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히브리書註釋

 M. L. 앤드리 어슨 著

 南大極外十三人 譯

 1982

 三育大學 大學院

 THE BOOK OF HEBREWS

 by

 M. L. Andreasen

 translated by

 Daegeuk Nam and Otkers

 The School of Graduate Studies

 Korean Union College

 Seoul, Korea

권두언
 大學院長 申 銃 鐵

 1981년도에 삼육대학에 대학원을 개설하게 된 것은, 시대적 변화와 학문의 발전. 그리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급속한 성장등에 비춰볼 때. 만시지탄(晩時之폐)이 있는 중에서도 참으로 뜻있고 다행한 일이었읍니다. 모든 신설 기관이나 조직이 갖는 여러 가지 난점과 애로가 있기는 하지만,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을 통하여 그런 것들을 극복해 나가고 있읍니다.

 아직 첫 졸업생들을 배출하기도 전에, 우리 교수들과 학생들의 학문 활동의 혼적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발간하는 이 책「허브리 書 註釋」은 본 교회가 낳은 세계적 학자인 M. L. 앤드리어슨이 1948년에 출판한 것으로서, 비교적 오래 된 책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권위와 무게를 가지는 하나의 현대판 고전(古典)이라 할 수 있겠읍니다.

 특히, 이 책은 금년도 여름 방학 기간에 열리는 원동지회 SDA 신학대학원의 교외 대학(Extension School) 강좌인 “히브리서 주석”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번역된 것입니다. 번역에 협력한 이들은 거개가 본 대학원의 교수들과 학생들입니다.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번역한 부분들은 목차에 명시되어 있읍니다. 남대극 교수가 전체적인 작업을 지휘하긴 하였으나, 세부적인 교정을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원고의 정리와 검독을 위해서는 곧 석사학위를 받게 될 김 상래 군과 도 현석 군이 수고를 매우 많이 하였읍니다. 이 모든 분듈의 노고를 높이 치하해 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신약 가운데서 참으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자의 “서문”“히브리서의 중요성과 내용”이라는 장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히브리서는 사도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시키는 데에 크나 큰 기여를 한 책이며, 본 교회의 중대 교리인 안식일과 성소에 관한 교리들에게 밝디밝은 빛을 비춰주는 책이며, 특히 구약의 제사 및 제사장 제도가 신약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나타내는지를 설명하는 유일한 책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앞둔 초기 교회의 교인들에게 신앙적 지주가 되었던 히브리서의 교훈은 세상의 종말을 앞둔 남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시 한번 귀중한 기별이 될 것을 확신 합니다. 요컨대, 히브리서는 이 시대를 위한 책입니다.

 본 대학원에서는 이러한 양질(良質)의 서적들을 계속펴내고자 계획하고 있으며, 이러한 출판 활동을 통하여 한국의 신학계와 특별히 본 교단의 신학과 신앙 발전에 조금이라도 이바지가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본 대학원이 출판할 두번째의 책은 제 1회 졸업생들의 석사학위 논문집이 될 것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1982년 6월

목차
 목 차

                                                                             역자 폐이지

 서문∙∙∙(남대극) 5

 히브리서의 중요성과 내용∙∙∙(남대극) 13

 히브리서의 저자∙∙∙(김대성) 29

 히브리서 제1장∙∙∙(도현석) 39

   그리스도의 신성∙∙∙39

   부가적 설명

   그리스도께서 후사로 지명됨∙∙∙65

   천사들∙∙∙68

 히브리서 제2장∙∙∙(김기곤) 73

   예수의 인성∙∙∙73

   부가적 설명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102

   성경상의 삼위일체 교리∙∙∙109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화잇 부인의 글들∙∙∙118

   도덕적 자유 기농의 권리와 댓가∙∙∙126

 히브리서 제3장∙∙∙(장정자) 137

   그리스도와 모세∙∙∙137

 히브리서 제4장∙∙∙(김상래) 154

   안식일∙∙∙154

   부가적 설명

   하나님의 안식∙∙∙177

 히브리서 제5장∙∙∙(최수동)··193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자질∙∙∙193

   부가적 설명

   성경 연구에 관한 화잇 부인의 글들∙∙∙205

 히브리서 제6장∙∙∙(하계상) 220

   믿음에 확고부동함一언약의 맹세∙∙∙220

   부가적 설명

   영혼의 닻∙∙∙237

 히브리서 제 7 장∙∙∙(하계상) 243

   멜기세덱보다 우월한 그리스도∙∙∙243

   부가적 설명

   의문의 율법∙∙∙261

 히브리서 제8장∙∙∙(조대연) 268

   두 언약∙∙∙268

   부가적 설명

   언약들∙∙∙279

   언약에 관한 화잇 부인의 글들∙∙∙306

 히브리서 제9장∙∙∙319

   하늘에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319

   부가적 설명

   성 소∙∙∙365

   성전에 관한 화잇 부인의 글들∙∙∙412

 히브리서 제10장∙∙∙(박춘식) 418

   완전한 성화∙∙∙418

   부가적 설명

   성 화∙∙∙457

 히브리서 제11장∙∙∙(강상진)

