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5-16장의 목적은
“당신의 신실한 백성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전에 정해 놓으신 계획을 드러내는” 것이다.
34)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일곱 재앙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을 멸하려는 종말적 바벨론의 분노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 응답이다.
15-16장은 하나님의 율법과 인간을 위한 그분의 계획을 던져버린 결과로서 세상이 거두게 될 결과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것을 어기는 자들에게 파멸을 몰고 온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땅을 파멸시키고 있던 자들은 그들 자신의 파멸을 경험할 것이다(
계 11:18). 그러나 비록 요한계시록이 일련의 두려운 사건들로 종말을 묘사하고 있을지라도, 폴린은
“이 사건들은 인간을 세심하게 돌보시는 한 분, 즉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죽고자 하셨던 분의 통제 하에 있다”고 언급한다(
계 5:5-12).
35) 일곱 재앙의 절정은 아마겟돈 전쟁이다. 라론델이 지적하듯이,
“아마겟돈은 바벨론의 압제자들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다.”36)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의 세력들이 마침내 하나님의 고난받는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들의 종국을 맞게 될 것임을 보증한다(
계 6:9-10 참조), 최후의 싸움을 위한 준비가 여섯째 재앙의 장면에 묘사되어 있는 반면, 전쟁 자체는
요한계시록 16장 17절-19장 21절에 기술되어 있다.
아마겟돈 전쟁의 참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나오는 막간이다. 아마겟돈 전쟁을 위한 대단한 준비를 그림같이 묘사하는 중간에, 그리고 최후의 전 쟁을 묘사하기 직전에, 요한은 사전 경고로 당신의 교회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호소를 삽입한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
계 16:15) 경고가 삽입된 목적은 최후의 기만에 직면할 하나님의 백성에게 확고한 보증을 주기 위함이었다. 마지막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아마겟돈 전쟁의 한 복판에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최후 위기의 때 절정의 사건은 예수의 재림이라는 사실이다. 영광과 위엄 중에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마지막 때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대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37) 예수님은 영적으로 자신들을 준비하며, 이 세상 역사에 있을 중요한 사건을 대비해 준비하며 또 충성하라고 촉구하신다.
마지막 때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최후의 전쟁 준비를 위하여 그 전쟁의 참 성격을 이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서, 마지막 때에 사는 당신의 백성에게 하신 경고는, 그들이 장차 연루될 최후의 전쟁의 참 성격은 정치적이거나 군사적 인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적이며 영적인 전쟁이 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것은 경제적 이해 관계가 걸려 있는 전쟁이 아니다. 한스 라론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는 동떨어진, 순전히 세속적 성격의 전쟁을 예측하는 것들은 구약의 언약 예언들이나 신약의 아마겟돈 전쟁의 한 부분이 아니다. 여호와의 전쟁은 나라들 간에 있는 세속적, 정치적 싸움이 결코 아니다.”38) 아마겟돈은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의 마음과 지성을 점유하기 위한 전쟁이다.”39) 바울은 그리스도인 전쟁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3-5)
요한계시록은 최후의 전쟁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적,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
계 12:9) 사이에 있을 우주적 전쟁의 한 부분으로 묘사한다. 아마겟돈 전쟁의 선동자는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킨 바로 사단 자신이다. 그는 하늘에서 패배하였으며, 계속적인 좌절 가운데 분노하여
“여자와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 키는 자들”(
계 12:17)에게로 갔다.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고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서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마지막 시도와 그의 확고한 결심을 대표하는 것이다. 바울은 마지막 때 사단의 활동에는 설득이 포함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9-10).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경험, 즉 사람들이 얻기를 너무도 게을리 하는 한 가지 경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당하는 환난이 가벼운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그렇지 않다.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여도 그 시련의 크기를 여실히 표현할 수 없다. 그 환난의 때에 각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40)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적 식별력이 필요한데, 이는 그들이 최후의 위기를 직면할 때 당할 기만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땅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 아니면 사단에게 충성을 해야 하는 전쟁이다. 갈멜산에서 그러하였듯이, 궁극적인 쟁점은 누가 하나님이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갈멜산에서 행하신 일을 최후의 전쟁에서 한 번 더 행하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을 누르고 개선하실 것이다. 그러나 라론델이 말하듯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히 바벨론의 멸망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땅 위에 영원한 평화와 공의로 통치하시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41)
1. Beale, 784.
2. Mounce, 286.
3. Beasley-Murray, 233.
4.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2:120.
5. 상게서, 2:27.
6. 상게서, 2:121.
7. Morris, 185.
8.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 115.
9. Herodotus, History 1.191. trans. George Rawlinson.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Chicago:Encyclopaedia Britanica, 1952), 6:43 참조.
10. 고레스 원통은 고레스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바벨론을 정복했다고 기술한다. “아무런 전투도 없이, 그(마르둑 신)는 리고레스를 자신의 성 바벨론으로 들어가게 하여 바벨론에 어떠한 해도 입지 않게 하였다.”(J. B. Prichar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3d ed. Princeton, 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315) 이 주제에 대하여 William H. Shea의 글을 참조하라. “The Location and Significance of Armageddon in Rev 16:16,” 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
18(1980), 157-158.
11.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 116.
12. 상게서, 120; idem, The Good News about Armageddon, 24-25, 120-121.
13. LaRondelle, “Contextual Approach to the Seven Last Plagues,” 149.
14. Maxwell, 443.
15. Bruce, 657; 참조 Mishnah Middoth 2. 1.
16. Shea, “The Location and Significance of Armageddon” 160.
17. 상게서, 161.
18. Hans K. LaRondelle, “Armageddon: Six and Seventh Plagues” in Symposium on Revelation, Book 2, Daniel and Revelation Committee Series 7 (Silver Spring, MD: Biblical Research Institute, 1992), 384.
19. LaRondelle, The Good News about Armageddon, 16.
20.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 119.
21.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133.
22.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4:265.
23. Swete, 207.
24. Desmond Ford, 2:571.
25. Beale, 832.
26. Desmond Ford, 571.
27. White, The Great Controversy, 624.
28. Boring, Revelation, 178.
29. Mounce, 301.
30, Desimond Ford, 571.
31. Metzger, Breaking the Code, 84.
32. Mounce, 304, n. 40.
33. Beale, 845. 34. LaRondelle, How to Understand the End-Time Prophecies, 390.
35.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149.
36.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 144.
37. Ladd, 214.
38. LaRondelle, “Armageddon: Sixth and Seventh Plagues” 390.
39.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136.
40. White, The Great Controversy, 622.
41.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 121.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부가적인 해석은, Hans K. LaRondelle, Chariots of Salvation과 “Armageddon: Sixth and Seventh Plagues"를 참조하라. 최후의 전쟁이 갖는 중요성과 그 의미를 보기 위해서는 Jon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1994), 131-150; C, Mervyn Maxwell, The Message of Revelation, God Cares 2(Boise, ID: Pacific Press, 1985), 428-451과 Hans K. LaRondelle, The Good News about Armageddon (Hagerstown, MD: Review and Herald, 1990)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