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환경과 시련 속에서 주님이 인정할 때까지 참을 수 있는 힘은 성령이 주시는 은혜이다. 이 미덕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다. (158.3)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6). 성령은 사람들에게 인내하신다. 그가 주시는 열매는 우리가 서로 오래 참을 수 있게 해준다. 인내와 오래 참음은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과 결합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역사의 종말을 사는 성도의 특징은 인내라고 성경은 말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158.4)
 5) 자비(chrestotes).
 우리 주님은 자비한 분이시다. 그분은 약하고 상처 입은 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들과 교제하실 때에 크신 지혜를 가지고 깊은 주의와 친절한 태도로 하셨다. 무례하지 아니하시고 가혹한 말을 함부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감정이 예민한 사람들을 쓸데없이 상심케 하지 아니하셨다. 그는 사람들의 약점을 비난하지도 아니하셨다. 그는 진리를 말씀하시되 항상 사랑으로써 하셨다. 그는 외식과 불신과 불의를 단연히 견책하셨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심한 견책을 하실 때마다 그의 말씀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12) (159.1)
 자비는 은혜의 결과이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고 약자를 짓밟지 않는다. 자비란 이웃에 대해 친절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자비한 분이다.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고 권면하셨다. 우리가 이웃에게 자비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159.2)
 두 사람의 농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농부가 매일 가파른 비탈길의 계단식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물길을 만들고, 시들은 곡식에 물을 대곤 하였다. 다른 농부는 바로 그 아래 논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논두렁에 구멍을 뚫어 위의 논의 물을 자기 논에 흘러 들어오게 했다. 앞의 농부는 화가 났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으므로 목사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지금처럼 계속 논에 물을 대라고 하였다. 그래서 농부는 논에 돌아와 계속해서 물을 대었다. 그러나 아래 논 주인은 계속 물을 빼갔다.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159.3)
 며칠 후, 그 농부는 다시 목사님을 찾아갔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에게 아래 논에 먼저 물을 대 주고 자기 논에 물을 대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음 날 그 농부는 아래 논에 물을 대 주고 자신의 논에 물을 대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났다. 두 농부 사이에는 한 마디의 대화도 없었지만 4일째 되던 날 두 번째 농부가 첫째 농부에게 찾아와 “내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리스도인의 자비가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160.1)
 6) 양선(agathosune).
 양선은 능동적으로 선을 행하는 행위로서 자비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특별한 삶의 방식과 관련된 미덕으로 자비나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성숙한 사랑을 말한다. 예수님이 예로 든 선한 사마리아인이 이에 해당한다(눅 10:30~37). 또 예수께서는 식사를 대접하려거든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라고 하셨다.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눅 14:13). (160.2)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비유로 소개한 예수님의 종말설교에는 이렇게 양선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마 25:31-46).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 한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선을 베풀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 36). (160.3)
 이러한 양선은 심판 때에 사람을 구원의 반열에 들어가게 해 줄 것이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 “그리스도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큰 심판의 날의 광경을 묘사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판결이 한 가지 점(one point)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민족들이 그리스도 앞에 모일 때에 두 부류로만 나누어질 것이며 그들의 영원한 운명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도와주었느냐 또는 도와주지 않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13) 이처럼 양선은 최후의 심판의 기준이 됨을 알 수 있다. (161.1)
 7) 충성 (pistis).
 충성이란 자신이 받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신뢰할 만함, 확고부동함, 혼들림 없음 등이 포함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충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예수님은 환난을 당하고 있는 서머나 교회의 신자들에게 끝까지 충성할 것을 당부하셨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이 열매는 가장 혹독한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변함없이 믿음 가운데 확고하게 서서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미덕이다. (161.2)
 1957년 10월 4일 구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띄었다. 그러자 미국은 큰 공포에 빠졌다.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이 국가 위기를 선언했다. 긴급 소집된 의회는 우주 경쟁에서 소련을 따라잡을 목적으로 연방정부 수준에서 최초로 ‘국가방위 교육법’을 통과시켰다. (162.1)
 이 때 젊은 로버트 글레이저(Robert Glaser) 교수가 “발상을 바꾸라”고 하면서 그 방안으로 절대평가 원리를 제시했다. 이 원리에 입각해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소련과 경쟁하는 대신 10년 후에는 달에 인간을 착륙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것은 목표보다 2년 앞당겨 1969년에 닐 암스트롱(Neil A. Armstrong) 선장이 달에 첫발을 디딤으로써 달성되었다. (162.2)
 그런데 ‘절대평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글레이저 박사는 성경의 달란트 비유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 원리를 체계화시켰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상대 평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각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서로 다른 기본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성취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절대 평가하신다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고 학문적으로 정리하였던 것이다. (162.3)
 충성의 열매는 예수님의 재림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도록 주신 종말설교의 세 가지 비유 중의 하나로도 소개되어 있다(마 25:14-30).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의 충성에 대해 주인은 다음과 같이 똑같이 칭찬하였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 (162.4)
 8) 온유(prautes).
 온유는 복의 근원으로 부드러운 마음, 관용하는 마음으로 겸손과 유사한 뜻을 가지고 있다. 부드러움은 생명의 증거요 특정이다. 어린 아이의 살은 매우 부드러운 반면 죽은 시체는 돌같이 굳어 있다. 그러나 온유를 약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민 12:3). 그는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교만함이 없이 담대하였다. 온유한 자에게는 땅이 기업으로 약속되어 있다(시 37:11; 마 5:5). (163.1)
 예수님은 온유함의 모델이다. 우리가 온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비결을 주님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쉽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1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