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 바벨론과 부활한 짐승 (17:1-18)
 ‘큰성 바벨론’의 몰락을 선언한 요한계시록 16장 19절은 도약판 구절의 역할을 한다. 이 구절은 마지막 일곱 재앙의 단원을 결론짓는 반면, 또한 요한계시록 17-18장을 소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6장 19절요한계시록 17-18장을 이해하기 위한 단초다. 두 장은 분명히 도약판 구절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이다. 그것은 종말적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이 어떻게 집행될 것인지를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도처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에 관한 묘사는 먼저 일반적인 것으로 시작한다. 이 형식을 따라, 요한계시록 17장은 종말적 바벨론의 심판 이유를 보여줄 목적으로 묘사하며, 요한계시록 18장은 배도한 이 종말적 종교 체제에 대한 심판과 바벨론의 종국을 그린다.

음녀 바벨론 (17:1-6)
 요한은 종말적 바벨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바벨론의 붕괴를 두 번이나 선언하였다. (계 14:8; 16:19). 이제 그는 바벨론을, 마지막 때 미혹하는 역할의 음녀로 소개하고 묘사한다.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많은 물 위에 앉은.
 이 표현은 예레미야 51장 13절에서 끌어왔다. 그 곳에서 말한 ‘많은 물 위’란 특별히 유프라테스 강을 의미한다. 이 상징의 의미는 요한계시록 17장 15절에서 설명된다 (계 16:12의 어구 해설 참조). “많은 물 위에 앉은”“붉은 짐승 위에 앉은”(17:3)으로, 후에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17:9)으로 바뀌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하다. 여기서 요한은 다시 ‘내가 들으니’‘내가 보니’의 기교를 사용한다. 요한은 먼저 이상 속에서 무엇인가를 듣는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보는 것은 동일하지만 달랐다. 그가 보는 것은 그가 먼저 들은 것의 다른 면인 것처럼 보인다(본서의 ‘서론’을 보라). 그러므로 17장에서 요한은 먼저 “큰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은” 것을 들었고, 후에 “붉은 짐승 위에 앉은 여자”를 보았다(17:4-5). 이는 물과 짐승과 일 곱 산이 동일한 존재, 즉 세상의 세속적, 정치적 세력을 가리킴을 암시한다.
요한계시록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요한계시록 17: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큰 음녀 ...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구약에서 음행은 종종 배도 한 도시들과 국가들 간의 연합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이사야는 두로를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한 도시라고 하였다(사 23:17). 나훔은 니느웨를 심판하는 이유를 “이는 마술의 주인 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 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였다(나 3:4). 음행이라는 언어는 종종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 간의 관계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이사야는 애통하여 이렇게 말한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사 1:21)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많은 무리와 행음”하였다고 한다(렘 3:1; 호 3-4장; 미 1:7 참조).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애굽 인, 앗수르 인, 그리고 갈대아 인 등을 포함한 ‘열국’과 행음하였다고 한다(겔 16:26-29; 23:3-30). 더욱이 요한계시록 17장 1-6절에 등장하는 큰 음녀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예레미야가 불신실한 예루살렘에 대하여 묘사할 때, 모델로 삼은 여왕 이세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렘 4:30; 왕하 9:30 참조).1)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종말적 바벨론과 세상의 지배적 정치 세력들 간에 있을 연합에 관한 묘사는 구약의 이 비유적 표현에 기초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17: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
 요한계시록 6장 10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이 짐승은 마지막 때 종말적 바벨론을 섬길 정치적 세력들을 상징한다(계 13:1의 어구 해설 참조).
참람.
 신약에서 참람이란 하나님과 동등하다거나(요 10:33; 참조 마 26:63-65) 하나님께만 있는 대권(막 2:7)을 주장하는 행위를 말한다. 요한계시록 13장 5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아마 공창(公)의 음녀들에게 이름을 새긴 이마 장식을 매게 했던 로마의 관습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2) 예레미야는 ‘창녀의 낯’(또는 ‘창녀의 이마’, RSV)으로 표현한다(렘 3:3). 이것은 또한 히브리 성소의식 중에 대제사장의 두 건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된 글을 상기시킨다(출 28:36-38).
비밀이라.
 ‘비밀’이란 말은 여자의 이마에 있는 명각(銘刻)의 한 부분이거나(비밀의 바벨론) 그 호칭에 붙은 접두어일 것이다. 후자가 더 적절한 것 같다. 바벨론은 문자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이제 그 비밀이 드러나야 할 비밀스런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신적 식별력을 부여받은 자들만이 그 이름의 완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큰 바벨론.
 요한계시록 14장 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주해)
요한계시록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요한계시록 17: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들을 집행한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큰 음녀의 심판을 보라고 말한다. 이 천사는 아마 바벨론의 붕괴를 선언한 일곱째 대접을 가진 천 사일 것이다(계 16:19). 이것은 천사가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 이제 막 요한에게 설명하려는 것은 여섯째 재앙의 묘사(계 16:12-16)에 대한 세부적 설명임을 암시한다. 후에 이 동일한 천사는 요한을 불러 그리스도의 신부, 즉 새 예루살렘을 보여준다(계 21:9), 로버트 H. 마운스는, 유혹할 수 있는 모든 매력과 매혹을 지닌 큰 음녀의 “가면이 벗겨지고 멸망될 때, 그리스도의 신부는 자신의 탁월한 아름다움과 참된 가치를 지닌 모습으로 나타날 것” 이라고 하였다.3)

 이 음녀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요한계시록 17장 5절에서, 요한은 그녀를 ‘큰 바벨론’이라 하였다. 구약에서 바벨론은 압제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상징이다. 요한은 마지막 때 국가와 동맹한 세상의 지배적인 배도적 종교 체제와 그것과 관련된 권세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바벨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계 17:18 참조). 조지 E. 래드는 올바르게 관찰하였다. “그 도시는 역사 적으로 1세기의 로마에서 등장하였으나, 그 악한 도시의 완전한 정체는 종말에 밝혀진다.”4) 마지막 때의 바벨론은 사단적 삼위, 즉 사단, 바다 짐승, 그리고 땅의 짐승 혹은 거짓 선지자와 연합한 세계적인 종교적 동맹체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기 위하여 정렬해 있으며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의 지지를 받는다(계 13:12-17 참조).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이 마지막 때의 배도한 종교 체제를 묘사하면서, 요한은 고대의 바벨론과 관련된 구약의 많은 구절들을 사용한다.5) 음녀 바벨론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 이 표현은 예레미야로부터 가져왔는데, 예레미야는 고대 바벨론이 유프라테스 강의 많은 물 곁에 거주하면서 재물을 많이 증식시키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람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렘 51:13) 후에 천사는 요한에게 음녀가 앉아 있는 물에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물은 상징적으로 세상의 세속적 권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마지막 때 바벨론을 섬기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할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다(계 17:15). 음녀가 이 세속적 권세들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계 17:3, 9, 15 참조) 그녀가 그들을 정복하고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래드가 말한 대로, 일세기의 “로마는 많은 나라들을 정복함으로 그의 힘과 주권을 행사하였다는 의미에서 그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온 세상을 미혹하여 하나님이 아닌 것을 경배하게 하려는 종말적 바벨론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6)