   믿 음∙∙∙473

 히브리서 제12장∙∙∙(강상진)

   믿음과 인내에 대한 권면∙∙∙512

 히브리서 제13장∙∙∙(명득천) 535

   마지막 권면∙∙∙535

서문
 히브리서는 초기 교회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나타났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고 모든 징조들은 그 사건이 박두했음을 선포하였다. 다수의 신자들은 이것이 세상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가 의아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심지어 몇몇 사도들의 생각에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은 밀접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그들이 던진 바, “어느 때에 이러한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라는 질문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그 도성(都城)과 그 성전(聖殿)을 방문했을 때, 그분이 나타낸 반응을 보고 저윽이 마음의 혼란을 느꼈다. 백성이 환호작약하며 그분을 왕으로 맞이하고 있던, 그 개선(凱旋)의 입성(入城) 도중에서도 그분은 그 도성을 보시고 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눅 19:42,43). 이에 덧붙여 후에 그분은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마 23:36)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제자들 사이에 섬뜩한 놀라움을 자아내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성과 당신의 백성을 버리시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적군이 어떻게 그 성전을 파괴 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육중한 돌들로 건축되어, 파괴 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리스도께서는 이 돌들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를 미처 보시지 못했나 보다. 만약 그분이 보셨더라면, 그분이 발언하실 때에 좀더 주의깊게 하셨을 텐데. 이리하여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마 24:1) 그분에게 나아왔다. 필경 그들은 그들 자신에 관하여 그들이 알고 있던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예수께서 아시고 계신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것 같다.

 그들이 성전에서 걸어 나갈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막 13:1). 그들은 그 건물 구조의 육중한 모습을 바라봄으로써 그분께서 깊은 감명을 받아, 그것이 파괴되리라는 말씀을 함부로 하시지 못하게 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지상의 아무것도 파괴 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지어지지 않았던가? 그들이 확신하기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고 한 일을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들은 매우 난처해 했다.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는 질문을 발함으로써 그분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 사람이 제자들 중에 누구였는지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그에게로 몸을 돌리시고, “네가 이 건물들을 보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막 13:2)고 하셨다. 이 말씀은 그분께서 참으로 딱 잘라 말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상 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대화는 그 무리가 성전을 떠나서 감람산으로 가는 도중에 오갔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제자들은 그 동산으로 가는 길에 그 형편에 대하여 거듭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매우 중대하고도 놀라운 예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막 13:3; 마 24:3).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제 24장에 기록된 그분의 대답 가운데서 예룬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 사이의 구분을 짓지 아니하셨다. 그렇지만. 그 한 사건은 그 다른 사건을 상징한다는 사실과, 예언은 이중적인 적용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 즉 비록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겨 있다 할지라도 많은 점에 있어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는 두 사건을 지칭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제자들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질문을 던졌다:첫 째는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읍니까?”라는 질문인데. 이것은 그 도성과 성전이 멸망될 때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않으리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진술을 가리키는 것이고, 둘째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읍니까?”라는 질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대답 가운데서 이 두 사건을 한 데 뭉쳐 버리셨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해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그분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 니라”(눅 19:43, 44). 이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깊이 사무치게 들린 것은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사랑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그들은 그 멸망이 어쩌면 그들의 시대에 있게 되리라고 결론지었다.

 제자들이 그들의 주께서 일찍 재림하실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들이 있다.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하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요 16:16). 어리둥절한 가운데 그들이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18절)라고 말하면서 의아해 하고 있을때. 그분은 그들에게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9절)라고 물으셨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그들이 당할 슬픔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러나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약속을 그들에게 주신다:“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2절).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참으로 반가운 말씀이다. 그들은 그분이 속히 다시 오시기를 바라며 기도하였다. 이보다 더 자연스런 일이 어디 있었을까?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났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오시지 않았다. 히브리서가 기록되었을 때만 해도 삼십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경과했었으나, 아직도 주께로부터는 아무런 말씀도 이르러오지 않았다. 그분은 그분의 약속을 잊어버리신 것인가? 그분이 언젠가는 오실 것인가? 머지않아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예언을 성취하면서 로마군인들에게 포위당할 것을 알려주는 조짐이 파다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마 24:15-18).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되지 않았던가? 진실로 때가 가까왔음에 틀림없다.

