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심판 (18:1-24)
 요한계시록 17장‘큰 바벨론’(17:5)이라 칭하는 마지막 때의 배도한 종교 세력에 관하여 묘사한다. 이 큰 바벨론은 그 나라의 음행의 포도주로 세상의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미혹하는 음녀로 묘사되었다. 본문의 설명에 의하면, 바벨론의 타락과 완전한 멸망은 속임당했음을 깨달은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이 그들의 지원을 철회한 결과다. 그들은 바벨 론에게서 등을 돌리고 완전히 멸망시킨다. 종말적 바벨론의 멸망은 요한계시록 17장 16-17절에 소개된다. 바벨론의 멸망은, 모세의 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레 20:14; 21:9; 겔 16:38-41; 23:22-29 참조), 음녀를 불로 처벌했던 고대의 관습에 의해 묘사되었다.

 18장은 앞 장의 주제를 계속 이어간다. 이 장은 종말적 바벨론의 심판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기술한다. 그것은 마지막 때의 이 배도적인 종교 체제가 어떻게 종말을 맞게 될 것인지를 설명한다. 바벨론의 멸망이 이번에는 무역을 통하여 부자가 된 부유한 상업도시, 특히 고대 바벨론의 몰락에 의해 그려진다. 고대의 도시들은 상업의 중심지와 부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었다.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13장47장)와 예레미야(50-51장)1)가 고대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사용하였으며, 에스겔이 두로에 대하여 예언하면서(겔 26-28장) 인용한 언어로 영적 바벨론의 붕괴를 묘사한다. 그레고리 빌이 지적하듯이, 요한계시록 18장에서는 역사적 바벨론의 심판이 종말적 바벨론의 심판의 모형이 된다.2)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외침 (18:1-8)
 바벨론은 그녀의 잔을 가증한 것으로 가득 채웠다. 이제는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계 16:19)을 때다. 그러나 바벨론이 심판을 받기에 앞서, 하나님의 백성은 바벨론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세상을 지배하는 배도한 종말적 종교 체제와 모든 관계를 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권고를 받는다.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큰 성 바벨론.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본문은 에돔(사 34:11-15)과 니느웨(습 2:13-15), 특히 고대 바벨론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반영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셨을 때, 바벨론의 폐허는 온갖 새들과 짐 승들의 거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 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사 13:21-22; 34:11-15 참조).
유사하게, 예레미야도 바벨론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시랑과 함께 거기 거하겠고
타조도 그 중에 깃들일 것이요
영영히 거민이 없으며
대대에 거할 자가 없으리라(렘 50:39).
바벨론이 황폐한 무더기가 되어서
시랑의 거처와 놀람과 치솟거리가 되고 거민이 없으리라(렘 51:37).
요한계시록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땅의 상고들.
 요한계시록 18장 11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갑절을 갚아주고.
 (헬, diplosate ta dipla 디플로사테 타 디플라‘두 배로 배가하다’라는 의미다), 두 배로 갚는 것은 잘 알려진 구약의 개념이다. 모세의 법에 의하면, 재물을 훔치는 자는 그것을 두 배로 갚아야 했다(출 22:4, 7, 9).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배로 갚는다는 사상은 종종 선지자들에 의해 가차 없는 형벌이나 [아낌없는] 상급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사용되었다.3)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다고 선언하였다(사 40:2).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사 61:7)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내가 위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을 것은 그들이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내 땅을 더럽히며 그들의 가증한 것으로 내 산업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니라.”(렘 16:18) “나를 박해하는 자로 수욕을 당케 하시고 나로 수욕을 당케 마옵소서 그들로 놀라게 하시고 나로 놀라게 마시옵소서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며 배나 되는 멸망으로 그들을 멸하소서.”(렘 17:18)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하여 당신이 유다를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실 때 그에게 “배나 갚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슥 9:12). 많은 학자들은 ‘배(倍)’의 의미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 두 배의 벌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잘못한 만큼만 벌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4) 클라인(Meredith G. Kline)에 의하면, 이것은 “바벨론의 죄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저울대 에서 똑같은 무게의 형벌로써 달려야 하였음”을 암시할 것이다.5)
요한계시록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
 ‘심판하다’라는 말은 부정과거 분사로서 과거에 일어난 행위를 암시한다. 바벨론은 심판을 받았다. 조사가 끝났다. 선고가 내려졌고 바야흐로 집행이 시작되려 한다.
