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은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는 호소로 끝을 맺는다. 이 호소는 그리스도께서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에 주신 각 기별의 결론적 권고를 반향한다.
각 사람은 사단의 동맹자들 중 첫째와 관련하여 이 곳에서 말씀된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 호소에 이어 두 개의 잘 어울리는 경구로 표현된 세계적 경고가 뒤 따른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첫 경구는 하나님 백성의 운명에 관하여 강조한다. 그들의 충성되고 신실한 삶은 종종 투옥과 죽음이 수반될 것이라고 진술한다(
계 12:11 참조), 그러나 핍박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둘 째 경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의 운명에 관하여 강조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저항이 아니라 인내하라는 권고를 받는다. 최종적인 판결은 하나님께 있다. 그분이 당신의 백성을 압제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들이 당할 심판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한 위해(危害)와 압제에 비례할 것이다(
계 18:6-8 참조). 그때까지 하나님의 백성은
인내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기 있나니라는 말은, 최후의 위기 때 사단적 삼위가 땅에 거하는 [모든]자들의 충성을 자기 편으로 이끌려고 애쓸 때, 하나님의 백성은 인내와 참음으로써 하나님께 흔들림 없는 충성을 다하는 것이 그 특징이 됨을 보여준다(
계 14:12 참조).
사단의 동맹자들 중 첫째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대표하는가? 바다 짐승과 그리스도를 묘사할 때 나타난 유사성은 이 원수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활동에 정반대되는 세력임을 시사한다. 예수께서 물에서 나오심으로 자신의 봉사를 시작하신 것과 꼭 같이(
눅 3:21-23 참조), 바다 짐승도 바다에서 나옴으로 행동을 개시한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하나 되신 것같이 (
요 14:9), 짐승은 용과 하나 되었다고 묘사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권세를 받으신 것 같이(
계 2:27), 바다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는다. 그리스도와 짐승은 그들의 이마에 왕관을 쓰고(
계 19:12), 둘 다 검을 사용하며(
계 1:16 참조), 둘 다 뿔이 있다(
계 5:6). 짐승의 마흔두 달의 활동은 예수님의 삼 년 반의 봉사와 같다. 그리스도와 바다 짐승은 둘 다 죽게 된 상처를 받는다(
계 5:6). 그 후에 다시 살아 더 큰 권세로 부상(浮上)한다. 둘 다 죽게 된 상처가 나은 후 경배를 받는다(
마 28:17 참조). 둘 다 추종자들이 있으며, 그들의 이마에 쓴 것이 있다(
계 13:16; 14:1),
‘누가 짐승과 같으뇨?’라는 외침은
요한계시록 12장 7절의 미가엘(누가 하나님과 같으뇨?)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 바다 짐승은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에 대한 전 세계적 권세를 발휘한다(
계 13:7 참조). 이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사단의 동맹자들 중 첫째의 신원은 그리스도의 지상봉사를 모방하는 배도적 종교 체제임을 밝힌다. 이 종교 체제가 한 짐승의 상징속에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것의 정치적 권세와 세력이 종교라는 가면 아래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이 세력이 자행할 활동들은
다니엘 7장의 네 번째 짐승 이후에 일어나는 작은 뿔의 활동들을 상기시킨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장과
요한계시록 13장은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에 일어나 그것을 계승할 한 세력을 가리킨다. 작은 뿔과(
단 7:25) 바다 짐승의 활동 기간은(
계 13:5)
‘마흔두 달’ 혹은
‘1260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으로 제한되었다. 다시 말하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마지막 활동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 1200년 이상의 활동에 뒤이어 나온다는 것이다.
많은 해석자들은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 짐승을 요한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였던 제국 로마를 상징한다고 여긴다. 짐승의 죽게 된 상처가
네로 레비비두스(
Nero revividus, 부활한 네로) 신화에 적용된다. 그들은 짐승의
‘죽게 된 상처’ 혹은
‘시방 없어진’ 짐승의 존속 기간을(
계 17:1 참조) 네로의 자살과 그 상처의 회복으로부터 1세기 말경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개된 핍박까지로 보곤 한다.
