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다니엘 9장의 이슈들 제25장 예순 아홉 이레의 시작과 끝
 둘째 칙령은 다리우스가 내렸다. 유대인들이 성전의 건축을 시작할 무렵, 그 지역의 총독인 닷드내가 도전해왔다.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3절). 유대인들은 고레스의 칙령을 인용하여 대답하였으나, 닷드내에게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그 칙령을 보기 원하였다. 오늘날 같으면 간단한 전화 통화 이메일, 또는 팩스로 충분히 그러한 칙령을 증명할 수 있었을 테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우리의 기술이 없었으므로 그들에게는 닷드내에게 보여줄 칙령의 사본이 없었다. 그래서 닷드내는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어 왕실의 문서보관소를 찾아서 정말 고레스가 그런 칙령을 내렸는지 알아내도록 요청하였다. 그때의 황제는 다리오라는 인물이었다(6-17절). (306.3)
 다리오가 승낙하였고, 칙령은 발견되었다. 그래서 다리오는 그 의심되는 칙령을 고레스가 분명히 반포하였다고 닷드내에게 회답하고(스 6:3-12), 그에게는 성전 건축을 방해하지 말고 그것이 잘 진행되도록 하라고 말한다(6, 7절). 사실, 건축 사업의 비용을 그 자신의 세금 수입 중에서 지출하도록 그도 또한 명령을 내린다(8절)! 하지만 다리오가 내린 이 칙령은 성전을 재건하라는 고레스에 의한 최초의 칙령을 단순히 재확인한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칙령이 아니었고, 유대인의 독립이나 예루살렘 성읍의 재건에 대해서는 말한 것이 없으므로, 재림교회와 대다수의 다른 학자들은 그것을 가브리엘이 말한 예언의 성취로 간주하지 않는다. (306.4)
 아닥사스다의 첫 번째 칙령
 아닥사스다는 두 개의 칙령을 내렸으며, 학자들은 그것이 가브리엘의 예언을 성취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제1차 조서는(고레스와 다리오를 계승한) 기원전 457년에 내려졌다. 에스라 7:12-26에서 그것을 읽어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재림교회가 가브리엘의 예언을 성취하였다고 간주해온 칙령이다. 우리는 이러한 결론에 대하여 제기된 두 가지 도전을 살펴보아야 한다. (307.1)
 기원전 457년이라는 연대.
 첫 번째 문제는 기원전 457년이라는 연대와 관계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아닥사스다가 첫 조서를 내린 것이 457년이 아니라 458년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지난 20세기 중엽, 두 명의 재림교인 고고학자, 지크프리트(Siegfried Η. Horn)과 린 우드(Lynn H. Wood)가 고대의 자료들에서 얻은 증거를 자세하게 연구하여 〈에스라 7장의 연대기〉(The Chronology of Ezra 7) 라고 하는 제목으로 160쪽 분량의 책을 발간하였다. 그들은 에스라가 기원전 457년 봄부터 초여름까지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여정에 있었으며, 아닥사스다의 칙령은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시행에 들어갔다고 결론 내렸다.5) 개신교 학자인 월터 마틴(Walter R. Martin)은 1950년대 중엽에 재림교회의 교리들을 자세하게 조사하였는데, 457년 연대에 대한 증거를 연구한 후, 그 해가 “이제 공인된 예루살렘 재건령의 연대”6)라고 결론지었다. (307.2)
 또한 <하퍼 스터디 바이블>(Harper Study Bible)에 있는 다니엘 9:24의 각주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307.3)
예순 아홉 이레의 출발점(terminus a quo)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말씀(즉 칙령)이 날 때부터(25절)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칙령, 또는 다음의 역사적인 세 조서 중 하나를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1) 기원전 538년, 고레스 왕의 칙령(스 1:1-4),
   (2) 기원전 457년, 에스라에게 내린 아닥사스다의 명령(예루살렘 성벽을 세울 권한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참조 스 7:6, 7; 9:9);
   (3) 기원전 445년, 성벽의 재건을 수행하도록 느헤미야에게 내린 명령(느헤미야가 완수할 수 없었던).
이 중에서(1)은 그리스도의 사역 시기와 너무 동떨어져 있으므로 배제되어야 하고,(3)은 계산에 태음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너무 늦고,(2)만이 정규적인 태양력에 따라 그 결과가 기원후 27년, 즉 그리스도의 사역 시작의 때가 되므로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7)
(308.1)
 아닥사스다의 첫 번째 칙령을 기원전 457년으로 보는 재림교회의 연대 계산이 매우 타당하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308.2)
 성전 재건에 대한 언급이 없음.
