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부 록 I. 왜 하필 제칠일 안식일인가?
 그러나 일을 쉬고 숨돌리라는 안식일 계명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을 넘어선 강제이다. 초청이면서 어길 수 없는 생명의 강권이다. 안식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삶으로 나오게 하는 초청이지만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내는 하나님의 완력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강제력이다. 모든 사람에게 강요된 지상 명령이다. 왜 하나님은 쉬는 명령을 이렇듯 무섭게 하는가. 이 명령을 어긴 자들을 무섭게 처벌하시는가. 하나님의 창조하신 생명체가 쉬라는 명령을 어기고 숨을 “쉬지 않으면” 그 생명이 죽기 때문이다. 죽어서 생명의 나라를 망하게 하고 생명의 창조주를 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택권이 없는 종들에게,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능력이 없는 병자와 가난한 자와 죄인들에게, 어린이와 노약자들에게 그리고 육축과 생태계에게 “쉬고” “숨돌리는” 문제를 그들의 선택 사항으로 내버려 둔다면 어찌되겠는가? 주인에게 강제적으로 “안식일의 명령”을 강요하지 않는다면, 힘 없는 사람을 쉬게 하는 일을 절대 명령으로 강요하지 않고 주인의 선택 사항으로 맡겨 버린다면 종과 같은 약한 사람들과 육축과 생태계는 결국 숨돌리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황폐하고 파멸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망하게 될 것이다. (366.3)
 뿐만 아니라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 마음만 있으면 쉴 수 있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러한 자들의 “쉬고”, “숨돌리는” 문제를 그들의 선택 사항으로 내버려둔다면 그들의 무서운 탐욕 때문에 그들은 결국 쉬지 못하여 죽을 것이다. 그들의 탐욕이 자신들로부터 쉼을 빼앗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탐욕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것이다(약 1:15). (366.4)
 안식일은 잔칫날로서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다
 안식일은 또한 성일이고 휴일이면서 축제일이다. 잔칫날이다. 잔칫날로서 제7일은 보통날과 다른 날이다. 잔칫날은 배불리 먹고 마시고 즐겁게 노는 날이다. 하나님의 안식일 계명은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잔치를 즐기라고 엄명하는 계명이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잔치하는 삶이 하늘의 삶이라고 가르친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마 22:2). 천국은 마치 집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베푼 어떤 아버지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눅 15:12-32).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제사를 요구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마 12:7). 성경의 하나님은 생명 있는 것들을 “길에서 먹을 것이 없어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는”(마 15:32)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품군에게조차 양식이 풍족한 아버지의 집”(눅 15:17) 같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는 떡 일곱 개와 생선 두 마리로도 수많은 여자와 어린아이들과 어른 남자 4천 5천 명이 먹고도 남은 음식이 일곱 광주리, 열두 광주리에 차는 나라(마 14:20)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누구든지 목마르면 와서 값 없이 마실 수 있는” 나라(요 7:37;사 55:1)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요 14:2). (367.1)
 물론 “좋은” 세상은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다. 자기가 일한 것으로 자기가 먹고 사는 세상이다. 육일 동안은 “네가 힘써 네 일을 해야 한다”(출 20:9). 그래야 여섯 날이 “좋은 날이 되고” “심히 좋은 날이 된다.”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아야 하는”(살후 3:10) 세상이 “좋고” “선한” 세상이다. 그러나 복된 세상, 거룩한 세상,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 같은 세상은 그러한 세상이 아니다. 안식일의 나라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는” 나라가 아니다. 일할 능력이 없고 돈벌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라하여 그들이 오는 것을 금하는 나라가 아니다. 일할 능력이 없고 돈 벌 능력이 없는 가난하고 병들고 죄 많은 사람들이라 하여 그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는”(막 10:14)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과 안식일의 나라는 “그러한 자의 것이다” (막 10:14). “목마른 자들은 누구나 와서 마시고 굶주린 자는 누구나 와서 먹는” 나라가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의 나라이다. “돈 없는 자도 오라” 하여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 먹으라” 하는 나라가 안식일의 나라이다(사 55:1).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복이 있다” 하는 나라가 안식일의 나라이다(마 5:6). 네가 힘써 네 일을 해야 하는 “좋은” 나라 곧 “좋은” 여섯 날들에 일하지 못하여 굶주리게 되고 목마르게 되고 헐벗게 된 무능한 자와 무력한 자와 병자들과 노인들과 어린이와 나그네와 죄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아(마 5:7) 배부르고 즐겁게 되는 세상이 안식일의 나라이고 하나님의 나라이다. 성경의 백성들은 “세상 끝 날까지”(마 28:20)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부한”(마 28:20) 이 잔칫날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마 28:20) 천국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여야 한다(마 24:14). (367.2)
