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눈으로 본 요한계시록 제1부 폭풍우 제1장—교회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그러나 버가모에는 문제들이 있다. 그 편지는 이스라엘을 제설혼합주의(諸說混合主義)에 빠지게 했던 선지자 발람의 행동이 생각나게 하는 행위를 책망한다.29 그 이름이 “백성을 삼키다”라는 의미를 가진 발람은 타협이야말로 택하신 백성을 “삼키”거나 무력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박해나 죽음보다 더 해로움을 끼친 것은 외래의 문화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악과 타협하는 것은 오히려 순수한 악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적군이 아직 성벽 바깥에 있을 때는 그들이 성 안의 비밀의 방까지 잠입해 들어 왔을 때보다 식별하기가 쉽다. 버가모 교회의 상황이 그러하였다. 이교 신앙과 오류가 진리와 혼합되었다. 에베소 시대 이후로 교회는 크게 빗나갔다. 한때 미움을 받던 니골라당이 이제는 성벽 안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 “백성을 삼키는 자”라는 이름의 발람과, 그리스어로 발람과 대등한 이름인 “백성을 정복한 자”라는 뜻의 니골라당이 이제 함께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50.2)
 이러한 타협의 경향은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교회는 그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유연함과 개방성이라는 태도를 수용하였고, 그 자신을 주변의 정치권력 엘리트의 틀에 맞추었다. 당시에 공포된 황제의 칙령들은 교회가 가졌던 타협의 기술을 반영한다. 예컨대, 로마의 태양의 날인 일요일이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로서 토요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30 (51.1)
 선지자 다니엘은 이렇게 타협하는 경향을 신상(神像)의 이상과 네 짐승의 이상에서도 이미 지적한 적이 있다. 신상의 이상(단 2장)은 종교적인 차원을 상징하는 진흙과 정치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철로써 교회를 묘사하였다.31 네 짐승의 이상에서는 영적인 차원을 나타내는 사람의 얼굴을 가진 정치권력의 뿔이 교회를 상징하였다.32 (51.2)
 에베소에서 들었던 회개를 촉구하는 사자(使者)의 음성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인자의 입에 있는 양날 선 검(계 2:16)은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를 오류로부터 분리해내는 말씀을 묘사한다(참조 사 49:2). 의인들이 받은 보상은 “감추인 만나”“흰 돌”로서(계 2:17), 이 또한 심판과 관련된 문맥을 암시한다. 만나는 출애굽과 약속된 땅에 대한 전망을 생각나게 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이 음식은 희망의 표징이 된다.33 유대인들의 오래 된 전설에 의하면 성전 이 파괴될 때(기원전 6세기), 선지자 예레미야가 성궤(聖櫃) 안에 든 만나 항아리를 숨겼다고 한다.34 그리스도의 시대가 도래(到來)하면 누군가가 그 만나 항아리를 찾아내서 다시 그것을 음식으로 먹게 될 것이라고 한다.35 이 전설을 따르면, 마지막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구원받을 선택된 소수의 신원이 밝혀질 것이다. 그 때까지는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아닌지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51.3)
 동일한 교훈이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에도 새겨져 있다(17절). 흰 돌은 판결을 나타내기 위하여 검은 돌과 흰 돌을 사용하였던 로마의 재판 과정을 암시한다. 흰 돌은 무죄를, 검은 돌은 유죄를 의미하였다. 흰 돌을 받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무죄를 선고받는다는 뜻이다. “새 이름”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재창조(再造)의 행위를 상징하며, 그것은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운명의 표시이다. 이러한 의미로, 아브람은 수다한 자손을 얻을 약속을 품은 아브라함이 되었고, 야곱은 하나님과 겨룬 씨름에 대한 대답으로 이스라엘이 되었다.37 지리적인 장소들도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의미로 “여호와 우리의 의(義)”라는 새로운 칭호를 받는다.38 같은 방식으로, 버가모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도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는 새 이름을 받는다(17절). 성경과 유대 전통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 밖에 내서도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39 실제로 그것이 나중에 나오는 편지에서 제시하는 해석이다.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의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이 “새 이름”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며,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가져오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다(12절). (52.1)
 이렇게 예루살렘의 이름을 하나님 자신의 이름과 결합하는 것은 이미 예레미야서에서도 등장하는데, 거기서 선지자는 그 도성에 “여호와 우리의 의”(렘 33:16)라는 새 이름을 붙인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탈무드와 미드라쉬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기를, “둘 다 찬양 받으실 거룩한 분[하나님]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므로”40 예루살렘과 그리스도는 서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미드라쉬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시듯이, 예루살렘도 그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실 것이다”라고 지적한다.41 우리는 계시록의 중심에서도 동일한 개념을 발견한다. 택함을 받은 소수, 새 예루살렘의 144,000 거민은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이름을 받는다(계 14:1: 참조 22:4). (52.2)