(주해)
요한계시록 18: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요한은 하나님의 기별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그는 요한계시록 17장을 해석한 천사가 아니라, 큰 권세를 가지고 특별한 기별을 선포하려고 하나님으 로부터 내려오는 다른 천사다. 온 땅이 그의 영광으로 환하여졌다. 그가 선포하는 기별이 우울 함에도 불구하고, 이 천사는 “복음의 사자다. 그가 내려오는 것은 망한 자들 앞에서 즐거워하 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은 이루었고 하나님의 백성은 마침내 모든 압제로부터 해 방되었음을 선언하기 위해서다.”6) 천사의 영광이 바벨론의 매력적인 영광을 무색케 한다. 그의 영광스런 모습과 큰 음성은 땅에 거하는 자들의 주의를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즉, 배도한 종교 체제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치 않은 자들 위에 곧 쏟아질 재앙을 피하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에 귀기울이라는 말이다. 그의 선포는 바벨론과 분리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이요(계 18:4),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선포되었던 경고의 기별을 끝내는 외침이다.
요한계시록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요한계시록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천사는 힘센 음성으로 종말 때의 배도적 위조품인 종교 체제의 붕괴를 선언한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이 선언은 이사야 21장 9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함락되었도다 함락되었도다 바벨론이여 그 신들의 조각한 형상이 다 부서져 땅에 떨어졌도다.” 그것은 또한 둘째 천사의 경고 기별을 반복한다(계 14:8). 모든 경우에, 종말적 바벨론의 몰락은 비록 미래에 일어날 것일지라도 이미 성취된 것으로 그려진다.7) ‘무너졌도다’라는 말이 되풀이 되고 과거시제의 미래용법이 사용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종말적 바벨론의 붕괴가 임박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바벨론의 확실한 황폐를 묘사하면서, 요한은 고대 바벨론의 황폐와 관련하여 잘 알려진 선지자의 언어를 빌린다(사 13:19-22; 렘 50:39; 51:37 참조). 바벨론은 귀신들과 각종 더러운 영과 모든 더러운 새와 각종 더럽고 미운 짐승의 거처가 되었다. 어떤 인간도 그 곳에서 더 이상 살지 않을 것이다. 종말적 바벨론의 붕괴와 몰락은 고대 바벨론의 몰락과 황폐처럼 확실하다. 배도적이고 압제적인 종말적 종교 체제의 멸망을 고대 바벨론의 몰락에 의해 묘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레고리 빌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적인 바벨론이 장차 멸망할 것이라는 확신은 옛 바벨론의 붕괴가 동일한 방법으로 예언되었고 성취되었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러하셨듯이 미래에도 계속적으로 활동하시리라는 것을 믿는다. 옛 바벨론의 몰락에 대한 예언과 성취는 훨씬 더 큰 바벨론의 몰락을 미리 가리키는 하나의 역사적 패턴으로 나타나 있다.8)
고대 바벨론의 몰락이 이스라엘에게 좋은 소식이었듯이, 종말적 바벨론의 몰락도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바벨론이 몰락한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바벨론은 자신의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만국을 취하게 하였다(계 14:8; 17:2), 이것은 백성을 미혹하여 그녀의 종교적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는 종말적 바벨론의 기만적인 활동을 가리킨다.9)

 둘째, 바벨론은 땅의 임금들을 유혹하여 자신과 행음하게 하였다(17:2; 18:9 참조), 이것은 세상의 지배적인 정치 세력들과 배도한 종말적 종교 체제와의 불법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땅의 상고들은 바벨론의 사치의 세력으로 인해 치부하게 되었다(계 18:15에서도 언급되어 있다). 앞서 언급되지 않았던 새로운 측면의 바벨론의 영향력이 여기에 나타난다. 요한계시록 17장이 배도한 종말적 종교 체제와 세상의 지배적인 정치 세력들 간의 연합이라는 정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종말적 연합의 배후가 되는 경제적 안정의 동기를 설명한다.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가 끼친 그 중독성으로 인하여 “세상의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은 바벨론의 궁극적 불안을 알지 못하며, 진정한 안전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10)
요한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 18: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바벨론의 몰락을 선포하는 중간에,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을 떠나라는 하늘로서 나는 다른 음성을 듣는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 외침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행한 호소를 생각나게 한다. 바벨론 가운데서 도 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렘 51:6; 50:8; 51:45 참조).

