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 부 왕의 인격체 (1:1-4:16) 1. 약속된 왕 예수 (1:1-2:23)
 신약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었다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한다. 베드로는 제일 첫 번째로 기록된 그리스도교 설교에서 이 사실을 강조했다(행 2:29-36). 바울은 예수를 “다웟의 혈통[난외주, 씨]에서”(롬 1:3; 딤후 2:8) 나신 분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마지막 말씀 바로 전의 말씀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계 22:16)이다. 그 외에도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특히 그의 봉사가 담고 있는 메시야적 의미를 인식한 자들에 의해 다윗의 자손으로 거듭거듭 불리고 있다(12:23; 15:22; 20:30, 31; 21:9, 15). (40.2)
 또한 마태에게 있어서는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조상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백성들을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2:1-3). 이와 같이 마태는 그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바로 그] 그리스도[메시야]”(1:1)에 대한 것임을 강조한다. 달리 말해서, 예수께서 다윗과 아브라함 혈통 모두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그는 메시야 역할을 하실 자격이 있으시다. 마태복음의 족보의 나머지 부분은 예수가 그와 같은 이중(二重)의 자손이 됨을 입증하고 있다. (40.3)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마태와 누가의 족보를 비교하도록 만든다. 가장 흥미로운 차이점들 중 하나는, 마태는 예수의 혈통을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에, 누가는 아담까지 곧장 추적해 올라가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차이가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마태가 주로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 쓰고 있는 반면에 누가(신약에서 유일한 이방인 저자)는 비유대인 청중들을 위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41.1)
 두 저자는 그들의 책을 전개해 나가면서 각기 다른 그들의 초점들을 크게 강조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마태는 예수를 구약 예언의 성취로서 거듭거듭 제시한다. 이런 강조는 누가복음에는 결여되어 있다. 반면에 누가는 선한 사마리아인(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용어상으로 서로 모순됨) 등과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엘리야가 시돈의 한 과부(유대인이 아니라)의 도움을 받고,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지만, “오로지”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을 엘리사가 고쳤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복음서의 기자이다(눅 10:30-37; 17:11-19; 4:24-27; 13:29 참고). (41.2)
 그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점은, 마태의 주 강조점이 유대인의 약속된 메시야-구주로서의 예수인 데 반해 누가의 중요한 초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구주로서의 예수이다. 이와 같이 누가는 예수의 족보를 아담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반면에, 마태는 아브라함까지만 거슬러 올라간다. (41.3)
 제1세기에 유대인들이 참화들을 겪을 때 파괴되었던 연구 기록들을 우리가 접할 수 없기 때문에 두 족보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들 중 많은 것들을 완벽하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풀어주는 해답은 없다. 반면에, 복음서들이 기록되던 그 당시에는 아마도 두 족보 모두를 입증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41.4)
 마태와 누가의 족보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한 두 가지 특별히 그럴듯한 설명들이 존재한다. 첫째는 마태는 요셉의 족보를 추적한 반면에, 누가는 마리아의 족보를 추적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요셉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유대인의 결혼 법규들에 명시되어 있는 규정들을 통하여 마리아의 아버지(헬리)의 법적인 아들이 되었다. (41.5)
 두 족보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한 두 번째 설명은, 두 족보 모두 요셉의 족보로서, 누가는 실제적인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말하고 있고, 마태는 양자됨을 통해 관계된 가계에 입적되었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요셉은 야곱의 아들도 될 수 있고 헬리의 아들도 될 수 있었다. (42.1)
 두 족보 사이의 불일치점들이 현대인들에게는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족보를 작성하는 규칙들을 보다 더 온전히 이해할 뿐 아니라 공식적인 가족의 족보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첫 세기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두 복음서 기자는 각기 자신의 요점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자료를 조심스럽게 전개해 나갔다. 두 기자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의 첫 독자들에게는 성공을 거두었다. (42.2)
 마태의 족보에 관하여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항은 그것을 전개하고 있는 마태의 예술적 솜씨이다. 예를 들어, 마태가 그의 자료들의 흐름을 요셉으로부터 “[그]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신 마리아에게로 대단히 부드럽게 이동시키는 16절의 정교한 이동을 주목해 보라. 이런 이동은 대단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기 때문이다(18, 23절). (42.3)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왜 마태가 요셉을 통하여 예수의 혈통을 전개해 나가는 것을 이처럼 중요시하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그 해답은 마태는 ... 엄격한 생물학적 혈통이 아니라 법적인 신분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었고 그의 가계를 상속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그가 그렇지 않다고 마태는 주장한다. 그는 성령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다”(Green, 42)고 시사한다. (42.4)
 마태의 예술적 솜씨와 방법에 관한 두 번째 측면은 그가 그의 족보를 세 벌의 “14대”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흥미있는 것은 세 벌의 “14대”는 각기 유대의 역사에서 중추적인 왕의 이름으로 끝나고 있다는 점이다. (42.5)
 첫째 부분은 다윗—유대 나라를 전성기로 끌어올린 왕—으로 끝난다. (42.6)
 둘째 부분은 여고니야—그 왕국을 상실한 왕—로 끝난다. (42.7)
 셋째 부분은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그 왕국을 회복하기로 되어 있는 왕—로 끝난다. (42.8)
 각기 14대로 구성된 세 그룹으로 배열한 것은 그 일람표를 훨씬 쉽게 암기하도록 만들려는 교수 방법임이 분명해 보인다. 암기의 용이성은 인쇄된 책들이 나타나기 이전의 시대에서는 대단히 중요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43.1)
 14라는 숫자 또한 암기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서 흥미롭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의 이름의 수치(數値)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모음이 없는 언어)로 다윗의 이름을 뜻하는 자음들은 D W D이다. 숫자를 나타내는 별도의 기호가 없었기 때문에 히브리어 문자들은 또한 수치(數値)를 가지고 있었다. D4를, W6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하여 D W D464를 나타내며, 모두 합하면 14가 된다. 이리하여 마태의 족보의 배열에서도 우리는 교사로서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성장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한 교수 요람으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43.2)
 마태의 족보 일람표에 관해서 우리가 주목할 마지막 사항은, 그것이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1:27)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43.3)
 명백한 성경적 사실은 이 구분들 중 적어도 하나에서 14대를 넘어서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구약의 족보들과 비교해 보면 8절에는 여호람(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시아, 요야스, 그리고 아마샤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왕하 8:24; 대상 3:11; 대하 22:1, 11; 24:27). 또한 11절에서 여호야김은 요아스와 여고니야(여호야긴으로도 알려짐) 사이에서 누락되었다(왕하 23:34; 24:6, 14, 15). 이렇게 삭제한 명백한 이유는 각 부분이 14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43.4)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마태가 족보의 세 부분의 각각에 모든 대수가 14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표현은 절대적 역사적 의미에서 가장 완전한 족보에 있는 모든 대(代)들이 아니라 (마태) 족보에 포함된 모든 대(代)들을 뜻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