13) 최초의 독자들에게 요한계시록은 의미심장했다고 본 주석의
‘서론’에서 밝힌 바 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의 아시아 속주에 있는 요한 당시의 그리스도인 회중들에게 보내진 서신으로 그들의 직접적인 역사적 환경과 상황을 다루고 있었다.
“1세기 말에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상징들에서 당대를 위한 의미를 발견하였을 것”이라고 지적한 존슨의 말에 확실히 동의할 수 있다.
14)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슨 은 이렇게 말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소 종파로서 그들은 자신들을 대적하여 일어난 네로와 도미티아누스, 그리고 그 후 200년 간 그들을 무겁게 짓누른 제국 로마의 배후에 있는 사단의 세력들과 그 음모들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로마서 13장에서
요한계시록 13장에 이르는 강력한 운동을 주시한다. 전자에서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그러나 후자에서 국가는 사단의 대리자가 되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묘사된 종교와 국가의 통합은 그 들의 현재 경험들을 반향하였을 것이다.
15)
1세기나 그 후의 그리스도인들이
13장의 사건을 어떤 식으로 적용했던지 간에, 요한계시록 자체는 바다 짐승과 관련된 예언의 성취가 요한 당대를 넘는다고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바다 짐승이 오로지 종말 때의 종교적-정치적 체제임을 밝히는 열쇠를 제공한다.
다니엘 7장에 기초한 복합 짐승과 그것의 일곱 머리를(
계 17:9-11 참조) 이 체제로 묘사한 것은 바다 짐승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했던 세상의 국가적, 종교적 모든 권세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출애굽 시에 세워진 광야 교회로부터 재림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였다.
16) 짐승은 역사의 다른 기간에 머리들 중의 하나로서 존재하였다. 각 머리는
“소정의 기간을 다스리는 사단적 세력의 부분적 성육신이다.”17) 특히
요한계시록 17장은 바다 짐승의 신원에 더 많은 빛을 제공한다. 천사는 요한에게 짐승의 일곱 머리는(
계 13:1 참조) 전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고, 세상을 정복했던 일곱의 연속적인 무신론적 세속 세력들을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계 17:9-11). 더욱이 천사는 그 제국들 중의 다섯(애굽,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은 요한 이전의 때를 통치하였고, 여섯째인 로마는 요한 당대의 세계적 권력이었으며, 일곱째는 요한의 관점에서 미래에 등장할 세력으로 설명한다. 이 후에
“시방은 없으나”라는 구절이 뒤따르는데(
계 17:11), 이것은 죽게 된 상처의 시기가 될 것이다(
계 13:3).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17장 11절에서, 천사는 요한에게 마지막 때 종말적 바벨론을 섬기는 세계적 정치 권세는 여덟 번째 머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덟 번째 머리는 실제로 죽게 된 상처가 나은 후 마지막 때에 재등장하는 일곱 번째 머리다. 요한은 여섯 번째 혹은 로마 머리 시대에 살았다. 일곱 번째는 막 무대에 등장하려는데,
요한계시록 13장에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일곱 번째 머리 혹은
‘시방은 없으나’라는 국면 이후의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여덟 번째 머리, 곧 다시 살아난 후의 일곱 번째 머리는 그 연합된 열 왕국과 함께 아직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 17:12-13 참조). 그것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 세계 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본문은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 짐승이 이교 로마제국(여섯 번째 머리;
계 17:10 참조)의 후계자로서 일곱 번째 머리 국면에 와 있다고 말한다. 로마제국의 분열 이후 일곱 번째의 머리 국면에 잘 들어맞는 유일한 역사적 기간은 중세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종교-정치적으로 압제한 기간이다. 중세 시대에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 짐승과 그의 활동들의 묘사에 걸맞는 유일한 종교-정치적 세력은 교황의 교권(敎權)적 독재주의로 6세기에 교권을 확립 하여 1200년 이상 하늘의 이름으로 서방 세계를 지배하였다. 역사적 기록들은
“성도들과 싸워 420 이기”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행사하였던 바다 짐승의 일차적인 활동 무대를(일곱째 머리의 국면) 교황권에 의하여 계획되어 중세 시대의 종교적 압제 기간 동안에 자행되었던 교황권의 비극적인 성취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고 확증한다. 오늘날처럼 교회 연합과 종교 관용으로 특징지어진 현대에 그러한 해석은 가혹하고 불공정하게 보일지라도, 현재가 역사적 사실을 지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바다 짐승의 일곱째 머리를 중세의 교권 세력에만 적용하는 것의 부적절함을 인정해야 한다. 역사는, 동방 정교의 수뇌부에 의하여 이루어진 활동들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슬프게도, 종교적 편협이 그 특징을 이루었던 17, 18세기 서방 세계에 새로이 자리를 잡은 개신교 정통파에 의하여 자행된 동일한 종교-정치적 압제가 나타났다.