 두 번째 문제는 69이레(그리고 70이레)를 표시하도록 되어있는 사건, 즉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to restore and build)”영의 반포와 관련이 있다. 이 말을 영어로 읽으면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두 단어는 마치 “울고 눈물 흘린다”처럼 다 동일한 행위를 가리키는 동의어라는 느낌을 받는다. 다니엘 9장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회복건축이라는 두 단어가 모두 예루살렘의 재건과 관계있는 것으로 여겼으리라고 생각한다. (308.3)
 문제는 에스라에 의하여 7장에 기록된 아닥사스다의 조서에 예루살렘의 재건에 대한 아무 말이 없는 것이다. 성전의 건축은 이미 50여 년 전에 완료 되었으며,8) 따라서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그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조서는 다섯 가지의 권한을 주었다. (308.4)
•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유대인은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 돌아가는 유대인들이 성전 예배와 관련하여 희생 제물을 사고 다른 경비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돈을 가지고 가도록 허락하였다.
• 팔레스타인에 있는 바사 정부의 관리들이 성전 예배에 필요한 은, 밀, 포도주, 기름과 소금을 유대인들에게 제공하도록 명령하였다.
• 제사장들과 다른 성전 일꾼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을 금하였다.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유브라데]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임명할 권한을 유대인들에게 주었다(스 7:25).
(309.1)
 기원전 457년에 반포된 아닥사스다의 칙령에는 예루살렘의 재건에 대한 말이 한 마디도 없기 때문에, 다수의 학자들은 그것이 예루살렘의 중건에 관한 가브리엘의 예언의 구체적인 사항을 성취하지 못하였다고 결론지었다. 다른 한편, 기원전 444년에 내려진 아닥사스다의 조서에서는(이것에 대해서는 뒤에 논의할 것이다) 느헤미야에게 예루살렘 성벽의 건축을 완료하도록 구체적인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으로 칠십 이레가 시작되리라는 가브리엘의 진술을 성취시키는 것이 그 조서라고 본다. (309.2)
 그러므로 아닥사스다의 기원전 457년 칙령을 칠십 이레의 시작점으로 간주할 만한 명분은 무엇인가? (309.3)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함
 기본적인 이슈는 회복하고 건축한다는 가브리엘의 말이 둘 다 예루살렘의 재건을 가리키는 동의어인가, 아니면 그 두 단어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귀환에 관련된 두 가지 별개의 측면을 언급하는가 하는 것이다. 오우수-안트위는 회복건축에 해당되는 두 히브리 단어가 서로 동의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 두 단어는 다니엘 9:25에서 별개의 개념을 나타내며, 예루살렘의 별개의 측면에 적용된다.”9) 회복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먼저 논의하고 그 다음 건축에 대하여 하겠다. (310.1)
 1.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느부갓네살은 기원전 605년부터 5애년까지 세번 유다를 침공하였다. 그 결과로 두 가지 일이 있었다. 첫째, 유다의 정치 체계가 철폐되고, 결과적으로 유대인은 하나의 국가로서 존재하기를 그쳤다. 둘째, 유대인들의 성전과 그들의 성읍은 파괴되었다 다니엘에게 해준 가브리엘의 설명은 이 두 가지 상황이 모두 역전되리라고 예언하였다. (310.2)
 회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르하시브(léhasib)를 번역한 것이며, 그것은 슈브(sub)라는 단어의 부정형(不定形)이다. 오우수—안트위는 히브리 성경에 나오는 슈브를 상세하게 분석하였다.10) 그는 구약에서 슈브가 사역형(使役形,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히필이라고 부름)으로 땅 성읍, 국가 등을 목적어로 하여 쓰일 때, 그 도시나 국가의 물리적인 구조물을 재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이 그들의 성읍 또는 국가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케 하기 위하여 인용한 증거들을 여러분이 충분히 납득할 만큼 소개하려고 한다. 매 경우 땅이나 성읍이 슈브의 직접목적어로 쓰였고, 다시 말해서 그것들이 회복된다는 점을 유의하라.(성경 인용에 표시된 모든 강조는 첨가된 것임) (310.3)