 더욱이 그 천사는 이 음녀가 땅의 임금들과 더불어 음행을 하였다고 설명한다(계 18:3, 9 에도 언급함). 여기서 말하는 ‘땅의 임금들’은 바벨론이라 칭하는 배도한 종말적 종교 체제를 돕는 일에 그 영향력과 권위를 행사할 세상의 지도적 정치 권세들을 대표한다. 그들과 바벨론과의 관계는 성적 음행으로 묘사된다. 바벨론은 분명히 “그에게 자원하여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땅의 거민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이 정치적 세력들을 통해 활동할 것이다.7)

 종종 구약에서 음행이라는 단어는 선지자들이 주변의 배도하고 불순종한 국가들과 부정한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사용하였다(렘 3:1-10; 겔 16:26-29; 23:3-30 참조). 에스겔은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라고 부르짖었다 (겔 23:30), 요한계시록 17장은 세상의 정치세력들이 경제적 이득을 위해 종말적 바벨론과 맺은 부정(不淨)한 동맹을 묘사하기 위하여 구약의 이 개념을 사용한다. 세상의 정치 세력들은 바벨론의 오만과 매력적인 부와 사치에 미혹될 것이다. 바벨론은 그들에게 안전과 안정을 약속한다.

 일차적으로, 세상의 정치 세력들을 유혹하는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는 그들의 지도를 따라 차례로 그의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계 18:3에도 나 온다), 사람은 취중에서 제대로 판단하거나 명확한 생각을 할 수 없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그릇된 결론을 내리게 한다. 종말적 바벨론은 기만에 의해 세계의 열국들을 다스릴 것이다.
요한계시록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이제 그 천사는 성령으로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가서 이제 막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될 음녀 바벨론을 보게 한다. 요한은 네 번이나 자신이 “성령 안에” 있었다고 말하였다(1:10; 4:2; 17:3; 21:10 참조). 이는 그가 보고 듣는 것은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계시에 의해 된 것임을 의미한다(벧후 1:20). 첫째,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다(1:10-18). 둘째, 요한은 4-5장에서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즉위식을 보았다. 셋째, 요한은 이상 가운데 “성령으로” 광야로 끌려갔다. 마지막으로, 어린양의 신부-도성을 보려고 “성령으로” 산에 이끌려갈 것이다(21:9-10), 17장 3절의 광야는 종말적 바벨론을 심판함에 있어 매우 적절한 배경인 것 같다. 광야는 1260일의 예언적 기간에 교회를 박해했던 “일곱 머리와 일곱 뿔을 가진 붉은 용”이 여자/교회를 추격하던 곳이다(계 12:6, 14). 그러나 여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교회를 핍박했던 장소가 이제는 바벨론을 심판하는 무대가 되었다. 묵시가 진행됨에 따라 요한은 붉은 빛 짐승 위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본다. 일찍이 요한계시록 17 장 1절은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 이는 그녀와 땅의 열국들과의 관계를 반영한다(계 17:15 참조). 여기서는 그녀가 짐승 위에 앉아 있는데, 이는 그녀와 세상의 정치세력들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8) 음행과 술 취함을 통하여 세상의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은 미혹되어 종말적 바벨론과의 연합에 들어갔다. 바벨론이 물과 짐승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이 종말적 종교 체제가 세상의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녀도 자신의 계획과 목적들을 강제하기 위하여 그들을 의존한다.

 붉은 색깔은 ‘짐승의 두려운 모습’을 더 두렵게 한다.9) 이 색깔은 요한계시록 17장의 짐승과 요한계시록 12장 3절의 붉은 용을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이 종말적 정치 세력과 사단 간의 긴밀한 관계를 반영한다.10) 진홍 혹은 붉은 색깔은 유혈과 압제의 색이다(왕하 3:22-23; 계 6:4 참조), 이사야는 음녀 예루살렘의 죄를 진홍색과 붉은 색깔로 묘사한다(사 1:15). 왜냐하면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사 1:15-23), 짐승의 붉은 색깔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음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계 17:6).11) 그 색깔은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하여 짐승의 압제적 성격에 매우 적합하다.

 바벨론이 앉아 있는 짐승과 관련하여 사용된 언어는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 짐승에 관한 묘사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다고 묘사된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용은 광야에서 여자를 뒤쫓는다고 묘사된다(계 12:3).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지고 있으며(13:1),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철저히 훼방하며(13:6-7), 용의 완전한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13:2). 그는 용이 광야에서 여자를 쫓는(계 12:6, 13-16) 마흔두 달 동안(13:5-6)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압제한다. 종말적 바벨론은 요한계시록 13장의 부활한 짐승 위에 앉아 있다. 이것은 최후의 쟁투에서 중심 역할을 할 요한계시록 17장의 종교 체제가 오랜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고 압제했던 정치 종교 세력의 연장 선상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 압제적인 종교 세력이 이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 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큰 음녀는 온갖 권세와 호사스러움을 과시한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다(18:16에도 언급됨), 여자 바벨론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아합 왕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의 왕비가 된 고대 페니키아의 공주 이세벨을 상기시킨다. 아합은 이스라엘을 배도로 끌고 갔다. 또한 믿음이 없는 신자들에 관한 예레미야의 언어를 반향한다. 상징적 예루살렘은 붉은 빛 옷을 입고 금장식을 하였다고 묘사되었는데, 예루살렘의 연인들은 예루살렘을 버렸다(렘 4:30), 그 여자의 자태는 요한계시록 21장의 신부 곧 도성과 거의 비슷하다(‘요한계시록 12-22:5 개관’을 보라), 이는 17장의 음녀가 종교적 계보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여자 옷의 자주색은 그녀가 올라앉은 짐승의 빛깔과 상응한다(17:3). 피와 압제의 빛깔로서 자주색은 ‘성도와 예수의 증인의 피에 취한’ 종교 시스템의 성격을 잘 묘사한다. 고대에 “자주색은 종종 왕의 복장에 사용되었다.”(삿 8:26; 스 8:15; 아 3:10; 단 5:7 참조)12) 음녀는 오만 하게 말한다.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계 18:7) 이는 그녀가 세상의 세속적, 정치적 권력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기 때문이다. 고대에 붉은 옷과 사치스런 치장은 유혹하기 위한 음녀의 복장이었다(렘 4:30). 또한 구약의 음란한 도시들은 호사스러움과 사치가 어우러진 부와 번영이 그 특징이었다(사 1:21-22; 렘 51:13; 겔 16:10-13; 나 2:9).

