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여자 (12:1-17)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작은 두루마리(계 10장)의 내용을 드러내는 요한계시록의 셋째이자 마지막 주요 대 단원이 시작된다. 요한계시록 12-13장은 지상 역사의 대 절정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이 두 장은 최후의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배우들을 소개한다. 교차대구 법적 구조는 이 장들이 요한계시록의 중심 부분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2장은 아이의 출생(12:1-6),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됨(일종의 막간 역할을 함, 12:7-12) 및 여자와 아이에 대한 용의 핍박(12:13- 17) 등 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 아이, 그리고 용 (12:1-6)
 요한은 다시 성령 안에서 새로운 묵시를 본다. 하나님과 그분의 신실한 백성 대(對)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의 최후의 싸움을 논하기 앞서, 요한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남은 백성을 휩쓸어 버리려는 적개심의 근본 원인을 설명한다(12:17 참조). 이 장면에서 사용된 이미지들은 요한계시의 전반부에서 사용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큰 이적.
 헬라어 세메이온(sèmeion ‘이적’ 또는 ‘표’ 및 ‘기적')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이적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 7회 사용되었다. 네 번은 마지막 때 사단의 동맹체들이 세상을 기만하기 위하여 사용한 이적들을 가리킨다(계 13:13-14; 16:14; 19:20). 그러나 이 곳과 12장 3절15장 1절에서 사용된 세메이온은 주의를 사로잡는 현저한 시각적 장면을 의미하는 것 같다.
한 여자.
 어떤(주로 로마 가톨릭) 주석가들은 요한계시록 12장 1절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상징성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기인하였다. (특히 이 곳의 장면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본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마리아에 관하여 [사람들이] 말했음직한 내용과는 정반대다. G. K. 빌(Beale)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자는 박해를 받아 광야로 도망가서’ 거기서 1260일 간 양육을 받았다. “그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묘사된 다른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1) 그러나 여자는 구약과(사 54:5-6; 렘 3:20; 겔 16:8-14; 호세아 1-3장; 암 5:2) 신약에서(고후 11:2; 엡 5:25-32) 종종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 외에, 구약은 종종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해산하는 여인으로 나타낸다(사 26:17-18; 66:7-9; 렘 4:31; 미 4:10), J. 매싱버드 포드 (Massyngberde Ford)는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비록 그 여자가 개인일지라도, 구약적 배경에 비추어 볼 때, 두 증인처럼 집합적 인물임을 암시한다. 구약에서 여자는 시온, 예루살렘,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고전적 상징이다.”2) 요한계시록의 다른 곳에서(계 19:7-8; 22:17) 정결하고 신실한 여자는 일관되게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반면, 음녀는 배도하고 불신실한 자들을 상징한다(계 17-18장). 이러한 증거가 시사하는 바, 요한계시록 12장의 주목을 끄는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 12장의 전체 문맥에 잘 맞는다(계 12:17 참조).
열두 별의 면류관.
 12장 1절에서, 여자의 머리에 있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로서 승리의 화관 또는 면류관이다(계 2:10 어구 해설 참조), 요한계시록에서 스테파노스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에게 반복적으로 약속된 면류관이다(2:10; 3:11).
요한계시록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부르짖더라.
 헬라어 크라조(krazo)는 일반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70인역에서 이 단어는 종종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시 22:5; 34:6; 107:6, 13 참조). 요한계시록에서 이 구절은 신원해 주기를 하나님께 탄원하는 순교자들의 부르짖음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계 6:10).
애써 (she was tormented).
 헬라어 바사니조(basanizó )는 ‘괴롭히다’라는 의미다. 이말은 성경이나 헬라 문학에서 ‘산고(産苦)로 고통하는 여자와 관련하여’ 결코 사용되지 않았다.3) 신약에서 바사니조는 일반적으로 형벌과 시련과 핍박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마 8:6, 29; 14:24; 막 5:7; 6:48; 눅 8:28; 벧후 2:8). 요한계시록에서 이 말은 마귀의 세력들이나(9:5) 하나님에 의해(11:10; 14:10; 20:10) 가해지는 고통에만 사용되었다.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한 큰 붉은 용.
 ‘용’은(헬, 드라콘 drakón) 리워야단(Leviathan)이나 라합(Rahab)과 같은 고대 근동의 신화적 존재인 바다 속의 괴물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이 두 해양 괴물은, 이스라엘을 압제하였고, 하나님에 의해 패배하여 멸망당한 악한 원수의 세력들과 관련하여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출애굽의 바로는 리워야단과(시 74:14) 라합으로(시 89:10; 사 30:7; 51:9-10) 지칭되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날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실’ 날에 대하여 예언하였다(사 27:1).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괴물과 동일시하였다(렘 51:34). 에스겔은 출애굽 당시의 바로를 ‘자기의 강들 중에 누운 큰 악어’라고 하였다(겔 29:3; 32:2). 이 외에, 일곱 머리의 괴물은 고대 동양에서 잘 알려진 개념이었다.4)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 용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로 파악되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의 유혹 사건을 암시하는데, 그 곳에서 뱀은 최초의 인간 부부를 속여 땅에 죄를 가져왔다. 용에 대한 이런 구약적 배경을 가지고 요한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대원수를 묘사한다. 압제와 유혈의 색깔인 붉은 색의 의미에 대하여는 요한계시록 6장 4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일곱 면류관.
 용의 머리에 있는 일곱 면류관은 왕관(헬, 디아데마 diadéma)이다. 면류관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의 어구 해설을 보라.
요한계시록 12: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꼬리.
 요한계시록 9장 10절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하늘 별.
 유대 전승에 의하면, 별들은 거룩한 존재를 대표하는데, 하나님께 반역하므로 마귀처럼 바뀌고 악하게 될 수 있었다. 요한계시록 8장 10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260일.
 요한계시록 12장 6절과 14절 사이의 평행구는 두 개의 시간 명칭, ‘한 때 와 두 때와 반 때’‘1260일’이 용이 여자를 핍박하는 기간과 동일한 기간이라는 확고한 증거를 제공한다. (계 12:14의 어구 해설 참조). 여자가 광야에 있는 이 기간은 이방인들에 의해 거룩한 성이 짓밟히는 마흔두 달과(계 11:2)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예언하도록 할당된 1260일과 상응한다(계 11:3-6), 요한계시록에서 마흔두 달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압제 세력에게 배당되었고(11:2; 13:5 참조), 1260일은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11:3; 12:6 참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이 시간에 관한 명칭들은 양적 의미 뿐만 아니라 질적 의미도 지닌 듯하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538년을 교회가 교권을 확립한 해로 이 예언 기간의 시작이며, 또한 1789년은 이 기간의 끝이라고 본다. 이 기간의 의미와 중요성에 관하여는 요한계시록 11 장 2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주해)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요한계시록 12: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요한은 하늘에서 큰 이적을 본다. ‘큰’ 이적이라고 한 것은 요한이 특별하고도 놀랄 만한 무엇을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로 해를 입은 한 여자였는데, 그녀의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이 있었다. 여인과 관련하여 이 곳에서 사용된 ‘이적’이라는 단어는 이것이 문자적 여자가 아니라 상징적 여자라는 점을 시사한다.5) 구약이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내로 묘사하기에, 이 상징은 요한 당시의 독자들에게 매우 익숙하였다. 마찬가지로, 신약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아내 또는 신부로 지칭한다. 이사야는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사 54:5) 바울은 ‘위의 예루살렘’을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어머니’로 불렀다(갈 4:26).