 외관상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많은 백성이 바벨론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이것은 롯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창 19장). 비록 롯이 소돔의 죄에 참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는 소돔과 하나가 되었다. 그 도시가 멸망하기 직전에, 그는 소돔을 떠나라는 재촉을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 도시와 함께 멸망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이 멸망하기 전에 그 곳에서 나오라는 최후의 호소를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신다. 리언 모리스 (Leon Morris)는 이렇게 진술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호소는 전체 장의 핵심이다. 요한은 그 도시의 멸망을 유쾌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황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라고 호소한다.”11)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회이며, 또한 바벨론 및 바벨론과 연합하는 모든 자들의 운명을 피하는 마지막 기회다.

 바벨론은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기 때문에 퇴출될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행한 호소를 반향한다.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토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렘 51:9) 바울은 목이 곧고 회개치 않은 자들이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다고 말한다(롬 2:5-6). 바벨론의 죄들은 설명할 수 없다. 바벨론은 기나긴 세월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를 멸시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대한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시기 위하여 바벨론의 불의한 행동들을 기억하셨다.
요한계시록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갑자기 천사는 주제를 바꾼다. 그는 방금 하나님의 백성에게 바벨론을 떠나라고 호소하였다. 이제 천사는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를 언도한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이 보응의 원칙은 고대 바벨론에 선언된 구약의 심판을 메아리친다. 시편 기자는 외쳐 말하기를,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 다.”(시 137:8; 28:4 참조) 예레미야는 “그 일한 대로 갚고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50:29)고 말한다. 바벨론의 형벌은 그녀의 죄에 꼭 알맞다. 예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이 원칙을 강조하셨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종말적 바벨론에 대한 형벌은 이중 보응이라는 구약의 사법적 개념에 의해 더 자세히 묘사되었다.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 나 섞어 그에게 주라. 바벨론은 그 죄로 인하여 그 죄에 상응하는 아낌없는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바벨론에 관하여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종말적 바벨론의 운명에서 성취될 것이다. “그들이 너희 목전에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거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51:24)
요한계시록 18: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요한계시록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7절은 바벨론과 관련하여 “죄에 꼭 맞는 형벌”이라는 원칙을 재 진술한다.13)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바벨론은 자신의 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바벨론의 죄들은 자신을 거만하고 자만하도록 만든 허황된 자기 칭송과 사치다.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종말적 바벨론의 이 자만은 목이 곧은 고대 바벨론의 자만을 환기시킨다.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진언을 베풀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사 47:7-9).
자신을 칭송하면서, 바벨론은 하나님의 대권을 사칭하여 제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영광은 하나님께만 속하기 때문이다(계 14:7; 15:4; 19:1 참조), 오만한 자기 영광과 자만은 종말적 바벨론의 정죄와 형벌의 기초다. 애초 바벨론의 자기 칭송은 온 땅을 환하게 하는 천사의 영광으로 빛을 잃었다(계 18:1), 그것은 바벨론에게 집행될 최후 심판에 대한 전조였다.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고대 바벨론에게 그러했듯이(사 47:9 참조), 종말적 바벨론의 심판 시간도 정해졌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재앙들은 요한계시록 16장의 마지막 일곱 재앙이다. 7절의 오만한 자랑과 대조적으로, 바벨론은 사망과 애통과 흉년을 당할 것이며, 불에 살라질 것이다. 바벨론이 불타는 것은 아마도 요한계시록 17장 16절을 가리킬 것이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는(살후 2:4) 마지막 때의 배도적 종교 체제는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라는 참 진리를 배울 것이다.
