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8장으로
요한계시록 17장 14-17절에서 소개된 주제가 끝난다. 그 주제는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이 뒤늦게 속은 것을 깨닫고 바벨론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이전의 지지자들은 바벨론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며, 바벨론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다. 종말적 바벨론의 심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에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 진노는 나라들의 분노에 대한 그분의 응답이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의 멸망의 때가 이르렀다(
계 11:18).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확실성은 책 전체를 통하여 바벨론의 몰락이 반복적으로 선언됨으로 강조되었다(
14:8; 16:19; 17:16; 18:2, 21 참조).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원수들과 하나님의 백성의 압제자들이 결국 완전히 패하게 될 것을 반복하여 다짐받는다.
23) 요한계시록 16-18장에 나타난 하나의 목적은 확고한 보증을 주는 것이다. 즉, 전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압제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쳤던 부당한 고난은 끝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원수이자 하나님 백성의 원수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보증한다(
계 18:6, 20, 24; 19:2-3 참조).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나쁜 소식이 압제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좋은 소식이 된다. 그들에게 바벨론 멸망은 고난과 압제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보장을 의미한다. 미래는 희 미하여 불확실하며, 최후의 사건에 대한 묘사는 두려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신다. 그분은 공의로써 복음의 원수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영원한 기쁨의 나라는 시작될 것이다. 스트랜드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보증이 있다. 바로 역사 속에서 그 분은 그들을 양육하시기 위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며, 종말적 대 결말에서 그들을 온전히 옹호하실 것이며, 영생을 통하여 이해를 초월하는 큰 상급을 주실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동일한 주제를 취하여 아름답게 확장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결코 일반적인 성서 문학의 궤를 벗어난 일종의 엉뚱한 계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기별의 핵심과 요지를 전달한다. 진실로 요한계시록이 강조하여 지적하듯이, 살아계신 분, 곧 죽음과 무덤을 정복하신 분(
1:18)은 당신을 신실히 따르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며, 그들은 순교를 당할 때에라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생명의 면류관”(
2:10; 21:1-4; 22:4 참조)을 가진 승리자들이다(
12:11).
24)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선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음과 조화되지 않는 어떤 종교 체제와도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버리라는 강력한 경종이다. 많은 진실한 백성이 여러 이유들로 바벨론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종교 체제에서 나타난
“경건의 모양”(
딤후 3:5)으로 기만당할지 모른다. 어떤 종교 체제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취하여 이용할 것이며,
“심지어는 성령으로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의 근원은 아래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알지도 못한 채 바벨론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에 있다고 생각지 않지만, 바벨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바벨론을 반대하는 말을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역시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을 수도 있다(
마 7:21 참조). 참된 복음을 가르치는 단체의 일원이 되었다고 하여 그가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보증은 아니다. 각 그리스도인을 향한 은혜의 호소는 그가 속한 종교 단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사해 보고 시험해 보라는 것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 즉 하나님께로 돌아와 바야흐로 바벨론과 그 경배자들 위에 내리려고 하는 심판을 피하라는 것이 복음 선포의 결론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 18:1-4)
요한계시록 19장 1-10절이 보여주듯, 많은 사람들이 이 초청에 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