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위그노 측 귀족의 한 사람인 나바르의 앙리(Henry of Navarre)가 프랑스 왕위의 계승자가 되었을 때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는 그를 자격 상실자로 선포하였다. 그러나 나바르의 앙리는 국왕 앙리 4세로 왕위에 올랐고 곧 이어 국민의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가톨릭 교도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그때 그는
“파리에서는 미사(mass)라야 통한다” 라고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앙리 4세는 1598년에 그 유명한 낭뜨 칙령(Edict of Nantes)을 반포하여 비록 파리, 리용(Lyon) 등 프랑스의 주요 도시로부터 위그노 교도들을 완전히 축출하면서도 그들에게 여러 가지 자유를 법적으로 허용하였다. 그리하여, 위그노 교도들에게 신앙 생활이 허용된 지역에서는 위그노 교도들이 공업, 교육, 농업, 상업 등에서 뛰어났으며, 사실상 프랑스의 중류 계층을 형성하였다. 그들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백만에 육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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