바벨론을 위한 애통 (18:9-24)
 본 단원에는 바벨론과 음란하게 협조했던 자들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부르는 애처로운 세 개의 애가가 나온다. 이 애가들은 고대의 만가(乾歌)나 장례의 애통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각 애가에는 같은 방식의 결론이 내린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 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계 18:10, 16-17a, 19). 이 “장송곡들은 급작스럽고 예기치 않았던 심판을 선언하는 역할을 한다.”14) 본 단원은 하늘과 신실한 자들에게 바벨론의 멸망을 기뻐하라고 요구하면서 끝난다(18:20-24).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임금들.
 요한계시록 17장 1-2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요한계시록 18: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멀리에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이 장면은 창세기 19장 28절을 생각나게 한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표로서 ‘옹기점의 연기같이’ 두 도시에서 올라가는 연기를 보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골짜기에 있던 두 도시의 멸망을 고대 바벨론의 운명에 대한 모델로 사용하였다. “열국의 영광이요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가 된 바벨론이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사 13:1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을 무너지게 한 것같이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 게 하며 그 중에 우거하는 아무 인자가 없게 하리라.”(렘 50:40) 이것은, 요한이 종말적 바벨론의 멸망을 묘사할 때, 그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고대 바벨론의 운명을 예언했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요한계시록 18: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땅의 상고들.
 이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로도 소개되었다(계 18:23; 사 23:2, 8 참조), 여기서 땅의 상고들은 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지배적인 경제적 또는 상업적 지도자들로서, 큰 성 바벨론은 그들의 재정적, 물질적 지원으로 성공하였다. 그들은 또한 상징적 상인들을 대표할 수 있다. 그들은 ‘바벨론의 영적 상품들’을 상 업적으로 판매한 사람들, 즉 “바벨론의 교리들과 정책들을 땅의 왕들과 백성에게 판매한 자들”을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15) 후자는 요한계시록 18장의 매우 상징적인 문맥과 부합하며 본 주석도 이 해석을 선호한다.
요한계시록 18: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각 선장.
 요한계시록 18장의 상징적 문맥은 상징적 선장을 암시한다. 땅의 상고들도 마찬가지이다(18:11의 어구 해설 참조).
요한계시록 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복술.
 헬라어 파르마케이아(pharmakeia 마술, 복술)에서 ‘약국, pharmacy’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오직 이 곳과 갈라디아서 5장 20절의 바울이 열거한 악의 목록에서 사용되었다. 관련 단어 파르마콘(pharmakon ‘마술’, sorcery)은 요한계시록 9장 21절, 21장 8절22장 15절에서 사용되었다. 이사야는 마술과 복술이 고대 바벨론의 몰락을 초래한 죄들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사 47:9, 12).

(주해)
 종말적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이 배도적 종교 체제와 연합하여 그 죄에 참여했던 자들에게 큰 슬픔과 애통을 줄 것이다. 18장의 나머지 부분은 세상의 지배적인 정치 세력들 과(18:9-10) 바벨론의 비유적인 상업적 세일즈맨들이 부르는 비통한 애곡들을 그린다(18:11-19). 그들의 애곡은 바벨론 자체에 대한 어떤 비통이 아니라, 바벨론의 멸망으로 인해 생긴 그들의 개인적 손실에 대한 애곡이다.