 요한계시록 12장 1절의 여인이 해, 달, 열두 별과 연결되는 것은 요셉의 꿈속에서 등장 한 해와 달 및 열한 별(명백히 요셉은 열두째 별이다)이 각각 야곱, 야곱의 아내,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나온 열두 족장, 즉 야곱의 열두 아들 등의 뚜렷한 인유다(창 37:9-10), 여자에 관한 묘사는 솔로몬의 신부에 관한 묘사를 따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여자는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았”다(아 6:10),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라고 하였다(사 61:10), 요한이 본 여인의 머리의 면류관은 요한계시록에서 반복하여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에게 약속된 화관 곧 승리의 관이다(2:10; 3:11).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인에 관한 묘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녀의 용모에 서 나는 광채는 복음의 영광스런 빛에서 오는 반면(고후 4:6; 계 1:16 참조), 그녀는 복음의 빛을 반사한 구약의 계시 위에 서 있다.6) 열두 별의 왕관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열두 사 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과 그리스도교회 사이의 연속성을 시사한다. 12장 1절에서 시선을 끄는 이 여인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 곧 그리스도의 신부를 상징한다(계 12:17; 19:7-8; 22:17 참조). “그 여인이 외관상으로는 부서지기 쉽고 불확실한 지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늘의 참된 영광의 특징을 지니고 나타난다.”7)

 주목의 대상인 이 여인은 아이를 가졌고, 이제 막 해산을 하려 한다. 그 여자는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에 대한 제자들의 슬픔을, ‘근심하면서 아이를 해산하는’ 여인에 비유하셨다(요 16:21-22), 구약에서는 자주 이스라엘을 산고(産苦)를 치르는 여인으로 비유하였다(예, 사 66:7-9; 렘 4:31; 미 4:10), 요한이 요한계시록 12장의 해산의 고통을 묘사하면서 사용한 언어는 이사야 26장 17-18절을 반향한다.

잉태한 여인이 산기가 임박하여
구로하며 부르짖음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 이러하니이다.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등장하는 하늘의 여인은 분명히 12지파로 구성된 구약의 이스라엘을 대표한다. 이들에게서 메시야가 탄생하였다.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을 경험하는 것같이, 이스라엘도 약속된 후손의 도래를 준비함에 그러하였다. 요한계시록 12장 4절이 가리키듯이, 아이의 탄생을 준비하며 여인이 겪는 격렬한 고통은 용의 괴롭힘에 의해 야기되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를 괴롭히는 일은 분명히 언약의 백성을 파멸시키고 여자의 후손의 탄생을 방해하려는 사단의 계획의 일부였다(창 3:15).8) 여자의 고통을 이러한 식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헬라인 들은 여기에 사용된 ‘괴로움’이라는 단어를 산고를 겪는 여인과 관련하여 결코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9)

 이사야 26장 18절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은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었다.10)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로부터 신약 시대의 교회로 바뀌었음을 발견한다. 요한계시록 12장 13-17절은 여자 이스라엘이 종종 메시야의 강림을 준비하는 동안 괴로움을 받은 것같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하는 동안 괴로움을 받게 될 것을 암시한다.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2: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요한계시록 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요한은 이제 드라마의 두 번째 인물, 즉 여자를 괴롭게 할 자에 대하여 기술한다. 그는 하늘에서 또 다른 이적을 본다. 이 이적은 분명히 요한계시록 12장 1절의 첫째 인물과 관련이 있으며, 이 이적에서는 크고 붉은 용이 나타났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의하면, 용은 사단을 대표한다. 요한은 용의 두려운 모습을 고대의 신화적 형상들에 의해 묘사한다. 구약에서 이것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을 압제하는 악의 권세들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붉은 색깔은 압제와 피 흘림의 색깔로(계 6:3-4; 왕하 3:22-23; 계 17:3-6 참조), 교회를 대적하는 사단의 압제적 특성을 가리킨다.

 용은 머리 일곱과 뿔 열을 가지고 있으며, 그 머리에 일곱 면류관을 쓰고 있다. 윌리엄 G. 존슨이 제시하듯이, 요한계시록 17장 9-11절에 근거하여 용의 일곱 머리는 여자의 후손이 강림하는 것을 방해할 의도로 “사단이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기 위해 이용하였던 왕국들을 대표한다.”11) 뿔은 정치 권세의 상징이다(계 17:12 참조), 바다 짐승의 열 뿔은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넷째 짐승의 열 뿔이다. 다니엘서에서 이 뿔들은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 열 부분으로 나눠진 왕국들을 상징한다(단 7:7, 23-24; 계 17:12 참조), 용의 머리에 있는 일곱 면류관은 ‘많은 면류관’을(계 19:12-16 참조) 쓰신 진실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분을 대적할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는 사단의 거짓 주장을 암시한다. 용은 기본적으로 이교 로마의 배후에서 활동하며, 그리스도와 결과적으로 그분의 추종자까지 멸하고자 애쓰는 사단을 상징한다. 용의 열 뿔은 교회를 대적하는 사단의 활동이 로마제국이 붕괴된 후의 기간 내내 엄청나게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용의 꼬리는 하늘별의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졌다. 이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가 “하늘 군대에 미칠 만큼 커져서 그 군대와 별 중에 몇을 땅에 떨어뜨리고 그것을 짓밟았다”다니엘 8장 10절을 상기시킨다. 요한계시록에서 별은 천사를 상징한다(계 1:20). 덧붙여 요한계시록 12장 7-9절은 용이 그의 꼬리로 끌어내린 ‘하늘의 별들’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단의 반역에 가담한 타락한 천사들이며, 그들은 ‘그와 함께’ 땅으로 ‘쫓겨’났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한다(계 12:9). 다섯째 나팔의 장면에서, 사단은 꼬리의 침(針)으로써 백성을 괴롭힌 마귀적 메뚜기들의 배후에 서 있다(계 9:1-11 참조). 우리는 꼬리가 그럴싸한 말로 속이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사단은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오도하여 하나님을 반역하며 자신을 따르게 하였다(계 12:9 참조). 여기서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나머지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미혹하는 사단을 소개한다.(13:13-14; 18:13-16; 20:7-10).