 그런데 어찌하여 하필이면 안식일이 제칠일이어야 하는가
 성경의 십계명은 사람에게 “힘써 네 일을 행하는” 보통 날과 “네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고른 숨만 쉬며 예배하고 기념하고 기쁘게 노는 성일과 휴일과 잔칫날 같은 특별한 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의 뜻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의문의 하나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왜 그 특별한 날이 제칠일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찌하여 다른 날이 아니고 제칠일이 하나님에게 특별한 날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특별한 날이 되었는가.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안식일은 “모든 날과 같은”날이 아니어야 하는가.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법의 하나로 제칠일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는가. 왜 우리들에게 “제칠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하였는가. (368.1)
 우리는 그 대답을 넷째 계명, 곧 안식일 계명 자체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계명은 단순히 “제7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만 명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7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왜 특정한 제7일이 하나님과 그 백성에게 특별한 날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고 하였다.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것이다(출 20:11).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제칠일이 특별한 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이 밝혀졌다. (368.2)
 그러면 왜 다른 윤리 전통이나 종교 전통의 기본법에는 제칠일에 대한 계명이 없는 것일까. 왜 다른 종교 전통에는 제칠일에 대한 지식이 없는가. 오직 유독. 기독교의 성경에만 제칠일의 계명이 이렇듯 중요한 계명으로 강조된 것일까. 어찌하여 유독 기독교의 성경에만 제칠일의 지식이 보존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 간직된 창조의 신앙 때문이다. 안식일 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진실을 모르고 창조의 하나님을 모르고 창조의 신앙을 모르는 종교와 윤리의 전통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그들의 무지와 불신 때문에 제칠일의 계명을 알 수도 없고 제칠일 안식일의 도리를 가르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그들의 몽매한 상태 때문에 제칠일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중요하게 여길 수도 없었고 가르칠 수도 없었던 것이다. (368.3)
 제칠일의 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와 관련하여 창조주로서의 자신의 신분과 속성을 밝히는 계명이며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우리들의 신분과 속성을 밝히는 계명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그의 낳고 기르는 백성이며 하나님의 형상이다. 사랑과 소망과 믿음의 또 다른 주체이다. (368.4)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은 세계의 창조에만 특별히 관련된 날이 아니라 세계의 구원에도 특별히 관련된 날이다. 창조의 기억뿐만 아니라 재창조의 기억을 간직한 날이다. 자기의 백성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이다.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셨던 것이다(신 5:15). 제칠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할 이유가 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사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우리들이)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고”(롬 3:25)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여”(롬 3:26) “우리 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하셨기 때문에(롬 5:1) “안식일을 지키라” 하셨던 것이다. (369.1)
 따라서 기독교의 성경에만 제칠일이 강조된 것은 제칠일이 창조의 신앙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윤리와 종교 전통에서 제7일에 대한 지식과 신앙이 없는 것은 그들에게 창조 신앙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창조와 출애굽과 십자가의 구속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제7일의 신앙으로 차별화되는 것은 기독교가 창조 신앙과 구속신앙으로 차별화 되었기 때문이다. (369.2)
 제칠일은 창조와 구속에만 관련되는 날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재림에도 관련되어 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계 14:7)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되고 있으며 이 창조주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다시 창조하는 재창조의 사건에 관련되고 있다. 하나님이 회복하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관련되어 있다. 창조 신앙과 구속 신앙과 재창조 신앙이 제7일이란 한 날의 상징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의 다른 윤리 전통과 종교 전통은 천지를 새롭게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게 하는 재창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고 재림하는 그리스도의 신앙이 없기 때문에 제칠일의 신앙을 모르는 것이다. (3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