 사도들은 이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성경을 살피는 일을 많이 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또 그분과 동행한 적이 있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하나도 빼지 않고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분이 말씀하신 바를 거듭거듭 되새기면서 그 내력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들은 예언들과 비교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당혹하게 하던 많은 것들에게 빛이 던져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실것이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구약 선지자들이 그렇게 선언하였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진술들을 확증하셨다. 그러나 분명히 그분은 즉시 오실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약속들을 연구함으로써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까지는 끝이 올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었다(마 24:14). 또한 하늘에는 징조들이 있어야 했는데, 곧 해와 달과 별들이 예언의 성취를 증거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이 징조들은 나타나지 않았었고, 또한 하늘의 권세들이 흔들리지도 않았다(29, 30절). 확실히 그들이 간과(看過)해 버린 것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태복음 23:36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그들의 세대에 일어나야 할 어떤 일들이 있었다:“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그러나 그분이 친히 오실 것이었는가? 그들은 그분이 친히 오시기를 바랬고. 그러시기를 기도하였다.

 우리는 초기의 제자들이 그리스도께서 곧 오실 것을 바라고 있었다고 해서 그들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히 오심에 대한 약속들에 집착되어 있어서 그리스도의 약속들을 균형지게 하는 다른 것들은 지나쳐 버렸다. 이러한 태도는 바울로 하여금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그의 두번째 편지에서 경고를 발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는데, 그 교회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오심이 매우 가깝다고 믿고 있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고 그는 말하였다. 이것은 동일한 주제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말씀하신 바,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는 진술의 메아리인 것이다. 바울음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다:“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꼳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이것은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시대에 오실 것으로 믿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불법의 사람이 먼저 나타나야 할 것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지 전에 장구한 세월이 경과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교회가 그릇된 희망을 가지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바울의 편지는 그들에게 빛을 가져 다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상당한 낙담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신자들은 주의 오심이 매우 가까이 이르렀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들에게 들린 이야기로는 그 사건이 아직 먼 훗날에 있을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수취한 이후의 달들과 해들은 시련의 기간이었다. 그 교회에게 나타난 사실은 그들의 희망이 무산(露散)되었다는 것과 그들을 떠받들어 주면서 핍박을 견디도록 해 주던 힘이 제거되었다는 것이었다.

 일찌기 교회가 도움과 격려를 필요로 하던 때가 있었다면 바로 그때였다. 사도들은 하나씩 하나씩 타계(他界)하였고, 이윽고 교회는 외로이 남아서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할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다(요 14:18). 그러나 이제는 바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처럼 보였다. 참으로 중대한 고비였다. 그런데 히브리서가 그들에게 필요되는 빛과 위로를 가지고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당혹의 때였다.

 그 교회에게 특별히 관심을 유발시킨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장기간 부재하시는 이유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먼저 배도하는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야(살후 2:3) 하리라고 말함으로써 그는 그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어떤 정보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하나의 만족스런 설명이 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행하고 계셨는가? 그분은 자신이 재림하실 수 있기 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면서 부질없는 기대 가운데 앉아 계셨는가? 아니면 그분은 그들의 구원과 온 인류의 구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떤 매우 중요한 사업을 행하고 계셨는가? 만약 후자의 경우였다면, 즉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을 죽인 다음 그 희생의 피를 가지고 봉사하기 위하여 성소로 들어간 지상의 제사장의 봉사와 비교되는 하나의 봉사를 수행하고 계셨다면, 그리스도의 부재는 이해할 만 하였다. 모든 이스라엘은 희생 제물의 죽음이 용서를 위하여 충분한 것이 못되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제물을 효험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피를 봉사(奉同)하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제사장이셨다면, 그분이 희생 제물로서 갈바리에서 돌아가셨고 그 곳에 그의 피를 흘리셨다면, 그 피가 봉사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이제 하늘에서 행하시고 계시던 그 일이었는가?

 히브리서가 기록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답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제사장과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지상 성전)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거기 하늘 성전에서 그분은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나타나셨”다(26절). 그리고 바울은또 말하기를,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14절)하리라고 한다.

 백성이 필요로 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조정에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고 계시던 사업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었다. 그들은 하늘 성소와 그 봉사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했다. 그것은 그분의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며, 그들의 흔들리는 믿음을 회복시켜 줄 것이었다.

 그 당시의 교회가 당면해야 했던 상황들과 문제들은 오늘의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의 전반부一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의 파괴一가 성취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예언의 후반부—주 예수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심一가 성취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당시에 여러 가지 터무니없고 그릇된 견해들이 나돌았듯이, 그 때에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하여 한낱 희미한 개념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듯이, 지금도 그와 같이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도 더 많이 성 경을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히브리서는 예루살렘 함락 전의 위기의 때에 사도 교회를 안정시키는 일에 중대한 요인이 되었다. 히브리서의 그 힘있는 주제들을 연구함으로써 오늘날의 하나님의 교회도 상당한 도움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곧 오심을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는 지난 날에 성도들에게 주어졌던 그 신앙에 굳건히 기초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은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과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히 7:25) 저 하늘 성소에서 그분이 행하고 계시는 사업에 그들의 눈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육체 곧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도 산 길”을 통하여,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히 10:19, 20) 얻는 복스런 특권을 누리게 되기를 삼가 기원하는 바이다. 이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기도와 소망이었고, 이것은 또한 이 책의 저자의 기도와 소망이기도 하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