18) 이런 관점을 지지 하는 근거가 많지만, 그것은 이 주석의 범위를 벗어난다.
콘스탄티누스의 통치 이후 로마제국의 단계적 붕괴는 점차적으로 강압적인 교권을 예고하였다. 그 교권은 근대(近代)를 시작으로 하여 그 종언을 고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회의주의(懷疑主義)와 신학적, 정치적 전선(戰線)에 대한 개신교의 도전을 시작으로, 교회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도시 계층의 등장으로 귀족 계층과 교권적 상부 구조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였다. 뒤이어 일어난 계몽주의 시대는 기존의 종교적, 정치적 통치 배후에 있던 전반적인 원리를 공격하였다. 르네상스 정신의 전통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사상가들은 사회를 본격적으로 세속화하기 시작하였다. 철학자들이 이론으로만 옹호했던 것을 미국과 프랑스 혁명들은 점차적으로 실행에 옮기곤 하였다. 자유주의 철 학자들은 교회와 군주들이 나눠주기를 원치 않았던 상당한 자유를 요구하였다. 북미와 유럽에서 공화정 형태의 정부를 세우는 일과 교육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점차적인 세속화는 점진적으로 종교적, 정치적 억압과 중세와 중세 이후 시대의 억압과 편협을 종식시키고 있었다.
더구나 대중의 해방은 종교적 미신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민족주의는 대 중들의 수준을 통치권의 엘리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군주 제도를 무너뜨리며, 그 자체의 필요를 위하여 교회를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중이었다. 정치적, 종교적 자유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던 프랑스 혁명 사건들은 (1798년 나폴레옹 휘하에서 교황권이 몰락한 것을 포함한) 아마도
‘죽게 된 상처’에 대한 가장 명백한 시위(示威)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목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게 된 상처’의 원인이 되며, 바다 짐승을
‘시방은 없으나’의 시기로(
계 17:11 참조) 몰아간 것은 바로 이 긴 과정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 변화였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종교-정치적 통치와 수세기 동안 서방 세계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하나님 중심의 신학은 끝이 났고, 그 후로 그것들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인간 중심의 물질주의적(무신론적) 철학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죽게 된 상처가 결국 나음을 입고, 바다 짐승이 다시 한 번 부활하여 여덟 번째 머리의 국면에서 권세와 능력을 행사할 것이며(
계 17:11), 그 짐승의 활동 반경은 종말 적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과 동일하다고 말한다(
계 13:7; 14:6 참조),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전 세계적인 세속적, 정치적 권세들과 세력들의 지원을 받는 이 종교 정치적 체제가 그의 활동들 을 강화시키되, 특히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에 그렇게 할 것임을 천명한다. 그 결과로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짐승을 경배할’ 것이며, 사단적 삼위에게 그들의 충성을 바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살아난 배도적인 종교-정치적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는 그 목적을 수행하기 전에 궁극적으로 멸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