 이어 요한은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고 하는 사단을 보았다. 용이(계 12:9에서는 ‘옛 뱀’) 여자 앞에 이렇게 서 있는 것은 여자에 대한 뱀의 큰 적개심과 창세기 3장 15절에서 선언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있을 증오심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2장 5절은, 사단이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태어나는 순간에 그를 멸하고자 했던 사단의 일차 시도는 예수님의 봉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다. 요한은 독자들에게 이 아이가 바로 약속된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남기지 않는다. 이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시다. 이 곳에서 요한은 메시야 구절인 시편 2편 7-9절을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 집안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또한 요한계시록 12장 5절‘이스라엘에 한 통치자가’ 태어날 것을 예언한 미가의 말을 반향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미 5:2-4)

 이제, 다윗가의 진정한 왕이 태어나셨다. 그분 안에서 다윗가의 왕과 관련된 모든 약속이 확실하게 성취되었다(계 5:5 참조), 요한계시록 19장 15-16절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그분을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요한은 그분이 하나님과 그의 보좌로 올리우셨다고 하였다.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시작된다. 윌리엄 바클리가 지적하듯이,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생략된 것은 다음의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틀어 “요한의 관심사는 인간 예수가 아니라 당신의 고통받는 백성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 곧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께 있었다.”12) 교회가 사단의 폭발적인 분노에 직면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다. 교회에 대하여 폭발적으로 쏟아부을 사단의 이러한 분노는 요한계시록 12장 6절13-17절의 주제다.
요한계시록 12: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교회는 사단의 격렬한 공격을 받는다. 여자는 광야로 도망하여 그 곳에서 1260일 동안 양육 받는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장소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이 바로와 애굽인들을 피하여 광야로 간 것과 유사하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양식으로 만나를 공급하셨다(출 13:17-16:21), 로버트 마운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대 백성에게 광야란 하나님의 공급과 친밀 한 교제를 뜻한다.” 요한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은 경험의 한 모델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고 있다. 이들이 세상에서 광야의 고통과 혹독한 압제를 경험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적 자양분을 주시고 그들을 보살피셨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여자를 보살피셨다는 것은 “고통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져야 할 시련들이 아무리 격렬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돌 보시며 부양하시”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시키려는 것이다.

 여자가 광야에 있은 ‘1260일’은 두 증인이 베옷을 입고 예언한 기간과 부합한다(계 11:3-6), 요한계시록 12장 6과 14절 간의 평행절은 ‘1260일’요한계시록 12장 14절‘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동일한 기간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과 다니엘의 예언을 연결시 킨다. 다니엘서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작은 뿔의 활동 기간이다(단 7:24-25; 12:7). 광야의 여자를 묘사할 때, 요한은 다니엘의 예언에 등장하는 중세의 전제적인 교권이 다스리는 동안 작은 뿔의 핍박 세력으로부터 압제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더욱이, 열국들 또는 이방인들이 거룩한 도성을 짓밟도록 그들에게 할당된 시간은 마흔두 달이다(계 11:2). 이것은 요한계시록 13장 5-8절에서 바다 짐승이 땅을 통치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모든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들은 동일한 기간을 말하는 것 같다. 한 편으로, 이 기간은 악이 통치하는 시기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핍박한다. 또 한 편으로, 베옷을 입고 압제를 받고 핍박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 기간 동안, 비록 광야로 추방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보호 하에서 살아남아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신실히 증거한다.