요한계시록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요한계시록 18: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종말적 바벨론의 몰락은 우선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땅의 왕들은 바벨론을 섬기도록 영향력과 권세를 행사한 마지막 때 세상의 지배적인 정치 세력들을 가리킨다(17:1-2 참조). 분명히 바벨론은 자원하여 자신에게 복종하지 아니한 세상 거민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이 정치 세력들을 통해 활동하였다. 정치 세력들은 바벨론의 오만과 매혹적인 부와 사치의 미혹을 받았다. 바벨론은 그들에게 안전과 안정을 약속하였다. 이제 그들은 그 견고한 성이 멸망되는 것을 보며, 어떻게 자신들이 그 거짓 약속에 의해 속 았는지를 깨닫는다.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의 정치적 권세가 속히 잃어버린바 될 것을 의미한다. 수 세기 전에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의 거주자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보응의 표로서 두 도시들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본 것처럼(창 19:28), 세상의 정치 세력들도 종말적 바벨론의 몰락을 목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멀리 서서, 바벨론을 태우는 연기를 볼 때 그 나라에 대하여 부르짖고 통곡한다.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함은 바벨론의 몰락을 보고 세상의 정치 세력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인정하게 되리라는 암시다. 바벨론의 멸망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만큼이나 확실하다(사 13:19; 렘 50:40 참조). 일시간이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의 반복은(17절과 19절에도 나옴) 바벨론의 함락 속도를 암시한다.16) 그것은 요한계시록 17장 12 절과 연결되는데, 그 곳에서 “일(한)시간”은 열 왕이 종말적 바벨론을 따돌리고 그 나라를 멸하는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17)
요한계시록 18: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요한계시록 18: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요한계시록 18: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요한계시록 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요한계시록 18: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요한계시록 18: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요한계시록 18: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또한 바벨론의 몰락은 바벨론과 장사하며, 그 나라의 엄청난 사치품으로 인해 부자가 된 땅의 상고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이 “땅의 왕족들”(계 18:23)은 ‘바벨론의 부패한 교리와 정책’이라는 영적 상품을 팔고 보급하는 비유적 소매상들이다.18) 그들의 비탄은 그들의 이기적 동기를 반영한다. 바벨론의 멸망은 “자신의 이름으로 판매, 배포되었고, 그것으로 세상을 속였던 부패한 상품의 유통이 종결됨”을 의미한다.19) 왜냐하면 아무도 그들의 상품을 더 이상 사지 않기 때문이다. 12-13절은 금, 은, 보석, 맵시 있고 비싼 옷들, 사치스런 장식품, 향수, 음식, 가축, 그리고 노예 등의 비유적 상품들을 길게 열거한다. 그것들은 바벨론의 “부패한 교리 들과 정책들”의 포괄성을 강조한다.20) 이 목록에 열거된 상품은 두로에 관한 운명의 노래에서 언급된 목록에 등장하는 사치스런 품목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겔 27:5-24). 바벨론이 즐겼던 사치스럽고 빛난 모든 것들은 사라졌다.
요한계시록 18: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요한계시록 18: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요한계시록 18: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애통하는 자들 중 마지막 그룹은 모든 선장과 선객과 모든 선인(船人), 그리 고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다. 이 곳에 사용된 비유적 언어는 두로의 멸망을 예언한 에스겔의 묵시에서 빌려왔다.

무릇 노를 잡은 자와 사공과 바다의 선장들이
다 배에 내려 언덕에 서서
너를 위하여 크게 소리 질러
통곡하고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며 ....
그들이 통곡할 때에 너를 위하여 애가를 불러
두로같이 바다 가운데서
적막한 자 누구인고(겔 27:29-32).
상인들과 선장들은 종말적 바벨론의 부와 사치에 참여하였다. 그들은 멀리 서서 바벨론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고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라고 애통한다. 이 수사학적 질문은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라는 말과 평행을 이룬다(계 13:4). 이것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라는 말의 모방이다(출 15:11; 시 35:10; 미 7:18). 바다 백성은 그들의 머리에 티끌을 뿌림으로써 그들의 쓰라린 비통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비통과 애통은 순전히 이기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의 부를 통해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한)시간에 바벨론은 망하였고, 그 들의 모든 부는 사라졌다.
요한계시록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바벨론의 멸망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원수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인 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하늘과 성도들은 즐거워하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 곳의 즐거움은 요한계시록 19장 1-10절에 묘사되어 있다. 즐거워하라는 이 말은 바벨론의 몰락을 예언한 예레미야의 말을 반향한다. “하늘과 땅과 그 중의 모든 것이 바벨론을 인하여 기뻐 노래하리니 이는 파멸시키는 자가 북방에서 그에게 옴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이 이스라엘 사람을 살륙하여 엎드러뜨림같이 온 땅 사람이 바벨론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하시도다.”(렘 51:48-49)

 종말적 바벨론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부당하게 고소하고 세상의 세속적, 정치적 권세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멸하고 그들의 피를 흘린 죄가 있다(계 18:24). 마지막 때 배도적인 종교 체제에 대한 심판은 압제받고 핍박받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이다. 더욱이 그 심판으로 사단과 그의 악한 군대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가 선언된다.
