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상징적 성격에 비추어, 사단이 감금되는
‘천 년’이 문자적인 기간일지 아니면 상징적인 기간 일지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비록 상징적 의미가 요한계시록의 상징 주의적 문맥에 맞을지라도, 문자적 의미의 가능성도 이에 못지않다. 그러나 천 년이
‘시간상 실제적인 기간’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2) 천년기에 대하여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다른 견해가 있다.
(1)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후천년설에 따르면, 재림은 문자적 천년 이후에 있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는 사회적, 교육적 개혁과 국가적 발전과 개인적 완전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견해는 19세기 개신교들 사이에서 특별히 유행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과 그것에 수반된 가공스런 사건들로 인하여 사라져버렸다. 이 견해는 종말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과 맞지 않다. 신약은 종말이 가까워옴에 따라 세계의 형편이 악화될 것을 말한다. 오늘날 후천년설은 본질적으로 폐기되었다.
(2) 무천년설(Amillennialism). 무(無)천년설은 아우구스티누스(354-430) 이후 전 기독교 시대에 걸쳐 널리 주장되어 왔다. 오늘날 그것은 로마 가톨릭교회, 동방정교, 그리고 몇 몇 개신교의 개혁 그룹이 주장하는 공식 견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천년기를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을 대표한다고 이해한다. 사단의 감금은 그가 그리스도에게 패했을 때 십자가 상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마 12:29; 눅 10:17-18; 요 12:31-32 참조), 그의 활동은 크게(전 부는 아닐지라도) 감소되었다. 따라서 그는 복음의 전파를 방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년기는 교회가 지상에서 통치하는 상징적 기간이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첫째 부활을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로 이해한다. 어떤 이들은 첫째 부활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요 5:25; 엡 2:5-6) 사람 들에 대한 상징으로 본다. 이 거듭난 사람들은 성도들로서 전 기독교 기간 동안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한다. 또 다른 이들은 첫째 부활을 사별한 신자들의 영혼의 부활로 본다. 그들은 지금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며 살고 있다.
(3) 전천년설(Premillennialism). 전천년설은 재림이 천년기 전에 있다고 주장한다. 첫 3세기 동안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전천년설주의자들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아 전천년설은 점차 무천년설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전천년설에는 세대주의적 견해, 역사적 견해, 그리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주장하는 견해 등 세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세 견해 간에 일치하지 않는 주요 쟁점은
요한계시록 20장이 기독교 시대의 전 과정을 요약하고 있는가의 여부다. 문맥에 의하면,
요한계시록 20장은 요약이 아니라 오히려 사건들의 연대적 순서를 가리키고 있다. 즉,
요한계시록 15-16장은 중보의 종결을 가리키고,
17-18장은 바벨론의 몰락을,
19장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가리키고, 마지막으로
20장은 악인들 및 사단 자신의 멸망과 함께 심판을 완결한다.
요한계시록이 시사하듯, 재림은 살아 있는 악인들에게 멸망을 가져오고, 그리스도의 통치와 심판에 참여할 성도를 부활(첫째)시킨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는 일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있을 것이다(
계 20:4-6), 리언 모리스(Leon Morris)가 말하듯이, 요한계시에서 총 47회 등장하는
‘보좌’는 사단의 보좌와(
2:13) 짐승의 보좌를(
13:2; 16:10) 제외하고는 모두 하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현재의 구절에 적합할 것이다(
계 20:4).
3) 사단은 재림 시에 갇히게 되며, 천년기가 뒤따른다. 이 기간에 땅 위에 살아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