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노를 두아디라의 남녀들에게 향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 제도로서 있는 교회에 쏟으신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 내부에도 셀 수 없는 남자와 여자들이 충성스럽게 남아 있었고
“사탄의 깊은 것을”(
24절) 알지 못하였다. 이 표현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깊은 것”(
고전 2:10)이라고 말한 표현을 반향한다. 이 말은
“사람의 지혜”(
5절)보다 하나님의 영께 그들의 신뢰를 바치는 사람들의 특징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본래 이세벨의 시대처럼 그들은 이세벨의 새로운 뜻에
“무릎 꿇지 않고”(
왕상 19:18)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께 신실하였다. 편지는 이러한 예외를 치하하고 그들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거기에서는 또한 네 가지 덕목, 즉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를 언급한다(
계 2:19). 두아디라는 또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rancis of Assisi, 1182~1226)와 최초기의 학교, 병원과 대학교들을 설립한 프랑스의 루이 왕(King Louis, 성인으로 불린)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때는 변화와 혁명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페트뤼스 발데스(Peter Waldo, 1140~1217),
5)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보헤미아의 얀 후스(John Huss, 1396~1415)를 기억한다. 이어서 독일에서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나왔다. 사자는 이 모든 인물들과 이 모든 운동들을 격려한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5절).
5) 발도라고도 하며, 발도 파(Waldensians)의 창시자이다(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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