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이 일어나자(인간의 의지의 산물인) 행위를 통한 구원이 아닌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이 다시 강조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전에 배척되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들 중 몇몇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 신학자들은 가지각색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1483-1546년)는 인 간의 의지의 완전한 타락을 강조한 반면에, 그의 친구인 멜란히톤(1497-1560년)은 자유 의지가 은혜와의 협력을 통해서 구원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칼뱅(1509-1564년)은 이중 예정설을 받아들였지만, 칼뱅주의 네덜란드 에선 아르미니우스(1560-1609년)가 구원으로의 초청이 단번에 보편적으로 주어졌다는 견해를 옹호하였다. 이 견해는 결국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은혜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은혜는 거절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은혜를 받아들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후에 그 은혜를 저버릴 수가 있다. (278.2)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들을 부분적으로 배척한 사람들에게는 반 펠라기우스주의(semi-Pslagianism)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로마가톨릭교의 반 펠라기우스주의는 이중 예정설을 배척하였다. 개신교의 반 펠라기우스주의는 거기에 더하여 원죄의 개념까지도 버렸다.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죄책이 아닌 타락한 본성이다. 우리는 죄의 악한 성향 곧 죄의 뿌리를 지니고 태어나는데, 바로 이 뿌리가 우리로 하여금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죄된 생각과 죄된 말과 죄된 행동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다. (278.3)
 D. 재림교회의 사상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그들의 교리 발전의 과정 속에서 조직신학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성경의 실제적인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보여왔다. 또한 어떤 주제들은 다른 주제들에 비해 더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이런 점에서, 개신교가 전반적으로 다 그렇듯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도 그들만의 강조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신학적 견해에 비추어 볼 때 대체로 그들의 이해를 아르미니우스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2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