 종말적 바벨론의 장신구는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며져 있다. 찬란한 빛과 아름다움과 영속성의 특성을 가진 보석들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묘사하기 위하여 일관되게 사용되었다.13) 그러나 값지고 사치스런 바벨론의 장식은 땅을 정복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과 오만의 표현’이다.14) 금과 보석과 진주들은 영광의 새 예루살렘을 단장하고 있다(계 21:11), 이것은 음녀가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과 정반대임을 시사한다. 또한 바벨론의 사치스런 모습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대표하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는 어린양의 신부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계 19:8).

 음녀는 그녀의 손에 금잔을 들고 있다. 금잔은 가장 달콤한 술을 약속한다. 그러나 종말적 바벨론이 들고 있는 잔은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예레 미야는 바벨론이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된다고 말한다(렘 51:7-8). 종말적 바벨 론은 짐승을 경배하게 할 목적으로 그녀의 음행의 잔으로 모든 사람을 취하게 한다(계 14:8; 17:2; 18:3 참조).

 요한은 음녀의 이마에서 신적 비밀에 속한 한 이름을 본다.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바벨론은 용과 바다 짐승과 땅의 짐승으로 구성된 마지막 때의 세계적 종교동맹체로서 비밀스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사단적 삼위는 모든 거짓되고 배도적인 종교 체제들을 연합시킬 것이다. 이런 연합의 결과로 바벨론은 땅의 ‘음녀들의 어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에 등장하는 바벨론은 “우리의 어머니”인(갈 4:26) 하늘의 예루살렘과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바벨론과 제국 로마를 동일시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바벨론은 정치 세력이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종국에서 세상의 정치 세력들을 지배하는 종교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그 특성을 나타내듯이, 이 종말적 종교 세력은 구약의 바벨론적 특성을 지닌다. 구약의 바벨론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시작을 상징하며, 그것의 야심은 “하나님의 통치권과 자리를 찬탈하고자” 하늘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창 11:4; 사 14:13-14; 렘 51:53).15) 그러므로 바벨론은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저항과 모든 반역의 전형적인 근원이 되었다.16)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의 자녀들은 그들의 이마에 짐승의 표를 가지고 있다(계 13:17). 한편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여자의 후손들은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다(계 14:1).

 요한계시록 17장에서, 여자 바벨론의 묘사는 더 깊은 의도가 있는 듯싶다. 그 여자의 모습은 구약 성소 의식의 대제사장을 흉내 내고 있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자주색, 주홍 색 옷은 자주색, 주홍색 뿐만 아니라 금과 보석으로 꾸민 대제사장의 의복을 생각나게 한다 (출 28:4-35).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는 잔은 성소의 관제와 유사하다(출 29:40-41; 30:9; 레 23:13 참조). 그녀의 이마에 새겨진 글은 대제사장의 관(冠)에 새겨진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을 반대하는 내용이다(출 28:36-38). 이러한 인유들은 요한계시록 17장의 바벨론 여자의 모습이 마지막 때의 정치적 혹은 세속적 단체라기보다는 종교적 제도를 가리키는 것임을 시사한다. 그 여자는 옛날 바벨론이 그러했듯이 마지막 때에 세상을 배도로 유혹할 강력한 사단의 도구가 된다.

 종말적 바벨론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추종자들을 박해한 오랜 역사가 있다. 요한은 그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것을 보았다. 이것은 분명히 요한계시록 13장 14-17절에 언급된 성도들의 핍박을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반역의 어미는 최후의 위기 때에 내릴 사형 명령에 책임이 있다. 만민을 그녀의 음행으로 취하게 한 바벨론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신실하게 증언하다가 목숨을 잃은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다. 바벨론의 심판은 압제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올리는 탄원, 곧 다섯째 인의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그들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계 6:10)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그들의 피를 흘린 압제자들을 이제 막 심판하려 하신다.17)
부활한 짐승 (17:6-18)
 요한계시록 17장 1-6a절은 일반적으로 종말의 배도 세력인 바벨론을 묘사하며, 또한 바벨론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하여 약간의 배경을 제공한다. 17장 6b절을 시작으로, 이제 요한은 특별히 음녀 바벨론이 앉아 있는 짐승의 정체와 관련하여 그리고 마지막 때 그 짐승의 역할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무저갱.
 요한계시록 9장 1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관하여는 요한계시록 11장 7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야르보 콜린즈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요한계시록 9장의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마귀적 메뚜기들과 연관시킨다.18)
요한계시록 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요한계시록 13장 8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일곱 산.
 이 곳의 헬라어 오로스(oros)는, 일곱 언덕의 도시로 알려진 로마를 말한다고 생 각하는 (NIV 번역자 같은) 어떤 번역자들이 사용한 ‘언덕’ 이라기보다는, ‘산’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현대 주석가들은 바로 이것이 요한계시록 17장의 큰 음녀를 로마제국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일세기에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건축된 도시로 널리 알려 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맥에 의하면, 여기에서 의도한 것은 제국 로마가 아닌데 이는 음녀가 앉아 있는 산들은 ‘일곱 왕’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요한이 곧 이어 설명하기 때문이다(계 17:9-10), 구약에서 ‘왕들’은 종종 ‘왕국들’을 의미한다(단 7:17 참조). 그러므로 로마의 일곱 언덕과 연속적인 일곱 왕국들 간에 어떤 실제적인 연결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구약에서 산은 자주 왕국이나 제국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결코 개인 통치 자에 대한 상징으로는 사용되지 않았다(계 8:8 어구 해설 참조).19) 게다가 일곱 산들과 일곱 머리들은 병행하기보다는 연속적이다(계 17:10-11 참조).20) 만약 음녀가 일곱 언덕에 위치한 로마시를 대표한다면, 그 상징성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왜 특별한 신적 지혜가 요구되는가(계 17:9)라는 질문이 생긴다. 존슨이 말하듯이, “신적 지혜가 필요할 때마다, 묘사는 단순히 지리적, 숫자적인 통찰력이 아닌 신학적, 상징적 식별력을 요구한다. (13:18 참조).”21) 조지 E. 래드가 제시하듯이, 큰 음녀는 “연속적인 제국들 위에 앉아 있다. 그녀는 자신의 화신을 역사적 바벨론에서, 일세기의 로마제국에서, 그리고 시대의 끝인 종말적 바벨론에서 찾았다.... 단순히 하나의 어떤 역사적 도시와 동일시 할 수는 없다. 그 여자는 그녀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될 때 마다 당대의 기존 세계 권력과 음란한 관계를 맺었다.”22) 앨런 존슨(Alan Johnson)도 동일한 맥락에서 말한다. “바벨론은 마지막 때의 사단적 기만과 권세를 상징한다. 그것은 세상의 제도 들에만 전적으로 한정시킬 수 없는 신적 오묘다. 신적 체제는 새 예루살렘에 의해 묘사되어 있는 반면, 바벨론은 하나님 없는 세상의 총체적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는 전체 체제 중 하나의 출현에 불과하다.”23)
요한계시록 17: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일곱 왕.
 현대의 여러 주석가들은 일곱 왕을 로마의 황제들로 해석한다. 즉, 다섯 황제는 망하였고(Augustus, Tiberius, Caligula, Claudius, Nero), 요한 당시에 한 황제는 통치하고 있었고(Vespasian), 그리고 일곱 번째는 차기 황제가 될 티투스(Titus)이며, 아직 등장하지 아니한 여덟 번째는 네로가 환생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다. 이런 맥락의 해석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최초의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가 아니라 율리우스 시저 (Julius Caeser)였다. 아우구스투스로 시작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일곱 왕에 다 여덟 번째 왕을 만들기 위하여 학자들은 목록에서 갈바(Galba), 오토(Otho), 그리고 비텔 리우스(Vitelius)를 제외시켰다. 왜냐하면 그들의 통치 기간은 짧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로 시작하고 세 황제를 배제한다면, 이 해석은 베스파시아누스를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의 황제로 만드는 셈이다(A.D. 69-79). 그러나 증거들에 의하면,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A.D. 81-96)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 같다.24)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그 짐승은 “시방은 없”으나 종말 전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세 번이나 언급되었다(계 17:8, 11).

