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8부 제단으로의 초청 제42장 대속죄일의 심판은 충성을 판단한다
 나는 하나님의 경고에 감사한다. 어느 날 내 친구 제프가 전기톱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나무를 하러 갔을 때 나는 안전문제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프의 한 마디 말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제프는 “네가 잠시 정신을 놓는다면 네 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목숨을 잃게 될 거야”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친구의 경고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생생했다. 제프는 나를 향한 우정의 표현으로 내게 분명한 경고를 해주었다. 때문에 난 조심할 수 있었다. 전기톱으로 작업하는 수백 시간 동안 아무 사고없이 작업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내 친구에게 감사한다. (379.4)
 셋째 천사는 징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 14:12)라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성도들”“거룩한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에 매어달리는 자들이다(참고 요 12:17). 요한계시록 14:4-5에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을 다른 단어로 순서를 바꾸어서 언급하고 있다. (379.5)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380.1)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충성심에 대한 시험으로 압축된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의 율법과 구원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생명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겠는가? 이스라엘의 대속죄일과 같이 심판의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 충성한 부류와 그렇지 않은 두 부류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380.2)
 고대의 대속죄일과 달리 마지막 때의 심판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대규모의 조직적이면서도 제도적인 반역을 다룬다. 여기에는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성도들과 이에 대항하는 연합한 죄인의 무리가 있을 것이다. (380.3)
 셋째 천사의 기별이 선포된 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이 땅에 “추수”하러 오신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결과를 집행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는 것을 표상한다(요 14:14~20). 셋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경고이다. 지금이 아니면 없다. (380.4)
 그러나 셋째 천사의 기별은 긍정적인 측면도 가진 경고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훈계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과 대화하려는 무의미한 시도와 같기 때문이다. (380.5)
 나는 죽은 사람과 대화하려는 사람들을 보았다. 물론 정말로 죽은 사람은 아니었다. 수년 전에 학비를 벌기 위해 치과의사로 일하시는 분의 집 잔디를 깎고 있었다. (380.6)
 그분의 여덟 살 난 아들이 서부극 놀이를 하며 정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빵! 넌 죽었어. 넌 죽었다고!” 어린아이의 행동이 재미나서 장난삼아 이렇게 물어봤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들을 수 있겠니?” 그러자 꼬마는 멈추어 서서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귀를 명중시키지 못했어요.” 나는 아이의 논리에 깜짝 놀라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381.1)
 아직 희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에 대한 경고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을 듣고 다시 돌아올 사람들에게 경고하시는 그분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호 14:4). (381.2)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성소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다. 심판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그분의 중보는 끝나지 않았다. 만약 그리스도의 중보가 끝났다면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 것이다. 또한 심판 때에 주어지는 요한계시록 14장의 천사들의 경고도 필요치 않게 되었을 것이다. (381.3)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성소를 정결하게 하기 시작할 때에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처럼(레 16:12~16) 예수님께서도 심판이 시작되었을 때에 그의 아버지 앞에 나아가셨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의 제사장이 지성소와 번제단을 정결케 하며 중보사역을 계속한 것 같이 동일하게 중보사역을 그치지 않으셨다. (381.4)
 대속죄일에 제사장들이 드린 아침과 저녁의 중보 제사의식은 연중 다른 날에 드려지는 제사와 동일하였다(출 27:20~21; 29:38-42; 30:7~8; 민 28:1~8, 27). (381.5)
 사실 아침 번제는 온 회중을 대신하여 별도의 번제와 속죄제에 의해 보충되었다(민 29:7~11).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숙한 심판의 날이었지만 이때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묵상으로 보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1844년 이후로 하나님의 심판은 한 세기 반 이상 지나갔으나 여전히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1776년 이후로 2세기 이상 계속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 또한 계속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382.1)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경고가 주어질 것이며 결정해야 할 때가 이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다. (3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