 편지의 도입부에서 신실한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했었다. 이제 그 결론부에서도 버가모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받는다(계 2:17). 이스라엘의 의무는 그분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인데, 그분의 백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표지(標識)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대리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안디바라는 이름이 언급된 것이 이미 이를 암시하였다. 아들의 사명은 그 아버지의 이름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며 아버지의 부재시에 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이름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만 알려진다. 마찬가지로, 오직 버가모의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흰 돌 위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것은 그들이 그분과 맺고 있는 개인적인 관계 때문이다. 버가모로 대표된 시대에는 유형의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자로서 가져야 할 그 정체성과 사명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52.3)
 두아디라
 우리는 이제 버가모로부터 60킬로미터 동쪽으로 주의를 돌린다. 두아디라는 에베소나 버가모에 비하면 중요성이 좀 덜한 도시이다. 플리니우스는 그곳을 “그저 그런 도시”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편지는 가장 신랄한 비난과(계 2:20~27), 매우 적은 칭찬을(19절) 담고 있다.

  (53.1)
 악(惡)은 이미 버가모에 침투하였다. 두아디라에서 상황은 악화된다. 악은 이제 교회의 각 영역에 스며든다. 사자는 버가모의 이단을 발람의 상징을 통하여 묘사했는데, 그의 영향력은 교회 밖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 왕후로 표현된 악이 지배한다(20절).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였다. 본래 그 여자는 페니키아 출신으로서 시돈 족속 왕이며, 바알과 아스다롯의 사제인 엣바알의 딸이었고(왕상 16:31),42 혼자서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을 바알 숭배로 이끌었다. 개인적으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후원하였던 그 여자는 또한 선지자 엘리야와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게 남아 있는 사람들을 극심하게 증오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영향은 그 아들들과 딸 아달랴의 통치 기간까지 계속되었다.43 (53.2)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의 치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설(異說)이 공식화 되고 교회의 파워 엘리트와 공존한다. 이제 교회는 스스로 정치적 권력을 확립하고 왕의 복장을 입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두아디라 성은 왕권과44 사제직의45 색상인 자주색 염료로 이름나 있었다. 염색업에 종사하였던 두아디라의 루디아를 우리는 기억한다.46 (54.1)
 그러나 두아디라 성은 또한 튀림노스(Tyrimnos) 신(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였으며, 후에 그것은 로마 황제 숭배로 발전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편지의 발신자는 자신을 눈부신 광채의 기운(aura)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소개한다. 눈은 “불꽃 같고” 발은 빛난 주석 같아서 태양신보다 더 빛나며 그 주제넘은 교만함을 나무란다. 교회가 하나님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 상징적인 이세벨은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한다. (54.2)
 그 편지는 “모든 교회”를 언급한다(계 2:23). 종종 하나님의 증인들은 그들이 누구를 대표 하는지 잊어버린 채, 그들의 증거의 대상이 되시는 분 대신에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그것은 모든 종교와 모든 선지자들이 직면하는 위험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목소리로 하나님의 목소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인간과 그 제도들이 하나님과 진리의 자리를 차지할 때 그 결과는 항상 동일하다. 불관용(不寬容)과 박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것이 아리우스 주의의 마지막 위협이47 끝난 기원후 538년에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가 1563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폐지된 중세 시대의 교회, 두아디라 교회의 특성이 되었다. 그것은 종교재판과 십자군의 교회였다. 인간 역사에 그처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박해를 목격했던 적은 또 없다. 사람들은 강렬한 고통의 심판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진노를 이해한다(22절). 교회는 그의 불관용에 대한 대가를 비싼 값으로 치르게 될 것이다. (54.3)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노를 두아디라의 남녀들에게 향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 제도로서 있는 교회에 쏟으신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두아디라 교회 내부에도 셀 수 없는 남자와 여자들이 충성스럽게 남아 있었고 “사탄의 깊은 것을”(24절) 알지 못하였다. 이 표현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깊은 것”(고전 2:10)이라고 말한 표현을 반향한다. 이 말은 “사람의 지혜”(5절)보다 하나님의 영께 그들의 신뢰를 바치는 사람들의 특징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본래 이세벨의 시대처럼 그들은 이세벨의 새로운 뜻에 “무릎 꿇지 않고”(왕상 19:18)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께 신실하였다. 편지는 이러한 예외를 치하하고 그들을 아낌없이 칭찬한다. 거기에서는 또한 네 가지 덕목, 즉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를 언급한다(계 2:19). 두아디라는 또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Francis of Assisi, 1182~1226)와 최초기의 학교, 병원과 대학교들을 설립한 프랑스의 루이 왕(King Louis, 성인으로 불린)의 시대이기도 하다. 그때는 변화와 혁명의 시대이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페트뤼스 발데스(Peter Waldo, 1140~1217),5) 잉글랜드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보헤미아의 얀 후스(John Huss, 1396~1415)를 기억한다. 이어서 독일에서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나왔다. 사자는 이 모든 인물들과 이 모든 운동들을 격려한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25절).

