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 부 왕의 인격체 (1:1-4:16) 1. 약속된 왕 예수 (1:1-2:23)
 현대 독자들이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성경 기자들이 20세기가 사용하는 논리적 규칙 아래서 행했다고 상상하는 대신에, 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의 기본 원칙들에 따라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교훈들 가운데서 가장 배우기 힘든 것은 성경을 쓴 저자들의 시각에서 성경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유대인 성경 학도들이 그 목록을 더 쉽게 암기할 수 있도록 14 곱하기 3의 형식이 되게 마태가 이름들을 선별한 것이 분명하다. 현대 독자들이 마태의 증거 사용 방법에 대하여 어려움을 겪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당시의 “법칙에 따라서” 행하였다. (44.2)
 마태가 요셉의 족보에서 얼마를 삭제한 데서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성경의 본문들을 이런저런 논점들—그것이 현대의 독자들에게 아무리 흥미가 있다 할지라도—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에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장하려고 하는 논점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 구절에서 저자가 주장하려고 하는 논점을 알아내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며 성경 그 자체에 더 충실한 것이다. 마태의 족보에서 얻을 수 있는 명백한 진리는 예수는 다윗의 아들이면서 동시의 아브라함의 아들도 된다는 것이다(1, 17절). 이처럼 그는 이스라엘의 메시야—왕으로서 받아들여지는 데 필수적인 자격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족보 그 자체는 그 사실에 대한 증거인 반면에, 그 조직적 체계는 교사들로 하여금 대체적으로 구두 문화권에서 족보들을 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일종의 암기 촉진용 방책이었다. (44.3)
 네 여성의 경우와 마태의 목적
 유대인들은 족보로 시작하는 책은 이상하게 보지 않지만, 여성들이 포함된 족보로 시작하는 책을 읽을 때는 분명히 충격을 받을 것이다. 유대인의 족보들에 여성들의 이름이 끼여있는 경우는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여성들은 아무런 법적인 권리가 없었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물건,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로 간주되었다. 유대인의 남성들은 아침 기도를 드릴 때 그들이 이방인이나 노예 혹은 여성이 아닌 것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45.1)
 마태의 족보를 포함하여 유대인의 족보들은 어떤 사람의 혈통의 순수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만약 예수께서 사라, 리브가 혹은 라헬 같은 여성들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선택된 네 사람을 그의 족보에서 발견하리라고는 거의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족보에 들어 있는 여성들에 대하여 논하면서 한 저자가 표현했듯이, “우리는 마태가 예수의 조상들 가운데서 가장 의심쩍은 사람들을 발견할 때까지 그의 구약의 기록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으리라는 인상을 받는다”(Bruner, 1:6). (45.2)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마태의 유대인 독자들이 그들의 역사(歷史)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포함된 그의 족보는 전기 충격처럼 그들을 강타했을 뿐 아니라 선택된 네 여성은 그 충격을 벼락의 충격으로 높여주었을 것이다. 자, 이 네 명의 여성들을 살펴보자. (45.3)
 첫째는 다말(3절)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저녁 예배 시간 때에 그녀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하거나 안식일학교 교과 시간에 그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태의 독자들은 다말을 즉시로 알아차렸다. 그녀의 이야기는 창세기 38장에 기록되어 있다. (45.4)
 이 가나안 족속의 여인은 근동의 관습에 따라서 유다의 가장 나이 든 두 아들과 차례로 결혼했었다. 그들은 악행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했고 다말은 자녀가 없었다. 그러자 유다는 그 당시의 결혼법에 따라서, 아직 소년인 그의 셋째 아들이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면 그와 결혼시키겠다고 며느리에게 약속했다. 그 동안 유다는 그가 성년이 될 때까지 다말이 과부로 살도록 그의 아비 집으로 돌려보냈다. (45.5)
 여러 해가 지나가자 다말은 시아버지가 자신의 약속을 지킬 의향이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창녀로 위장하고 수상히 여기지 않는 유다와 성 관계를 가졌다. 여러 달 후, 그녀가 임신했음이 분명해지자, 유다는 그녀가 죄를 짓다가 잡혀서 당시의 사법적 관례가 규정한 대로 그녀를 “불사르”어(24절) 죽일 수 있게 되자 미칠 듯이 기뻐했다. (46.1)