 ‘죽게 된 상처’ 또는 ‘시방은 없으나’에 해당하는 기간을 네로의 자살에 적용하고, 상처가 낫게 되는 것을 일세기 말의 도미티아누스에 의한 새로운 박해에 적용하는 네로 레디비부스 Nero redivivus 신화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배척을 받았다.25) 야르보 콜린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요한이 예상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요한은 그가 살던 당시의 통치자였던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돌아온 네로로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요한이 ‘하나는 있고’에 해당하는 시기, 곧 여섯 번째의 통치 시기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는 것에는 하등의 의심할 이유가 없다. 만약 도미티아누스를 돌아온 네로로 생각한다면, 요한은 여덟 번째 왕 때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하는 셈이 되었을 것이다.”26)

 또 다른 해석은 일곱 왕들이 일련의 연속적인 일곱 개의 세계적 권세들 또는 제국들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교회로 세운 때로부터 재림 때까지 전 역사에 걸쳐 그분의 백성을 압제하였다. 일곱 머리/왕의 적용에 두 개의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 최근에 어떤 저자들은 머리들/왕들의 순서가 요한의 관점에서보다 종말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27) 이 해석에 의하면, 망한 다섯 왕은 바벨론, 메대-바사, 헬라, 제국 로마, 그리고 기독교 로마(계 13장의 바다 짐승) 등이다. 여섯째 왕은 요한계시록 11장의 짐승(프랑스 혁명)이고, 일곱 번째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어린양 같은 짐승이며, 여덟 번째 왕은 부활한 기독교 로마다(계 17장의 짐승). 이 견해의 취약점은 현재의 ‘있고’와 동일시되는 머리/왕에 관한 해석에 있다. 본 주석은 ‘있고’에 해당하는 여섯 번째 머리/왕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때, 곧 요한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8) 다시 말하면, 천사는 머리들/왕들의 신원을 요한에게 밝혔다. 그것은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했을 때, 그에게 의미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망한 다섯은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 애굽은 세계적인 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을 압제하였다.

 ● 앗수르는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며, 열 지파를 중동 전역에 흩은 책임이 있었다.

 ●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멸망시켰고,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

 ● 에스더 여왕 당시에 메대-바사는 유대인을 거의 멸절시킬 뻔하였다.

 ● 헬라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통하여 유대인들을 압제하였고,

 ● 그들의 종교를 말살하려 하였다.


 요한 당시에 세계를 통치하고 교회를 압제했던 왕국은 제국 로마였다. 요한의 관점에서 장차 올 일곱 번째 왕, 곧 중세의 교권적 기독교로 지칭된 왕은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에서 죽게 된 상처를 가진 짐승으로 대표되어 있다. 여덟 번째 왕은 종말 전에 죽게 된 상처가 나아 세계 무대에 등장할 짐승을 가리킨다.