요한계시록 18: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요한계시록 18: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요한계시록 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이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요한은 결국 악은 완전히 궤멸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강조한다. 상징적 그림 속에서 요한은 큰 맷돌 같은 돌을 가지고 그것을 바다에 던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한 힘센 천사를 본다.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상징적 행위로써 돌을 바다에 던지는 모습은 예레미야 51 장 59-64절에서 빌려왔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의 멸망을 기록한 책을 돌에 묶어 유프라테스 강에 던지라 명하였다.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렘 51:64) 이것은 역사적 바벨론의 멸망이 그러하였듯이, 종말적 바벨론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멸망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천사의 행위는 마태복음 18장 6절의 표현을 상기시킨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바벨론은 그의 권세와 기만을 이 용하여 백성, 심지어는 ‘작은 자들’조차도 범죄하게 하였다.21)

 바벨론의 황폐는 그 도시의 모든 활동이 종지부를 찍는데서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더 이상 노래가 없고, 날마다 할 일이 없고, 세공업자가 할 일이나 맷돌 돌리는 일이 없고(18:22), 결코 등불이 다시 켜지지 않으며, 결혼의 즐거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18:23). 이 황폐한 상태를 묘사하면서, 요한은 배도한 도시들의 붕괴에 대한 여러 구약의 예언들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에스겔은 두로에 대하여, “내가 네 노래 소리로 그치게 하며 네 수금 소리로 다시 들리지 않게 하고”(겔 26:13)라고 예언하였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황폐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 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렘 25:10)
요한계시록 18: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요한계시록 18: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본 단원은 바벨론에 대한 고발과 그 멸망의 이유를 열거하면서 끝을 맺는다. 첫째, 너희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이것은 상징적 바벨론의 상업적 장사꾼들의 오만한 태도를 나타낸다. 그들은 바벨론을 섬기는 자리에 자신들을 두었다. 그들은 주로 바벨론의 “타락한 교리들과 정책들”을 팔고 배포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들이 위대하게 된 것은 바벨론 과의 불법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이것으로 그들은 자긍하고 자만하게 되었다. 바벨론을 고발한 두 번째 이유는 바벨론의 마술로 만국을 기만한 까닭이다. 마술은 마지막 때에 있을 일종의 특별한 마귀 활동이다(계 9:21 참조).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와 마술에 의해, 바벨론은 백성을 속이는 일에 매우 성공하였다. 이적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로 짐승의 표를 받게하고 최후의 위기에서 사단적 삼위의 편에 서게 하기 위하여(바다 짐승의 후원 하에서) 땅의 짐승이 사용한 수단이다(계 13:14; 19:20).

 마지막으로, 바벨론은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기 때문에 고소를 당하였다. 이것은 고대 바벨론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반 영한다. “바벨론이 이스라엘 사람을 살륙하여 엎드러뜨림같이 온 땅 사람이 바벨론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하시도다.”(렘 51:49) 마지막 때 배도적 종교 체제인 바벨론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부당하게 고소하고, 가혹하게 핍박하고, 그들의 피를 흘린 책임이 있다(계 18:24). 그녀는 심지어 죽임을 당한 자들의 피에 취하였다(계 17:6). 신원(伸寃)과 공의를 부르짖는 것은 바로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피다. 그 부르짖음은 다섯째 인의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6:9-11) 성도들을 멸망시킨 자들은 이제 심판을 받는다. “그들이 너희 목전에 시온에서 모든 악을 행한 대로 내가 바벨론과 갈대아 모든 거민에게 갚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51:24) 이 마지막 때 배도한 핍박 세력을 심판함으로써,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가(계 19:1-2에서 강조되었 듯이) 마침내 응답될 것이다.