 때와 관련된 이 모든 기간은 삼 년 반을 가리킨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의 예언적 활동들과 열국에 의한 거룩한 도성의 짓밟힌 일을 관련시킬 때), 삼 년 반은 문자적 시기로 의도된 것 같지 않다. 그것들은 오히려 중세 교권 억압의 약 1200년 간의 특별한 기간(일반적으로 서기 538년-1798년으로 계산함)을 가리킨다. 이 기간에 하나님의 소수의 신실한 백성은 그리스도께 대한 그들의 충성 때문에 격렬한 고통과 고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 기간은 재림 때까지 연장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단이 여자의 후손들을 겨냥하는 시기는 1260일 이후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기본적으로 이 시간을 가리키는 표현들의 신학적 중요성을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삼 년 반은 그분이 오셔서 구원하시려 했던 사람들로부터 받은 거절과 굴욕으로 특징지어진 예수님의 지상 봉사 기간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본질적으로 예수께서 그분의 신실한 증거의 삶을 사는 동안 ‘베옷을 입고’ 친히 경험하셨던 것들이다. 그분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 15:20)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8)
하늘의 전쟁 (12:7-12)
 요한계시록 12장 7-12절은, 용이 여자를 핍박하는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는 일종의 막간이다. 이 막간은 그리스도의 승천 및 여자의 광야 도피, 그리고 뒤에서 묘사될 교회에 대한 사단의 공격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이 내용의 목적은 용의 활동과 여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그의 증오심에 관하여 어떤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미가엘.
 미가엘(히, 미카엘 mikael,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은 성경에서 다섯 번 사용되었다. 다니엘서에서 그는 사령관 혹은 바사와 헬라 나라의 왕들, 즉 사단과 대항해 싸우는 천사들의 ‘군장’이다(10:13, 21). 다니엘 12장 1절에서, 미가엘은 지상 역사의 최후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대군’이다. 유다서 9절과 이 곳 요한계시록 12장 7절에서, 그는 하늘 군대의 사령관이다.16)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옛 뱀.
 요한계시록 12장 3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헬라어 디아볼로스(diabolos)는 문자적으로 ‘참소 자’를 의미한다.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사탄, 즉 사단(원수)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두 단어가 동의어임을 시사한다.17) 구약의 묘사에 의하면, 사단은 하늘 궁정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요 참소자(욥 1:6-2:6; 즉 3:1-2)이며 유혹자다(대상 21:1). 구약에서는 사단을, 한때 하나님을 섬겼으나 너무 교만하여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 하였고, 그 이유로 하늘에서 쫓겨난 빛의 천사로 묘사한다(사 14:12-15; 겔 28: 12-17 참조), 신약에서 사단은 악한 자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원수다. 예수님은 그를 이 세상의 임금이요(요 12:31; 14:30; 16:11),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다(요 8:44). 요한계시록 12장에서, 그는 온 세상을 꾀는 자로(12:9; 20:3, 10 참조),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로 알려져 있다(12:10), 요한계시록 13장에서, 그는 하나님 대신 자기를 경배케 하려고 그의 두 동맹, 즉 바다 짐승과 땅의 짐승을 통한 기만으로 전 세계를 뒤엎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마침내 사단과 그의 동맹들과 추종자들은 천년기 이후에 불 못에서 그들의 최후를 맞는다(계 20:7-10).
내어 쫓기니.
 헬라어 발로(ballo ‘쫓겨나다’ 혹은 ‘내쳐지다’)에는 법적인 의미가 있다. 그 것은 ‘출교라는 전문 용어(요 9:34-35 참조)’이며 법적 형벌을 의미한다(마 3:10; 13:41-42; 요 15:6; 계 2:10 참조).18)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나는 시간에 관하여는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죄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 하늘에서 있었던 투쟁을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다른 이들은 지상의 투쟁은 세상 창조 오래 전에 시작되었던 더 큰 드라마의 일부임을 보이려는 목적으로, 12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 본다. 그러나 12장 7-12절은 십자가 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증거가 강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건은 4~5장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즉위와 관련이 있음을 12장 10절은 시사한다. 사단을 쫓아냄으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권위가 세워졌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제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난 후에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달았는데 (12:12), 이는 창조 전 그가 반역을 시작할 때에는 미처 알지 못하다가, 십자가 사건 후에 알게 된 것이다. 사단이 쫓겨날 때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밤낮으로 참소하’고 있었다(12:10), 사단의 ‘참소’와 그로 인한 쫓겨남은 창조 전이 아니라 십자가 후에 일어날 수 있었다. 11절‘어린양의 피’가 사단을 이길 수 있게 한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하늘에서 쫓겨난 후에야 그는 중세 1260년 동안 여자를 핍박하기 시작하였으니, 사단이 최초에 쫓겨났다는 설과는 맞지 않는다.19) 엘렌 화잇은 이런 식의 이해를 분명히 인정하였다. “하늘에서 형제를 참소하던 사단의 추방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일을 통하여 성취되었다.”20)
요한계시록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때가 얼마 못 된.
 17장 10절에서와 같이 양적이라기보다는 질적인 뜻이다. 이 구 절은 사단의 시간이 제한되었고 종결되었다고 진술한다. 이것은 사단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말하는 미크론 크로논(mikron kronon 짧은 시간)과 대조된다. 요한계시록 17장 10절의 어구 해설을 보라.
(주해)
 요한계시록 12장 7절은 땅에서 하늘로 바뀌는 새 장면을 소개한다. 이 곳에서, 요한은 용과 여자 사이의 큰 증오가 우주적인 더 큰 드라마의 한 부분임을 이야기한다.
요한계시록 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요한계시록 12: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라.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그의 천사들에 대항하여 전쟁에 참여하였다. 이 전쟁은 분명히 사내 아이가 땅에서 취하여 감을 받은 후에 일어난다(12:5). 문맥에 의하면, 천군들의 사령관 미가엘은 그리스도 자신인 반면(12:10-11 참조), 사단은 적그리스도다. 요한계시록 12장 3절은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반란에 가담했던, 그리하여 ‘그와 함께’ 땅으로 ‘내어 쫓긴’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킨다(12:9).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반역에서 사단이 상당수의 동료들을 자신에게 끌어 모았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싸운 싸움은 물리적 싸움이라기보다 말싸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사단은 하늘 존재들의 충성을 놓고 싸운다고 묘사되었다. 그러나 본문이 추가로 말하듯이, 사단은 그리스도를 격퇴할 만큼 강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동료들은 하늘에서 거할 곳을 잃어 자유롭게 하늘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다. 요한은 힘센 천사인 사단과 그의 마귀적 군대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자들과의 전쟁에서 ‘이길 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독자들의 마음에 각인시키고자 한다.

 다음으로 요한은 용의 삼중 신원을 공개한다.

 첫째, 그는 옛 뱀이다. 이는 사단이 뱀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를 속여 땅에 죄를 가져온 창세기 3장의 인유다.

 둘째, 그의 이름은 마귀요 사단이다(각각 ‘비방자’‘원수’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원수다. 예수께서는 그를 “이 세상의 임금”으로 칭하신다(요 12:31; 14:30; 16:11), 베드로는 그를 ‘너의 원수 마귀’라고 하였다(벧전 5:8).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사단은 이 세상의 통치권이 자신에게 넘겨졌으며,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하였다(눅 4:6).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사단을 ‘우리 형제들의 참소자’,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는 자’로 묘사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욥을 대적한 사단의 고소를 지칭한다(욥 1:6-12).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그의 참소를 묘사한다(즉 3:1-2).

 마지막으로, 용은 온 천하를 꾀는 자로 알려졌다. 그의 기만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창 3:1-7), 그 이후로 사단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그들이 곁길로 가도록 하기 위하여 온갖 술책을 부렸다(고후 2:11; 11:3, 14; 엡 6:11), 요한계시록의 나머지 부분에서 사단은, 이 세상 역사가 그 종국에 이르고 있을 때, 이 세상의 권세들이 행하는 온갖 기만의 배후에 서 있다(계 13:11-17; 18:2-3; 19:20; 20:10).

