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 부 왕의 인격체 (1:1-4:16) 1. 약속된 왕 예수 (1:1-2:23)
 다윗은 그 자신의 “워터게이트” 스캔들 조짐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보다 부드러운 방법을 버리고 술책을 써서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그의 주요 목적은 그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의 죄들을 더 많이 불어나게 했을 뿐이었다. (48.2)
 마침내 다윗은 우리아가 그 자신의 사형 선고장를 지니고 전쟁터로 되돌아가도록 하리라고 결정을 내렸다. 대장 요압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윗은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삼하 11:14)고 그에게 지시했다. 그렇게 된 후에야 요압은 승리를 위해 적군을 밀어 붙여야 할 것이었다. (48.3)
 그 계획이 잘 들어맞았다. 우리아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대대(大隊)의 많은 군인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16-24절). (48.4)
 이처럼 마태는 그의 펜을 움직여 그의 독자들의 마음에 이스라엘의 으뜸가는 왕의 간음뿐 아니라 그의 잔인한 은폐를 상기시켰다. 우리는 마태의 청중들이 그 족보에 실린 네 여성들에 의해 암시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그 역사-특히 여성들의 배경을 감안해 볼 때-는 예수의 족보를 가로지르면서 활활 타오르는 기별이었다. 네 여성 중 셋은 추잡한 성적인 죄악에 연루되어 있었고, 셋은 분명히 멸시받는 이방인이었으며, 아마도 네 번째 여성도 그런 사람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제1세기 유대교-이방인이든 죄인이든 간에 그들을 거의 상대하지 않았던 문화-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여성들이었다. (48.5)
 그렇다면, ‘유대인 독자들을 위해 쓰고 있던 마태가 왜 의도적으로 이 여성들을 그의 족보에 포함시켰는가?’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그는 그들을 열거하지 않고도 그의 논점을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48.6)
 그 대답의 일부분은 첫 복음서의 위대한 구절들 중 하나에서 발견된다. 그의 목록의 다섯 번째 여성(마리아)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21절). (49.1)
 예수(Jesus)는 “야훼는 구원하신다” 혹은 “하나님은 구원하신다”를 의미하는 히브리 이름인 여호수아(Joshua)의 헬라어 형태이다. 그러나 “자기 백성”은 누구인가? 라고 우리는 묻는다. 야훼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나신 분을 통해서 어떤 종류의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가? 대답은 그 족보를 통해서 번개처럼 스쳐간다. 즉 예수께서는 다말, 라합, 룻, 밧세바, 그리고 다윗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이방인, 매춘부, 간음한 자들, 사기꾼, 그리고 살인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어떤 사람도 구원하실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마태가 그의 족보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49.2)
 마태복음 1:21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사항은 그것이 메시야의 사명에 대한 혁명적인 선포라는 것이다. 마태는 1절부터 시작해서 예수를 메시야와 다윗의 자손으로 명백하게 제시했었다. 유대인들의 마음에 그 두 직함은 모두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 두 직함은 한 지상의 왕의 모습과 결합되었다. 다윗은 뛰어난 정복하는 전사였다. 그리고 1세기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야-왕이 다윗과 같은 그런 일들을 해 주기를 기대했다.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민족의 구원자가 될 것이었다. (49.3)
 예를 들어, 「솔로몬의 시편」(구약과 신약 중간 시기에 기록됨)이라고 불리는 한 책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자손은 백성들 가운데서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원수로부터 구원할 왕이다. 이 다윗 계통의 왕은 초자연적인 재능들을 부여받을 것이다. “철장으로 그는 그들의 모든 소유물들을 박살낼 것이며, 그는 경건치 않은 나라들을 그의 입의 말씀으로 멸하실 것이다”(솔로몬의 시편 17:26, 27). 이와 마찬가지로, 에스라4서(AD 1세기의 묵시록)에서 메시야는 약 400년 동안 잠정적인 메시야 왕국을 통치하신다(에스라4서 7:28, 29). (49.4)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세 번의 큰 예속(隸屬)이 있었다: 즉 애굽에서의 예속, 바벨론에서의 예속, 그리고 이제 로마의 예속이 그것이다. 첫 둘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었다. 제1세기 유대인들에게는 유대 국가를 적어도 정치적으로 구원하지 않는 메시야는 진정한 메시야로 거의 간주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의 메시야적 소망은 그들을 압제자로부터 해방시킬 다윗의 혈통의 왕에게 놓여져 있었다. 우리는 그런 시각에서 마태복음 1:21의 혁명적인 중요성과 의미를 볼 필요가 있다. 단 한 줄의 영감받은 문장으로 마태는 유대인의 메시야 개념 전체를 뒤집어엎는다. 그리스도는 로마의 지배자들로부터가 아니라 그들의 죄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그는 주장한다.