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8부 제단으로의 초청 제44장 대속죄일의 심판은 헌신을 요구한다
 나는 태평양의 반대쪽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1962년 호주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가려는 생각은 아버지의 향학에 대한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61년에 부모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기로 결정하신 후 그 결정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직업을 그만두시고 임시직을 구하셨다. 우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치워버리고 나무로 된 포장 박스들을 구했다. 호주를 떠나기 일주일 전에 우리는 시드니에 가서 조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397.1)
 이러한 모든 행동들은 우리를 더욱 전념하게 했다. 우리는 떠날 준비가 되어 갈수록 점점 더 다시 되돌리기 어렵게 되었다. (397.2)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미국으로 우리를 데려갈 42,000톤이나 되는 배는 일곱 살이 조금 안된 내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예전에 여행 소책자에서 본 오리아나(Oriana)를 그린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397.3)
 아버지와 어머니, 다섯 살 된 남동생과 나는 오리아나에 올라 갑판 위에 서서 선착장을 바라보았다. 우리와 함께 배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스트리머(streamers, 기선이 떠날 때 쓰이는 색 테이프—역주)라고 불리는 긴 종이 리본을 잡고 있었다. (397.4)
 각 리본의 다른 끝은 선착장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잡고 있었다. (398.1)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선착장 위에 서 계셨다. 그분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느라 바빴다. 미국은 아주 먼 곳이었다. 아직도 배에서 내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트랩위를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호주에 머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바꿀 기회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배의 트랩이 올려졌고, 물은 소용돌이쳤으며, 종이 리본은 끊어졌다. 돌아갈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미국으로 가고 있었다. 일곱 살이 조금 안된 내게는 대모험이었다. 나는 조부모님들이 느끼셨을 이별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는 단지 삼 년 동안 미국에 있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결국 호주에 살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다. 42,000톤의 배가 선착장에서 밀려 나갈 때에 그것은 내 인생 첫 부분의 끝이었다. 나는 지금 미국 시민권자이며 미국여인과 결혼했다. 모든 것은 종이 리본이 끊어지는 그 운명적 순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398.2)
 많은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중요한 결정에 전념할 수 있다. 이것은 전 세계의 선착장이나 공항에서 날마다 일어난다. (398.3)
 성경에 따르면 수천 년 전에 여덟 명의 사람들이 큰 배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그냥 남기로 결정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정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노아 방주의 문을 닫으시는 그 날이 왔다(창 7:16). 그게 끝이었다. 헌신의 기회는 끝났다. (398.4)
 주님께서 문을 닫으시기 전에 그분은 어떤 사람에게도 방주에 타거나 내리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398.5)
 그분은 사람들의 결정을 존중하셨다. 시간이 있었으나 결국 그 시간들은 지나갔다. (399.1)
 노아의 방주에는 종이 리본은 없었다. 선착장도 없었다. 그 방주에는 엔진도 없었고 심지어 돛조차도 없었다. 문이 닫혔을 때 방주는 그냥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문은 닫혔다. 물이 하늘과 땅에서 쏟아져 내릴 때에 인류의 역사를 계속할 사람들은 방주 안에 있던 여덟명 뿐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여덟 명의 후손들이다. 모든 것은 방주의 문이 닫히는 운명적인 순간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399.2)
 노아의 때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을 방주의 문 바깥쪽에서 문 안쪽으로 강제로 옮기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무엇이 되기를 선택했느냐를 그들에게 일깨워 줄 뿐이다. 그들의 결정에 대한 심판이 있기 전에 사람들은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마지막 헌신의 마음은 이미 정해질 것이다. (399.3)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설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천사 합창단이 “내 모습 그대로(Just As I am)”라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호소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마 25:31~46) 그분의 충성된 자들을 충성되지 못한 자들로부터 구별하실 것이다. 그분은 이미 누가 그분께 속했는지 아실 것이다. (399.4)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과정을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상을 주실 것임을 진술하고 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1~12). (399.5)
 심판의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바꾸도록 호소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시간이 온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사 5:4). (400.1)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도 그분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람이 선택한 결정을 존중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문을 닫으신다. 그분은 각 사람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각 사람에게 돌리신다. (400.2)
 하나님께서는 수십 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선택하거나 또는 반대의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는가?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그들의 마음을 정하지 못했을 때에 그 결정들을 최종의 것으로 여기시는가? 자신이 의식적으로 배나 비행기에 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결정이 그렇게 명확할 수 있을 것인가? (400.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이 명확하기 전까지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초청이 지구촌 곳곳에 전해지기 전까지 끝은 오지 않을 것이다. (400.4)
 마지막 초청은 계시록 14장에 나와 있는 심판의 때 동안에 온 세상에 전파될 힘 있는 호소와 경고의 기별로 구성되어 있다(6~12절). 이 기별은 온 세상에 알려져 있는 죽게 되었다가 살아난 “짐승”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기에 사람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계 13:3~4). (401.1)
 “짐승”이 전 세계적 뉴스가 될 때에 하나님은 대서특필될 준비가 되신 것이다. “짐승”이 위협하려고 할 때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제안하시는 대안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가 압도적인 힘의 대결에서 승리하였기에 유명해 진 것을 기억해보라. 이 도전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은 아이젠하워를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4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