 하나님께 반역을 하였다가 패배한 사단은 그의 동료 천사들과 함께 땅으로 쫓겨났다. 언제 사단이 쫓겨났는가?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전쟁은(계 4~5장에 묘사된 사건으로) 권세와 통치권을 그리스도께 이양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분명 사단 편에서 어떤 형태의 저항과 반대가 없이 이양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사단은 공개적으로 반역하였다. ‘쫓겨났다’ 라는 말은 출교와(요 9:34-35 참조) ‘법적 심판’을 의미한다(마 3:10; 13:41-42; 요 15:6; 계 2:10 참조).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하늘 궁정에서의 추방을 암시한다. 이는 죄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 사단이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하늘에서 추방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사 14:15; 겔 28:16-18 참조), 그 첫 추방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 사이에서도 분명 사단은 하늘에 여전히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분 앞에서 모였을 때, 사단이 거기에 참석하였고(욥 1:6-12 참조), 하늘 법정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하나님 앞에 고소하는(즉 3:1-2)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단의 패배가 확실해진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상황은 변하였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통치의 특징은 어떠한지 온 우주 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였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성격이 십자가에서 드러났다.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나(요 8:44), 온 우주가 그의 참 성격을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십자가에서였다. 그 결과, 사단은 하늘에서 영원히 추방되었다. 그 이후, 그와 그의 천사들은 더 이상 하늘에서 있을 곳이 없었다. 어떤 다른 신약의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악한 천사 무리를 십자가에서 이기고 즉위하신 것을 말한다(골 2:15; 벧전 3:22 참조). 예수님은 사단의 추방을 사법적 행위로 언급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제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눅 10:18; 요 14:30; 16:11 참조). 이제라는 말은 십자가 상의 예수님의 죽음을 지칭한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단의 추방의 시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 위에 높이 되는 시점도 된다(요 12:32 참조).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이제에 대하여 더 많은 빛을 던진다. 이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그 후속으로 하늘 보좌에 등극하셨을 때(계 5장 참조),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자리를 잡았고, 사단은 최종적으로 하늘에서 추방되었다고 제시한다. 우주적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십자가는 인간의 역사에서 결정적 시점이 된다. “그 때 하나님의 ‘직접 통치’가 사단의 권세 남용을 대신하며, 권세가 하나님의 그리스도께로 넘겨진다.”21) 존 스위트(John Sweet) 가 말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등극해 계신다. 그러나 땅에서는 찬탈자 들과 여전히 싸워야 한다.”(계 12:17; 고전 15:24-26)22)
요한계시록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요한계시록 12: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요한은 다시 하늘에서 나는 또 하나의 큰 음성을 듣는데, 그 음성은 하나님께서 사단의 통치를 정복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왕권이 시작되었음을 승리의 노래로 선포한다. 이 찬양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노래들 중 하나로, 구속받은 사람들 혹은 이십사 장로들이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들을 찬양하고 있다(계 5:9-14; 11:11-15; 15:3-4; 19:1-6 참조). 비록 요한이 노래하는 자들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을지라도,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라는 표현은 그들이 어떠한 모임임을 암시한다. 그들은 아마 구속받은 인간의 대표자들로서 하늘에 있는 이십사 장로일 것이다.

 찬양은 시간적 부사인 이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첫째, 오랜 숙원의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인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나는 때를 가리킨다(계 12:31 참조).

 둘째,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가 사단의 찬탈적 통치와 그 권력의 남용을 대신하는 때를 가리킨다.

 셋째, 권세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가는 때,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의 하늘 보좌 위에 등극하신 후, 이 곳 세상에서 찬탈자들 가운데서 통치하시는 때를 가리킨다(계 12:17; 고전 15:25-28).23)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 후에 있은 그분의 등극을 가리킨다. 이 일은 요한계시록 4-5장에서 묘사된 대로 오순절에 일어났다(행 2:32-36).

 찬양에서 언급된 모든 것-구원,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왕권이 재탈환 된 것은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는 우리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밤낮으로 참소하던 자다. 사단의 활동의 강도(强度)와 성격이 이 곳에서 폭로된다. 요한은 일찍이 네 생물이 ‘밤낮’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고 언급하였다(계 4:8). 네 생물, 즉 케루빔(그룹천사들)이 ‘밤낮’으로 하나님께 그칠 줄 모르는 찬양을 드리는 동안, 사단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그칠 줄 모르는 참소를 한다. 그가 하늘에서 추방됨으로 그토록 놀라운 찬양의 소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돌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우리 형제들을”(12:10) 참소함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패배시키는 대신, 사단은 자기 자신의 패배로 고통당한다. 그의 참소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간다.24)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거의 말로써 사단을 이겼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승리의 생애를 사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사단을 이긴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이루신 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승리를 가져다준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군사적 전쟁(들)이거나 혹 어떤 정치적 사건(들)이 아니라, 오히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정복, 곧 죄와 사단에 대한 그분의 최종적 정복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확실한 승리가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실제적 사건이다.

 사단에 대한 승리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하여 충성스럽게 증거한 결과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승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충성으로 확인되었다. 그들은 그 충성을 자신들의 생명보다 더 중히 여겼다. 고난과 압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께 신실하고 충성하되 죽기까지 충성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하신 권면을 상기시킨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바울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온전히 확신하였다(롬 8:28-29).

 사단이 하늘에서 추방당한 사건은 하늘의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 큰 기쁨을 일으켰다.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 진저 이는 마귀가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A. 야르보 콜린즈가 설명하듯이, 사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는 부분에 불과하다. “하늘에서 패배를 당하였으나 사단은 [여전히] 땅을 지배하고 있다.”25) 땅과 바다는 전 지구를 대표하는데, 이는 사단의 활동이 보편적이고 전 세계적 규모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사단의 두 동맹체가 땅과(땅과 육지에 대하여 동일한 헬라어가 사용되었다) 바다에서 나와 백성을 기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특별히 의미심장하다. 땅에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각별히 중요한데, 이는 사단이 그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고 큰 분노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가 분노한 첫째 이유는 그가 하늘로부터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땅에 대한 사단의 통치는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가며 그분의 영원한 왕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사단은 패배한 원수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적한 하늘의 전쟁에서 그분을 이길 만큼 강하지 못하였다. 더욱이 그는 하늘에서 패배를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부터도 패배를 당한다. 그는 대단한 분노와 진노로 가득 차 있다. 이제 땅은 완전히 그의 주시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로서, 어떤 사람이 굴욕과 상실을 경험했을 때, 그는 자기보다 약한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단은 분노에 차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알고 있다. 십자가는 그 패배에 대한 강력한 보증이다. 이제 사단은 ‘죽기까지’ 그리스도께 충성하고 신실했던 자들에게 자신의 진노를 쏟아 붓는다. 이것이 바로 지상 역사가 그 끝으로 다가갈 때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이 처하게 될 상황이다.
사단과 여자의 후손 (12:13-17)
 이 막간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단이 크게 분노하는 이유를 말한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싸움에서 자신의 무능을 깨닫는다. 그리스도를 패배시키지 못하였으므로, 그는 그의 모든 주의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로 돌려 그들을 해하여 멸하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12장 6절의 장면으로 되돌아가는데, 그것에 관한 묘사가 13-14절에서 반복된다.