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자손 예수가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제자들을 포함해서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는 크나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오늘날도 그것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 마태의 주요한 과제들 중 하나는 정복하는 왕 모델을 선호하는 백성들에게 예수의 메시야적 왕국의 참된 성격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50.1)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정복하는 왕으로 오셨다. 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헤르만 리데르보스(Herman Ridderbos)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의심할 여지없이 옳다: “여기서 ‘죄’라는 단어는 광의적(廣義的) 의미로, 즉 죄책과 죄의 형벌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의 권세와 그 결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Ridderbos, 28). (50.2)
 달리 말해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죄 가운데서(in)가 아니라, 그들의 죄로부터(from)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사역의 두드러진 초점은 그의 백성을 그들 자신의 죄의 제국주의로부터, 그들의 매일의 행동들을 주관하고 있는 죄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50.3)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생활에서 죄를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 그런 일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첫째, 그의 죄 없는 생애와 십자가에서의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는 자기 백성을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신다. 엘렌 화잇은 이 사상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당신의 받으실 만한 대접을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정죄를 받으신 것은 우리로 우리가 아무런 공헌도 한 바 없는 당신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시대의 소망, 25). (50.4)
 둘째, 예수께서는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그의 백성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권세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신다. (51.1)
 셋째, 예수께서는 하늘 구름을 타고 그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영원한 상급을 주기 위해 돌아오실 때, 마침내 그들을 죄의 존재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죄로부터의 이 세 가지 “구원들” 모두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참으로 마태의 혁명적인, 다윗의 자손-메시야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다. (51.2)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장의 또 다른 혁명적인 공헌은 메시야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23절 참조)이라는 것이다. 1장의 앞부분에서 마태는 예수께서 메시야, 다윗의 자손, 죄로부터의 구주이심을 지적한 바 있다. 마지막 것은 다윗의 자손의 메시야적 통치와 관련된 호전적인 유대인의 개념들을 뚜렷하게 수정한 것이다. 예수에 대한 마태의 네 번째 직함—임마누엘—또한 그 개념들을 수정하고 있다. 예수 당시에 이르러, 메시야와 다윗의 자손에 대한 개념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결합되어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타도할 강력한 왕의 권세를 지닌 다윗 혈통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형성되었지만, 유대인들은 신적인 왕보다는 육체적인 다윗의 자손을 고대했다. (51.3)
 메시야-왕이신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신분에 대한 마태의 특별한 견해는 구약에 그것과 견줄 만한 것이 없다. 마태에 따르면, 예수는 고대의 다윗 계통의 왕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그런 식의 하나님 아들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예수는 동정녀의 모태에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다. (51.4)
 마태의 독자들은 마태가 사상의 맥(脈)을 요셉에게서 예수의 유일한 인간 어버이인 마리아에게로 교묘하게 이동시킴으로써 예수의 지상 혈통을 끝맺고 있는 마태복음 1:16에 담긴 그 사상을 이해할 준비가 갖추어졌었다. (52.1)
 마태복음 1장 후반부는 예수의 인간 족보에서 떠나 그의 신적인 조상으로 옮아가면서 그의 “아버지”는 성령이시라고 명백하게 말한다. 이와 같이 예수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지 않다. 그는 신—인(神人)이다. 그는 성령과 마리아에 의해 태어났으므로(18, 20, 23, 25절) 신(神)이면서 인간(人間)이다. (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