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7장은 종말적 바벨론의 몰락의 원인인 여섯째 재앙의 유프라테스 강의 고갈이라는 주제를 상세히 설명한다(
계 16:12). 본 장의 첫 부분은 큰 성 바벨론을
‘많은 물’ 위에 거하며,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의 부활한 짐승을 타고 있는 음녀로 밝힌다. 이 종교 세력 체제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종말적 핍박과 압제의 배후에 서 있다. 땅의 거민들에게 미치는 바벨론의 우세한 영향력은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7장 14-17절이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유프라테스 강의 고갈은 바벨론의 지지가 철회되는 것을 상징하며, 그 때 세상의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은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바벨론에게서 등을 돌리며 그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
요한계시록 17장은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의 부활한 짐승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사단의 최후의 노력에 관하여 더 자세히 다룬다. 놀랍게도,
요한계시록 17-18장에 나오는 종말 적 바벨론은
요한계시록 21장 10절-22장 5절에 소개되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사악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요한은 바벨론을 묘사하면서, 후에 그가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과 관련된 언어를 사용한다.
53)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과 음녀 바벨론과의 부정한 관계는 어린양과 그의 신부 새 예루살렘과의 사랑의 관계와 대조를 이룬다. 두 도성의 묘사 사이에 나타난 평행구적 대구(對句)는
‘개관: 요한계시록 12장 1절-22장 5절’의 도표에 나온다.
두 묵시 간의 언어적, 개념적 유사성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우선, 두 도성에 관한 설명은 일곱 대접을 가진 동일한 천사에 의해 요한에게 알려졌다. 두 설명은 초청으로 시작된다.
“오라 내가 네게 보이리라...”(
계 17:1; 21:9), 그 후 요한은
“성령에 이끌려 갔다.” (
계 17:3; 21:10) 이어서 그는 음녀 바벨론과 그리스도의 신부 새 예루살렘을 각각 보았다. 새 예루살렘은 이 땅에 서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의미인 것처럼, 바벨 론은 종말적 배도 체제의 중심이며, 세상을 정복하려는 사단의 야심을 의미한다.
이어 나오는 대조적인 평행구들은 두 여자 도성에 관한 묘사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값지고 호사스럽고 사치스러운 장식은 바벨론의 자기 영광과 부패를 드러낸다. 바벨론과의 불법적 인 관계를 맺는 것은 그 목적이 지배적인 세속적, 정치적 세력들을 유혹하는 데 있다(
계 17:45). 다른 한 편으로, 새 예루살렘을 치장하는 찬란한 빛과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 목적은 백성을 구원과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계 21:11, 23-24). 바벨론은 귀신들과 온갖 더러운 것들의 처소다(
계 18:2). 새 예루살렘은
“사람들 중에 있는 ... 하나님의 장막”이다(
계 21:3). 두 도성과 연관을 맺은 사람들 사이에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뚜렷이 구분되었다(
계 17:8; 21:27 참조).
마지막으로, 두 도성의 운명은 하나의 선언과 함께 예리하게 구분되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는 그분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마시게 할 것(
계 16:19)과 목마른 자들에게는 생명샘을 거저 마시게 할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계 21:6), 시들어가는 온갖 영광으로 치장한 바벨론은 그 거민들과 함께 멸망과(
18:8) 어두움(
18:23), 그리고 황폐를 당하여(
18:6-7),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이다”(
18:21), 새 예루살렘은
“세세토록” 그 거민들에게 안전과 안정의 삶을 제공한다(
22:5). 로베르토 바데나스(Roberto Badenas)는
“순결하고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말하자면, 거만하고 악하고 부패 한 바벨론의 파멸과 대조를 이룬다”고 하였다.
54)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 요한계시록의 종말적 부분(
12-22장)과 관련된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계속된다. 이 신학적 주제 속에는 세상 역사의 끝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 행위들을 모방하는 사단의 모조품, 즉 삼위 하나님, 최후의 복음, 하나님의 참 경배자들의 신원을 밝히는 표 등에 대한 모조품들, 그리고 이제는 가짜 도시라는 모조품도 포함된다. 바벨론을 그리스도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의 모조품으로 밝힘으로, 요한은 마지막 때의 두 주요 종교 체제 간에 드러난 대조를 보여주려고 한다.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로서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제도를 대표한다. 그것은 사람 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며,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며 미래의 희망을 제공한다. 다른 한 편으로, 바벨론은 사단이 세운 종교 체제를 의미한다. 바벨론의 특징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고통과 사망을 가져 다준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구속(敬)의 방법을 대표하는 반면, 바벨론은
“구원의 길을 제공하려는 모든 인간적 시도, 즉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려는 모든 계획과 프 로그램들을 대표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고안들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55) 새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으로 본다면, 바벨론은 하나님을 떠나서 구원을 얻으려는 인간의 허황된 노력을 대표한다.
요한은 바벨론의 종교가, 그 도시의 모습과 매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으로부터 현세와 내세의 안전과 안정을 빼앗아 간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한다.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 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는 것이다(
히 11:10). 이 은혜의 도성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목, 곧 영원한 언약의 실현을 대표한다.”56) 구속받은 자들이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 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다(
히 12: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