(어구(語句) 해설)
요한계시록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이 시간 표현은 먼저 다니엘서에서 찾을 수 있다(단 7:25; 12:7).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둘째 단어를 (복수가 아닌) 중수(두 때)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일년, 이년, 그리고 반년’을 의미하는 것이다.26) 요한계시록 12장 6절14절의 평행구는 ‘한때 두때 반때’와 1,260일이 동일한 기간임을 나타낸다.


계 12:6 계 12:14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이 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이 기간의 상징과 연대 설정에 관하여는 11장 2절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요한계시록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입.
 사단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 ‘입’의 의미에 대하여는 요한계시록 9장 19절의 어구 해설을 참조하라.
물을 강같이.
 뱀의 입에서 나오는 홍수 같은 강은 적어도 두 가지를 대표할 것이다. 먼저, 그것은 물리적 폭력과 핍박으로써 교회를 멸하려는 사단의 노력을 상징할 것이다. 구약에서 넘치는 물은 종종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악한 나라들을 상징한다(시 69:1-2). 그 분의 원수들을 가리키면서 시편 기자는, 만일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사나운 물이 그들을 엄몰하여 그들의 영혼을 휩쓸었을 것이라고 하였다(시 124:2-5), 이사야는 주께서 유다를 휩쓸어 갈 “유프라테스의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로 넘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8:7-8). 예레미야는 애굽을 ‘창일한 시내’로 묘사하였다(렘 47:2; 46:7-8 참조), 요한계시록에서 유프라테스는 큰 음녀 바벨론을 지원하는 악인들을 상징한다(계 16:12; 17:15).

 뱀의 입에서 나오는 홍수 같은 강은 기만과 거짓 가르침으로써 교회를 휩쓸어 버리려는 사단의 노력을 상징하기도 할 것이다.27)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때 홍수의 물은 ‘기만의 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 사단을 용보다는 뱀으로, 홍수의 물이 나오는 곳을 그의 입으로 언급한 것은 에덴동산의 뱀에 대한 암시일 것이다(창 3:1-7).28) 요한계시록 후반부에서, 용의 입, 짐승, 거짓 선지자에서부터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세상을 한 곳으로 모으는 세 더러 운 영이 나온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계 16:13-14).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사단의 활동, 즉 마지막 때 세상을 기만하는 그의 활동에 관한 묘사와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계 12:9; 13:14; 18:2-3; 19:20; 20:10).

 위의 두 해석은 강력한 성경적 증거에 근거하였다. 그러므로 그 해석들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이 둘을 합치면,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쳐 멸망시키려는 시도 중 상징적 삼 년 반 동안 광야로 도피한 여자에 대하여 사단이 사용했던 두 가지 전략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전략은 무력과 박해, 그리고 기만과 거짓 가르침이다.
요한계시록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남은 자손.
 헬라어 로이포스(loipos 여기서는 복수로 사용됨)는 ‘남아 있는’, ‘나머지’라는 의미다. 이 단어는 영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남은 자’로 번역되는 일단의 여러 히브리, 헬라어 단어에 속한다. 구약에서 ‘남은 자’는 보통 전쟁과 파괴, 또는 다른 재난들로부터 살아남아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었던 일단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사 10:20-22; 11:11-12, 16; 렘 23:3; 31:7; 미 2:12; 습 3:13 참조). 구약에서 되풀이 되는 주제는 대부분의 백성이 배도하였을 때, 소수의 남은 자가 하나님께 충성하였다(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기셨다고 말씀하신 경우다(왕상 19:18)는 것이다. 어떤 연구들은 성경의 남은 무리 개념이 역사적 남은 무리, 역사적 남은 무리 가운데 있는 충성된 남은 무리, 그리고 종말적 남은 무리 등, 세 부류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됨을 주시하였다.29) 즉, 요한계시록에서 로이포이(loipoi 남은 자들)는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하여, 두아디라와(2:24) 사데(3:2)의 ‘남은 자들’12장 17절에서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하여 사용된 여자의 ‘남은 자손들’ 등 오직 세 번 나온다.30) 문맥은 분명히 12장 17절‘남은 자들’은 세상 역사의 마지막 사건들을 통과할 하나님의 충성된 자로서의 종말적 남은 무리를 가리킨다. 그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다(14:12 참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신약에 나오는 헬라어 에코(echo)‘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굳게 붙들다’라는 의미에서 ‘소유하다’라는 뜻이다.31) 이는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남은 자손이 ‘예수의 증거’를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헬라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목적어적 소유격이나 주어적 소유격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예수님에 관한 증거로 이해될 수도 있고(따라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증거 대상이다), 예수께서 친히 예언의 선물을 가진 자들을 통하여(예를 들면, 요한을 통하여) 하시는 증언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요한계시록의 문맥은 후자를 선호한다. 요한계시록 1장 2절에서, 예수의 증거는 예수께서 묵시를 통하여 요한에게 전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기록으로 전한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선지자 요한을 통하여 당신의 교회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증거’임을 시사하는 것이다(계 1:2 어구 해설 참조).

 더욱이 요한계시록 19장 10절‘예수의 증거’‘대언의 영’으로 정의한다(계 22:9 참조). 신약에서 선지자들의 역할은 예수님을 그분의 백성에게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예수의 증거’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전체가 ‘예언의 말씀’이라는 사실에서 분명히 밝혀졌다(1:3; 22:7, 10, 18-19).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본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계 1:2)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회의 증거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교회의 증거는 언제나 그 증거 (계 6:9 참조) 혹은 그들의 증거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11:7; 12:11; 계 6:9의 어구 해설 참조). ‘예수의 증거’는 그분이 육신으로 계시면서 봉사하는 동안 ‘예수께서 친히 하신 증거’를 가리키거나,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교회에게 주신 자기 계시를 가리키는 것 같다.32) 신약에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달하는 자들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계 1:2 참조)를 충실히 증거하였기 때문에 밧모섬에 유배되었다(1:9).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은, 선지자의 계시가 요한에게서 끝난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데, 이는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이 예언의 선물을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 19:10 참조).
(주해)
요한계시록 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요한계시록 12: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본문의 서두는 사단이 왜 교회에 대하여 분기충천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사단이 분노하는 주된 이유는 세상의 권세와 통치가 자신에게로부터 그리스도에게로 옮아간 후 하늘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12:10 참조). 이것은 사단이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이 십자가 후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그리스도에게 패한 사단이,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서 ‘여자의 남은 자손’으로 언급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크게 분노하여 대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본문의 나머지 부분은 본질적으로 앞의 6절에서 언급된 내용을 반복하며, 오직 하나의 새로운 사실이 부가되었다.