 이 해석은 제국들의 계승에 대한 가장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하며, 요한계시록 17-18장의 문맥에 가장 잘 맞는다. 이 모든 왕국들은 종교와 국가의 연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왕국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였고, 그들을 멸망시키려 했던 책임이 있었다.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헬, 올리곤 아우톤 데이 메이나이 oligon auton dei meinai). 사단 이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올리곤 카이론 에케이 oligon kairon echei 12:12) 것을 인식하였듯이, 이 표현은 양적이기보다는 질적인 의미를 지닌다. 다른 말로, 사단의 시간이 제한되었다. 이것은 20장 3절에서 사단에게 임박한 심판과 관련하여 그에게 정해준 미크론 크로논 (mikron kronon ‘짧은 시간’)과 대조를 이룬다.
요한계시록 17:11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이라는 표현은 ‘고대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비명(碑銘)’으로서 ‘생존했다가’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을 의미하였다.
요한계시록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열 왕.
 네로 레디비부스의 견해를 주장하는 몇몇 현대 주석가들은 열 왕을 열 명의 파르티아 태수들로 해석한다. 이들은 부활한 네로의 지도하에서 그가 제국의 권세를 다시 쟁취하도록 동쪽에서 침공하여 그를 도왔다고 한다.30) 이런 식의 해석은 열 명의 태수가 아니라 열네 명의 태수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설득력이 없다. 요한은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미래의 실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들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마지막 때, 즉 짐승이 나타날 때 나라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예언의 성취는 성취가 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열 왕’은 이런 식으로 해야 가장 잘 이해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스본 베크위드(Isbon T. Beckwith)가 열 뿔을 “적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될 땅의 모든 국가의 총체적 권세를 대표하는 순전히 종말적 존재들”로 (내 생각에는) 올바르게 보는 것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으리라.31)
요한계시록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그 살을 먹고.
 구약에서 누군가의 살을 먹는 것은 원수의 잔인한 행동이다. 다윗은 그의 살을 먹으려고 오는 악인들에 대하여 불평하였다(시 27:2). 미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살을 먹은 이스라엘의 악한 통치자들에게 거슬리는 말을 하였다(미 3:2-3; 참조 렘 10:25).
불로 사르리라.
 구약에서 불사르는 것은 무서운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형벌이다. 만일 남자가 아내와 그 어미를 함께 취하면, 셋 다 불로 태워야 했다(레 20:14). 제사장의 딸에게도 성적 부도덕의 죄를 지은 것이 발각되면 마찬가지의 형벌이 주어졌다(레 21:9). 종말적 바벨론의 형벌을 묘사하면서, 요한은 모세의 법에 속한 성적 부도덕에 대한 형벌의 주제를 사용하며, 그것을 음녀 예루살렘에 집행된 심판에 관한 에스겔의 묘사와 결합시킨다(겔 16:38-41; 23:22-29).
(주해)
요한계시록 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요한계시록 17: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요한은 여자의 특이한 모습에 몹시 놀란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나 놀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한 가지 놀란 이유는, 음녀의 심판을 보게 될 것을 일찍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호사스럽고 의기양양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요한이 놀란 진짜 이유는, 이 유혹적인 여자가 아는 여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여자를 광야에서 보 았다는(17:3) 사실은, 요한이 12장에서, 광야에서 보았던 다른 여자를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는 “한 때, 두 때, 반 때”(12:13-14) 동안 하나님께 충성한 교회를 뜻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두 여자처럼 보이는 상징들이 다른 시간, 다른 상황에 있는 동일한 종교 단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섬겼던 참 교회가 마지막 때에 믿음을 타협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반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이 바벨론 여자를 볼 때에 깜짝 놀랐던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백성이 요한계시록에서 여자라는 이름 대신 여자의 남은 후손이라고 불렸는지를 설명한다(12:17). 한 때 하나님의 참 교회였던 여자가 마지막 때에 충성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 즉 남은 무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증거를 가진 자들”(12:17)을 멸망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 천사는 놀라는 요한에게 그 여자와 그를 태우고 있는 짐승의 비밀을 설명해 주기로 약속한다. 이것은 다소 의외의 일처럼 보이는데, 이는 요한이 음녀의 비밀로 당혹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천사는 짐승의 비밀도 설명해 주기로 약속한다. 비밀에는 여자와 짐승이 포함된다. 그것은 바벨론과 짐승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둘은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다. 이는 그녀의 특성과 권세가 짐승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32) 짐승의 신원을 이 해하는 것은 종말적 바벨론의 참 성격을 이해하는 열쇠다.

 천사는 요한에게 바벨론이 앉아 있는 붉은 빛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자라고 설명한다. 짐승의 신원을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으나 장차 올라올 자로 말하는 것은 요한계시록 4장 8절의(또한 1:4, 8)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이신 하나님의 칭호에 대한 모방이다. 이 칭호는 언약의 이름인 여호와를 지칭한다.

 하나님을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로 언급한 것은 하나님의 종말적 ‘보응’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전에도 있었고 시방은 없으나 무저갱으로부터 장차 올라올 짐승은 마지막 때에 행할 그의 역할과 활동을 가리키기도 한다.33)

 세 시기로 구성된 방식은 짐승이 그의 존재의 세 국면을 경험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짐승의 과거/현재/미래의 세 국면은 일곱 머리의 국면과 동일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전 존재를 통하여 짐승은 역사상 각기 다른 기간에 머리들 중 하나를 통하여 압제적 통치를 행사한다.34) 로버트 L. 토머스가 관찰하듯이, “짐승의 각 머리는 주어진 기간 동안 통치하는 사단적 세력의 부분적 화신이다.”35) 첫째, 짐승은 이전에 있었다. 이것은 필시 요한계시록 13장의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인 바다 짐승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의 머리들 중 하나 일곱 번째 머리(계 17:10 참조)는 상처를 받아 죽게 되었다. 짐승은 일시적으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아난다. 이제 그는 ‘시방은 없으나’ 시기에 있는 셈이다. 즉, 짐승이 무대에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는 잠시 죽어 있다. 그런데 그의 죽게 된 상처가 나은 후에 그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종말 전에 “분노를 되살리며” 다시 나타난다.36)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온다는 사실은 두 증인을 죽인 요한계시록 11장 7절의 짐승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앞서 무저갱 혹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못이 귀신의 처소임을 보 았다(눅 8:31; 벧후 2:4; 유 6 참조), 이는 음녀 바벨론이 앉아 있는 짐승이 마귀로부터 왔음을 시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무저갱은 죽은 자들의 처소, 즉 지하 세계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롬 10:7 참조), ‘무저갱’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짐승이 죽게 된 상처를 받아 세계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37) 마지막 때에, 이 짐승은 완전한 사단적인 힘을 발휘하여 (satanic manifestation) 무저갱에서 올라올 것이다(살후 2:8-12 참조). 그러나 그는 자기 위에 앉아 있는 음녀 바벨론과 함께 멸망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동안만 나타날 것이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졌다(계 19:20).

 짐승의 이 놀라운 모습은 그들의 이름이 창세로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들, 곧 땅에 거하는 자들로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게 만든다. 이것은 그의 죽게 된 상처가 나은 후 다시 나타난 바다 짐승을 보고 “온 땅이 놀랐던” 요한계시록 13장 3-4절의 반복이다. “그 이름 이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땅에 거하는 자들은 다 짐승에 게 경배하리라.”(계 13:8)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기만을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과 17장 8절 사이의 언어적 유사성은, 종말적 음녀 바벨론이 올라앉아 있는 짐승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추종자들을 오랜 세월 핍박했던 요한계시록 13장 1-9절의 동일 한 종교-정치적 세력임을 확증한다.

 이 종교-정치적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지 않은 수세기의 침묵 기간이 지나고 그 힘을 완전히 회복하게 될 때, 그것은 땅의 거민들로 놀라게 하고, 전에 있었으나 시방은 없고 장차 올 짐승에 대한 경외심을 갖도록 할 것이다. 비록 세계적인 종교-정치적 연합이라는 것을 오늘날에는 상상하기가 어려울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비록 잠간 동안이나마 바벨론을 섬기는 일에 자신들을 내어줄 것이다(계 17:10 참조).
요한계시록 17: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요한계시록 17: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천사는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다고 말한다. “네가 보는 것들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혜가 여기 있다.” 여기서 지혜는 사물의 진정한 성질을 이해하는 영적 통찰을 가리킨다. 짐승을 이해하는 데는 뛰어난 정신적 지적인 활동보다 영적 식별력이 요구된다. 이것은 성령에 의하여 신자에게 주어질 뿐이다. 이 지혜는 일찍이 바다 짐승의 수수께끼 같은 수(數)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하여 요구되었다(계 13:18).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서만, 신실한 자들은 종말의 불경건한 세력의 참 성질을 알아내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는 우선 짐승의 존재와 그의 활동들은 그의 머리들이 상징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 짐승은 긴 역사에 걸쳐 연속되는 머리들을 통하여 활동하였다.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이요. “그 위에 그 여자가 앉아 있다”는 표현은 산들이 세상의 세속적, 정치적 세력을 대표하는 “많은 물”과(계 17:1) “붉은 빛 짐승”(계 17:3)과 동일하다고 암시한다.