 그러나 유다에게는 충격적이게도 그런 선고를 내리기 위해 그녀를 그의 앞에 끌어 왔을 때, 그녀는 그-유다 자신-가 그 아버지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혹은 의롭다]”(26절)라고 부르짖었다. (46.2)
 솔직히 말해서, 다말/유다의 이야기 그 어느 편에서도 많은 의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는 성령의 지도 아래서 극히 중요한 그의 족보에 그녀를 택해 넣었다. (46.3)
 마태가 기록한 예수의 족보에서 발견되는 두 번째 여성은 라합(1:5)이다. 물론 라합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눈에는 두 가지 거슬리는 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 그녀는 직업적인 창녀였다. 둘째, 그녀는 이방인이었다(수 2:1-21; 6:22-25). (46.4)
 마태의 세 번째 여성은 품성 면에서는 덕성이 많아 보이지만, 그녀는 특별히 멸시받는 종족 출신이었다. 룻은 모압 족속이었다(룻 1:4). 그녀의 백성들은 롯과 그의 미혼인 장녀와의 근친상간적 성 관계의 산물이었다. 가계를 잇기 위해 두 딸은 각기 그들의 아버지를 술취하게 만든 다음 그가 모르는 가운데서 그들과 성 관계를 갖게 만들었다. 장녀가 낳은 아들은 이스라엘의 가장 화해할 수 없는 원수들의 하나가 된 백성들의 조상인 모압이었다(창 19:30-37). (46.5)
 모압 족속들은 발람의 제안을 따라 바알브올에서의 대 배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음탕과 우상숭배에 빠뜨렸다(민 22-25).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어떤 “모압 사람[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 들어오지 못하리라”(신 23:3-6; 느 13:1, 2)고 선언하셨다. 룻은 매춘부도 아니고 간음자도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이 볼 때 그녀의 인종적 배경은 그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이었다. (46.6)
 마태가 예수의 조상의 목록에 집어넣은 네 번째 여성은 여러 면에서 제일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런 흥미의 한 부분은 그녀가 자신의 이름으로 수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47.1)
 만약 마태가 그녀를 밧세바라고 불렀다면, 그는 다윗 왕과 그녀의 간음 사건을 상기시키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우리아의 아내”(6절)였던 사람이라고 부름으로써 마태는 두 가지 논점들을 더 제기한다. 첫째, 우리아가 일반적으로 헷 사람 우리아로 칭해졌다는 사실(삼하 11:3; 23:39; 대상 11:41)은 그가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나긴 했어도, 그녀는 결혼을 통해서 법적으로는 아마도 이방인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47.2)
 둘째, 그리고 더 의미심장한 것은 우리아의 이름이 밧세바의 전 남편으로 그 이야기에 끼어 들어온 것은 다윗이 그의 간음죄를 은폐하기 위해 저지른 다수의 살인 사건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그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그가 선호한 방법은 살인이 아니라 속임이었다. 다윗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그의 군대의 장교였던 우리아를 표면적으로 전황을 보고하도록 최전선에서 소환하여 집으로 보내게 했다.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우리아가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것이며, 그렇게 하여, 그녀가 다윗과의 불륜 관계를 통하여 이미 임신한 그 아이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되도록 다윗은 기대하였다. (47.3)
 그러나 다윗의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이 헷 족속 장교의 충직성과 도덕적 규범을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다. 사실상, 왕이 성적인 면에서 약했다고 하더라도, 다윗은 우리아가 그런 처신을 하리라고는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47.4)
 우리아가 다윗이 제시한 대로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잠을 잔 것이 드러났다. 놀란 다윗의 질문에 우리아-사람들 중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묘사된-는 그는 그의 군인들이 전쟁터의 텐트 속에서 자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47.5)
 점점 더 좌절에 빠진 왕은 그날 밤 “그를 취하게” 했지만, 이 귀감이 되는 우리아는 그런 때에라도 제 정신을 잃지 않았고 그의 원칙을 고수했다. 다시 한번 그는 종들과 함께 다윗의 궁전에서 잤다. (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