5) 발도라고도 하며, 발도 파(Waldensians)의 창시자이다(역자 주).
(54.4)
 계시록은 종말론적인 소망을 최후의 위로와 상급으로서 제시한다. 그것은 먼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26절)라는 선물을 보여 주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시대를 알리는 시편 2편 8, 9절에서 유래된 약속이다. 고대의 랍비들에 의하면 그것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48의 도래가 될 것이었다. 이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려는 인간의 시도를 묘사하는 것 이므로, 우리는 누가 홀로 최종적인 권세를 가지고 계신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55.1)
 재림의 소망은 또한 “새벽 별”의 선물이다(계 2:28). 그것은 민수기 24장 17절(“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 구절은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된다. 민수기 24장 17절은 왕 그리스도에게 적용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고,’ 그 별은 흑암으로부터 나온다. . 이것은 그리스도의 별이다.”49 이 마지막 약속은 중세 시대 동안 힘들어 하며 새로운 새벽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다. (55.2)
 사데
 두아디라로부터 남쪽으로 60킬로미 터 떨어진 곳에 고도가 서로 다른 두 지역에 걸쳐서 사데의 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래서 그 이름도 복수형(그리스어로 사르데이스 [Sardeis]으로 되어 있다. 원래 그 도시는 고원(高原)에 건설되었으나, 발전해 가면서 더 낮은 쪽의 골짜기와 비탈로 확장되었다. 사데의 지형학(地學)은 그 성의 쇠락을 증언한다. 사데는 영광스러운 과거와 황폐한 현재 사이의 대조를 보여 주는 완벽한 예이다. 요한이 유배당해 있을 무렵 사데의 영광스러운 과거는 이미 역사가 되어 있었다. 다섯 세기 전에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명성 높은 도시들 중에서 있었다. 부자(富者) 크뢰수스가 그곳의 마지막 왕이었다(기원전 560~546). 이윽고 그 나라는 고레스의 손에 함락되었다. 그의 군대가 고원의 정상에 도달했을 때 성문은 열려 있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그의 재산에 마음을 빼앗긴 크뢰수스 왕은 전쟁을 준비하지 않았다. 사데 도성은 경계를 게을리 한 것의 고통스러운 대가를 그 몰락한 백성에게 깨우치는 먼지 쌓인 과거의 기념물로 금세 시들어갔다.

  (56.1)
 그 도시의 비극적인 역사는 편지의 권면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계 3:3). 편지 전체가 교회에게 진실하고 참된 신앙의 과거로 돌아오라고 호소한다. (56.2)
 편지의 발신자는 이제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처럼 “일곱 별을 가진 이”(1절: 참조 계 2:1)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사데도 에베소처럼 무엇을 “가진” 교회이다. 그들에 대한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 두 교회는 자신들의 공적(功績)으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동일한 그리스어 낱말, 알라(alla, “오직,” 계 2:6; “그러나,” 계 3:4)로 이 칭찬이 시작된다. 질책 받는 중에도 그들이 “가진 것”이 있다. 두 교회 모두 생명의 약속을 받는다. 에베소에게는 “생명나무”(계 2:7)가, 사데에게는 “생명책”(계 3:5)이 있다. 그리고 둘 다 하늘 잔치에 참여한다. 에베소(계 2:7)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을 특권이 있고, 사데를 위해서는(계 3:4, 5) 잔치와 경축의 개념 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가진 흰 옷(전 9:8)에 대한 언급이 있다. (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