 어떤 오해도 피하기 위해, 천사는 곧 이어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은 일곱 왕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세상의 권세들 또는 제국들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단 7:17 참조). 일곱 산은 역사를 통하여 세계를 지배한 연속적인 세상 권력들을 대표한다. “사단은 그 세상 권력들을 통 하여 각 시대의 하나님 백성을 압제하여 왔다.”38) 그러므로 큰 음녀는 “무신론적 세속 왕국들을 통하여 연속적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짐승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자신을 발견한다.”39) 망한 다섯은 분명히 요한의 시대 이전에 세계를 다스렸던 애굽,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고 헬라 제국 등이며, 여섯째는 요한 당시의 로마제국이다. 장차 등장할 나라의 정체는 요한의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미래에 나타날 나라다. 일세기의 독자들이 이 곳 본문에서 취했을 적용과는 상관없이, 요한은 분명 제국적인 바벨론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말적 바벨론을 지칭하고 있다. 이 세계적인 정치 세력은 잠시 동안 계속할 것이다. 즉, 그 세력은 망하게 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이 흑암의 군대에 대하여 궁극적이고 확실한 승리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살후 2:8 참조).
요한계시록 17:11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천사는 전에는 있었으나 시방은 없는(계 17:8 참조), 여자가 올라앉은 짐승여덟번째요 일곱 중의 하나라고 부연 설명한다. 최후의 위기 동안에 바벨론을 섬기는 이 세계적 정치 세력은 “다른 일곱과는 같지 않다는 의미에서 여덟 번째”로 등장한다.40) 그러나 그것은 일곱 중 하나다. 아마도 로마 이후에 등장한 일곱 번째 머리일 것이다(계 13장), 즉, 이것은 성도들을 대적하여 전쟁을 하려고 로마에서 일어난 다니엘 7장 21-25절의 작은 뿔로 언급된 나라일 것이다. 그 짐승이 “전에 있었다가 시방은 없다”고 하는 것은 그가 어느 시점에서 죽었다는 것과 그 이후에 살아날 것을 암시한다.41) 이것은 “죽었다가 세세토록 살아 있는”(계 1:18; 2:8; 5:5 참조) 그리스도에 관한 서투른 모방이다.42) 그러므로 마지막 때, 일곱 번째 머리가 여덟 번째 메리에서 다시 나타나 이전 어느 때보다 더 큰 권세와 권위를 행사한다. 이 종말적 정치 세력은 역사상 모든 시대를 통하여 세계의 압제 세력으로서 존재했던 이전의 일곱 머리들과 매우 흡사한 역할을 한다.43) 우리는 분명히 일곱째 머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열 왕국과 연합한 여덟 번째의 나라가 아직 무저갱에서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세계 무대에 나타날 것이다. 그는 잠시 동안 나타날 것이며, 그런 다음 그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고자 하는 목적을 수행할 수 있기 전에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다(계 19:20).
요한계시록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17: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이제 천사는 음녀 바벨론이 앉아 있는 짐승의 열 뿔의 신원을 공개한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이것은 다니엘 7장 7절과 24절에 대한 인유다. 이 열 왕은 세상의 나라들과 강력한 동맹을 이룬다. 그들의 신원은 본문에 명시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이전 역사에 관한 암시도 없다. 그들의 신원을 나토, G8 혹은 유럽 연합 같은 정치 세력들 중에서 찾아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를 짐승을 섬기는데 놓을 세계의 모든 나라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 견해들 중 어느 하나가 맞는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본문이 그 들의 신원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있다면, 오직 마지막 때에 짐승이 죽게 된 상처에서 나은 후에야 그들이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열 왕은 짐승과 함께 일시 동안(in one hour) 세계에 대한 지배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정치적 연합은 여덟 번째 머리, 곧 최후 위기의 때에 속하는 것이다. 본문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바는 열 왕은 짐승과 불가 분리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열 왕은 공동으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세와 능력을 짐승에게 준다. 이 열 왕이 누구이건,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들은 분명히 “짐승의 권세의 마지막 국면”을 이룬다.44) 그들은 세상의 지배적 정치 세력으로 구성된 종말적 연합체를 대표하는 존재로서, 사단적 삼위의 권위에 복종할 것이다. 열 왕은 최후의 위기에서 종교 정치적 동맹체를 만들어내는 일에 지주가 될 것이다. 짐승은 그 열 왕을 이용하여 자신의 계획과 목적들을 강요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열 왕은 어린양과 전쟁을 할 것이다. 이 절정의 전투는 이 시점에서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대 종말적 결전에서 벌어질 최후의 싸움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실한 백성, 즉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고 택함을 받은, 또 한 가장 격렬한 핍박의 와중에서도 끝까지 충성한 자들을 대적하는 싸움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최후의 싸움은 분명히 정치적인 싸움이라기보다 신학적 싸움이며, 군사적 싸움이라기보다 영적 싸움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패배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목적은 자신이 패배하며 역전될 것이다. 어린양이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은 다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누가 능히 이[짐승]로 더불어 싸우리요?”(계 13:4)45) 그 대답은 어린양이다. 이는 그분 이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9장 17-21절에 자세하게 묘사된 바를 요한계시록 17장 14절은 요약하여 제시한다. 최후의 전쟁은 그리스도의 승리로, 하나님과 그분의 신실한 백성을 대적하였고, 바벨론을 충성스럽게 지원했던 세계적 동맹체의 궁극적 파멸로 끝날 것이다.
요한계시록 17: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요한계시록 17: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제 천사는 종말적 바벨론이 거주하는 물의 신원-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로서 유프라테스 강이라고-을 밝힌다. 구약에서 물은 종종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을 지칭할 때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시 18:4; 124:2-5; 사 8:7-8; 렘 47:1-2), 바벨론이 앉아 있는 물은 바벨론으로 알려진 종말적 종교 체제에 연합하여 충성을 다할 세계의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상징한다. 이 대중적 지원은 잠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최후의 장면에서 그림은 갑작스럽고도 극적으로 바뀐다. 술 취한 음녀의 애인들, 열 뿔과 충성스럽게 바벨론을 지원했던 짐승이 이제 술에서 깨어나 그들의 정부(情婦)에게서 등을 돌린다. 여기의 언어는 무신한 예루살렘에 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근접하게 메아리친다.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4:30).
이 시점까지 충성스럽게 바벨론을 지원했던 바로 그 세력들이 그들의 지원을 철회하고 반대하여 돌아선다. 여기서 여섯째 재앙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바벨론이 앉아 있 던 유프라테스 강은 고갈된다(계 16:12). 세계에서 바벨론을 우세하도록 만들었던 정치적, 세속적 세력들이 지원을 중지하고 바벨론에서 돌아선다. 이 곳에서는 그러한 급작스런 반전(反轉)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16장의 내용은 거의 확실히, 속임을 당한 세계의 지배적 정치 세력들이 세상에 내리는 재앙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함에 있어 무능력을 드러낸 바벨론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며(계 16:10-11, 19 참조), 그들은 합세하여 바벨론에게서 자신들의 충성스런 지원을 철회하였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대단한 증오와 적대감으로 음녀를 미워할것이며, 그녀를 파멸로 빠뜨릴 것이다.46) 이것은 구약의 예언들을 상기시키는데, 그 예언에 의하면, 종말의 혼돈 상태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은 피차 대적한다(겔 38:21; 학 2:22; 슥 14:13).47)