 그 여자는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대개 서기 538년-1798년으로 산정됨) 동안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갔다. 독수리 날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도망 나올 때, 바로가 그들을 뒤쫓았던 구약의 한 장면을 상기시킨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자기에게로 데려오셨다(출 19:4; 신 32:11-12). 이사야의 예언에서도 독수리의 날개는 유랑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과 연관되어 있다(사 40:31).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와 유랑 시대에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것처럼, 요한계시록 12장에서도 그분은 광야에서 여자/교회가 여전히 충성할 수 있도록 그를 보호하고 유지하신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중세 암흑 시대 동안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들은 핍박과 거짓 가르침의 범람을 피하기 위하여 고립된 장소에 숨어 살아야 하였다.
요한계시록 12: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요한계시록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여자를 휩쓸어 버리기 위하여,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한다. 뱀의 입에서 나오는 홍수 같은 강은 상징적 언어로서 사단의 두 가지 전략, 즉 핍박과 기만 및 거짓 교훈을 나타낸다. 그 전략은 교회가 광야에서 순례하는 삼 년 반이라는 상징적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려는 것이다. 용이 아니고 뱀으로 지칭되며, 그 입이 언급된 것은 에덴동산의 뱀의 기만적 설득을 생각게 한다(창 3:1-5), 뱀이 첫 여자를 속인 것같이, 이제 사단은 그리스도의 백성을 기만과 거짓 교훈의 홍수로써 휩쓸려고 한다(고후 11:3 참조).

 그러나 시편 기자에게 하신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여기서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다(시 32: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이 비유적 표현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의 권위와 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을 때 땅이 입을 벌려 삼켜버렸다(민 16:32; 26:10; 신 11:6; 시 116:17)는 이스라엘의 광야 경험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이스라엘을 쫓던 애굽인들을 ‘삼켜버린’ 모세의 노래에서 표현된 말들을 상기시킨다(출 15:12). 과거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추격에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며, 고라와 그 동료들의 반역으로부터 모세를 보호하였던 것처럼, 이제 그분은 사단이 자행하는 핍박과 거짓되고 유혹하는 가르침의 홍수로부터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신다.
요한계시록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사단은 그리스도를 멸하려는 그의 시도가 계속적으로 실패함으로써 매우 좌절된 듯이 보인다. 그가 여자에게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분노하는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여자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이 드러났고, 계속 적으로 드러난다.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주권이 가시화(可視化)되는 지상의 센터다.”33) 사단은 교회를 해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정면으로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려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이시다(계 12:5 참조).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였다’는 표현과 그가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움을 하려 한다는 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선언되었던 뱀과 여자 사이,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간의 증오에 대한 강력한 은유다. 요한이 그의 독자들의 마음에 남기려는 인상은 이 장면 이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되어 전 성경을 통하여 마지막 때까지 계속되는 대쟁투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쟁투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최후의 전쟁에 돌입하고자 하는 사단의 결심은 실제적으로 그의 종말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들은 이 지상 역사의 마지막 기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백성들이다. 요한계시록 17장은 한때 하나님의 참 교회였던 이 여인이 마지막 사건들 중에서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시사한다. 그 여인은 충성됨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하나님의 참 백성을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은 여자라고 불리지 않고 ‘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들’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두 가지의 특징으로 그 신원이 확인되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마지막 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 남은 자손이 되게 하고, 그들과 충성되지 못한 자들을 구분 짓게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온 세상이 사단과 그의 동맹들에게 그들의 충성을 바칠 마지막 때에(계 13:4, 8), 하나님에게는 당신의 계명을 지키며 예언의 선물을 통한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그분에게 아낌없이 충성하고 순종할 한 백성이 있을 것임을 본문은 알려준다(계 19:10 참조).

 어떤 이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다’는 것은 마지막 때의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전 기독교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를 신실히 따르는 자들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한스 라론델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34) 이러한 주장은 요한 자신이 예수의 증거를 받은 사람(medium)이라는 사실에 의해 지지될 수 있다(계 1:2 참조), 이제 요한은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서, 예수께서 당신의 계시를 선지자라는 매체를 통하여 그분 당대의 교회에게 전달하셨듯이, 지상 역사의 바로 이 마지막 시대에도 그렇게 하실 것임을 확언한다. 예수께서 마지막 때에 사는 그분의 남은 자손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남은 자손들은 그들 중에 있는 선지자의 음성을 통해 계시된 그분의 증거에 충성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그 특징을 나타낼 것이다(계 14:12 참조).

