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안식일 제 4 장 구주와 안식일 제 2 부 신약에 있는 안식일과 구세주
 “일하신다” 동사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일한다”는 동사의 뜻은, 지속적인 하나님의 창조도 또 지속적인 우주의 지탱도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명이라고 반복해서 분명하게 확인된 하나님의 일하심과 일에 대한 요한의 언급에 의해서 명확해진다. (100.2)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진술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이니라”(요 6:29, 이탤릭체 강조)고 하신다. 다시,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 10:37, 38; 4:34; 14:11; 15:24 참조, 이탤릭체 강조)고 진술하신다. (100.3)
 하나님의 일의 구속적인 본질은 “아버지의 일”(요 9:3)로 명확하게 묘사된 소경을 치유하시는 행위에서 분명해진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자신의 창조의 일을 끝내신 것이지 결코 일반적인 자신의 일을 끝내신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죄로 말미암아, 그분께서는 “지금까지” 구속의 일에 종사해 오셨다. 링컨(A. T. Lincoln)의 말을 사용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창조의 일에서 하나님의 쉼은 최종적인 것이었지만, 죄에 의해서 방해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본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역사 가운데서 일하셨다”68)고 말할 수 있다. (100.4)
 신학적인 의미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아버지께서 안식일의 기능을 무효화시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히 하시기 위해서 “일하신다는 것”에 호소한다. 그리스도의 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안식일이 창조(창 2:2, 3; 출 20:11)와 구속(신 5:15) 모두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00.5)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세속적인 일들을 중단하므로 창조주 하나님(Creator-God)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동료들에게 자비를 행하므로 구속주 하나님(Redeemer-God)을 닮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안식일에 불행한 자들에게 동정을 받는 백성들의 생활에서 진리일 뿐만 아니라, 특별하게는 안식일에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지된 안식일의 일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제사장의 봉사에서도 진리였다. 그 이유는 그러한 일들이 구속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00.6)
 유대인들이 승인한 안식일의 이러한 신학에 기초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그분의 아버지께서 안식일에 행하시는 “일”의 적법성을 옹호하신다.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중풍병자의 치유에 대한 논쟁의 여운을 잠재우시기 위해서, 할례의 경우를 든다(요 7:22-24). 주님께서는 만일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구원의 언약69)을 확대하기 위해 안식일에 사람의 신체의 일부분(랍비의 주장에 따르면 할례는 사람의 248지체 중의 하나에 포함된다)을 다루는 것이 제사장들에게 합법적이라면,70) 그 날에 전신을 건전케(요 7:23)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그분에게 “분노”하는 것은 결코 논리에 맞지 않다. (100.7)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전인(whole man)의 구속을 위해서 일하시는 날이다. 이것은 두 치료의 경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동일한 날에 치유를 받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으며, 그분께서는 그들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 봉사하셨다는 사실에 의해서 확인되었다(요 5:14; 9:35-38). 그리스도의 반대자들은 그분의 안식일 봉사의 구속적인 특성을 알아차릴 수 없었는바, 그 이유는 그들은 “외모로 판단하기”(요 7:24)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침상과 진흙이 사회적인 유대(5:10)와 그것들이 상징했던 시력의 회복(요 9:14)보다 더 중요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안식일을 그 날의 긍정적인 기능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당시에 편만 했던 안식일에 대한 몰이해에 대항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필요했다. (101.1)
 요한복음 9장에 기록된 소경을 안식일에 치료하신 기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그와 같은 구속적인 연결을 하도록 초청하시면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4절)고 말씀하신다. “밤”은 분명히 구원의 역사의 종말을 언급하며, 우리가 발견하는 결론은 “아직”이라는 부사구에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구속의 행위에 대한 그러한 결론은 창조의 안식일의 원형이되는 마지막 안식일로 인도한다. (101.2)
 그 마지막 안식일로 인도하면서, 하나님의 위(Godhead)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고 계신다”(요 5:17).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확장해야 한다(요 9:4). 앞에서 생각해 본 것들은 요한에 의해서 보고된 두 안식일의 치유는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이미 찾아본 안식일의 구속적인 의미, 곧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된 구원의 축복을 경험하고 나누는 때를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101.3)
 4. 히브리서에 나타난 안식일
 복음서에서 우리가 발견한 안식일의 구속적인 의미가 히브리서 4:1-11에도 반영되고 있다. 저자는 그곳에 실재하는 창조의 일곱 째 날의 하나님의 쉼(히 4:4)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의도하신 그 모든 쉼과 평화와 관련되어 있는 안식일의 쉼의 종말론적인 이해를 이끌어 내고 있다. 히브리서 안에 있는 안식일에 대한 토론은 본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바, 그 이유는 안식일 준수가 어떻게 신약교회에서 이해되고 경험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101.4)
 제3장에서, 우리는 히브리서의 안식일이 어떻게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토론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았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만일 히브리서 안에서의 안식일 준수의 의미가 우리가 복음서에서 발견한 안식일의 동일한 구속적인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함에 있다. (101.5)
 히브리서의 저자는 안식일과 구세주와의 관계를 창세기 2:3시편 95:7, 11과 관련을 시키므로 설정하고 있다. 이 두 본문을 도구로 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창조 때에 제시된 안식일의 쉼(히 4:4)이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쉴 곳을 발견했을 때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오랜 후”에 자신의 쉼이 다시 다윗을 통해서(히 4:7; 시 95:7 참조) 발견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일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더욱 완전히 실현되기를 기대해 왔다(히 4:9). 하나님의 백성은 창조 때의 “일곱째 날”에 약속된 하나님의 쉼의 “복된 소식”을 드디어 경험하게 될 것이다(히 4:4). (101.6)
 문자적인 안식일 준수냐 상징적인 안식일 준수냐?
 히브리서의 수신자들 가운데에 안식일의 실제적인 준수와 이해에 대해 어떤 추론들을 이 구절로부터 합법적으로 이끌어낼 수가 있는가? 대부분의 주석 가들의 입장은 이 구절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안식일을 준수했는지, 아니면 저자가 그러한 준수에 대한 그리스도인적인 해석을 하기로 의도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사바티스모스[sabbatismos]-안식일 준수”(히 4:9)의 문자적인 해석에 반대하는 다섯 가지의 이유를 제시한 라쯔라프의 입장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미 제4장에서 라쯔라프의 이론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 곳에서는 히브리서에 있는 안식일의 쉼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을 지원하는 다른 세 기초적인 이유들을 고찰하고자 한다.71) (102.1)
 첫째,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논하고 있는 것은 안식일의 실제적인 준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사건(Christ-event)을 통한 그 날의 쉼의 영원성과 완성이므로 그 날의 문자적인 준수를 추론으로 이끌어낼 수가 없다고 말한다. (102.2)
 두 번째, 어떤 사람들은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남아 있도다”(히 4:9)라는 말이 미래에 실현될 것이므로, 하나님의 쉼에 들어가도록 하는 권고(히 4:10, 11)는 그날의 현재적 준수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72) (102.3)
 세 번째, 어떤 사람들은 히브리서의 저자가 여러 경우에서 옛 언약의 제도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해졌다(히 8:13; 7:11-9:28)고 가르치므로, 안식일은 아마도 “폐해진” 제도들 가운데 있었다 라고 추측한다.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