 환멸을 느낀 전 세계적인 정치 세력들은 바벨론을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을 것이다. 이 잔인한 행위는 극단적인 적대감과 증오에서 나오는 것이다(시 27:2; 미 3:3 참조), 열렬하게 사랑했던 자들은 적대적인 증오자들이 되었다. 그들은불로 바벨론을 아주 사를 것이다. 이 잔인한 행위들은 음녀 예루살렘에 내린 심판을 묘사한 에스겔의 예언들 중 하나를 상기시킨다.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 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겔 16:37-41).
내가 너의 연애하다가 싫어하던 자들을 격동시켜서 ... 그들이 분노로 네게 행하여 네 코와 귀를 깎아버리고 ... 그 남은 자를 불에 사르며 또 네 옷을 벗기며 네 장식품을 빼앗을지라 ... 그들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네게 행하여 네 모든 수고한 것을 빼앗고 너를 벌거벗겨 적신으로 두어서 네 음행의 벗은 몸 곧 네 음란하며 음행하던 것을 드러낼 것이라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로다(겔 23:22-29).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에서, 음녀는 이전의 애인들로부터 형벌을 받게 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음녀가 받는 형벌은 구약의 성범죄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정해진 형벌인 돌에

 맞아 죽는 벌이 아니라 불에 타서 죽는 벌이다(신 22:20-24; 요 8:5 참조), 불에 태워 죽이는 형벌은 제사장의 딸이 음행하였을 경우에 해당되는 벌이다(레 21:9), 음녀 바벨론의 운명이 돌에 맞는 것이 아니라 불에 타는 것으로 묘사된 것은, 17장의 여자가 정치적 세력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세력임을 가리키는 더 깊은 표다. 이 세력은 한때 하나님께 충성된 교회였지만, 마지막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을 반대할 세력으로 바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이 장면에서 우리는 사단의 왕국의 모양새를 본다. 각 세력이 그 선임자를 망하게 한다(바벨론은 앗시리아를, 페르시아는 바벨론을 망하게 하는 등). 마침내 아마겟돈 전쟁은 “이 순환 고리를 끊어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개입하셔서 압제의 역사를 끝내신다.48)
요한계시록 17:17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바벨론을 파멸시킨 분은 하나님이라고 천사는 부연하여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그들은 짐승의 목적을 이루고 있다고 믿으나, 지배적인 정치 연합 세력들은 사실상 바벨론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무의식적으로 수 행하고 있다.49) 이것은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살후 2:10-12)이라는 바울의 말을 반향한다. 요한계시록 17장 17절에 관하여 윌리엄 바클리는 “이 배후에 있는 진실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사에 대한 통제의 끈을 놓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신다”50)고 말한다. 종말적 세력들이 합심하여 바벨론을 섬기도록 허락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 이 손을 떼실 때, 연합 세력들은 “즉시 바벨론에 등을 돌리고 그녀를 멸망시킨다.”51) 하나님께서는 이 곳에서 완전히 통제하고 계신다. 악인들은 그분이 허락하시는 것 이상의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52) 최후의 위기는 하나님의 목적들을 궁극적으로 이루게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7:18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우리는 요한이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들을 이끌어들여 부정한 관계를 맺게 한 음녀의 이미지를 통하여 마지막 때의 세계적 종교 동맹체를 묘사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런데 그 동맹체는 사단 자신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악한 종교 체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종교 체제는 이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요한은 비유를 음녀에게서 큰 성으로 전환한다.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음녀 바벨론과 큰 성 바벨론은 동일한 신분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동일한 종말적 종교 체제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제 이 종말적 종교 체제에 대하여 내리기 시작한다.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심판을 경제 무역을 통해 부국이 되었던 고대 바벨론의 몰락을 통하여 묘사한다.
17:1-18 뒤돌아보기
 요한계시록 17장은 종말적 바벨론의 몰락의 원인인 여섯째 재앙의 유프라테스 강의 고갈이라는 주제를 상세히 설명한다(계 16:12). 본 장의 첫 부분은 큰 성 바벨론을 ‘많은 물’ 위에 거하며,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의 부활한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로 밝힌다. 이 종교 세력 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종말적 핍박과 압제의 배후에 서 있다. 땅의 거민들에게 미치는 바벨론의 우세한 영향력은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7장 14-17절이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유프라테스 강의 고갈은 바벨론의 지지가 철회되는 것을 상징하며, 그 때 세상의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바벨론에게서 등을 돌리며 그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의 부활한 짐승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단의 최후의 노력에 관하여 더 자세히 다룬다. 놀랍게도,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종말 적 바벨론은 요한계시록 21장 10절-22장 5절에 소개되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사악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요한은 바벨론을 묘사하면서, 후에 그가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과 관련된 언어를 사용한다.53)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과 음녀 바벨론과의 부정한 관계는 어린양과 그의 신부 새 예루살렘과의 사랑의 관계와 대조를 이룬다. 두 도성의 묘사 사이에 나타난 평행구적 대구(對句)는 ‘개관: 요한계시록 12장 1절-22장 5절의 도표에 나온다.