 사단은 좌절하였으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최후의 싸움에 돌입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그 이전 어느 때보다 그 전쟁에서 이길 결심을 한다. 본문은 사단이 전쟁을 하기 위하여 돌아 갔다고 말한다. 아마도 사단은 그 전쟁을 직접 준비하려고 잠시 물러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의 계속적인 실패를 알아차리고, 그는 혼자가 아니라 연합 세력과 함께 전략을 수립하려 한다. 그는 바다와(계 13:1-10) 땅에서(계 13:11-17) 올라온 두 짐승에게서 동맹군을 발견한다. 그들 셋은 그리스도와 그의 남은 자손들과 최후의 싸움을 벌이기 위하여 모조 삼인 동맹을 형성한다(계 16:13-16 참조), 이 거짓 연합 세력이 마지막 때에 자행할 활동과 전략은 요한계시록의 다음 장에 나온다.
12:1-17 뒤돌아보기
 요한계시록 12장의 묵시는 요한계시록 후반부에서 상연될 사건의 무대를 제공한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인 것처럼 보이는 것, 즉 선악 간의 큰 투쟁을 소개한다. 그것은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우주적 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것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지상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는 것, 곧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충성 때문에 압제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선악 간의 지루한 투쟁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에 대한 이해는 큰 투쟁이라는 맥락에서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과 함께, 이 지상 역사의 최후의 사건들이 공개되기 시작한다. 12장은 이 지상 역사의 최후의 드라마에서 두 주역 배우, 곧 사단으로 밝혀진 용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인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가 배역을 맡은 장면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메릴 C. 테니가 주목하듯이, 요한계시록은 사단을 진짜 원수로 취급하여 “그의 존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바로 그가 실제적으로 두려운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를 완전히 폭로한다.”35) 지구는 큰 논쟁으로 비롯한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멸하고 교회를 쓸어버리려 했던 자신의 노력이 실패로 끝난 사단은 분노로 충천해 있다. 그는 최후의 싸움에 돌입하여 이 지상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로 밝혀진 자들에게서 승리를 쟁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의 사건들은 성도들을 멸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지 못 하게 하려는 사단의 마지막 시도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사단 간의 최후의 전쟁에서 교회가 최 전선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혁혁한 승리는 그리스도의 왕권과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과 사단의 패배와 관련하여 ‘이제’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계 12:10). 요한계시록 5장은 인봉된 두루마리를 상징적으로 취급하면서 세상의 통치권이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갔음을 묘사한다.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이기셨고,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에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여전히 사단의 압제를 받고 해를 입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개념은 ‘이제’‘아직 아니’라는 일반적인 신약 주제 내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사단은 이미 패배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신다(마 28:18). 그러나 모든 반역의 진압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천년기의 끝이 되어서야 사단과 그의 동료들이 최종적으로 멸망되고(계 20:7-10) 하나님의 우주적 왕국이 영원히 세워질 것이다.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이 예를 든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사건은 현시점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의 결전에서 독일군을 패배시킨 ‘D-Day(The Doom's Day)’ 이 후, 전쟁의 결과는 시간상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아마 전쟁의 결정적 결과가 40%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러나 독일군이 항복하고 마침내 적대감이 그치게 된 “V-Day(the Victory Day)”까지 전쟁은 여전히 수행되어야 했다.36)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을 이기신 그 결정적 전투라는 운명의 날과 (the Doom's Day) 그리스도께서 이 땅으로 재림하시는 그 승리의 날 사이에 자신들이 서 있음을 발견한다. 바울에 의하면, 그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셔야 한다(고전 15:25), 쿨만은 “승리를 결정짓는 전쟁이 이미 일어났다는 요동할 수 없는 확고한 확신 때문에 최후의 승리에 대한 소망은 그 만큼 더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단이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계 12:12).37)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 12장은 사단을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큰 원수로 묘사한다. 독자들에게 사단의 활동 특성을 인상깊게 하기 위하여, 요한은 생생하게 용의 두려운 모습을 그린다. 사단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우주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향이 미치도록 그리스도와 투쟁한다.38) 메릴 C. 테니에 의하면, 사단은 “이 세상 장면의 배후 세력, 즉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싸움을 거는 악한 지성이다. 어린양과 용 사이의 싸움은 전 역사의 과정이 절망적인 이원론의 팽팽한 대결 속에 갇히게 하는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나는 싸움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 진영의 초자연적 요소들은 계획이 전개됨에 따라 점점 분명해진다. 마침내 최후의 절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대 격변적 심판에 의해 땅의 무대에서 용을 제거하신다.”39)

 그러나 참으로 패배한 원수는 사단임을 요한계시록은 명백히 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확실히 결정된 십자가 상의 결정적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계속적인 압제의 역사를 통하여 교회를 멸망시키고 쓸어버리고자 한 사단의 노력은 실패하였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 마지막 날의 사건들에 직면할 때, 그들을 위한 희망과 경고가 이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패배한 원수와 대항하고 있음을 아는 그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사단은 자신이 너무 여러 번 실패하였음을 깨닫고 분노하며 더 치밀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대적하는 최후의 싸움에 돌입한 그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싸움을 이기려고 결심하였다. 그는 두 동반자, 곧 바다 짐승과 땅의 짐승을 수반하고(계 13장) 그 전쟁을 직접 준비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다음 두 장에서는 남은 자를 대적하는 용의 전쟁과(13장) ‘용의 공격에 대한 남은 자의 반응’(14장) 이 두 가지를 다룬다.40)

주(註) ——————
1. Beale, 628-629. 
2. J. M. Ford, 195. 
3. Beale, 628-629. 
4. 참조 Johnson, 524; Aune, Revelation 6-16, 684-685.
5. Thomas, Revelation 8-22, 119. 
6. Morris, 152 참조. 7. Johnson, 514. 
8. Thomas, Revelation 8-22, 121. 
9. Beale, 629. 
10. Morris, 152. 
11. Johnsson, 17. 
12.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2:78. 
13. Mounce, 239. 
14. Johnsson, 18. 
15. 상동, 
16. 성경과 유대 전승에서 다뤄진 미가엘 관련 추가 정보를 얻으려면 Aune, Revelation 6-16, 693-695를 참조하라. 
17. Charles, 1:325. 
18. J. Massynberde Ford, 194. 
19. Johnsson, 19–20;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809–810. 
20, Ellen G. White, Th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973에 인용됨. 
21. Swete, 201. 
22. 상동. 
23. 상동. 
24. Hughes, 140.
25. Collins, The Apocalypse, 141. 
26. Anthony A. Hoekema, “Time, (Two) Times, and Half a Time,” in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2d ed. (Grand Rapids, MI: Eerdmans, 1988), 4:854. 
27. Beale, 673. 
28. Mounce, 246. 
29. Gerhard F. Hasel, “Remnant,” in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2nd ed. (Grand Rapids, MI: Eerdmans, 1988), 4:130을 보라. 
30. 이 주제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위하여는 The Ser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7:813-815를 보라. 
31. General Conference of Seventh-day Adventists. Committee on Problems in Bible Translation. Problems in Bible Translation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54), 248; Bauer, 331-332. 
32. Pfandl, 320. 
33. Oscar Cullmann, Christ and Time (Philadelphia, PA: Westminter Press, 1964), 154. 
34. LaRondelle, How to Understand the End-Time Prophecies, 283. 
35. Tenney, 175. 
36, Cullmann, 84. 
37, 상게서, 87(이탤릭은 원문을 따름). 
38. Edward Heppenstall, “Sin, Salvation, and the Sanctuary,” Ministry, March 1977, 13-16. 
39, Tenney, 175. 
40. Paulien, What the Bible Says About the End-Time,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