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교회는 계속해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은 또한 할례를 포함하여 유대인들이 지키던 다수의 예식들과 의식들을 준수하였음이 분명하다(
행 15:1). 큰 무리의 제사장들이 교회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개념이 그들의 성전과의 관계에서 필요로 하던 변화들을 명백하게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폐지하는 명령을 주신 적이 없으셨고, 성전 봉사를 반대하는 말씀을 하신 적도 없으셨다. 비록 그분이 친히 종교 의식들을 준수하셨다는 기록을 우리가 갖고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분은 백성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지키라고 명한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라고 훈계하심으로써, 그리고 또한 문둥병자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의식들의 유효성을 인정하셨다(
마 23:2; 8:4).
이러한 진술들은, 모세의 의례법(儀禮法)의 지속적인 유효성에 대한 증거로서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지켜 행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쉽사리 포착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새 언약 시대의 도래(到來)를 알리기는 하였으나, 바로 그 시각에 유대인들과 아예 끝장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는 아니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했고 또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그들에게 아직도 자비는 뻗쳐져 있었으며, 여러해 동안一적어도 예언 상의 칠십 주일이 끝나기까지—사도들의 주된 사업은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오순절 날에 수천명이 개종했을 때, 그리고 또한 신자의 수가 날마다 증가되어 교회가 커 갔을 때, 제자들은 크게 용기를 얻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는 자연스럽게 교회 내에 그들의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위신을 드높이게 되었으며, 또한
“바리새파”도 그러하였다. 이 때로 말하면 교회가 성전과 그 봉사에 대하여 적대적(敵對的)인 태도를 취할 때는 분명히 아니었다. 불과 몇 달 동안에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나아오게 되었다. 또 다른 수만 명이 메시야를 받아들이는 데도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남아 있는 일이 참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누군가가 그와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실망을 당할수 밖에 없었다. 유대 민족은 예수를 그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고, 사도들을 매질하였다(
행 5:40; 7:58). 핍박이 증가됨에 따라 베드로는 투옥되어 처형의 위협을 받게 되었고,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행 12:1~19). 유대 민족은 그 새로운 교리로부터 몸을 돌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예수를 그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이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었다.
스데반의 죽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유대 백성의 태도에 있어서 일대 전환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행 8:1). 다수의 신자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에 흩어졌다—이것은 그 지역들에 진리의 씨앗을 심으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흩어졌을지라도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던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