 두 묵시 간의 언어적, 개념적 유사성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우선, 두 도성에 관한 설명은 일곱 대접을 가진 동일한 천사에 의해 요한에게 알려졌다. 두 설명은 초청으로 시작된다. “오라 내가 네게 보이리라...”(계 17:1; 21:9), 그 후 요한은 “성령에 이끌려 갔다.” (계 17:3; 21:10) 이어서 그는 음녀 바벨론과 그리스도의 신부 새 예루살렘을 각각 보았다. 새 예루살렘은 이 땅에 서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의미인 것처럼, 바벨 론은 종말적 배도 체제의 중심이며, 세상을 정복하려는 사단의 야심을 의미한다.

 이어 나오는 대조적인 평행구들은 두 여자 도성에 관한 묘사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값지고 호사스럽고 사치스러운 장식은 바벨론의 자기 영광과 부패를 드러낸다. 바벨론과의 불법적 인 관계를 맺는 것은 그 목적이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유혹하는 데 있다(계 17:45). 다른 한 편으로, 새 예루살렘을 치장하는 찬란한 빛과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 목적은 백성을 구원과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끌기 위함이다(계 21:11, 23-24). 바벨론은 귀신들과 온갖 더러운 것들의 처소다(계 18:2). 새 예루살렘은 “사람들 중에 있는 ... 하나님의 장막”이다(계 21:3). 두 도성과 연관을 맺은 사람들 사이에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뚜렷이 구분되었다(계 17:8; 21:27 참조).

 마지막으로, 두 도성의 운명은 하나의 선언과 함께 예리하게 구분되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는 그분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게 할 것(계 16:19)과 목마른 자들에게는 생명샘을 거저 마시게 할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계 21:6), 시들어가는 온갖 영광으로 치장한 바벨론은 그 거민들과 함께 멸망과(18:8) 어두움(18:23), 그리고 황폐를 당하여(18:6-7),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18:21), 새 예루살렘은 “세세토록” 그 거민들에게 안전과 안정의 삶을 제공한다(22:5). 로베르토 바데나스(Roberto Badenas)는 “순결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말하자면, 거만하고 악하고 부패 한 바벨론의 파멸과 대조를 이룬다”고 하였다.54)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 요한계시록의 종말적 부분(12-22장)과 관련된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계속된다. 이 신학적 주제 속에는 세상 역사의 끝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 행위들을 모방하는 사단의 모조품, 즉 삼위 하나님, 최후의 복음, 하나님의 참 경배자들의 신원을 밝히는 표 등에 대한 모조품들, 그리고 이제는 가짜 도시라는 모조품도 포함된다. 바벨론을 그리스도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의 모조품으로 밝힘으로, 요한은 마지막 때의 두 주요 종교 체제 간에 드러난 대조를 보여주려고 한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로서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제도를 대표한다. 그것은 사람 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며,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며 미래의 희망을 제공한다. 다른 한 편으로, 바벨론은 사단이 세운 종교 체제를 의미한다. 바벨론의 특징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고통과 사망을 가져 다준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구속(敬)의 방법을 대표하는 반면, 바벨론은 “구원의 길을 제공하려는 모든 인간적 시도, 즉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모든 계획과 프 로그램들을 대표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고안들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55)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으로 본다면, 바벨론은 하나님을 떠나서 구원을 얻으려는 인간의 허황된 노력을 대표한다.

 요한은 바벨론의 종교가, 그 도시의 모습과 매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부터 현세와 내세의 안전과 안정을 빼앗아 간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한다.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 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는 것이다(히 11:10). 이 은혜의 도성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목, 곧 영원한 언약의 실현을 대표한다.”56) 구속받은 자들이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 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다(히 12:22-24).

주(註) ——————
1. Hans K. LaRondelle. “Babylon: Anti-Christian Empire” in Symposium on Revelation-Book 2, Daniel and Revelation Committee Series 7 (Silver Spring. MD: Biblical Research Institute. 1992), 159-163 참조.
2. Charles G4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2:65) and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217) 등은 그렇게 제안하였다: Seneca Controversiae 1.2.7(The Loeb Classical Libraiy 1:66-69): Juvenal Saturae 6. 123 (The Loeb Classical Library. 93) 참조.
3. Mounce. 307.
4. Ladd. 222,
5.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2:136.
6. Ladd, 222.
7.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 : 850.
8. Ladd. 223.
9. Mounce, 309.
10. Ladd. 223.
11. Beale, 853,
12. Mounce, 309.
13. Badenas. 257,
14. Roloff. 197.
15. LaRondelle, How to Understand the End-Time Prophecies, 346.
16. Johnson, 554.
17. Beale. 848.
18. Collins, The Apocalypse, 72-73.
19. Strand, “The Seven Heads,” 186.
20. 상게서. 187-191.
21. Johnson, 558.
22. Ladd. 228.
23. Johnson, 554.
24. Strand. “The Seven Heads,” 187-191.
25. Minear. 93—101: Strand. “The Seven Heads,” 191-200.
26. Collins. The Apocalypse, 122.
27. William H. Shea. “The Identification of the Seven Heads of the Beast in Revelation 17,” 미간행 논문, n. d.:LaRondelle, How to Understand the End-Time Prophecies. 410-417: Maxwell, 471-476 등을 포함할 수 있다. 다만 맥스웰은 여섯째 머리/왕을 기독교 로마로 본다.
28. Strand. Interpreting the Book of Revelation. 55-56 참조.
29. Aune. Revelation 17-22、940.
30. 예를 들면, Charles. 71-72: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2:141-142: Beasley-Murray. 258:마운스는 이 견해를 어렵다고 본다(以 317): 아우니는 열 왕을 로마의 가신(家臣) 왕으로 보았다(참조 Revelation 17-22, 951).
31. Beckwith. 700.
32. Ladd. 226.
33. Aune, Revelation 17-22, 939-940,
34. Ladd. 226: LaRondelle, How to Understand the End-Time Prophecies, 409.
35. Thomas, Revelation 8-22, 292.
36. Mounce. 312.
37.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 :854.
38. Johnsson, 17.
39. Udd. 229.
40. Mounce. 316.
41. Collins, The Combat Myth in the Book of Revelation, 174: Aune, Revelation 17-22, 940: 콜린즈와 아우니는 이 곳의 국면은 네로의 레디비부스 신화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2. Mounce, 312.
43. Desmond Ford, 561.
44. 상게서, 671.
45. Beale, 880.
46. LaRondelle. The Good News About Armageddon, 17.
47. Ladd, 233.
48. William S. LaSor, The Truth About Armageddon (New York: Harper & Row, 1982), 140.
49. Thomas, Revelation 8-22、305.
50.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2: 149.
51.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146.
52. Morris, 196.
53. 평행구의 목록을 보려면, Aune. Revelation 17-22, 1144-1145를 참조하라.
54. Badenas, 255,
55. Johnson, 35.
56. Badenas,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