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창조에 대한 두 가지의 학설에 직면해 있다. 즉 하나는 진화론을 믿는 과학적이라는 근거요 다른 하나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성경적인 근거일 것이다. 이 이론들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정반대로 극과 극이다. 그들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시도해 왔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다른 하나는 거절해야 한다. 거기에는 중간 지점이 없다.
우리들이 한편으로는 비신앙적인 사실과 탐구에 근거한 과학적인 결론들을 확언함으로써, 또 한편으로는 순수한 성경의 근거를 고지식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과학의 발견과 모든 과학적인 증거를 거절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봉착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그와같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특별한 창조주를 믿는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들과 어떠한 논쟁도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그 불일치의 논쟁은 그와같은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이끌어 낸 연역에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사실로부터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진화론에 관한 경우이다. 어떠한 사람도 확인되고 증명된 사실들과는 논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유도된 연역은 심각한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 상호간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비록 다윈의 원래의 학설을 더 이상 논란하지 않더라도, 어떤 다른 학설일지라도 만장 일치로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점들을 근소화시켜서 모든 진화론자들이 실제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사실들은 그러한 낙관주의를 정당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그 차이점들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진화론의 사닥다리에는 잃어버린 계단들이 있다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간격들이 너무나 커서 도무지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들은 그 잃어버린 계단들을 계속 탐색하면서 그들을 발견하기를 바랬지만 지금까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평신도들에게는 이것이 대단한 혼란을 가져다주는 문제이다. 현재까지 과학자들은 어떤 확신 있는 답변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혼란된 장면으로부터 돌아서서 성경적인 설명을 숙고하여 보기로 하자. 창세기 제
1장과 제
2장의 34개의 짧은 절이 그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하셨나에 대한 단순하고도 솔직한 설명이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그분 자신의 음성으로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11)고 인류에게 선포하셨을 때, 그 말씀을 확인하셨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흔히 시내산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인들이 행동의 근본 법칙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십계명의 일 부분이며 인간의 모든 의무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그 말씀들은 모든 인간의 율법과 공의의 기초이다. 그 말씀들은
“유대인식의” 혹은
“지역적인” 것으로 가볍게 제쳐둘 수 없는 것이다. 그 말씀들은 역시 사회와 국가 양쪽의 중요한 기둥들로서 굳게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 율법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말씀해 주고 계신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상황이 이 세상에서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까지도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시어 사람들에게 창조의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명한 의도외에,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이 말씀들을 선언하신데 대한 어떠한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가 없다.
창세기에 기록된 모세의 설명을 믿을 수 없는 말로써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세는 단순히 널리 알려져 있는 유전을 기록하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창세기 첫장 만은 아니다. 그것은 십계명인 것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 그 유일한 시간에 하늘로부터 선언하신 계시의 내용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경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는다면 그는 십계명도 믿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가 없다면 역시 진화론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엿새 동안 주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다”고 하신다. 진화론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 엿새는 육일이 아니었고 수백 억년의 긴 시간의 기간들이었다. 역시 하늘들이나 땅이 창조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진화되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무의식의 세력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나중에 생명체가 나타났다. 이 생명체가 사람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 진화되었다. 우리들도 역시 발전 단계에 있다. 그래서 그 마지막을 볼 수가 없다”라고 한다. 진화론과 창조에 관한 창세기의 창조론을 믿는 것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양쪽도 아니고 양쪽 부분들도 아닌, 이쪽이 아니면 저쪽이다. 그 경계선은 분명한 것이다. 진화론은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하신 그 진술을 명백히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의 방법에 관한 진술이 그 우주를 헌법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대단히 심상치않은 일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앞서 진술한 것처럼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는 가장 높은 권위로 그것을 선언하신 공언된 목적을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처럼 보이며, 이 일에 있어서 인간의 상반된 의견들은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곳에 독특한 방법으로 창조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은 자기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일들에 관해서 학자답게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답변을 요구하시면서 물으시기를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 38:4)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역설적인 말씀으로 이렇게 덧붙이신다.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년수가 많음이니라”(Knowest thou it, because thou wast then born? or because the number of thy days is great?)(
욥 38:21).
하나님께서는 자주 풍자를 사용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풍자적이고 날카롭다. 우리들은 그 책망이 욥만을 위해서 있었던 것으로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역시 오늘날 그것을 적용시키면 대단히 적합할 사람들을 위해서도 있는 것이다. 그 책망은 그것에 적합한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인간의 동기들을 하나님께 전가시키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박식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데 틀림없이 실증이 나셨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우리들은 느낀다. 그들에 관해서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다 하는 도다”(
말 2:17)라는 말씀이 진실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창조의 주제를 조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창조에 관한 그분의 말씀을 논쟁하는 것을 가장 어리석고 건방진 생각처럼 보신다. 하나님께서 거기 계셨다.
그 분께서 그 말씀을 하 셨다.
그 분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지금 미약한 인간이 와서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어떤 창조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진리에 도전하다니!
그것이 하나님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그 분으로 하여금 풍자적인 말씀들을 하시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욥기가 시내산 이전에 기록된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라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 분께서 만물의 창조주요 엿새 동안에 그 분께서 창세기 첫장에 기록된 일을 행하셨다는 진술을 하늘로부터 선포하신 그 계명들 가운데 포함시키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 과학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정 사실이 아니고 단순히 하나의 이론에 불가할 진화론에 대해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인간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그것이 하나의 이론뿐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것이 오직 이론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만약 과학이 그것의 의견을 전환할 경우에 편리한 변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 그것은 항상 하나의 이론만으로 취급받아올 것으로 널리 전파될 것이다. 만약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그때 가서 할 바에야 그들이 지금 큰 소리로 선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들은 내가 창조했다고, 즉 내가 육일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진술을 가지고 있다. 이 말씀은 모든 사실을 해명하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선언이다. 사실 그것은 믿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깨달을 수 없는 말씀에 대한 믿음,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어떤 세력들이 지적인 생명과 도덕적인 창조물과 영적인 존재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믿는 것보다 확실히 지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