)가 다 역설적이다. 독자들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왕을 고대하고 환영하리라고 기대하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기록된 복음서가 이방인 박사들을 이처럼 호의적으로 묘사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60.3)
 사실, 신약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박사들은 호의적인 말로 묘사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2장에서 마태가 박사들을 제시한 것은 1장에서 그가 네 여인을 취급한 것만큼이나 놀라운 것이다. 유대인들은 마술사들과 점성술사들을 매춘부와 난봉꾼만큼이나 멸시했다. 그럼에도 마태는, 그들은 왕국으로 들어가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바깥에 버려둠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이 주제는 또한 그의 복음서, 즉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28:19)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끝나는 복음서 전체에 퍼져 있다. (60.4)
 2장의 그리스도에 대한 반응들과 관련된 마태복음의 마지막 주제는 “헤롯은 단순히 복음서의 악한(惡漢)이 아니다. 그는 범인(凡人, Everyman)이다”(Bruner, 1:51)라는 사상이다.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는 헤롯이 있다. “헤롯 근성(Herodism)”의 본질은 그가 그의 영역과 삶의 왕이었다는 것이며, 그는 그리스도나 다른 어떤 이로부터의 경쟁도 허용하지 않았다. 헤롯의 문제는 죄의 핵심 문제이다. (61.1)
 모든 죄인은 자기 자신의 왕, 자기 자신의 하나님이 되기를 갈망한다. 자기중심성이 죄의 중심에 서 있다. 이리하여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천국의 시민권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마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도 역시 굴복하여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실 때(16:21-28; 10:38, 39), 그의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그 주제를 한층 더 충만하게 전개시킬 것이다. (61.2)
 내(또는 네) 속에 있는 헤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무엇인가가 물러서서 길을 비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박든지, 아니면 우리가 그로 하여금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시든지 할 것이다. 결국, 왕 예수와 관련해서는 결코 중립 시대가 없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6:24). (61.3)
 ■ 말씀을 적용함
 1. 나는 마태복음 1장에서 네 여인들(마리아는 제외하고)의 이야기에서 내 개인적 생애를 위해 어떤 교훈들을 얻을 수 있을까? (61.4)
 2. 내가 예수 당시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종류의 왕을 원했을까? 왜 그렇게 했을까? 만일 내가 내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나는 내게 물질적 부(富)를 줄 수 있는 왕을 가장 원하는가, 아니면 나의 죄로부터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왕을 가장 원하는가? 어떻게 그 가치가 나의 일상 생활에서 표현되고 있는가? (61.5)
 3. 왕 예수에 대한 나의 개인적 반응은 무엇인가? 그것은 헤롯의 반응인가, 아니면 박사들의 반응인가? 아니면 나는 무관심을 통해서 나의 반응을 미루어 오고 있는가? (62.1)
 4. 나는 그리스도께 드릴 수 있는 어떤 “선물들”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나는 이러한 나의 예물을 바로 오늘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62.2)
 5. 나는 내 속에 참으로 “헤롯”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나는 그것에 관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62.3)
 6.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로 하여금 나사렛과 같은 장소에서 자라게 허락하셨다면(요 1:46), 왜 나는 가끔 나의 결점들을 나의 출생 장소 탓으로 돌리거나 나에게 유리한 조건들(advantages)이 없는 탓으로 돌리는가? (62.4)
 7. 나는 이런저런 사항을 증명하기 위하여 성경절들을 “순진하게”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마태의 족보에서 어떤 교훈들을 배울 수 있는가? 나는 족보로부터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62.5)
 ■ 말씀을 연찬함
 1. 「새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에서 마태복음 1:22, 23이사야 7:14을 비교하라. 「개정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이나 「새영어성경」(New English Bible)에서 그 동일한 구절들을 비교하라. 다른 현대 역본들에 있는 이사야 7:14의 번역과 그대의 발견들을 비교하라. 「새국제역」 완벽 성구사전(NIV Exhaustive Concordance)이나 스트롱의 완벽 성구사전(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에서 이사야 7:14처녀라는 단어의 히브리적 의미를 살펴보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은 이사야서와 마태복음에 있는 이 단어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어떻게 이 짧은 연구가 성경 번역상의 문제들에 그대가 더욱 더 민감하게 되도록 도울 수 있는가? 그것이 신약 기자들의 구약 단어 사용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62.6)
 2. 네 복음서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예수의 출생과 어린 시절들(30세에 이르기까지)을 제시한다. 각 복음서에서 그 이야기들을 읽으라. 그러고 나서 그대의 마태복음 노트의 깨끗한 페이지에 세로로 네 칸(한 복음서에 한 칸)을 만들라. 그 후에 각 복음서가 공헌하는 바의 개요를 각 칸에 적으라. 그대는 성경 기자들이 이처럼 엄청나게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양성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왜 그런가? (62.7)
 ■ 말씀의 추가 연구
 1. 전체적인 통찰을 위해서는 엘렌 G. 화잇, 시대의 소망, 19-92를 보라.

 2. 마태가 구약 인용문들을 사용한 것에 관한 정보를 위해서는 R. H. Gundry,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St. Matthew's Gospel을 보라.

 3. 마태의 족보와 누가의 족보 사이의 관계에 관한 정보를 더 얻으려면 F. D. Nichol, ed.,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5:721-722, 276-282와 D. A. Carson, “Matthew,” 8:63-65를 보라.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