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8부 제단으로의 초청 제44장 대속죄일의 심판은 헌신을 요구한다
 선지자 요엘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을 돕는 또 다른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401.3)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욜 2:28~31).
(401.4)
 “짐승”과 그의 지지자들은 표적과 기사를 독점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통하여 자연계 가운데서와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서 그의 능력을 보여주신다. (401.5)
 이러한 표적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의심할 수 없게 한다(계 14:7). (402.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그분의 영을 특별한 방법으로 부어주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초기교회 시대에 오순절에 시작된 성령님의 부어주심은 수천 명의 사람들의 마음에 힘 있는 회심을 가져왔다(행 2).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다. (402.2)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은 의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며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 책임 있는 판결을 받게 될 것이다(요 16:8). 영적 거듭남을 제공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다(딛 3:5). 우리의 마음에 사랑을 쏟아 부어 주시므로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다(롬 5:5). (402.3)
 우리가 그분의 영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없다. 그분은 아직 우리 속에서 이 일을 마치지 않으셨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위한 우리의 결정을 정하도록 도우심으로 계속해서 옳은 일을 하며 거룩하게 남아있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실 수 있다(계 22:11). (402.4)
 마치 적당한 때에 내리는 충분한 비는 추수를 위한 곡식이 익어가는 속도를 높이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더 해주심으로 우리가 선택한 효과의 속도를 높이실 것이다(욜 2:23~24). (402.5)
 옥수수와 밀은 여전히 옥수수와 밀이지만 적당한 비는 더 충실한 열매를 맺는 옥수수와 밀이 될 것이다. 거룩함과 사랑하는 일은 여전히 같은 방법으로 지속되나 더 성장할 것이다. (402.6)
 다른 비유를 들자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 엘리베이터를 선택하게 하신다. (402.7)
 그 다음에 그분은 속도를 높이신다. (403.1)
 하나님의 사람은 성숙할수록 그들의 죄에서 벗어난다. 그리스도는 저들을 당신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만드신다(엡 5:27). (403.2)
 하나님께서 대속죄일의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끗케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과 같이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깨끗케 될 것이다(레 16:30).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속죄일 이후에는 속죄제를 드려야 할 새로운 한 해와 새로운 대속죄일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의 심판의 결론으로 하늘 성소에서 죄를 용서하시는 일을 마치실 것이며 가부간의 판결을 선언하시고 집행하시고자 지구에 다시 오실 것이다. (403.3)
 한 사람도 용서받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일을 멈추실 수 있겠는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잃어버릴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품성과 조화되지 않는다(벧후 3:9). (403.4)
 그분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에서 벗어 나도록 그들의 영적 성장을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분의 백성을 정결케 하고 그들을 흠 없이 자신에 바치도록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용서하는 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게 하신다. 그분은 그 일을 박차고 떠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용서할, 용서받을 만한 죄가 없기 때문에 그가 이 일에서 “잠시 놓이셨다”고 말할 수 있다. (403.5)
 그리스도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멈추신다는 사실이 그 시점 이후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님 없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버리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403.6)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가 당신의 신부로 나타나기를 원하신다고 에베소서 5:25~27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분이 얼마동안 교회를 버리실 것인가? 아니다! 훌륭한 신랑이 그의 신부를 버리겠는가? (404.1)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구원받기 바로 전에 미가엘이 일어날 때 여전히 악을 행하는 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란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다니엘는 말하고 있다(단 12:1; 계 22:11). 사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완전히 악을 추구하는 것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악을 행할 것이다. 홍수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비교하여 보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404.2)
 만일 악인들이 그리스도를 미워한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미워할 것이다(요 15:20).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얼굴이 진흙속에 쳐박혀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러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이 땅에서의 어떤 증거도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야곱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과 홀로 씨름했던 것과 같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으로 분투할 수 도 있다(창 32:24). (404.3)
 야곱이 어둠 속에서 씨름하고 있을 때 주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나의 학생들 중 한명이 지적한 것처럼 그분은 야곱이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인 야곱의 품에 계셨다(창 32:24, 28~30). 야곱과 같이 우리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26절). (4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