18:1-24 뒤돌아보기
 요한계시록 18장으로 요한계시록 17장 14-17절에서 소개된 주제가 끝난다. 그 주제는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이 뒤늦게 속은 것을 깨닫고 바벨론에 대한 그들의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이전의 지지자들은 바벨론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며, 바벨론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다. 종말적 바벨론의 심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에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 진노는 나라들의 분노에 대한 그분의 응답이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의 멸망의 때가 이르렀다(계 11:18).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확실성은 책 전체를 통하여 바벨론의 몰락이 반복적으로 선언됨으로 강조되었다(14:8; 16:19; 17:16; 18:2, 21 참조).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은 하나님의 원수들과 하나님의 백성의 압제자들이 결국 완전히 패하게 될 것을 반복하여 다짐받는다.23)

 요한계시록 16-18장에 나타난 하나의 목적은 확고한 보증을 주는 것이다. 즉, 전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압제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쳤던 부당한 고난은 끝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원수이자 하나님 백성의 원수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보증한다(계 18:6, 20, 24; 19:2-3 참조).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나쁜 소식이 압제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좋은 소식이 된다. 그들에게 바벨론 멸망은 고난과 압제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보장을 의미한다. 미래는 희 미하여 불확실하며, 최후의 사건에 대한 묘사는 두려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신다. 그분은 공의로써 복음의 원수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영원한 기쁨의 나라는 시작될 것이다. 스트랜드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신다는 보증이 있다. 바로 역사 속에서 그 분은 그들을 양육하시기 위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며, 종말적 대 결말에서 그들을 온전히 옹호하실 것이며, 영생을 통하여 이해를 초월하는 큰 상급을 주실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동일한 주제를 취하여 아름답게 확장시켜 나간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결코 일반적인 성서 문학의 궤를 벗어난 일종의 엉뚱한 계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 기별의 핵심과 요지를 전달한다. 진실로 요한계시록이 강조하여 지적하듯이, 살아계신 분, 곧 죽음과 무덤을 정복하신 분(1:18)은 당신을 신실히 따르는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며, 그들은 순교를 당할 때에라도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생명의 면류관”(2:10; 21:1-4; 22:4 참조)을 가진 승리자들이다(12:11).24)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선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음과 조화되지 않는 어떤 종교 체제와도 개인적인 관계를 끊어버리라는 강력한 경종이다. 많은 진실한 백성이 여러 이유들로 바벨론에서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종교 체제에서 나타난 “경건의 모양”(딤후 3:5)으로 기만당할지 모른다. 어떤 종교 체제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취하여 이용할 것이며, “심지어는 성령으로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의 근원은 아래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알지도 못한 채 바벨론에 살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에 있다고 생각지 않지만, 바벨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바벨론을 반대하는 말을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역시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을 수도 있다(마 7:21 참조). 참된 복음을 가르치는 단체의 일원이 되었다고 하여 그가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보증은 아니다. 각 그리스도인을 향한 은혜의 호소는 그가 속한 종교 단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사해 보고 시험해 보라는 것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 즉 하나님께로 돌아와 바야흐로 바벨론과 그 경배자들 위에 내리려고 하는 심판을 피하라는 것이 복음 선포의 결론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1-4) 요한계시록 19장 1-10절이 보여주듯, 많은 사람들이 이 초청에 응할 것이다.

주(註) ——————
1. 예레미야와의 유사성 목록을 보려면. Aune, Revelation 17-22, 983을 참조하라.
2. Beale, 901.
3. Ladd, 238.
4. Beckwith. 715: J. M. Ford, 297-298: Hughes. 191: Beale, 901.
5. Kline. 177,
6. Caird. 222.                                                                                     
7. Ladd. 236: Aune, Revelation 6-16, 829.
8. Beale. 893.
9. 상게서, 895.
10. 상게서, 896.
11. Morris, 210.
12. Ladd, 238.
13. Beale. 902.
14. LaRondelle, How to Understand the End-Time Prophecies. 429.
15. The Seventh -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 :864.
16. Beale, 907.
17. 상동.
18. The Seventh -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864.
19. 상동.
20. 상동.
21. Sweet. 274.
22. The Seventh -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 : 864.
23. Morris. 196.
24. Strand, “The Seven Heads,” 206.
25. Paulien, The Bible Explorer,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